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토요일 밤 : 색색의 장미들, 미뜨리 히뜨리, 산란한 마음, 쓰는 중 fragments2023. 11. 4. 22:22
너무너무 피곤했는지 아침에 깼다가도 계속계속 다시 자기를 반복했다. 열시 쯤에야 '아, 더 자면 주말 리듬이 완전히 망가지겠지' 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잠에서 깨어났다. 이때쯤 꽃도 도착했기 때문에 '아아 일어나야 한다, 꽃이 상할 거야. 물 줘야 돼' 하며 비틀비틀 일어났고 졸음에 취한 채 꽃을 다듬었다. 오늘 도착한 꽃은 콜롬비아 장미 믹스라는 이름으로 랜덤 장미들이었다. 다들 꽃송이가 큼직했는데 전에 사본 종류도 있고 첨 보는 애도 있었다. 이쁘고 다 좋은데 각종 색깔의 샘플러를 보내줬기 때문에 컬러 매치가 참 난감했음. 큰 거 일곱 송이라 다듬는 건 금방 했는데...
향기도 좋다. 꽃 사진은 맨 아래 따로 좀 접어둔다.
어제 동생과 올케가 보내준 생일 선물이 총알처럼 오늘 아침에 도착했다. 동생이 보내준 다즐링 티. 그리고 올케가 보내준 비타민과 노란 곰돌이. 곰돌이는 매우 보송보송하긴 한데 아무리 봐도 한쪽 눈이 '교활한 눈빛'임. 쿠마와 그 친구들도 캐비닛 안에 들어가 있다만 얘는 선물받았으니까 일단은 거실 한쪽에 앉혀두었다. 이름은 '미뜨리 히뜨리'라고 지어주었다. 히뜨리는 노어로 '교활한'이란 뜻의 형용사이다. 남자 이름인 드미뜨리를 애칭으로(말장난으로) 미뜨리 히뜨리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딱 어울림 ㅋㅋ 그럼 결국 이 곰돌이의 본명은 드미뜨리...
미뜨리 히뜨리~
이렇게 선물과 꽃을 다듬어놓은 후, 도로 침대로 들어가 정오 즈음까지 다시 게으름을 피우며 누워 있었다. 온몸이 무겁고 졸리기만 했다. 그러다 일어나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오후엔 햇살이 좀 나서 베란다에 테이블을 놓고 앉아 차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볕을 쬐니 기분이 나아졌다. 사실 간밤 자기 전에 기도하러 서재의 끄라스느이 우골에 갔을 때 불안감과 우울한 마음이 발작적으로 덮쳐와서 좀 힘들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도 아니고 또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걱정해봤자 온갖 나쁜 상상들만 들테니 머리를 비우고 꼬리를 잇는 생각들도 끊어내려고 노력했는데 하여튼 간밤엔 갑자기 너무 힘이 들었다. 아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나쁜 일들이 되풀이될까봐 무의식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하여튼 오늘은 볕을 쬐고 꽃을 보면서 그런 기분에서 좀 벗어났다. 걱정해서 뭐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마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에서 그만둬야 할까'라는 본질적인 고민이 되살아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글을 조금 쓰다가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이 글은 쓰는 재미도 있고 오랜만에 미샤도 직접 등장해서 좋은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아마 요즘 마음이 산란해서 그런가보다.
꽃 사진 몇 장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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