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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9. 20:48

이름이 다른 프티치예 말라코들 about writing2023. 10. 9. 20:48

 
 
 
 

바르샤바에서 프티치예 말라코 초콜릿을 두 종 가져왔다. 하나는 폴란드 수퍼마켓 체인인 비에드론카에서 발견한 폴란드 초콜릿 회사 Wedel의 유서깊은 '프타치예 믈레즈코' 한 상자, 다른 하나는 영원한 휴가님이 빌니우스에서 사다주신 리투아니아산 '파욱쉬치우 피에나스' 한 상자였다. 둘 다 프티치예 말라코(새의 우유)를 자국어로 표현한 것인데, 사실은 폴란드산이 오리지널이다. 소련에서 폴란드 것을 따라서 만들었으니까. 아마도 리투아니아는 당시 같은 소련 권역이었으니 블라디보스톡과 모스크바를 따라서 만든 게 아닌가 싶지만 아닐지도... '진짜 초콜릿'과는 좀 다른 초콜릿 코팅 안에 젤라틴과 수플레를 섞은 듯 말랑말랑하고 그렇다고 탄력은 또 없는 마시맬로 약간 비슷한 질감의 달착지근한 우유맛 하얀 필링이 들어 있다. 러시아에 가면 이따금 여기서 파생된 케익을 먹었다. 이 초콜릿 자체는 자주 먹지는 않았는데 직접 사먹은 적은 없고 누가 주면 먹었다. 러시아 쪽 초콜릿이 다 그렇듯 많이 달아서 한 입에 여러개 먹을 수는 없고 차에 곁들여 딱 1알이나 2알까지가 적당하다. 이번에 바르샤바 갔을 때 폴란드 오리지널을 사서 먹어봐야지 했는데 마침 수퍼에서 발견해서 '바닐라맛', '시트러스맛' 등을 모두 저버리고 가장 오리지널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되는 '크림맛'을 골랐다. 그냥 우유맛이다. 리투아니아 쪽 초콜릿이 러시아 쪽 맛과 흡사했다. 폴란드 초콜릿은 더 연하고 부드러웠다. 
 
 
 
영원한 휴가님이 지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기념해 보내주신 소포에 이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먹다가 문득 글 하나를 구상했고(엄밀히 말하자면 글을 구상한 게 아니라 제목을), 올해 여름까지 그 단편을 썼다. 제목은 당연하게도 프티치예 말라코였다. 아래 그 글의 전반부 일부를 발췌한다. 20년 동안 짝사랑해온 여자와 재회해 옛날 생각을 하는 코스챠와 이 초콜릿에 대한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초콜릿 얘기는 소설 내에서 두어번 더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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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수프와 커피가 나왔다. 커피는 새까맣고 진했다. 코스챠는 맥주나 보드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면 가뜩이나 두근거리는 심장이 더 세게 뛸 것 같아서. 알리사는 그에게 냅킨을 건네주며 ‘흘릴 테니까’라고 빙긋 웃었다. 이제 그런 칠칠치 못하던 시절은 지나갔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실은 지금도 음식을 잘 흘리는 편이라 코스챠는 순순히 냅킨을 받아들었다. 수프는 묽었지만 의외로 맛은 나쁘지 않았다. 하긴 알리사와 함께 먹는 거라면 뭐든, 보드카도 없이 돼지비계만 맨입에 먹어도 맛있을 것 같았다.
 
 
“ 알랴, 블린 나왔어. 잘라줄까? ”
 
“ 팔라친키. ”
 
“ 그게 뭐야? ”
 
“ 여기서는 팔라친키라고 해. 블린이 아니라. ”
 
“ 역시 체코슬로바키아어 다 아는구나. ”
 
“ 그게 다야. 그렇게 치면 폴란드어도 아는걸. 너한테 배웠잖아. ”
 
“ 내가 뭘 가르쳐줬지? 나도 이제 한 마디도 안 나오는데. ”
 
“ 프타치예 믈레즈코(ptasie mleczko). ”
 
“ 아, 그건 우리 말이랑 똑같잖아. ”
 
“ 아니야, 네가 다르다고 했어. 맛이 다르면 단어도 다른 거라고. 그때 엄청 화냈잖아. 프타치예 믈레즈코랑 프티치예 말라코(птичье молоко) 완전 다르다고, 이름이랑 레시피 베껴봤자 라고, 폴란드 게 더 맛있다고. ”
 
“ 아, 그랬나. 그랬지. 근데 너한테 화낸 건 아니었어. 그 뺀질대는 놈 때문에 빡친 거였지. 블라디보스톡 자랑하면서 엄청 뻐기고, 그깟 초콜릿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
 
“ 그걸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애가 줬었나? 난 기억도 안 나. 나한테 화낸 건 당연히 아니었겠지. 넌 나한테 한 번도 화 안 냈잖아. ”
 
 
 
코스챠는 커피를 쏟을 뻔했다. 알리사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웃었기 때문에, ‘넌 나한테 한 번도 화 안 냈잖아’라는 그 말투가 너무나 다정했기 때문에. 어떻게 알리사 같은 여자에게 화를 낼 수 있다는 말인가. 제정신을 가진 남자라면 그녀 앞에선 넋이 나가는 게 당연하다. 그 블라디보스톡 바람둥이도 그랬다, 그녀를 보자마자 홀딱 빠져서 갖은 수작을 다 부렸다. 서클에 찾아와서 악쇼노프니 부닌이니 헤밍웨이니 엄청 아는 척을 했지만 실상은 책과는 담을 쌓았고 입 발린 말만 할 줄 아는 놈이었다. 그때는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고 모임 초기였던 터라 갈랴와 료카가 결혼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보통 트로이네 집에서 모이곤 했다. 그 녀석의 엄마가 없을 때만 골라서. 그 블라디보스톡 망나니는 그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잔뜩 뻐기곤 했다. 번지르르한 선원 복장을 갖춰 입고 광이 번쩍거리는 구두를 신고 나타났다. 심지어 선원도 아니었다. 본인 말로는 무역 화물을 관리하는 책임자라고 했지만 코스챠는 그것도 믿어지지 않았다. 하여튼 여자들은 선원 스타일로 쫙 빼입고 온갖 무역용어를 지껄이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이지만, 아폴론처럼 금발 곱슬머리를 바짝 붙여 자르고 어딘지 나른한 푸른 눈의 미남자인 그 자식에게 한동안 매료되어 있었고 그놈이 아무리 헛소리를 지껄여도 그냥 웃기만 했다.
 
 
두번째로 왔을 때 그 인간이 알리사에게 초콜릿을 주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만 구할 수 있는 거라고, 완전 신상이라고. 정말 맛있는 거라고. 프티치예 말라코라는 이름이라고, 비밀 생산 중인데 앞으로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에 쫙 깔릴 거라고. 멋진 여자에겐 비밀 신상 초콜릿이 잘 어울린다고. 완전 청산유수로 지껄여댔다. 그때 코스챠는 취해 있었고 어째선지 욱해서 버럭 화를 냈다. 신상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거 폴란드에 가면 지천에 깔렸는데! 이름도 완전 베낀 거잖아! 프타치예 믈레즈코잖아! 분명히 그는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똑같은 걸 가지고 어디서 유세하냐고 성질을 냈던 것 같은데 알리사는 전혀 다르게 기억하는 것 같았다. 어쨌든 코스챠는 그 바람둥이 자식과 치고받고 싸울 뻔했지만 이런 일에 익숙한 트로이가 잽싸게 그를 끌어다 재웠기 때문에 일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깨어났을 때는 모두 가버리고 없었다. 그는 반쯤 울고 싶은 심정으로 트로이에게 ‘알랴가 그놈이랑 나간 거야?’라고 물어봤다. 트로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랴가 바보냐, 그런 허세에 쩐 놈이랑 나가게. 근데 나쟈는 걸려들었어. 둘이 페테르고프에 갔거든. 코스챠는 나쟈가 누구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스베타가 데려온 애였던 것 같았다. 알리사가 그놈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사실만이 기쁠 뿐이었다. 테이블 위에 그 블라디보스톡 공장에서 나온 프티치예 말라코 초콜릿 상자가 그대로 놓여 있어서 더욱 기뻤다. 알리사가 ‘너네 어머니한테 드려, 초콜릿 좋아하시잖아’하고 놓고 갔다는 말에 숙취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그는 일터에서 돌아온 트로이 어머니와 함께 앉아 차를 마시면서 그 가증스러운 프티치예 말라코를 몇 알 먹기까지 했다. 마음속으로는 ‘흥, 역시 폴란드 거 베낀 거잖아. 이름이라도 좀 바꾸든가’라고 투덜대면서.
 
 

 
 
...
 
 
 
 
오늘 차에 곁들여 먹으려고 개봉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산 이름이 다르고 맛도 좀 다른 프티치예 말라코들 사진 몇 장. 앞의 티타임 사진에도 두어 장 들어 있다. 
 
 
 
 

 
 
 
왼편이 리투아니아, 오른편에 폴란드. 폴란드 건 요즘 분위기로 좀 귀엽게 포장을 바꾼것 같다. 리투아니아 초코는 비닐포장이 되어 있어 뿌옇게 나왔다. 저걸 벗기고 찍었어야 했는데 흐흑. 
 
 
 

 
 
 
앞 포스팅에도 적었지만 색깔과 크기가 다르다. 앞의 연한 갈색 캐러멜 같은 게 폴란드, 뒤의 까만 녀석이 리투아니아. 
 
 
 

 
 
 
 

 
 
 
 

 
 
 
 

 
 
 
 

 
 
 
 

 
 
 
 

 
 
 

그런데 이렇게 개봉해버린 이상 공기가 들어가면 아무리 냉동실에 넣어두어도 맛이 변할 것 같아서, 리투아니아 초콜릿은 락앤락 용기에 차곡차곡 넣고 상자의 포장만 잘 오려내어 안쪽을 덮어두었다. 폴란드 거랑 리투아니아 거 다 먹으려면 일년은 걸릴 것 같음. 

 
 
 
..
 
 
위에 발췌한 <프티치예 말라코> 전문 링크는 아래. 
 
 
 
 
moonage daydream :: 프티치예 말라코 01 (코스챠와 알리사의 이야기) (tistory.com)

프티치예 말라코 01 (코스챠와 알리사의 이야기)

한달 쯤 전 마친 단편 를 올려본다. 배경은 1981년 9월,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이다. (아직 소련 시절이었고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기 전이다) 주인공은 초중고 동기인 코스챠와 알리사이

tvey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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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