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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11. 21:25

The Repa, 지나간 겨울, 료샤 about writing2018. 3. 11. 21:25





마린스키 극장과 크류코프 운하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The Repa.



오래전부터 마린스키 무용수들을 비롯해 극장 사람들이 많이 가던 곳인데 2년 전쯤인가 유명 체인에서 인수해 근사하게 새단장을 해 영업 중이다. 오픈 즈음엔 게르기예프도 갔었고 네트렙코도 갔다. 슈클랴로프님도 절친인 유리 스메칼로프 등과 함께 이따금 여기 들르는 모양이다.



여기는 옛날에도 무용수들이 오던 곳이라 창가에 앉아 잘 찾아보면 파루흐 루지마토프나 디아나 비슈뇨바 등의 이름도 적혀 있고 무용수들의 사인과 팬들의 글귀도 남아 있다. 그것들 찾는 재미가 있다. 비슈뇨바라는 이름의 디저트도 있다. 지난번에 갔을때 비슈뇨바 디저트 먹어보려 했는데 너무 배불러서 못 먹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아스토리야 호텔 카페에서도 비슈뇨바란 이름의 디저트를 새로 내놓았다) 



나는 구독하는 페테르부르크 잡지에서 이곳의 재오픈 소식을 읽고 오픈한지 한달쯤 만에 료샤와 함께 갔었다. 이후 페테르부르크 가면 극장 갈때 한두번쯤은 꼭 들른다. 혼자 간 적도 한번 있긴 한데 주로 료샤랑 같이 갔다. 여기는 음식도 맛있고 인테리어도 화려하고 근사하다. 식기들도 너무 예뻐서 갖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이곳은 빵도 맛있고 가장 단순한 양배추수프마저도 무척 맛있어서 나는 여기 가면 항상 양배추수프를 주문한다. 료샤는 나보고 '에잇, 촌스럽구나! 양배추수프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을 이런 곳에서도 그걸 먹냐!'라고 하지만... 여기 양배추수프가 맛있단 말이야 ㅠㅠ



실내 조명이 어두워서, 플래시 안 터뜨리고 찍었더니 화질은 별로 좋지 않다만 사진 몇 장. 료샤랑 같이 가서 뭘 먹으면 사진 찍기가 쉽지 않아서 몇 장 없다. 






유명 디자이너 솜씨의 접시. 이 접시 엄청 이쁨.







이건 2016년 12월 겨울에 갔을 때이다. 겨울이면 해가 금방 져버린다. 저녁 7시 공연이라 5시 즈음 료샤랑 이른 저녁 먹으러 갔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바깥은 이미 어두웠다. 점원이 초를 켜주었다. 일렁이는 촛불을 보고 있자니 료샤가 '야! 머리카락 탄다!' 하고 초를 쳤다. 






..



좋아하는 레스토랑이다. 혼자 가기는 살짝 그렇긴 한데(그래도 꿋꿋하게 혼자 간 적도 있지), 혹시 마린스키에 가신다면 시간이 나면 근처의 이곳에 한번 들러보시길. 예약하고 가시면 더 좋고... 공연 끝나고 늦은 시각에 간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다. 보통 극장 사람들이 뒷풀이 파티를 하곤 했던 것 같다. 가격대는 페테르부르크 음식점 물가를 비교해보면 저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싸지도 않다.



이곳은 나에겐 좀 특별한 곳이다. 2016년 초여름에 처음 갔는데 이곳도 재오픈한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료샤가 나를 데려갔다. 그때 난 좀 많이 힘든 상태였다. 료샤는 극장과 발레를 좋아하는 나에게 기분전환을 시켜주고 싶어했다. 나는 여기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 음식은 잘 먹지 못했다. 하지만 예쁜 접시와 화려한 백조와 빨간 드레스 카르멘 벽화들을 보며 행복해했다. 이곳에서도 그때 나는 모르스를 마셨다. 료샤는 나에게 한국에 돌아가지 말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거의 부드럽게, 하지만 반쯤은 책망을 섞어서. 그는 '너는 그곳에서 행복하지 않아' 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나는 거기서 행복하지 않지. 하지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돌아가지 않아도 해결되는 건 없어. '



료샤는 투덜거렸다. '돌아가도 해결되는 거 없어! 그 새끼들 나빠! 결국 너만 계속 힘들거야!' 



나도 알고 있었다. 뭐라고 말하기 힘들었다. 그냥 모르스를 마셨다. 양배추수프를 먹었다. 수프는 맛있었다. 따뜻하고 시큼하고 맛있었다. 



복직 일주일 전 다시 페테르부르크로 갔고 료샤와 함께 다시 이곳에 왔다. 사진은 그때 찍은 것들이다. 나는 다시 양배추수프를 먹었다. 생선요리와 무슨 샐러드도 먹었다. 수프는 여전히 맛있었다. 나는 아주 힘든 상태였다. 료샤는 나에게 '정말, 정말 돌아가?' 라고 물었다. 나는 '응' 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창틀에 휘갈겨진 루지마토프와 비슈뇨바의 이름들을 카메라로 찍었다. 극장은 주차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료샤는 그냥 차를 레스토랑 근처에 대어 놓았다. 우리는 같이 극장까지 걸어갔다. 추웠다. 축축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마린스키에 가서 같이 공연을 보았다. 료샤는 발레고 뭐고 클래식이나 예술과는 담을 쌓았지만 나를 위해 극장에 몇번쯤 같이 가주는 친구이다. 료샤보다는 내가 마린스키에 훨씬 많이 드나들었다. 그래도 료샤는 소심한 나 대신 마린스키 샵의 아주머니에게 '그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인지 뭔지 하는 무용수 사진 있어요?' 라고 대신 물어봐주기도 하는 좋은 놈이다. 물론 사진을 고르는 내 옆에서 '타이즈 -_-' 하며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




이 레스토랑 사진을 올리고 그때 일을 떠올리니 문득 그날 밤 공연을 보고 나와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료샤가 물었던 말이 생각난다.



" 거기 음식 네 취향이야? 너는 거기가 뻬쩨르에서 제일 좋아? "


" The Repa? 아니, 음식은 고스찌나 수프 비노가 더 내 입맛에 맞아. 양배추수프 빼고. "


" 그럼 백조랑 빨간 드레스 여자 벽화 때문에? 너는 거기 인테리어가 뻬쩨르에서 제일 좋아? "


" 음, 무용을 다룬 인테리어라면 나는 아스토리야 카페 쪽이 더 좋아. "


" 근데 왜 너는 거기 가면 좀 다르지? "


" 어떻게 달라? "


" 몰라, 눈빛도 다르고 느낌도 달라. 많이 좋아하는 느낌이야. "


" 음, 거긴 루지마토프와 비슈뇨바 이름들이 적혀 있어. "


" 왕 유치하다! "

 


물론 나는 유치하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었고 또 돌아왔다. 일도 계속 하고 있다. 여전히 발레를 좋아한다. 이 나이에도 팬심에 불타올라 좋아하는 무용수 보러 다니고 꽃도 바치고 사인도 받고 평소보다 훨씬 엉망이 되어버리는 러시아어로 인사도 나눈다. 혼자서도 잘 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말하자면, 료슈카, 아마 나에게 The Repa는 너 때문에 특별했던 것 같아. 곁에 친구가 있어서 고마웠던 순간들이었으니까. 



나는 너에게 해외에서 손님이 오면 거기로 모시고 가서 대접을 하라고 했지. 그때 너는 '엑, 싫어! 여자같아! 오글거려! 막 드레스 입은 여자 그려져 있고 백조 그려져 있어! 나는 못가!' 라고 대답했어. '여자 손님 데려가면 되잖아!'라고 했을 때 너는 '그런 데는 너처럼 극장 좋아하고 타이즈 입은 남자들 좋아하는 바보나 같이 데려가는 데야!' 라고 말했지.



뭐 그건 그것대로 좋다. 여름에 다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극장 좋아하고 타이즈 입은 남자들이나 좋아하는 바보는 The Repa에 다시 가고 싶다, 료샤랑. 




...




그 당시 이야기인데다 페테르부르크 음식점 얘기니까 2016 petersburg 폴더에 올렸었는데 한동안 쓰던 글과 연관이 조금 있는 것 같아 about writing 폴더로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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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