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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딱 하루 남았다. 나는 블라디보스톡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한시간 더 빨리 올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몇년 전 썼던 수용소 중편 후반부의 일부를 아래 발췌해 본다. 시간이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지... 나는 이 글을 2013년 3월과 4월에 썼다. 그때 나는 프라하에 머물고 있었다. 돌아와서 서울에서 글을 마무리했었다. 그 순간들이 너무 생생한데 이미 6년이나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하긴 이제 나이를 많이 먹어서인지 시간들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가버린다. 사실 십년 전 이십년 전의 기억도 생생하다. 물론 그건 취사선택된 특정 순간들에 대한 기억들이겠지만.

 

 

이 소설은 여기 폴더에 여러차례 조금씩 발췌해 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는 좀 다른 면에서 소중한 소설이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중첩되고 변형되면서 더 밀접해졌다. 오늘 발췌한 부분은 3부의 전반부 몇 페이지이다. 약물 고문 쇼크를 일으켜 클리닉으로 옮겨진 미샤를 그의 친구인 일린이 면회를 하러 온다. 일린은 피폐해진 친구와 이야기를 조금씩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최근의 기억들을 몇가지 머릿속으로 되살린다. 미샤의 발레학교 동기이자 오랜 파트너인 지나에 대한 얘기도 좀 나오고, 미샤의 어머니 율리야에 대한 얘기도 약간 나온다.

 

 

지나이다는 지나의 본명이다. 맨날 지나라고 부르지만 러시아 이름답게 본명은 좀더 길다 :) 사족이지만 이 이름은 상징파 시인인 지나이다 기피우스, 그리고 화가 지나이다 세레브랴코바에서 따왔었다. 특히 전자.

 

 

율리야가 언급하는 이름인 세료자는 율리야의 남편이자 미샤의 아버지인 세르게이의 애칭이다. 세르게이는 이 글의 시간적 배경으로부터 20년 전에 체포되어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샨카는 미샤의 또다른 애칭인데 율리야와 미샤의 주치의인 유라 외에는 이 이름을 쓰지 않는다. 벨스키는 예전에 발췌한 글들에도 자주 나왔다. 유력 정치인이고 미샤를 후원하는 인물이다. 발췌된 3부는 일린의 1인칭으로 서술된다.

 

 

사진은 예전에 페테르부르크 본치 카페에서 찍은 것이다. 그냥 눈에 들어서 올려봄. 글만 올리면 뭔가 아쉬워서.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나는 별다른 노력도 없이 그를 소파로 데리고 갔다. 미샤는 자기 발로 걸어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것만은 확실했다. 마침내 소파에 앉혔을 때 그는 훅 하고 숨을 내쉬더니 팔걸이에 머리를 떨어뜨리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물병의 뚜껑을 따주자 별 말도 없이 물을 두어 모금 마셨다.

 

 

 병을 내려놓은 후 미샤가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 진짜 올 줄 몰랐어. ”

 

 

 “ 전에는 왔던 사람 없었어? ”

 

 

 그 말을 입 밖에 낸 후에야 그게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파리에서 소환된 직후부터 그 누구도 미샤를 본 적이 없었다. 나를 비롯한 그의 지인들과 극장 동료들은 갖은 인맥을 동원해 어떻게든 면회를 해보려고 애썼고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재판의 증인이 되기 위해 신청서를 쓰고 끊임없이 면담을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당했다. 지나이다는 아직도 세력이 꽤 남아 있는 자기 아버지와 미샤의 오랜 팬이었던 알렉산드르 고르차긴, 마이야 필리포브나 등 레닌그라드의 전통적 실력자들의 힘을 빌려 재판 날짜를 알아내고 증인 허가서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일이 되었을 때 고르차긴으로부터 우울한 전화가 걸려왔다. 재판은 이틀 전에 비공개로 진행되었으며 미샤는 이미 판결을 받고 이송되었다는 얘기였다. 지나이다는 너무 충격을 받아 다음날 예정되어 있던 무대에도 서지 못했다. 그 더러운 놈들은 심지어 미샤를 어느 교도소로 보냈는지, 형량이 얼마이며 정확한 죄목이 무엇인지조차 밝히지 않았다. 면회는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미샤는 별로 내키지 않는 듯한 어조로 대답했다.

 

 “ 엄마. 어제 왔었어. ”

 

 “ 그리고는 내가 처음이야? ”

 

 “ , 벨스키가 어제 와서 두 명만 허가해주겠다고 했지. 엄밀히 말하면 엄마는 내가 부른 게 아냐. 벨스키가 이미 데리고 왔더라고. ”

 

 

 미샤의 얼굴에 희미하게 찡그린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그가 율리야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쇼크에서 벗어난 후 지나이다는 율리야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날 지나이다의 집에는 나도 있었다. 나는 미샤보다도 더 독립적이고 더 말이 없으며 여왕처럼 도도하고 수녀처럼 침착한 율리야 야스미나가 평정을 잃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그때 처음 보았다.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가슴을 치며 몸부림쳤다. 이마와 뺨을 바닥에 비벼대며 짐승처럼 낮게 흐느껴 울었다.

 

 아, 세료자. 그놈들이 걜 끌고 갔어. 우리 아이, 우리 미샨카를 뺏아갔어, 그 천사 같은 애를, 아무 죄도 없는 앨 체포했어, 가둬버렸어. 이제 죽일 거야, 당신처럼. 그놈들이 우리 애를 죽일 거야... 절대 돌아오지 않을 거야. 사라져버릴 거야. 미샨카, 내 아들, 불쌍하고 불쌍한 우리 아이... , , 아 세료자,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해...

 

 

 “ 그래도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어머니가 더 걱정하셨을 거야. 많이 힘들어 하셨어. ”

 

 “ 지나에게 고맙다고 전해줘. ”

 

 “ 우셨어? ”

 

 “ 아니. 우리 엄마는 내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아. ”

 

 그리고 넌 율리야를 그대로 닮았겠지. 

나는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침묵했다. 미샤는 어머니 얘기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듯 내 쪽을 보며 불쑥 말했다.

 

 “ 미안. ”

 

 “ 뭐가? ”

 

 “ 네 이름 말해서. 귀찮은 일 생길지도 모르는데. ”

 

 

 “ 그런 말을 하다니, 한대 패주고 싶은데.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다들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알아? 지나는 마이야 필리포브나에게 찾아가기까지 했어. 그 둘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잖아. ”

 

 

 “ ... ”

 

 

 미샤는 잠깐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눈꺼풀을 무겁게 깜박였다. 몸이 아파서 그런 건 아닐까 걱정도 잠깐 밀려왔지만 난 그런 표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전혀 모르거나 기억나지 않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그는 마이야 필리포브나의 이름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토록 그를 열렬하게 후원했던 여자를, 레닌그라드의 공작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은 여자를, 거의 한 달에 한 번씩은 극장 후원 모임에서 만났던 여자, 그를 아들처럼 아꼈던 그녀를. 지나는 그녀가 미샤에게 연정을 품고 있어서 항상 자신을 못살게 군다고 투덜대곤 했지만 난 그저 마이야 필리포브나가 지나와 같은 타입의 발레리나를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어쨌든 불러줘서 난 기뻤는데. 난 네가 지나를 부를 줄 알았어. 아니면 그 국립대 친구나. ”

 

 

 “ 네가 가장 안전했어. ”

 

 

 

 물론 난 그의 말을 이해했다. 벨스키가 내게 연락했을 때부터 알았다. 미샤는 키로프 동료들과 레닌그라드에 있는 지인들의 이름을 대는 것이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의 말이 옳았다. 그나마 모스크바에 있는 내가 가장 나았을 것이다. 벨스키를 비롯해 두세 명의 의원들과 잘 아는 사이이기도 했으니까. 그건 완벽하게 이성적인 행동이었다. 어쩌면 벨스키가 내게 했던 말에는 지나친 우려와 과장이 섞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특유의 매끄럽고 침착한 어조로 미하일이 이상하게 굴어도 너무 놀라지 말게. 꽤 심하게 앓아서 아직 완전히 맑은 정신을 찾지 못했으니까라고 말했다. 정치인답게 제대로 된 해명은 해주지 않았다. 왜 앓았는지, 그것과 이상하게 구는 것, 또렷한 정신을 찾지 못하는 것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다시 말해서, 그 더러운 놈들이 내 친구에게 대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자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입 하나 뻥긋하지 않았다.

 

 

 나는 거의 의식적으로 농담을 섞어 말했다.

 

 

 “ 전략적으로 택해준 거라면 영광이지만 좀 섭섭하기도 한데. 난 너 정말 보고 싶었다고. 그래도 열 번째 안에는 들어야 할 텐데. ”

 

 

 “ 들어. 훨씬 더 앞에. ”

 

 

 지금껏 미샤가 그런 말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제 정말로 말문이 막혔다. 하긴 그 애는 평소에도 가끔 내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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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오늘의 퀵 스케치는 꼬맹이 미샤랑 지나의 송구영신 카드. 얘네들이 이렇게 병아리였던 건 사실 쏘련 시절이지만 아닌 척하며 2019년을 마무리하고 2020년을 맞이하는 카드로 얼렁뚱땅~

 

 

얘들은 러시아 새해 맞이에 차리는 음식 중 두개 먹고 있음. 미샤는 올리비에 샐러드(감자, 달걀, 오이, 완두콩 등을 마요네즈로 버무린 샐러드), 지나는 만다린(귤)~~ 사실은 샴페인을 쥐어줘야 하는데 꼬맹이들이라 자체검열로 생략하고 아이들 입맛에도 딱 맞는 올리비에와 귤만 그렸음, 근데 올리비에 샐러드 접시 그릴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숟가락만 들려줬더니 저게 샐러드인지 아이스크림인지 이유식인지 구분이 안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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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눈이 많이 내렸다. 어쩐지 어제까지 날씨가 멀쩡하다 했지.

 

 

조식 먹고 와서 소파에 기대어 조금 게으름 피우다가 창 밖을 보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나가보니 눈보라 수준이어서 금세 눈이 두텁게 쌓였다. 함박눈이라 푹신푹신했지만 내일 기온이 영하 20도 가까이 내려간다고 하니 이제 저 눈은 몽창 빙판으로 변할 것이다. 숙소가 오르막에 있으니 조심조심해서 걸어야 함. 블라디보스톡은 스베틀란스카야나 알레우츠카야 거리 외엔 시내 거리들도 경사가 꽤 있는 편이라 이렇게 눈 오는 겨울엔 걷기가 좀 힘들다.

 

 

오늘은 좋아하는 카페에 가고, 새로운 카페를 하나 발굴하고, 새로운 곳에서 점심을 먹어보는 아주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나갔다. 날씨가 아주 안 좋았지만 세개 다 성공했음. 거기에 더해 눈보라 치는 바닷가에도 잠깐 들렀음 ㅋㅋ

 

 

카페마에 가서 잠시 앉아 라떼를 마시고 글쓰기 메모를 조금 했다. 이 카페에서는 커피 원두뿐만 아니라 다양한 찻잎도 팔고 있어서 홍차를 세 팩 샀다 :)

 

 

 

 

카페마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찍은 중앙광장과 스베틀란스카야 거리 풍경. 이때도 물론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배가 슬슬 고파져서 아드미랄 포킨 거리에 있는 새로운 식당에 가보았다. 식당이야 예전부터 있었고 내가 처음 가보는 곳인데 우하를 먹고 싶어서 간 것이었다. 약간 뻬쩨르의 고스찌를 연상시키는 아늑한 인테리어였다. 킹크랩 살을 얹어주는 올리비에 샐러드와 맑은 우하(생선수프), 그리고 오렌지와 애플민트 에이드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음식이 맛있었다. 좀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우하가 무척 맛있었고 해산물도 많이 들어있는데다 특히 두툼한 관자는 은은한 단맛마저 나서 국물 한방울까지 다 먹음. 역시 크림 든 핀란드 우하보다는 정통 맑은 우하가 내 취향~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후 눈보라 치는 바다를 쫌 보고 싶어서(대체 왜 ㅠㅠ) 약간 걸어서 바닷가로 나가보았다. 으악 정말이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눈발이 몰아쳤다. 그래서 잠깐 바다를 본 후 돌아서 나왔다.

 

 

카페마에 앉아 새로운 글에 대한 메모를 좀 했기 때문에 빨리 방에 돌아가 뭔가 적고 싶어졌다. 그래서 숙소로 방향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들르려고 찍어둔 베이커리 카페에 갔다. 흘롑 이 말라꼬라는 이름의 체인인데 여기가 라꼼까보다 백배 나았다! 자리는 간소하고 평범했지만 딸기 타르트가 무척 맛있었다. 가게 이름이 '빵과 우유'이고 아이스크림 가게도 따로 가지고 있어서인지 우유맛 크림이 무척 맛있었다. 카페마에서 라떼를 마시느라 홍차를 안 마셨기 때문에 차 한 잔과 딸기 타르트를 시켜서 먹고 몸을 좀 녹였다.

 

 

 

차와 타르트를 해치운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여기는 돌아가기 전날 시간이 되면 들러서 흑빵이랑 쿠키 류를 좀 사갈까 싶은데 과연 1월 1일에 영업을 할지 잘 모르겠음.

 

 

근처 편의점에 들러 생수, 초콜릿과 티백홍차 등 자질구레한 것들을 좀 샀다. 여기가 가격이 비싼 편인데 이런 날씨엔 그래도 제일 가까우니까... 그리고는 다시 언덕 등반.... 아아아 눈보라를 맞으며 등반...

 

 

 

방에 돌아와서는 욕조에 들어가 거품목욕을 했다. 그러자 너무너무 온몸이 노곤해져서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깐 졸았고 이후에도 좀 누워서 게으름 피웠다. 이렇게 게으름 피운 결과 카페마에서 구상한 글은 한 줄도 시작 못했고, 대충 저녁거리 때운 후 이제서야 노트북 켜서 오늘의 메모 적고 있음. 자기 전에 조금이라도 써보면 좋겠는데....

 

 

이제 올해도 딱 하루 남았다....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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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2. 30. 14:29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눈보라! 2017-19 vladivostok2019. 12. 30. 14:29

 

 

 

역시 예상대로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다!!!

 

 

스베틀란스카야 거리랑 바다 풍경.

 

 

 

 

쌩쌩 펄펄!!

 

 

 

 

 

비둘기들에게 먹이 주고 있는 아주머니. 바람 때문에 길에 쌓인 눈이 회오리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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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12. 30. 11:40

눈 펄펄, 카페마 2017-19 vladivostok2019. 12. 30. 11:40

 

 

 

눈이 엄청 펄펄 내린다. 눈보라 수준!!! 오전에 빠끄로프 사원에 다녀오려 했는데 날씨가 극악이라 오르막길 걸어올라갈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좋아하는 카페에 옴. 일년에 한번쯤 커피 마신다 :) 여기 커피는 부드럽고 맛있다.

 

 

 

 

 

근데 안타깝게도 가운데에 있던 칼라풀한 테이블이 그냥 단색 원목 테이블로 바뀜 ㅠㅠ

 

 

 

 

 

 

 

 

 

다샤님이 주신 노트 개시 :))

 

 

앉아서 좀 쉬다가 점심 먹으러 가야겠다. 근데 눈이 좀 그치면 좋겠는데...

 

 

..

 

 

추가 : 나오기 직전에 홍차를 좀 사면서 안쪽 홀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니 그 동그랗고 칼라풀한 테이블이 그대로 있었다 :) 기분 좋아져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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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