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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테르부르크에 와서 그런지 오랜만에 본편 우주의 글 일부를 발췌해 본다.

 

지금 머물고 있는 숙소는 마린스키 극장에서 도보로 15분쯤 떨어져 있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 초입에 있다. 예전부터 이 호텔에 한번 묵어보고 싶었는데 그 이유는 극장에서 가깝기도 했지만 내가 쓰던 글에서 주인공이 키로프 시절 이 근방 동네에 살았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샤는 어릴때는 어머니와 함께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프리모르스카야 지하철역 근처 공동아파트에 살았고 이후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키로프 입단 후 사도바야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동료 무용수 4명과 1년동안 지낸다. 그리고 곧 스타가 된 후 위에서 내려준 고급 아파트에서 파트너 발레리나와 둘이 지내게 되는데 그 집이 이쪽 동네에 있는 것으로 설정했었다.

 

나는 이 동네를 모르지는 않지만 그래도 살아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페테르부르크에 올때마다, 마린스키에 올때마다 주변을 걸어보고 그 아이가 어떤 경로로 걸어다녔는지, 그리고 운하와 운하 사이를 어떤 모습으로 누비고 다녔는지 상상하곤 했다. 무엇보다도, 마린스키 극장에 들어갈때면 언제나 그에 대한 생각을 한다.

 

아래에 발췌한 글은 몇년 전 쓴 장편의 후반부 일부이다. 미샤의 친구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오는 그 장편이다. 정말 짧고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다. 하지만 내게는 중요하고 또 마음에 남는 장면이었다. 그래선지 다시 이곳에 와서도, 마린스키 극장 앞과 뒤를 지날때마다, 운하와 다리를 건널때마다 잠시 그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저때 나는 미샤의 입을 빌려 내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긴 진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어차피 소설쓰기란 거짓말하기이며 거기에 일부의 진실을 숨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 반대도 성립할 것이다.

 

발췌한 이야기는 이 동네가 아니라 트로이가 사는 고로호바야 거리 쪽에서 시작된다. 고로호바야 거리는 사도바야와 말라야 모르스카야 거리가 교차하는 쪽에 있는데 마린스키까지 걸어오면 내 걸음으로는 30분 정도 걸린다. 지름길로 가면 미샤 같이 날렵한 아이는 15분만에도 주파할 것이다. 미샤의 아파트는 마린스키 근처에 있지만(이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와 글린카 거리, 크류코바 운하 사이의 어딘가로 설정했다) 평소에는 트로이의 집에서 자고 다닌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시즌이 시작되자 미샤는 새벽에 들어와 죽은 듯 잠만 자고 다시 극장으로 나가곤 했다. 스케줄을 보면 전처럼 다른 애인들을 만나고 다닐 시간을 짜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주역 무용수였기 때문에 매일같이 무대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리허설을 비롯해 각종 세션이 잡혀 있었다. 키로프 일정 외에도 다른 극장의 지인들과 이런저런 협업 계획이 있었고 틈날 때마다 러시아 미술관과 에르미타주와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차로 이동할 때도 가능하면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책을 읽거나 노트에 계속해서 뭔가를 메모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을 그렇게 버거워하던 인물이 이제는 이른 오전에도 연습실에 나갔다.

 

어느 날 아침에 트로이는 미샤가 반쯤 눈을 감은 채 침대 모서리에 부딪쳐 가며 옷을 주워입는 것을 보았다. 트로이의 바지를 끌어올리며 옷이 맞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일어난지 10분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샤워를 했는지 얼굴과 머리에는 아직도 차가운 물기가 남아 있었지만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고 트로이가 바지를 바꿔준 후에도 단추와 지퍼를 채우는데 몇 분이 걸렸다.

 

“ 잠 좀 깨고 가라. 한 시간은 있어야 정신 차리면서. 커피라도 줄까? 차 가지고 가야 하잖아. ”

 

“ 운전하기 싫어. 버스 탈래. ”

 

“ 너 출퇴근 시간엔 버스 안 타잖아. ”

 

“ 시간이 없어. ”

 

“ 이렇게 일찍 가서 뭘 하려고? ”

 

“ 넬레츠카하고 좀 맞춰볼게 있어. ”

 

“ 걘 네 파트너도 아니잖아. 계속 이러다간 정말 쓰러진다. ”

 

“ 말도 안돼. 정량의 칼로리 섭취. 정량의 운동. 다 하고 있어. ”

 

근사한 어휘를 가져다 쓴 건 좋았지만 졸음 때문에 대부분의 자음들은 뭉개져 잘 들리지도 않았다. 현관에 앉아 운동화 끈을 매다가 벽에 머리를 대고 깜박 졸기까지 했다. 트로이가 차가운 초콜릿 우유를 가져다주자 뭔지도 모르고 한 컵 다 마신 후 얼굴을 찌푸렸다.

 

 

“ 이게 뭐야? 애들 먹는 거 아냐? ”

 

“ 정량의 칼로리 섭취를 위해 먹었다고 생각해. ”

 

 

트로이는 대신 차를 운전해서 극장까지 그를 데려다 주었다. 조금이라도 더 재우기 위해서였다. 극장 앞에 차를 세웠을 때도 미샤는 졸고 있었다. 트로이는 그가 자도록 내버려두었다. 반쯤 풀어져 있는 셔츠 단추를 제대로 채워주고 입가에 묻어 있는 초콜릿 우유 얼룩을 닦아주었을 때 미샤가 눈을 뜨더니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끌어당기며 키스를 했다. 트로이는 확 달아올랐지만 차 창문 너머로 누가 보지 않을까 두려워서 조심스럽게 몸을 떼었다. 미샤가 창 너머를 힐끗 보더니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 다시 집에 갈까. ”

 

“ 그래, 오후에 다시 나와. 힘들잖아. ”

 

힘든 것보다는 섹스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트로이는 여전히 그 단어를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대신 미샤의 무릎을 가만히 감싸쥐었다. 그에게 바짝 다가붙어 있는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꼭 맞는 청바지가 점점 불편해지는 듯 미샤가 허리와 엉덩이를 꿈틀거리며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 밤에. 지금은 가야겠다. 넬레츠카가 기다릴 거야. ”

 

“ 왜 그렇게 자신에게 가혹해? 넌 지금 몇 사람 몫을 하고 있는데. ”

 

“ 계속 가야 해. 멈추면 안돼. ”

 

“ 잠깐 멈춰도 돼. 조금 쉰다고 생각해. ”

 

“ 아니, 난 계속 가야 해. 멈추면 일어나고 싶지 않을 테니까. ”

 

 

미샤는 바깥에서 누가 들여다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그의 입술에 길게 입을 맞춘 후 차 문을 열고 나갔다. 극장 뒷문으로 달려가는 미샤 야스민의 모습은 너무나 가볍고 나는 듯해서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처럼. 전시실에 걸린 화보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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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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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키 극장과 주변 풍경 몇장. 이번에 와서 찍은 것들.

 

 

마린스키 극장 램프들.

 

마린스키 극장에서 곧장 보이는 성 니콜스키 사원.

이날은 비가 왔다.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를 지나가다 나타나는 그리보예도프 운하.

저런 집들 중 한군데에 미샤가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저 건물들은 아니지만.

 

 

요 며칠 간 나는 이 다리를 건너 쭈욱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곤 한다. 이제 그것도 하루밖에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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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