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101. 그가 추는 이 무대를 여러번 봤다. 페테르부르크에서, 블라디보스톡에서, 서울에서. 볼 때마다 충만한 행복과 웃음을 안겨주는 무대였다. 다른 무용수들의 무대도 봤지만 이 사람의 유머와 여유는 정말 특별했다. 때로 지치거나 마음이 힘들 때면 영상을 돌려보기도 했다. 사진 여러 장.
옛날에 올렸던 것 같기도 한데... 라 바야데르 솔로르의 결혼식 솔로.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아마 ABT 무대였던 것 같다. 그런데 또 내 기억에 ABT 때는 콧수염 붙이고 나왔던 것 같고... 십년 쯤 전의 무대라 가물가물하다. 이 무대에서는 중간 피루엣 때 좀 삐끗하는데 직후 터번을 벗어서 휙 던져버리는 걸 보면 터번이 좀 헐거워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이 클립 첨 올라온 거 보면서 터번 벗어던질 때 ‘오 멋져!’ 했던 기억도 난다.
아마도 풀코보 공항 스타벅스에서였던 것 같다. 솔로르에 대해 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솔로르 진짜 나쁜 놈이야 배신자야 그런데 당신이 추는 솔로르는 용서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자 그는 좋아하며 환하게 웃었다.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솔로르였는데. 이제 다시 그런 솔로르는 없겠지... 그립고 또 그립다. 다시 마음이 아프다.
2016년. 아스토리야 호텔 로툰다 카페. 발로쟈가 자신의 첫 화보집인 <춤추며 살기> 출간 및 사인회를 했을 때 사진들이다. 나는 이 몇달 후 페테르부르크의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 서점에서 그 화보집을 구할 수 있었다. 이 로툰다 카페도, 빛도, 발로쟈도 나에게는 소중한 공간, 소중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앉아 사인을 하고 있는 저 테이블에 나도 종종 앉았었다. 무대가 아니라 현실에서 마주했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는 이 사진들 속의 모습과 가장 흡사했다. 빛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어딘가 부드러운 그늘이 있고, 눈빛이 부드럽고 목소리가 조용했다. 오늘 문득 이 사진들을 다시 보자 마음이 너무나 아프고 슬펐다. 어떻게든 전쟁이 끝나고 언젠가 다시 페테르부르크에 돌아간다 해도, 이제 마린스키와 운하, 로툰다, 그리고 바실리섬과 내가 살았던 동네를 찾으면 이 사람 생각에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
그가 떠난지 거의 20일, 스몰렌스크 묘지에 안장된지 2주가 흘렀다. 여전히 매일 이 사람을 생각한다. 충격은 조금 누그러졌지만 슬픔과 애달픔, 안타까움, 가엾은 마음은 계속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사람에 대해 마음을 모두 담아 글을 쓰기는 지금도 어렵다. 그의 무대에 대해, 예술가로서의 유일무이함에 대해서도, 아픈 마음에 대해서도. 마치 내 마음 속의 불이 하나 꺼진 것만 같다... 때때로 그가 떠나기 직전과 그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에는 것 같다. 이제 행복하고 평안하기를, 안식하며 자유롭게 춤추고 있기를 매일밤 기도한다.
아마 이 영상들이 내가 가서 이틀 연속으로 봤던 때인 것 같다. 2014년 7월. 마린스키 구관. 이때 메조에서 실황 녹화를 했는데 이틀 연속으로 발로쟈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가 올라왔다. 녹화는 첫날이 아니라 둘째날 버전으로 나왔다. 나는 첫날 공연이 더 좋았기에 아쉬웠다. 막상 나온 녹화본은 구도를 제대로 잡지 못해서 이 사람의 도약이나 표정 연기를 100분의 1도 못 담아내서 아쉬움은 배가되었다. 아래 클립은 팬이 찍은 거라서 화질이 안 좋고 많이 흔들리는데 오히려 메조 녹화본보다는 이쪽이 낫다. (근데 메조가 맞나 긴가민가... 나는 이 라 바야데르와 청동기사상 둘다 실황 녹화할 때 공연을 봤었다)
흔히들 솔로르의 멋진 춤은 2막 결혼식 솔로라고들 하지만 그건 기예를 중점적으로 볼 때 그렇고, 이 사람의 솔로르는 3막에서 진가를 보여주곤 했다. 충만하고 사무치는 솔로르였다. 3막 솔로르는 단순한 점프나 테크닉만으로는 완벽해질 수 없다. 드라마 배우로서의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자신을 온전히 배역과 무대에 동화시킬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블라지미르의 솔로르는 정말 최고의 솔로르였다.
먼저 망령의 왕국 도입부. 등장 솔로. 영상을 보면 둘째날인 것 같다. 첫날은 깃털이 아주 가지런하고 예뻤고 둘째날은 깃털이 흐트러지고 갈라져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래서 둘째날 버전으로 녹화가 나온 걸 보고 또 아쉬워했었다.
그리고 파이널 2인무.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니키야에 이어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솔로르. 이 사람이 추는 솔로르를 여러번 무대에서 봤는데 볼때마다 이 부분에서는 숨이 막히곤 했다.
18년엔가 19년, 발로쟈가 블라디보스톡에서 신데렐라의 왕자를 췄을 때 나는 그 표를 끊어두었지만 너무 일이 바빠서 가지 못하고 결국 표도 취소해야 했다. 못 간다고 슬퍼하자 이 사람은 '다음에 와서 봐주면 되지' 하고 위로를 해줬었다. 라트만스키 작품들은 워낙 편차가 심하고 특히 러시아를 떠난 후 다른 나라들에서 리메이크한 작품들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신데렐라는 좋아했다. 맨처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즈베레프와 바토예바 페어로 마린스키 신관에서 이 작품을 봤었다(아마 신관 오픈 후 내가 처음 가서 봤던 공연이었을 것이다) 중간중간은 좀 산만했지만 파이널의 로맨틱함과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무척 아름다워서 좋아했고, 비슈뇨바와 이 사람의 메조 영상을 보자 '아, 이건 정말 완벽하게 이 사람 맞춤 배역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맞춤 배역이 너무 많지만...) 그래서 정말 이 사람의 무대를 보고 싶었는데, 이 사람이 춘 무대를 많이 봤지만 이 작품은 결국 보지 못했다. '다음에 와서 봐주면 되지' 라고 다정하게 위로해줬는데, 이제 그 다음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척 슬프다.
유리 스메칼로프는 블라지미르를 위해 여러 작품을 안무했다. 이 작품은 3분 가량의 소품으로 2016년에 발로쟈가 뮌헨의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몇달 전 안무해줬던 작품이다. 나는 초연은 못봤지만 2016년 6월 마린스키 신관에서 젊은 안무가 갈라 공연을 할 때 이 무대를 처음으로 봤다. 이후 블라디보스톡 마린스키 분관에서 열린 이 사람의 공연에서도 다시 봤다. 이 작품은 아주 짧지만 정서적인 호소력이 굉장하다. 가슴을 뒤흔들어놓는 무대였다. 이 사람 외에는 이 작품을 이렇게 출 수 없을 것이다. 애초부터 이 사람을 뮤즈로 안무한 작품이기도 하고... 두번째로 봤을 때가 훨씬 좋았던 기억이 난다. 노래 제목이 곧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Ne Me Quitte Pas (Не покидай меня), 우리 말로 하면 날 버리지 마.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직전인 6월에 봤던 터라 이 제목은 그대로 내 마음이자 페테르부르크 팬들의 마음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떠나버린 그에게 부질없이 다시금 애원하고 싶은 제목이기도 하다.
사진은 2017년 7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커튼콜 때 내가 찍은 것.
영상은 오래 전에 올린 적이 있지만 다시 올려본다. 팬이 찍은 거라서 많이 흔들린다만... 발레 무대가 모두 그렇듯, 특히 이 사람의 무대는 실제로 봐야만 하는 무대였다. 몸과 마음, 혼을 모두 다 바치는 무대들이었으니까. 과거형으로 쓰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내내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고 일주일 전 그 슬픈 소식을 듣고 나서도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블라디보스톡 리플렛 대신 19년 여름에 풀코보 공항 스타벅스에서 만나 이야기하다 사인을 받았던 라 바야데르 무대 리플렛을 꺼내 액자에 끼워두었다. 여기에는 그가 나를 위해 적어준 문구가 있어서... 그는 그때 내 이름의 철자를 물었는데 가르쳐줬지만 결국 마지막 철자는 틀렸다. (마샤는 내 이름을 아주 정확하게 발음했고 외웠는데) '나의 가장 소중한 한국 팬 ㅇㅇ에게, 따뜻한 추억을 위해' 라고 적어줬다.
그날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었고 그는 발레단과 함께 대만 투어를 가는 날이었는데 인천 경유라 나랑 같은 비행기였다. 나에게 공항에서 보자고 댓글을 달아줘서 우리는 공항에서 만났다.그때 우리는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러다 그는 가을에 서울에 와서 유니버설 발레단과 공연을 할 거라고(춘향에 대한 얘기였다) 귀띔해주기도 했다. 정확한 날짜를 찾기 위해 자기 인스타인지 왓츠앱인지에 쌓여 있는 수십개의 디엠을 뒤져서 알려주었다. (두어달 후에 그의 출연에 대한 공지가 날 때까지 나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지만 어서 예매 창이 뜨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헤어질 때 난 심지어 내 명함까지 줬는데(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 뭐 이런 말도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악 내가 왜 그랬지?' 하고 너무너무 부끄러워했었다.
아침 일곱시 사십분 즈음 꿈에 취해 퍼뜩 깨어났다. 꿈에서 발로쟈를 보았다. 금색과 파란색 벨벳으로 하단이 장식된 하얀 관 앞을 마치 무대를 가로지르듯, 이 모든 것이 무대이며 퍼포먼스라고 말해주듯 높이 뛰어올라 그랑 주테 동작으로 오른쪽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정면을 가로질러 날아가듯 뛰어갔다. 말은 하지 않았다. 이런 동작이 그렇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옆얼굴이 또렷하게 보였다. 인사를 하러 온 것 같았다. 꿈에서도 나는 '춤추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잠에서 반쯤 깨어났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인사하러 왔구나... 그는 하얀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 도약과 춤은 마치 로미오나 바질, 지그프리드,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의 솔로를 생각나게 했다. 아마 하얀 의상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좀더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건 로미오였어'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꿈속에서 처음에 나는 마샤와도 마주해 그녀를 꼭 안고 위로해주었다. 그곳은 욕실이었다. 울면서 머리를 쓸어주었고 아마도 '하느님이 함께 해주실거야' 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와'였는지 '그 사람과'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위로하며 포옹하고 있을 때 옆을 돌아보자 투명한 트로피가 놓여 있는 높은 연단이 있었고 그 아래에 금색과 파란색으로 장식된 하얀 관이 있었다. 실제로 그저께 장례식에서는 검은색 관이었는데. 그 하얀 관은 아주 아름다웠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그리고 나도- 이것이 그 전의 일이라는 것을, 이건 그가 예전에 발레 페스티벌에서 풍부한 표현력으로 상을 받았을 때의 바로 그 풍경이라는 것을, 그리고 발로쟈가 마치 돈키호테의 바질처럼,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곧 무대에 나타나 즐겁게 춤추는 퍼포먼스를 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종의 수상 퍼포먼스였다. 그리고 위 문단에서처럼 그가 나타나 높이, 아주 높고 가볍게 도약해 춤을 추며 지나갔다. 슬프지 않고 재미있었다. 유머러스했다. 그때 나는 '춤추고 있구나' 라고 생각했고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구나. 그런데 나중에는 정말로 떠나는데...' 라고도 생각했다.
꿈에서 깨어나 침대에 누운 채,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 손을 뺨과 베개 사이에 끼우고 천천히, 가만히 생각했다. 인사하러 왔어. 예전 꿈에서도 많이 봤는데, 그땐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현실에서 그랬던 것처럼. 물론 꿈속에선 현실보다도 더 노어가 잘 안돼서 괴로워했지만. 이제 이렇게 인사하러 와줬으니까 다음에는 꿈에서 얼굴을 마주보면서 이야기하고 인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맙다고도. 정말, 정말 고맙다고. 이렇게 와줘서. 이 사람은 분명 지금도 춤을 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자 마음이 슬프면서도 조금 따뜻해졌다.
내가 가장 좋아한 그의 배역 중 하나는 솔로르였다. 그가 춘 솔로르 무대를 마린스키에서 여러번 봤다. 그는 너무나도 훌륭한 솔로르였다. 유일하게 용서해주고 싶은 솔로르였다. 배우로서의 재능이 엄청났다. 2막의 결혼식 하얀 의상을 좋아했지만 3막이 되면 무게를 잊은 듯 날아오르고 회한에 차 격렬하게 춤추는 그 모습에 넋을 잃곤 했다. 뭐랄까, 그건 정말 온전한 솔로르였다. 알브레히트도 로미오도 그랬다. 하지만 그 3막의 솔로르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마치 내 앞에 정말로 망령의 왕국을 헤매는 솔로르, 어딘가에 홀린 듯 날아오르는 다른 존재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솔로르는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질은 안 좋지만, 2015년 3월. 이건 2막의 결혼식 춤이다. 저 하얀 의상을 입은 발로쟈는 너무 멋져서 볼 때마다 '내가 감자티라도 쟤를 뺏지... 뱀 풀고도 남지' 라고 생각했었다.
발로쟈는 아마 우리가 자기의 춤들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것에 행복해 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모습대로 관객들이 자기를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했으니까. 언젠가는 무대에서 내려와야겠지만 지금은 계속해서 춤추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는 정말 그 모습으로 널 기억하겠지.
Прощай, Володя... Ты навсегда в наших сердцах. Настоящий, самый лучший Артист. Мы в Корее тоже очень любили тебя, и помним, любим, скорбим... Каздый раз ты на сцене, ты напоминал мне о том, что Федор Михаилович сказал : "Красота спасет мир" Да, Володя. Ты наша Красота. Ты вечный мой артист🤍
이젠 한국말로 해도 다 알아들을 거라 믿으며... 그래도 너의 언어로 인사할게. 내가 네 앞이라 너무 떨려서 노어가 안 나온다고 하니까 ‘괜찮아, 그래도 네가 노어 하는 게 훨씬 나아! 난 한국말 한 마디도 모르잖아’ 라고 농담하며 환하게 웃어줬었지. 이젠 우리말도 다 알아들을거야. 그건 마음이니까. 마음은 영혼이고 그건 어디까지나 날아가니까.
오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가 마린스키 극장에서 마지막으로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했다. 극장 홀에서 추모객들이 꽃을 바치고 인사를 했다. 사진을 얼핏 봤는데 관이 보여서 너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아 더 찾아보지는 않았다. 두시간 반 넘도록 추모객들이 이어졌고 조금 전에 교회로 떠난 것 같다. 극장 밖에 모두가 모여 박수갈채로 그를 보내주는 짧은 영상들이 올라오고 있다. 갈채를 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너지듯 슬프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까지 극장에 있었고 또 박수와 함께 이별하는 거니까 발로쟈는 좋아했을 거라고 믿는다.
마음을 많이 다독이고 기도하고 그에게 대화하듯 말을 걸었다. 이제 정말 인사를 해야 하니까... 지금까지 도저히 입밖에 낼 수 없고 쓸 수도 없었던 작별인사를 해야 하니까.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너무나 충격으로 한동안 마비되어 있었고 며칠 동안 내내 아픔과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그가 너무나 소중한 무용수였기에, 나에게는 단순히 춤을 잘 추는 멋진 무용수가 아니라 불꽃과 아름다움을 가진 예술가,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을 가득 채우는 뮤즈 같은 존재였기에, 그리고 우리가 아주 짧은 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눴고 그 다정함에 깊이 감동받았기에, 내가 많은 어려움을 겪어오는 동안 위안이 된 사람이었기에 이토록 슬프고 아플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는 극장과 무대, 예술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 자체였다.
언제나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것이 더 쉬웠지만 정말로 고통스러울 때는 쓰는 것도 어렵다. 마음 속에 가득한 감정과 이야기들을 정리할 수가 없다. 그의 사진들과 영상들을 일일이 뒤적여보기 어려운 것처럼.
작별인사를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괴로워하고 또 눈물이 흐를 때 계속해서 떠오르는 구절들이 있었다. 둘다 도스토예프스키였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다시 만나게 될 거야> 항상 전자를 믿었고 후자를 바랐다. 그리고 여기, 그 후자를 발췌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 결말부에서 알료샤 카라마조프와 콜랴 크라소트킨과 어린 소년들이 그들의 친구였던 일류샤를 떠나보내는 장례를 마치고 나누는 이야기이다.
...
" 카라마조프씨! "
콜랴가 소리쳤다.
" 우린 모두 다시 살아나 서로 만날 수 있다고, 일류샤와도 만날 수 있다고 교회에서 그러던데, 그게 정말인가요? "
" 우린 틀림없이 다시 살아나 서로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즐겁고 기쁘게 예전의 모든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게 될 거야. "
알료샤는 한편으로는 웃고 한편으로는 감격에 차서 그렇게 대답했다.
" 아,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
콜랴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 자, 이제 얘기는 그만하고 일류샤의 추도식에 가보자. 사양하지 말고 블린을 먹자. 그건 오래된 풍습이고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고 좋은 일이란다. "
알료샤가 웃었다.
" 자, 가자! 이제 이렇게 함께 손잡고 가는 거야. "
" 언제까지나 그렇게, 영원히 손에 손을 잡고 가요! 카라마조프 만세! "
콜랴가 다시 한번 감격해서 소리쳤다, 그리고 다른 모든 소년들도 소리를 모아 그의 환성에 호응했다.
Карамазов! — крикнул Коля, — неужели и взаправду религия говорит, что мы все встанем из мертвых, и оживем, и увидим опять друг друга, и всех, и Илюшечку? — Непременно восстанем, непременно увидим и весело, радостно расскажем друг другу всё, что было, — полусмеясь, полу в восторге ответил Алеша. — Ах, как это будет хорошо! — вырвалось у Коли. — Ну, а теперь кончим речи и пойдемте на его поминки. Не смущайтесь, что блины будем есть. Это ведь старинное, вечное, и тут есть хорошее, — засмеялся Алеша. — Ну пойдемте же! Вот мы теперь и идем рука в руку. — И вечно так, всю жизнь рука в руку! Ура Карамазову! — еще раз восторженно прокричал Коля, и еще раз все мальчики подхватили его восклицание.
..
무대에서 살았고 가장 정점일 때 떠나는 예술가.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제 정말 떠나야 하니까 가슴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조용히, 다정하게 인사를 해본다. 안녕, 발로쟈. 고마웠어. 유일무이한 나의 무용수. 잘 가. 우리는 즐겁고 기쁘게 예전의 일을 서로 이야기하게 될 거야. 평안하고 자유롭기를. 계속해서 춤추기를.
이것이 나의 인사이며 지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앞으로도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그가 보여줬던 것들, 그 아름다움, 고마움, 진정한 의미,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실제로 하나하나 적어보고 싶지만 지금은 여기서 끝낸다.
작년에 데뷔 20주년을 맞아 찍었던 짧은 필름. <나는 춤추며 살아가요> 그 화보집과 거의 비슷한 제목이다.
힘들 때 자주 봤던 옛날 클립. 20대 초 모스크바 발레 콩쿠르 수상하고서 춘 차이코프스키 파 드 두 솔로이다. 화질은 좋지 않지만 이 영상을 보며 항상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밝고 환한 그, 춤추는 발로쟈 슈클랴로프의 모습들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사진은 2016년 6월에 마린스키 구관에서 찍은 것이다. 이날 그는 아나스타시야 마트비옌코와 함께 돈키호테를 췄다. 나는 이때 너무 힘들고 지치고 고통스러운 상태로 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갔었다. 3주 정도 머물렀다. 그때 나는 발로쟈의 공연을 여럿 봤다. 그가 바이에른으로 떠나기 몇달 전이었다. 물론 그전에도 페테르부르크에 갈 때마다 그의 공연을 보았지만 이 시기에는 짧은 기간 동안 돈키호테, 청동기사상, 지젤, 나를 버리지 마 등 무대에 여러번 올라왔었다. 이 시기는 내가 가장 괴롭고 힘든 때였다. 나는 그의 무대들을 보며 어떤 식으로든 많은 위안을 받았다. 페테르부르크, 운하, 춤, 발로쟈. 이 시기는 마치 안개에 휩싸여 있는 듯한 느낌이고 특히 이 돈키호테는 도착한 바로 다음날 봤던 거라서(딱 한 장 나온 취소표를 간신히 구했다) 그런지 무대 하나하나가 전부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생생하다. 그의 바질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화사했고 고통을 잊게 해줬다는 것.
'그는 우리에게 사랑받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어요. 좋은 사람이에요.' 오늘 역시 그를 사랑하고 아꼈던, 그래서 함께 슬퍼하고 있는 이웃님과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 마음으로 내일 그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그렇게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극장에서의 송별과 니콜스키 사원에서의 추도 예배, 그리고 스몰렌스크 안장이 내일이다. 그의 영혼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한다. 사랑받았던 사람, 행복하게 해준 사람. 좋은 사람.
내가 마지막으로 본 발로쟈의 무대는 2019년 11월 15일, 마린스키 본관이었다. 백조의 호수였고 알리나 소모바와 함께 췄다. 이 사진들은 전에 공연을 보고 얼마 되지 않아 올린 적이 있다. 흔들린 사진이지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이 사진이 좋다. 그날 밤 공연을 마친 후 나는 극장 옆문, 크류코프 운하 옆에서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농담에 웃기도 하고, 곧 다시 보자고 인사를 했다. 많이 지쳐서 늦게 나왔지만, 날씨가 싸늘했고 운하에서 11월의 습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그는 나와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지금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농담, 웃음만이 생생하다... 그리고 포옹과 볼키스, 인사. 존대어가 사라지고 서로 너라고 부른다는 사실에 대한 행복감.
나는 예술에 대해서, 무대에 대해서, 그리고 극장과 관객의 관계, 그 환각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주제와 인물로 오랫동안 글을 써오기도 했다. 자신의 삶 역시 비슷한 업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알면서도 이 사람 앞에서는 순수하고 열렬하고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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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를 찾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는데 블로그 유입경로에서 어제인지 그저께 우리 나라 뉴스에 나온 기사들이 떠 있었다. 그리고 서방 외신들 중 여럿도. 그의 죽음에 대해 온갖 추측이 이어지고 있고 그게 언론의 현실이라는 것을 알기에 속상하고 서글프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꼭 말해두고 싶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서로 죽이지 말고 평화로워졌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나는 춤추고 싶다, 그 어떤 경계도 없이 도처에서’ 라는 유명한 일기의 문장도 인용했다. 분명 온전히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놓고 러시아나 푸틴 반대파가 된 적은 한번도 없었고 정부 비판이나 정치적인 얘기를 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전쟁 후 푸틴에게 반대하다 의문사한 여러 유명인사나 재벌들과 비교하며 '반푸틴주의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했던 스타 무용수의 의문사'로 프레임을 짜는 기사가 제법 올라온다. 떠나버린 사람의 개인적 삶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끔찍하지만 전쟁과 이념과 살상의 끔찍한 비극 속에서 정치적으로 거짓 악용하는 것도 비열하다. 이것은 러시아 편이냐 우크라이나 편이냐, 푸틴 반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편안하게 보내줬으면 좋겠다.
그날, 운하 옆에서 받았던 사인들. 마샤와 발로쟈. 왼편은 푸쉬 컴스 투 쇼브(기민씨와 마샤가 췄다), 젊은이와 죽음. 오른편이 백조의 호수.
이렇게 보고 있으니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여전히 모든 것이 꿈만 같고 믿어지지 않는다.
무대에서도 바깥에서도 항상 그는 너무나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가 웃는 모습이 정말 좋았다. 그 웃음을 보고 있으면 온 세상이 밝아지고 내 마음에도 불이 켜지는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나는 글을 쓰면서 '그가 웃자 어두침침한 엘리베이터 안에 갑작스럽게 전등이 환하게 켜지는 것 같았다' 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었다(단어는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에 쓴 글이니까) 그건 이 사람을 정말로 좋아하게 되기 전에 쓴 글이었지만 이후 이 사람의 웃음을 보면서 그 글을 쓰던 순간을 생각했다. 나는 바로 이런 웃음을 생각하며 썼다고. 그리고 이후에는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환한 빛이라고. 물론 그 밝은 빛 내부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떤 종류든 진정한 예술가들에게는 분명 그런 다른 것들이 있으니까. 마냥 밝고 빛나는 사람이라고 환상을 가질만큼 순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서 퍼져나오는 빛이 좋았다. 항상 매료되었다. 무대 위에서 타오르는 불꽃, 거기에 정말 환한 빛이 있어서. 어쩌면 그래서 내가 그를 그렇게도 좋아하고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무용수. 나는 마음 속으로 그를 그렇게 생각했고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나의 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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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에 마린스키 계정에도 공지가 올라왔지만 실은 오늘 새벽 무렵 유리 스메칼로프가 발로쟈와의 작별인사와 장례가 21일 목요일에 있을 거라고 스토리로 알려주었고 그것을 보자 정말 이 사람이 떠나는구나, 이게 다 정말이구나 하면서 온몸이 마비되는 듯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마린스키 극장, 니콜스키 사원, 그리고 스몰렌스크 묘지. 내가 자주 지나치던 곳들이었다. 스몰렌스크 묘 근처에 옛 기숙사가 있었다. 그곳을 생각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극장과 사원은 아마 입장 제한이 있지 않겠냐고 슬퍼하고 있는데 저녁 즈음 그의 죽음을 제일 먼저 알렸던 텔레그램 채널에서 관객, 친구, 모두들 제한 없이 들어올 수 있다고, 발로쟈가 마지막으로 극장을 떠날 때 모두 박수갈채로 인사해주면 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을 읽자 눈물이 쏟아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제는 내내 그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괴로웠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이게 다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이 글들을 읽자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현실감이 들면서 정말 너무나도 슬펐다. 나도 거기 가서 인사하고 싶고 온전한 무용수로서, 무대에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싶은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갈 수 없어서 슬프다. ... 11.21 일정 세부 공지(마린스키) Прощание с Владимиром Шкляровым 21 ноября пройдет прощание с премьером балетной труппы Мариинского театра Владимиром Шкляровым. Гражданская панихида начнется в 11:30 в Белом фойе Мариинского театра (историческая сцена). Вход свободный. Церковная панихида состоится в 14:00 в Николо-Богоявленском морском соборе (Никольская пл., 1/3). Церемония захоронения — в 16:00 на Смоленском православном кладбище (Камская ул., 26).
그의 사진이라면 넘치도록 많이 가지고 있지만, 사진첩을 열어볼 기운도 용기도 나지 않아 어제 그의 동료 무용수들이 올려준 사진들을 모아둔다. 사진들은 순서대로 유리 스메칼로프의 매드컴퍼니 스메칼로프(@madcompany_smekalove), 다닐 심킨(@daniil), 디아나 비슈뇨바(@dianavishnevapublic), 알리나 소모바(@alinasomovaofficiall), 블라지미르 바르나바(@vvarnava)로부터. 각 출처 사이에 * 표시해둔다.
나는 이 화보집을 2016년 6월,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 서점에서 샀다. 그때 나는 회사에서(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들 때문에 심하게 몸과 마음을 다쳐서 아주 많이 아팠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기서 빠져나가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절박함으로 정신없이 페테르부르크로 떠났었다. 그 해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도착한 다음날, 나는 발로쟈가 자기 인스타 계정에 올려둔 서점 이름과 주소를 따라 아니치코프 다리를 건너 판탄카 운하변의 거리를 걸어갔고 서점에 들어갔다. 그리고 화보집을 샀다. 그 여름에 나는 마린스키에서 그의 무대를 여럿 보았다.
여름이 지나고 그는 바이에른으로 떠났다. 나는 돌아왔고 다시 심하게 마음을 다치고 아팠고, 겨울에 다시 한번 페테르부르크에 갔고, 돌아와서 복직을 했다. 그리고는 어떻게든 부딪치며 살아냈다. 그는 일년 후 마린스키로 돌아왔다. 나는 일년 후, 2017년 7월에 이 크고 무거운 화보집을 캐리어에 소중하게 챙겨서 블라디보스톡으로 갔다. 오로지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우리는 거기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 나눴고 나는 화보집에 사인을 받았다. 그 자리는 사실 기자들만 초청했던 토크 간담회였는데 나는 그것을 몰랐다. 토크를 마친 후 기자들이 모두 나갔을 때 나는 떨면서 스태프에게 부탁을 했고 발로쟈는 조그만 백스테이지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무슨 이야기들을 나눴는지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너무 심장이 뛰었으니까. 러시아어도 잘 안나와서 마구 뭉개졌던 것 같다. 그래도 나는 내가 넘버원 한국 팬이라고 말했고 또 이것저것 얘기를 했었다.
오후에 화보집을 꺼내보았다. 여전히, 뽀드삐스니예 이즈다니야에서 샀을 때처럼 비닐로 싸여 있었다. 책이 상할까봐 꼭꼭 싸두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 나는 사실 이 사람의 죽음에 울지 않았다. 눈물도 아주 약간 맺힐 뿐이었다. 그냥 아주 많은 충격으로 멍멍해져 있었다. 그런데 표지를 넘기고 저 글귀를 보자 눈물이 흘러나왔고 몸이 떨렸다. 책장을 넘겨 사진을 볼 수가 없었다. <발로쟈 슈클랴로프로부터, 추억을 위해> 라고 적혀 있다. 돌아와서 책장을 넘겨보면서 '블라지미르가 아니라 발로쟈라고 써줬어' 하며 그 작은 것에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책의 제목은 <춤추며 살다> 이다. 그는 그렇게 살았고 끝까지 그렇게 떠났다. 너무 빨리, 너무 가혹하게.
오늘의 메모로 시작한 글인데 화보집 얘기가 길어져서 이건 그냥 dance 쪽으로 옮겨둔다.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했던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페테르부르크에선 마린스키에서 했고 모스크바에서는 크레믈린 극장에서 공연했다. 2개 작품을 췄는데 라 바야데르 3막 망령의 왕국, 그리고 셰헤라자데였다. 전자는 옥사나 스코릭, 후자는 말이 필요없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췄다. 사실 전자는 원래 마리야 호레바와 추기로 되어 있었던터라 상당히 아쉬웠는데(나는 이 무용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호레바가 공연 며칠 전에 부상을 당해서 스코릭으로 대체되었다. 부상은 빨리 낫기를 바라고, 공연 자체로는 당연히 스코릭이 훨씬 나은 파트너였다. 사실 스코릭도 내 취향에 맞는 무용수는 아니다만 그래도 객관적으로 훨씬 낫다. 테료쉬키나는 그저 최고라고밖에 할 수 없고.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는 이 사람의 최고의 배역 중 하나라 무척 잘 어울리고(라이브 무대를 여러번 봤는데 3막으로 가면 정말 숨이 막힌다), 셰헤라자데의 황금노예는 이번 공연 영상을 보니 이 사람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원숙해져서 그런지 이제는 참 잘 어울리게 되었다. (옛날에는 이 사람이 황금노예를 추면 섹시하다기보다는 그저 왕자님 같고 쎈 언니 조바이다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귀여운 동생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사진들이 많이 올라왔는데, 최근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진 몇 장 올려본다. 흑백 사진 3장은 @prokhorova.maria 의 인스타에서. 이분이 찍은 무대 리허설 사진들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특히 맨 위 사진. 이 사진은 정말 마음에 든다. 슈클랴로프님이 원체 탁월한 무용수인데다 아름다운 피사체이기도 하지만, 이 사진은 리허설에서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찰나의 아름다움,어둠과 빛의 조화가 근사하다.
역시 @prokhorova.maria
스코릭과 함께 라 바야데르 리허설 중인 사진.
@prokhorova.maria 의 사진 한 장 더. 의상을 차려입지 않아도 솔로르 그 자체.
이건 @teatro_gram 의 사진. 실제 무대에서. 솔로르를 추는 슈클랴로프와 니키야를 추는 스코릭.
@teatro_gram 의 사진 한 장 더 올리고 마무리. 이 사람 무대 다시 보고프다. 그리고 다시 한번 20주년 축하해요, 발로쟈. 더 오래 건강히 멋지게 춤춰주길.
오늘이 세계 발레의 날이라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무용수인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님 최근 사진 몇 장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11월 하순에 모스크바에서도 데뷔 20주년 기념 공연을 한다. 흑흑 망할넘의 전쟁. 마린스키도 모스크바도 다 놓치고... 이분이랑 무대 못본지 이미 4년이나 지났다ㅠㅠ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 이건 이 사람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배역이다.
이 두 장은 최근 모스크바에서 알라 시갈로바와 겅연한 모던 발레 작품 리허설 사진. 이 사람은 몸을 쓰는 것도 당연히 훌륭하지만 탁월한 배우라서 더 좋다.
이건 얼마 전 아내인 마리야 쉬린키나와 춘 모던 발레.
마지막은 너무 귀엽고 따뜻한 느낌이라. 출처는 이분 인스타. ‘해적’ 공연 마치고 큰아들 알료샤랑 같이 :) 사진은 아내인 마샤가 찍어줬다고 함. 아들내미 많이 컸는데 척 봐도 개구쟁이 느낌이 물씬 난다. 그리고 드물게 사진 올라올 때 보면 작은 딸내미가 너무 귀여움. 아이들이 엄마아빠 많이 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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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인스타 스토리 태그도 어김없이 해주시고 여전히 다정하신 발로쟈. 보고픕니다 정말! ’다시 나 보러 오려면 너 또 엄청 열심히 일해야되겠네!‘ 하고 크류코프 운하 옆에서 농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 전 ㅠㅠ (열심히 일하긴 했는데 코로나랑 전쟁 때문에 못 보고 있음 흑흑... 그래도 여전히 나는 너의 no.1 한국 팬인거 알지?)
어제는 백조의 호수 파이널 클립이었으므로 오늘은 그냥 가기 아쉬워서 흑조 2인무 클립. 오데트는 류드밀라 코노발로바, 지그프리드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이건 갈라 공연이라 무대나 의상이 좀 다르다. 2018년. 이 클립에서 발로쟈 슈클랴로프님의 미모가 정말 광채를 발함. 영상이 전체적으로 어두운데다 검은 의상 때문에 좀더 환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은 있다만, 하여튼 이분이 너무 아름다우시므로 그것만으로도 좋음 :) 나는 무용수의 진가는 갈라 공연보다는 전막 공연에서 제대로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갈라 무대들은 항상 좀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그냥 이쁘다. 유튜브 링크와 클립 아래.
위의 사진은 코노발로바와 함께 찍은 게 아니고 예전에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와 함께 막간에 찍은 것. 카리스마 오딜 테료쉬키나와 순둥순둥(이라고 쓰고 바보라고 읽고 이쁘니까 용서된다고 추가하는) 지그프리드 슈클랴로프.
너무 덥고 지치는 나날이라, 기분 전환을 위해 슈클랴로프님과 테료쉬키나 여왕님의 백조의 호수 파이널 클립을 올려본다. 작년 11월. 오데트는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지그프리드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로트바르트는 안드레이 예르마코프. 역시 마린스키 파이널이 좋다. 나이를 먹어서 이제 비극은 싫고, 이렇게 로트바르트 날개도 확 뜯어서 응징하고 사랑의 승리를 확실히 보여주는 엔딩이 좋음. 테료쉬키나야 말이 필요없는 훌륭한 발레리나이고, 슈클랴로프님의 지그프리드는 너무나 왕자님답고, 필요한 순간이면 강렬한 눈빛과 박력을 여지없이 발휘하신다. 예르마코프의 로트바르트도 역시 멋지다.
생일 축하해요, 발로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용수! 오래오래 멋진 모습으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시기를!
5월 내한 공연 소식이 있긴 한데 작년에도 취소된 거라 아직은 반신반의하고 있다만 정말로 꼭 와서 무대도 보고 몇년만에 다시 인사도 하고 잠깐이라도 얘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사람 무대 보고 이야기 나눈 게 벌써 3년 반이 다 됐다. 19년 11월에 마린스키 극장 아티스트 출입문 앞에서 만난 게 마지막... 그때 공연은 백조의 호수였다. (도대체 왜 11월에 뻬쩨르에 온 거냐고 료샤가 어이없어 했을때 차마 고백할 수 없었다. 슈클랴로프님이 젊은이와 죽음이랑 백조의 호수를 춰서 그거 보고팠던 게 1순위였다고 ㅋㅋ) 하여튼 그때 크류코프 운하 바로 옆의 그 문 앞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 마샤도 같이 있었는데... 마샤랑 같이 오면 더욱 좋겠다.
슈클랴로프님이 얼마전 가수 하나와 협업해 찍은 뮤비 클립이 좀전에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노래는 그냥 그렇고 뮤비 자체도 그냥 그렇지만 이 사람이 너무 이쁘다. 이 뮤비의 촬영 자체가 이 사람을 좀 너무 (심지어 성적으로) 대상화시킨 시선으로 이루어진 거 아닌가 싶어 좀 아쉽고, 하여튼 안 그래도 미남이라 섹시하고 멋있긴 한데 영상도 넘 짧고, 또 이런 무용수를 데려다놓고 춤을 너무 적게 추게 만든게 아쉽다. 마리오네트 컨셉도 그냥저냥 ㅠ
노래도 뮤비도 촬영 스타일도 은근히 되게 90년대풍이라 요즘 다시 이런 게 유행인가 싶기도 하고. 잡지 화보 풍. 두세번 돌려보는데 분위기 탓에 오랜 옛날 러시아 기숙사에서 엠티비 보던 생각이 났음 ㅋ
좀더 괜찮게 찍은 좋은 뮤비 영상이면 좋았을텐데 각종 레퍼런스와 스타일을 섞어놨지만 내가 보기엔 그저 이 사람만 이쁨. 근데 이분은 원래 뭘 해도 이쁜 사람 아닌가 ㅜㅜ 심지어 마린스키 구관에서 찍었는데... 뮤비 자체의 창의적, 예술적 감각이나 완성도는 그닥 그렇고 연출가와 스타일리스트가 뭔가 여기저기서 다 끌어모아서 대충대충 성의없이 찍은 느낌이다. 슈클랴로프님 나오는 장면만 편집하고 싶다. (결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