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과 자작나무와 맥도날드 about writing2021. 10. 16. 20:05
계속 쓰고 있다. 이제 열페이지 가량만 더 쓰면 마무리하지 않을까 싶다.
발췌한 부분은 후반부, 그것도 가장 최근에 쓴 파트 중에서. 맥도날드와 피자헛, 지나랑 미샤의 입맛 등등.
위의 사진은 페테르부르크 바실리예프스키 섬의 맥도날드이다. 지하철역 바로 맞은편에 있다. 나에게는 추억의 장소인데 오랜 옛날부터 쥬인과 자주 가던 곳이다. 게다가 유명한 곳이다. 이제는 러시아 컬트 영화로 대접받는 영화 브랏(brother)에서 주인공 다닐라(세르게이 보드로프)가 당시 페테르부르크의 로컬이자 소위 노는 여자애인 케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곳임. 몇년 전 가서 저 사진 찍었던 날은 흐려서 사진이 너무 하얗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좀더 짙은 색이다. 저 외양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내부는 물론 많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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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맥도날드나 피자헛 등 소위 미국 냄새나는 음식들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했고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단것도 아주 좋아했는데 특히 세베르의 모코 케익과 발샤야 코뉴셴나야 거리의 도넛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갈런드는 처음 지나를 봤을 때 우아하고 자그마한 모습에 팅커벨 같다며 한 번 놀라고, 그토록 가냘픈 그녀가 치즈 토핑을 세 배로 추가한 두툼한 피자를 순식간에 흡입하는 모습에 두 번 놀랐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지나는 ‘요정도 먹어야 살 거 아니야!’ 라고 항의했지만 그래도 남자 무용수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듣자 자못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는데, 미샤가 ‘지나는 많이 먹어도 돼, 깃털 같으니까’ 라고 편을 들어주자 금세 얼굴이 펴지면서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한쪽은 깃털이고 한쪽은 자작나무지’ 하고 게냐는 생각했다. 무대에 본격적으로 올라가던 시절은 이미 지났지만 미샤는 여전히 온전한 무용수의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데도 아침저녁으로 스트레칭과 기본 연습을 빼먹지 않았고 틈날 때마다 스튜디오에서 혼자 춤을 추기도 했다. 식생활은 그리 풍성하지 않았다. 지나와는 달리 패스트푸드나 피자, 단것도 입에 잘 대지 않았다. 심지어 차에도 설탕을 넣지 않았다. 지나는 ‘저 바보는 옛날부터 저랬어, 그나마 지금은 좀 나아진 거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야. 애초부터 살찌는 체질도 아닌데. 모코도 한 조각 이상 먹어본 역사가 없어. 나보다 더 좋아하면서’ 하며 혀를 내둘렀다. 미샤는 애초부터 자작나무처럼 날씬하고 유연한 몸을 타고 나서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별로 없는 사람이었고 본인도 그런 사실을 아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먹는 것에 연연하는 적이 없었고 바쁠 때는 뭘 먹어야 한다는 것도 잘 잊어버리는 편이어서 지나와 키라가 툭하면 이거 먹었냐 저거는 먹었냐 하고 잔소리를 했다. 발레단의 마사지스트인 빅토르마저 합류해 걸핏하면 미샤에게 한 번만 더 식사를 거르고 오면 돼지비계를 세 겹으로 얹은 부체르브로드를 먹이겠다고 협박을 했다. 미샤는 왜 자기 주변에는 항상 이렇게 뭘 먹으라고 종용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지 모르겠다고 피곤해했다. 게냐는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 아무도 참견하지 않을 거라고 말해 주려다 자신마저 잔소리를 추가하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대신 이따금 스튜디오 근처의 빵집에서 사과파이를 사 갔다. 미샤는 단것을 딱히 즐기지 않았지만 예외적으로 모코 케익과 사과파이만은 좋아했다. 제대로 구운 사과파이만. 맥도날드의 애플파이나 체리파이는 ‘파이’ 축에 끼지 못했다.
얼마 전 막내 단원인 이라의 생일에 미샤는 그녀가 그렇게도 노래를 불렀던 맥도날드에서 모든 단원들과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생일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점원들이 와서 노래를 불러주자 이라는 너무 행복한 나머지 테이블 위로 올라가 춤을 출 기세였다. 미샤는 이라와 동료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며 좋아했고 먹고 싶다는 메뉴는 전부 시켜 주었지만 막상 본인은 버거나 감자튀김에는 손을 대지 않았고 신상품이라고 다들 궁금해했던 나무열매파이와 체리파이만 절반씩 갈라 이라와 나눠 먹었다. 그러고는 이상한 기름 맛이 난다고 했다. 갈런드는 그에게 인생의 낙을 너무 모른다고 놀려댔다.
... 글에 따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미샤가 이라와 단원들을 데려가 파티를 열어준 맥도날드도 바로 저 맥도날드. 글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 미샤의 발레단 스튜디오가 바실리예프스키 섬에 있기 때문에. 저 당시(90년대 후반)엔 맥도날드가 '레스토랑'이라고 불렸고 젊은이들의 꿈의 직장이었으며 거기서 생일 파티하는 건 어린애가 아니더라도 엄청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수업 마치고 쥬인이랑 저 맥도날드에 가서 밤까지 죽치고 앉아 빅맥세트를 먹으며(당시엔 모든 버거 세트 가격이 동일했으므로 무조건 빅맥을 먹어야 이득이었음) 온갖 수다를 떨곤 했다. 그리고 이 글의 배경이 되는 1997년엔 아직 KFC는 페테르부르크에 오픈하지 않은 시점이었다. 한마디로 맥도날드가 최고였다. 피자헛도 있었는데 거기는 너무 비싸서 쉽사리 가기 어려웠음.
내부는 이제 이렇게 변했다. 여기도 키오스크가... 옛날엔 쥬인이랑 여기 줄서서 빅맥세트 시키고 케찹을 1루블인가 10루블 주고 사면서(이때 화폐개혁이 있었던 시기라 아직도 당시 케찹 가격이 헷갈림 ㅋㅋ) '어떻게 케찹을 돈 주고 팔 수가 있어 나쁜넘들' 하고 슬퍼했었다 :)
몇년 전 다시 갔을 땐 맥치킨세트로(이젠 세트별로 가격이 다름 ㅜㅜ)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통틀어 모든 맥도날드 중 이 바실리예프스키 맥도날드가 제일 맛있다! 다시 갔을 때도 그렇고... 추억보정인가 싶다가... 나는 그래도 맛없는 건 얄짤없는 타입이라 정말 여기가 더 맛있는 건지도... 하기도 함. 그런데 이런 인생의 낙을 모르는 미샤 ㅎㅎㅎ
문제의 케찹. 근데 요즘은 그냥 세트 시키면 주는 것 같다. 옛날엔 1루블 더 주는 게 너무 아까워서 쥬인이랑 케찹 한개만 시켜서 나눠먹었다.
창 너머로 이렇게 동네 풍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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