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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니우스 구시가지. 오후.




이 날은 영원한 휴가님과 시장에 갔던 날이었다. 숙소인 네링가 호텔 앞에서 볼트로 택시를 불러서 시장에 가서 체리를 사고 체펠리나이를 먹고, 고양이들이 반겨주던 헌책방에도 들르고, 로컬들에게 인기있는 백스테이지 카페라는 곳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진 후였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주변의 작은 골목들을 돌아다녔다. 지금도 그 골목들 이름을 잘 모르고 사진을 봐도 이게 어느 쪽의 어디였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튼 날씨가 흐려서 먹구름이 가득했기 때문에 비가 올 것 같았는데 막상 이 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여기는 그런 구시가지 어느 골목을 걷다가 발견한 작은 드보르(건물 안뜰)로 들어가서 찍은 사진이다. 빌니우스 대학교의 종탑 전망대를 제외하곤 어디든 꼭대기에 올라가 전망 구경한 적이 없어서(게으름!) 제대로 된 전경 사진이 없는데(빌니우스에 8일이나 있었던 여행자가 맞는가 의문이 든다 ㅋ), 그나마도 이 드보르가 약간 지대가 높아서 건너편의 사원과 붉은 지붕들이 눈에 들어온 곳이다. 한두 명 외엔 사람이 없었다. 날이 더웠고 아마도 이 건물에 사는 주민으로 추정되는 젊은 아가씨가 작은 바구니를 들고 화초와 잡초와 풀이 만발한 포석 안뜰을 대각선으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 안뜰에 들어갈 때면 언제나 그렇듯 약간은 소심해진 채 약간은 주춤거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바구니를 든 아가씨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경사진 끄트머리까지 다다른 후 전혀 안정감을 주지 않는 낮은 벽돌 난간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애쓰며 먹구름이 내려오는 하늘과 붉은 지붕들을 구경했다.
















돌아서서 다시 골목으로 나가기 전에, 건물과 안뜰 사진 한 장. 여기는 어쩐지 내게 페테르부르크의 루빈슈테인 거리를 연상시켰다. 빌니우스의 드보르들은 내게 페테르부르크보다는 프라하를 더 떠올리게 했는데 여기만큼은 반대였다. 아마 색채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건물은 이상하게도 루빈슈테인 거리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 세르게이 도블라토프가 살았던 코무날카 건물의 안뜰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는 도블라토프의 코무날카가 들어 있는 건물은 이 건물보다 훨씬 화려하고 아름답고 크다. 그리고 이렇게 풀이 무성하지도 않은데. 외적으로는 별다른 유사성이 없는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여기서 나는 루빈슈테인 거리와 몇년 전 그곳에 생긴 도블라토프 동상, 언더우드 타자기 조각, 건물 안뜰과 수많은 창문들, 드문드문 주차된 작은 자동차들과 주민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안뜰을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가던 바구니 든 주민 아가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문득 저 창문들 중 하나가 열리며 알콜중독자 겐카라는 인물이 고개를 쑥 내밀고, 경찰들이 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도블라토프의 방에 전화를 걸어 '개들이 온다!' 하고 간결하게 경고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이건 도블라토프의 '우리들의', 아니면 '여행가방' 중 하나에 등장하는 얘기임)










그리고는 좁은 통로를 통과해 다시 골목으로 나갔다. 이런 류의 드보르가 거의 그렇듯 아치 윗면은 먼지와 얼룩으로 지저분했다.









이 사진과 아래 사진은 안뜰 들어가기 전에 바깥에서 찍은 건데,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이 건물이 바로 저 드보르가 있는 건물이었는지 아닌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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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