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목요일 밤 : 부모님 댁 1차, 마지막 한 조각, 꽃돌이님과 리가에 대한 꿈, 왜 리가였을까? fragments2022. 9. 8. 23:10
부모님 댁 가는 택시 안에서 찍은 바깥 풍경. 오늘 햇살이 굉장히 밝고 뜨거웠다. 하늘은 정말 파랬다. 기온이 조금만 더 낮았으면 딱 좋았을 것 같다.
빌니우스의 빵집에서 사왔던 빵 마지막 남았던 한 조각... 소분해 냉동해놨다가 한 조각씩 꺼내먹고 너무 아까워서 꽁꽁 아껴놨던 건데 오늘 부모님 댁 가느라 아침에 먹어버림... 흑흑 안녕... 우리 나라에도 이 빵 있으면 정말 좋겠다... 러시아에서도 좋아했고, 빌니우스에서도 이 빵이 있어 좋았는데.
텅텅... 이제 안녕 ㅠㅠ
..
빵 한 조각과 무화과 한 알, 기문 홍차 한 잔으로 아침을 먹은 후 택시를 타고 부천의 부모님 댁에 갔다. 오늘부터 추석까지 자고 올지, 아니면 잠은 집에 돌아와서 자고 그냥 매일 갈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갔는데 아버지는 추석 중 당직이 있기도 했고 엄마도 다른 스케줄이 있다고 하셔서 오늘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추석 당일에 다시 가기로 했다. 엄마가 또 상다리가 부러지게 진수성찬을 차렸다. 각종 전의 향연(전 좀 부치지 말라고 했는데도 부득부득...), 엘에이갈비 구이, 엄마토끼 시그니처 꽃게탕, 더덕구이를 비롯 온갖 음식들이 가득했고 상당한 분량을 싸주심. 동생네도 와서 오랜만에 온 가족이 모여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는 청소를 대충 했다. 너무 졸리고 피곤했다. 오늘 원하는 만큼 늦잠을 못 자서 그런가보다. 내일은 집에서 하루 쉬니까 마음껏 게으름을 피워야겠다. 사실 좀전까지 vpn 접속해서 결재도 하고 일을 좀 해야 했다. 휴가 낸 대가...
이른 아침 꿈에 나의 변치않는 사랑을 받는 예술가인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님이 나왔다. 그런데 간밤에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다시 읽기 시작한데다 발트 3국이 러시아인 대상 비자발급을 중단한다는 기사를 봐서 그런지 그 내용들과 뒤섞였다. 꿈에서 나는 아주 잠깐 러시아의 어느 극장에 가 있었다. 그런데 마린스키인지는 잘 모르겠고,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사무실이나 접견실이었다. 나는 공연을 볼 시간은 없었고 공연을 마친 후거나 아니면 공연이 없는 날 발로쟈 슈클랴로프가 인터뷰인지 미팅인지를 하는 자리에 잠깐 들른 거였다. 그 접견실에는 나 말고 두 명이 더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꿈 얘기를 적었어야 하는데 이미 밤이 되어버려서 가물가물 다 까먹고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하여튼 나 빼고는 다 러시아 사람이었다.
발로쟈 슈클랴로프가 방으로 들어와서 나를 발견하고는 '어, 안녕! 오랜만이야!' 하고 예전처럼 포옹하며 볼인사를 했다. 나도 꿈에서 '너무너무 반가워, 진짜 오랜만이네. 거의 3년만에 다시 보는 거네' 하고 인사를 했는데 이 기간은 정말이다(심지어 꿈에서도 햇수 계산을 했음) 그리고는 뭔가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접견실에서 나와 복도 쪽으로 갔는데 이분이 나에게 아주 걱정스럽게 '그런데 너 어떻게 하려고 여기 들어온 거야? 어떻게 돌아가려고' 하고 물었다. 즉, 꿈속에서 나는 러시아에 오면 안되는 상황이었거나 위험에 처해 있어서 이곳에서 무사히 나가서 귀국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꽃돌이님을 잠깐이라도 다시 보고 싶어서 갔나보다 ㅋㅋ)
나는 '괜찮아, 다 잘될거야. 나는 리가로 갈거야. 리가 쪽에 나를 기다리는 차가 있어' 라고 대답했고 꽃돌이님은 도무지 안심이 되지 않는듯 반신반의하며 '그쪽이 더 위험하지 않나?' 하고 심각해했다. 나는 '아니야, 리가로 가면 돼. 리가 쪽 국경에 친구들이 있어. 나한테는 '드루지야-디플로마똡' (외교관 친구들)이 있어' 라고 대꾸했다. 근데 꿈에서도 그게 진짜인지 아니면 그저 이 사람을 안심시켜주려고 내가 지어낸 말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니 드루지야는 복수 주격을 썼는데 왜 디플로마트는 복수 주격이 아니라 복수 생격을 썼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리가는 국경지대가 아닌 거 같고... 발트 3국 중 나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는 가봤어도 막상 리가가 있는 라트비아는 안가봤는데 왜 리가인지 잘 모르겠음 ㅜㅜ
하여튼 이렇게 진지하고 심각한 얘기를 나누다가 서서히 깼고 꿈결에 '아, 아직 깨면 안되는데... 발로쟈와 얘기를 더 해야 하는데' 하고 아까워했다. 꿈에서 그는 예전에 공항과 극장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을 때나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났을 때처럼 검은 티셔츠에 검은색 진 차림이었는데 역시 이뻐서 깨고 나서도 '아 언제 다시 볼 수 있는 거야' 하고 아쉬워함.
(좀 이런 스타일 ㅎㅎ 사진은 슈클랴로프님 인스타에 전에 올라왔던 것)
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ㅠㅠ 악독한 푸틴 ㅠㅠ 그리고, 이 꿈에서 제일 피곤했던 건 모든 것을 노어로 얘기해야 했던 것이다. 꿈에서 노어를 하고 나면 정말 피곤하다. 갈수록 노어를 못하게 되어 더 그런가보다 엉엉... 그리고 지난번 빌니우스 갔을 때 나의 오랜 로망이었던 리가를 헌신짝처럼 포기했던 것이 못내 무의식 어딘가에 남아 있었나보다 하고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음에는 리가도 꼭 가야겠다. 근데 나한테 외교관 친구들이 생기려나 ㅎㅎ (국경이니 차니 외교관 친구니 하는 건 전부 르 카레 소설 때문인 듯)
아침의 빵과 무화과, 홍차 사진 몇 장 접어두고 오늘 메모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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