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토요일 밤 : 추석, 길고 꽉 찬 하루, 온 가족과 뿌듯한 티타임, 그다음은 쥬인과 fragments2022. 9. 10. 22:55
추석.
아침 일찍 깼다. 8시 되기 전에 집에서 나왔는데 명절 아침이라 좀처럼 부천까지 가는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결국 카카오블루로 간신히 김포공항까지만 택시를 잡았다. 공항에서 부천 가는 버스를 타려고.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김포공항 쪽 가느라 국제선을 입력해버렸다가 입국장이 아니라 출국장 앞에서 내려서 버스정류장이 없고 공사 중이라 잠깐 우왕좌왕하다 간신히 한 층 올라가서 버스를 탔다. 그 덕분에 텅텅 빈 아늑하고 깨끗한 공항 내부를 잠깐 가로질러 가면서 '아아 여행가고 싶다' 모드에 빠짐.
버스를 타고 좀 멀미를 하며 부모님 댁에 도착했더니 9시가 좀 안 되어 있었다. 동생네도 곧 왔다. 명절 음식은 이미 이틀 전에 엄마가 다 만드셔서 가족끼리 한번 모였던 터라 오늘은 다같이 김밥을 쌌다. 엄마가 최근 새롭게 시도한 매운오뎅 김밥을 아버지가 너무너무 좋아하셔서 요즘 자주 만드신다고 한다. 그런데 이 김밥이 정말 엄청 맛있었다. 나는 김밥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엄마가 만든 김밥이 정말 맛있었음. 김밥 싸면서 몇알 주워먹고, 열한시 좀 넘어서 이른 아점을 같이 먹었다. 아버지가 일하러 가셔야 했고 나도 낮에 쥬인과 만나기로 해서.
김밥 먹은 후 정말 내 기억으로는 처음으로(!) 부모님과 동생네와 나 다같이 둘러앉아 잠깐 티타임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원체 일찍 일어나시고 성미도 급하셔서 같이 진득하게 앉아 티타임을 해본 적이 없고 언제나 내가 자고 있을 때 혹은 먼저 식사하신 후 후루룩 믹스커피 타드시는 스타일이라...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는 맥심모카, 엄마, 동생, 올케는 카누, 나는 집에서 가져온 녹차 티백으로 각각 찻잔을 꺼내서(아버지만 빼고- 종이컵에 손잡이 끼워서 드시는 것을 좋아하심) 우아하게(?) 잠시 식후 커피/티타임을 가져서 나는 마음속으로 뿌듯하고 감격의 기분이 들었음. 엄마가 선물로 받은 샤인머스캣을 씻어서 그것을 같이 먹으며... 그 찻잔도 두개는 내가 대학생 시절 엄마에게 선물해드렸던 행남자기 찻잔, 하나는 우리 집에 있던 걸 엄마에게 드린 로스트란드 찻잔을 꺼내서 더욱 뿌듯했다.
이후 아빠가 일하러 가시면서 나를 태워서 쥬인네 동네 쪽에 내려주셨다. 편하게 와서 너무 감사했는데 나중에 아버지는 길이 많이 밀렸다고 한다 ㅠㅠ 흑흑흑... 하여튼 그래서 쥬인네 동네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 우리의 아지트인 별다방으로 10여분 가량 걸어가며 찍은 가을 하늘과 대로와 무궁화 사진 두 장. 의외로 무궁화가 피어 있어 이뻤다.
쥬인이랑 만나 밤까지 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별다방 1차, 2차는 KFC. 오늘도 러시아 이야기, 옛날에 같이 살던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요즘 이야기 등으로 시간 가는 줄 몰랐음. KFC 간 이유는 일단 추석이라 문 연 곳이 거의 없었고, 러시아 시절의 이야기하다가 '아 맞아 쥬인아 이제 맥도날드 없어, 러시아 이상한 브랜드들로 다 이름 바뀌었어' 라고 애석한 얘기, 그러다 옛날에 맥도날드가 비싸서 네프스키 대로에 있던 패스트푸드점인 '그릴 마스쩨르' 갔던 얘기 등 하다가 주변엔 맥도날드가 없어서 '그럼 KFC 가자' 하고 간 것임. 여기서 우리는 러시아의 추억을 생각하며 느끼한 타워버거를 먹었다 ㅎㅎ (그릴 마스쩨르라는 곳에서 내가 이따금 먹었던 야채 없이 해쉬브라운과 치킨패티와 체다치즈만 끼워줬던 버거를 생각하며) 그러다 시간이 늦어 아쉬워하며 택시 타고 귀가함. 쥬인이 또 무화과를 싸줘서 고마웠다. 나는 쥬인에게 엄마가 부친 전을 좀 싸다 주었다.
귀가하면서 보니 동그란 보름달이 구름에 좀 가려져 있어 아쉬웠다. 그래도 택시 창 너머로, 그리고 들어오면서 달 보며 소원도 빌었다.
명절이 이제 다 지나갔다. 오늘은 저 달처럼 꽉 차고 긴 하루였다. 내일과 모레도 쉬어서 참 좋고 다행이다. 일찍 일어나느라 잠이 모자라니 늦지 않게 자야겠다.
아침의 김포공항(국제선) 사진 몇 장. 으앙 여행가고파!
카운터도 딱 하나 막 여는 순간이었음. 어디 가는 비행기였을까.
우앙앙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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