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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 첫날이다. 2018년과 마찬가지로 새해를 블라디보스톡에서 맞았다. 새해를 외국에서 맞은 것은 옛날에 러시아어 연수를 가서 기숙사에서 살았던 페테르부르크 시절 이후에는 재작년과 올해 두번 뿐이고 모두 블라디보스톡이었다. 블라디보스톡이 특별한 곳이어서가 아니고, 일단 가까운데다 비슷한 거리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비싸지 않고 또 러시아이기 때문에 그런 거긴 하다.

 

 

원래 11월까지는 여기 올 계획이 없었는데 몇주 전 회사 일이 꼬이면서 너무 기분이 다운되었고 또 그 일 때문에 2월 여행도 취소하게 되면서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아 블라디보스톡이라도 좋으니 잠깐 나가야겠다 못살겠다 못해먹겠다 정말' 하면서 예약을 한 거였다. 이미 재작년 이 시기에 왔을때 눈보라의 매운 맛을 보았으나... 여름엔 너무 무덥고 습해서 힘들었고 제일 좋았던 건 역시 5월에 왔을 때였던 것 같다. 사실 12월과 1월은 좀 최악인데 하여튼 그냥 왔다.

 

 

근데 확실히 매년 한살 한살 먹으면서 체력이 달라짐. 원래부터 저질체력이었지만 2년 전보다 훨씬훨씬 돌아다니기가 힘들었고 다리도 무지무지 아팠다. 어차피 여러번 왔던 동네이기 때문에 새로운 곳을 개척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그런 것은 날씨 좋을때!), 또 여행 자체보다는 회사와 업무에 지쳐서 조금이라도 나와 있고 싶어서 온 것이므로 매일 몇시간만 돌아다니고 일찍 숙소로 돌아와 쉬면서 보냈다.

 

 

사진은 스베틀란스카야 거리와 중앙광장 쪽에 있는 프레오브라젠스키 사원. 그런데 여기는 수리 중이라 방벽으로 가로막혀 있었고 분명 어딘가 들어가는 문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못 찾았다. 어제 빠끄로프 사원에 갔었지만 오늘은 새해니까 새해의 초를 켜고 싶었는데 결국은 그냥 밖에서 쿠폴 사진만 찍고 포기함. 티스토리가 버벅대서 그런지 호텔 방 와이파이가 안 좋아서 그런지 사진이 잘 안올라가서 이 메모에는 이 사원 사진 한장만 첨부한다.

 

 

간밤에 여기 시간으로 신년을 맞이했다. 러시아는 땅덩어리가 넓어서 한 나라 안에서도 시차가 있다. 블라디보스톡은 우리나라보다도 한시간 빠르므로 여기서 제일 먼저 신년 방송이 나온다(그러니 생방송은 불가능할듯) 열한시에 푸가쵸바 등을 비롯한 오래된 스타들이 나와서 하릴없는 농담따먹기와 조금은 촌스러운 쇼를 하고, 11시 55분이 되면 푸틴 대통령(ㅜㅜ)의 신년사가 나온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촌스럽고 권위적이지만 하여튼 티비화면 전체에 크레믈린이 비춰지고 곧 푸틴이 클로즈업으로 등장, 송구영신을 주제로 모범적인(+사랑하는 조국 러시아 만세 레퍼토리) 연설을 한다. 이러다가도 원래 11시 59분쯤 되면 이 사람 말도 끝나야 하지 않나 싶지만 정말 딱 맞게 12시까지 연설을 마치고, 그 직후 크레믈린 종탑의 시계가 클로즈업 되면서 열두번 종이 뎅뎅 친다. 종 치는 게 끝나면 러시아 국가가 울려퍼진다. 이것보단 제야의 종 치는 행사가 더 낫지 않나 싶다가도... 그것도 딱히 매력적인 것 같지는 않은 것 같고... 그래도 우리는 펭수가 타종을 했다며... 펭수 나오는 게 푸틴 독무대보단 낫지 않나 싶다.

 

 

한시간 더 버텨서 우리나라 시간으로 신년 맞는 것까지 보려고 했으나 너무 졸려서 결국 제야의 종 치기 전에 잠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오늘 조식은 건너뛰고 늦잠 잤다. 열시 반까지 자고 일어나 어제 빵집에서 사온 크루아상과 방에 비치된 저렴이 티백 홍차로 대충 배를 채우고 밖에 나갔다. 새해 첫날이니 바다에 가려고. 벌써 두번 다녀왔지만 하여튼 신년이니까.

 

 

호텔 앞에서 길을 건너면 우보레비치 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를 따라 쭉 내려가면 스베틀란스카야 거리가 나온다. 그런데 나는 여태 바보처럼 여기 벌써 수차례나 왔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이 호텔에는 세번째 묵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우보레비치 거리가 굼 백화점 안뜰로 통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음. 아 난 정말 방향치다... 얼어붙은 내리막길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가면서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고 있었는데 문득 '? 저 간판은 되게 굼 간판이랑 똑같네... 여기 또다른 분점이? 말르이 굼은 이쪽이 아닐텐데..' 하고는... 옆을 보니 낯익은 안뜰이 나오고...

 

 

으윽 나는 왜 이렇게 방향치인가... 그러면 며칠 전에 저기서 밥 먹고, 또 추다데이에서 화장품 쇼핑을 한 후 낑낑거리며 돌아나와 세묘노프 거리를 등반해 올라온 게 완전 뺑뺑이 돈 거였다는 뜻임!!! 그냥 이쪽으로 나왔으면 우보레비치 거리를 가로로 등반해 올라오면 바로 호텔이었거늘... (물론 도로를 무단횡단해야 한다는 위험이 있긴 하다)

 

 

자신의 하잘것없는 방향감각에 어이없어하며 들어온 김에 안뜰을 한바퀴 돌았다. 역시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음. 이미 2년 전에 왔을때도 1월 1일엔 웬만한 곳은 다 문을 닫는다는 걸 겪었으므로 그러려니 했다. 옛날에 페테르부르크에 있을때도 물론 그랬다. 다들 명절은 보내야 하니까.

 

 

스베틀란스카야 거리로 내려왔다. 먹을만한 곳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경험으로 수프라는 오늘 문을 연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여기는 사실 혼자 가서 먹기엔 너무 널찍하고 또 음식 양도 많아서 망설였다. 그러다 그저께 갔던 식당도 문을 연 것을 발견하고 거기 들어갔다. 한국인들이 계속 들어왔다.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았으니 다들 여기로.... 그래서 음식이 매우 늦게 나왔다. 가면 또 언제 먹겠느냐 싶어서 좋아하는 우하를 또 먹어야지~ 하고 우하랑 해산물 올리브유 구이를 시켰다. 우하는 그저께가 더 실하고 맛있었다. 오늘은 손님이 많아선가 내용물이 좀 덜했고 간도 좀 덜했다. 하지만 올리브유와 마늘과 허브를 잘 써서 구운 오징어/새우/관자/감자 구이는 무척 맛있었다.

 

 

나와서 꽁꽁 언 바다를 좀 거닐었다. 너무 추웠기 때문에 조금만 걷고 돌아나옴. 카메라 놔두고 폰만 가지고 나왔는데 폰 사진 몇장 찍느라 장갑 안꼈더니 손가락이 땡땡 얼었다.

 

 

오늘 문을 연다고 적혀 있었던 카페마에 들러 차를 마실 생각이었는데 길을 건너다 생각이 바뀜. 춥고 다리아프고 지쳐서 '아아 카페마 그저께 갔잖아... 들어가서 쉴래' 하고 게으름이 승리함. 오른편으로 가면 카페마, 왼편으로 가면 숙소 가는 길이었는데 왼편으로 방향 틀었음.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플롬비르 아이스크림 한개 사먹음. 춥다고 카페 포기하고 방에 들어가면서 꽁꽁 언 아이스크림 사먹는 나...

 

 

방에 돌아오니 세시가 좀 넘어 있었다. 뜨거운 물로 거품목욕을 하고 나와서 티백 차를 우려 마시고 좀 늘어져 있었다.

 

 

내일 돌아가야 하므로 가방을 꾸렸다. 이번엔 별로 산 것들도 없고(나뚜라 시베리카 목욕제품/핸드크림 몇개, 로모노소프 찻잔 딱 두개-기록적으로 조금 샀다!-, 그리고 홍차와 초콜릿 몇개가 전부임), 짧은 여행이라 짐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면세에서 산 향수와 이번 쇼핑물품 중 깨지기 쉬운 것들만 뽁뽁이로 좀 싸고 옷가지들도 내일 입을 거 빼고 모두 트렁크에 구겨넣었다. 근데 이번에 옷을 조금밖에 안 챙겼는데... 그런데도 안 입은 옷들이 몇개 있고.... 날씨가 추우니 껴입고 거동하기 쉬운 옷을 자꾸 다시 입어서 그렇다... 흑흑, 여행 갈때는 생각한 옷들의 절반만 챙겨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김.

 

 

지난번 윈도우 업뎃과 복구 과정에서 오류를 일으켜 부팅이 안됐던 노트북을 회사 전산팀 동료의 도움으로 포맷하고 vpn 등을 깔아놓았는데 그저께 또 어째선지 업뎃 과정에서 오류가 나고.. 복구를 눌렀더니 기껏 깔아준 프로그램들이 모두 삭제되고 되살리는 법도 모르겠음. 한글이 날라가서 제일 불편해짐... 원래 오늘 일찍 들어왔으니 글을 좀 쓸 생각이었는데 한글이 안되고 워드도 안되니(게다가 워드는 잘 못씀...)... 결국 이리저리 뒤지다 한글 체험판 30일짜리 다운받음. 아 이게 뭐야 엉엉... 이 노트북이 몇년 전에 산 거라 윈도우 8이 깔려 있는데 요즘 이게 종료를 앞두게 되어 그런지 업뎃하다 지 혼자 오류를 많이 일으키는 것 같다. 이걸 다시 회사에 들고 가서 도움을 요청하려니 너무 미안한데... 흐흑... 컴맹은 너무너무 힘들구나.

 

 

하여튼 급한대로 체험판 한달짜리 다운받아 놨으니 오늘의 메모를 마친 후 그걸로 좀 써봐야겠음.

 

 

내일은 2시 반 비행기이다. 11시에 택시를 예약해두었다. 블라디보스톡 공항은 원체 작아서 사실 도착만 하면 수속도 금방 하고 탑승까지 할일이 없어서 좀더 늦게 나가도 되긴 하는데 그래도 뱅기 탈땐 혹시 모르니 그냥 11시에 나가기로 함. 일어나서 씻고 조식 먹고 가방 남은 거 꾸리면 나갈 시간이 될 것 같다. 옛날에는 여행가면 아침 일찍 나와서 근처 돌아다니다 체크아웃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거 없음... 게다가 춥고... 새해 연휴라 문 연 곳도 없음.

 

 

이렇게 이번 블라디보스톡 여행을 마무리한다. 돌아가면 다시 무지무지 바쁘고 골치아픈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든 되겠지. 새해의 다짐 이것저것은 주말에... (미루기 신공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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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