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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1980년대~90년대 초의 레닌그라드, 마린스키 극장과 그 앞을 지나가는 전차의 풍경이다. 내가 90년대 후반에 처음 갔을때도 저 전차가 다녔던 기억이 난다.

 

사진은 아직 소련 시절, 페테르부르크가 아직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시절이다. 미샤를 데리고 쓰는 본편 우주는 대부분 1970년대와 80년대 초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원래 맨처음 그라는 인물을 만들어냈을 때는 90년대가 배경이었다만.. 그땐 주인공도 미샤가 아니었지.. 그리고 그 90년대는 대체 언제 쓰게 될 것인가ㅠㅠ)

 

중단된 본편을 다시 써보려고 120페이지쯤 썼던 가브릴로프 본편을 다시 읽어보고 있다. 근데 읽어보는 것만 대체 몇번이야...

 

아래 발췌한 글은 가브릴로프 본편은 아니고, 전에 여러 차례 발췌했던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오는 장편의 중반부이다. 아주 짧다.

 

나에게 미샤는 언제나 레닌그라드 - 페테르부르크 아이였다. 그건 트로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황제의 의지로 늪지대에 건설된 페테르부르크가 돌과 뼈와 유령과 환상과 안개와 피와 바람, 어둠과 빛과 물의 도시이듯 미샤와 트로이가 이 도시에 연계된 방식은 서로 다르고 동시에 또 같다.

 

 

이 소설을 쓸 때 나는 아주 바닥에 내려가 있었고 또 아주 급박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순간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은 역시 바닥에 있고 급박하지만 '쓸 수 있는 힘'이 딸린다. 하루하루 버티고 숨을 쉬고 나아가기 벅차서 그런가보다. 하지만 '정말로' 숨을 쉬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정말로' 나아질 것이고 '정말로' 위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지나이다와 한 아파트에 살기 시작한 이래 미샤는 일 년이 넘도록 그 집에서 제대로 된 밤을 보내지 않았다. 트로이는 그가 그런 식으로 살다가는 건강을 해칠 거라고 생각했고 그냥 자기 집에 들어와 살라고 했다. 미샤는 옷이나 책, 음반 등 자기 짐 일부를 갖다놓았고 자주 와서 자고 갔지만 그렇다고 그의 제안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미샤에게는 산짐승 같은 특성이 있었다. 한곳에 얌전히 머물러 있지를 못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은 레닌그라드 토박이인 트로이조차도 알지 못하는 도시 뒷골목들 여기저기를 밤낮으로 헤매 다녔다. 학창 시절 툭하면 기숙사를 빠져나가고 새벽에 창문으로 기어들어가던 습관도 그런 성격 때문인 것 같았다. 그건 해외 투어를 갔을 때도 변함이 없어서 감시요원들이 따라다니는 데도 불구하고 수차례 숙소를 빠져나가거나 집단에서 이탈하곤 했다. 74년 겨울 베를린 투어에서는 대사관 연말 파티에 불참하고 퇴폐적인 락 밴드들의 공연을 보러 가버렸다가 현지 KGB 지부에 소환되었다. 충격을 받은 다닐로프는 그에게 두 달 간의 감봉 징계를 내린 후 이듬해 여름의 런던 공연에서 그를 빼버렸다. 그래도 미샤는 별로 실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해서 분방하게 쏘다녔고 알게 모르게 이탈을 반복했다. 하지만 공연과 리허설을 비롯해 춤과 관련된 일이라면 결코 이탈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아주 열성적인 무용수였다. 끝없이 연습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 관객들의 사랑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극장의 간판스타가 되었다.

 

 

 아마도 미샤의 실력과 재능이 아니었다면 다닐로프는 그 문제아를 내쫓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닐로프도 아사예프도 그 천재적인 젊은 애를 볼쇼이에 빼앗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닐로프가 폭발할 때마다 아사예프는 골칫거리라도 ‘우리’ 골칫거리인 편이 낫다고 투덜댔다.

 

 

 가끔 한밤중에 미샤가 차가운 바깥 공기를 휘감고 불쑥 들어와 공부하는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나 침대 위로 기어 올라와 그의 목에 두 팔을 감았을 때 트로이는 질 나쁜 코롱이나 싸구려 독주 냄새, 코를 찌르는 듯한 담배 연기 냄새를 맡았다. 무엇보다도 낯선 남자들의 체취를 맡았다. 팬들이 선물해준 좋은 향수를 쓰고 술도 별로 마시지 않으며 담배라면 세 개비 이상 피우지도 않는 인물에게서 그런 냄새가 안개처럼 끼쳐올 때마다 트로이는 그 숲고양이 같은 애를 잡아 흔들며 상대에 대해 묻고 싶었다. 누구와 함께 뒹굴었는지, 어떤 놈들에게 그에게 준 것과 다름없는 키스와 애무를 흩뿌리고 다녔는지 추궁하고 싶었다. 그런 밤이면 그는 자기도 모르게 운하와 네바 강을 생각했다. 깊은 바닥으로 흘러드는 검은 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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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등장하는 이 장편의 일부는 이 about writing 폴더에 꽤 여러번 발췌한 적이 있다. 꽤 장편이라 내킬 때마다 아주 일부를 시간 순서 없이 토막토막 올려놓은 것이긴 하지만 그 파편들에도 전체의 정서는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그 링크들은 아래.

 

눈보라 속에서 길을 건너는 트로이와 미샤 : http://tveye.tistory.com/4421

냉동 옥수수와 썰매, 커피 : http://tveye.tistory.com/4206

리가에 간 미샤와 트로이 : http://tveye.tistory.com/4156

썰매를 타러 간 미샤와 트로이 : http://tveye.tistory.com/4050

물 속에서 글쓰기 : http://tveye.tistory.com/3985

표절에 대해, 춤추는 푸쉬킨에 대해 트로이와 이고리가 나눈 대화 : http://tveye.tistory.com/3825

모스크바로 가는 길 : http://tveye.tistory.com/3759

미샤의 첫번째 시즌, 돈키호테, 축구팀과 군대 : http://tveye.tistory.com/3594

흙탕물 색깔 재킷과 기름기 많은 수프 : http://tveye.tistory.com/3183

알브레히트로 데뷔한 미샤 : http://tveye.tistory.com/3128

릴렌카와 메밀죽 이야기 : http://tveye.tistory.com/2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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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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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 사진 몇장. 페테르부르크에 자주 가는 편이고 갈때마다 쏘다니며 사진도 찍지만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들도 많이 모은다. 특히 7-80년대 레닌그라드 사진들은 글을 쓸때 도움도 된다. 당시의 풍경을 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공기를 상상하기 위해서.

 

 

 

 

1983년, 네프스키 거리.

왼편 하단에 보면 러시아어로 '레닌그라드'라는 도시 표지가 보인다.

 

 

 

이건 요즘 사진이다만.. 거의 사라진 레닌 동상이 어딘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림자가 절묘해서 어쩐지 레닌그라드 생각이 나서 갈무리해두었다.

 

 

 

 

이곳은 내가 산책하기 좋아하는 길 중 하나. 네바 강변으로 나오는 길이다. 강 건너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의 황금빛 첨탑이 보인다. 빛과 어둠, 그림자와 바람, 네바 강의 검고 푸른 물. 레닌그라드. 페테르부르크. 미샤의 도시. 그리고 내가 어쩌면 서울보다 더 사랑하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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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