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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오면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첫날 도착해 정돈된 차가운 시트 위에 맨 다리를 쭉 뻗고 누울때의 그 기쁨(오늘이 첫날이니까 많이 남았다~)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니 ㅠㅠ



옮겨온 호텔 방은 에어컨이 없고 미니 선풍기가 있다. 옛날 건물을 개조한 호텔이라 고풍스럽고 예쁜데 대신 좀 구식이다. 엘리베이터도 도착하면 바깥 도어를 밀어서 열어야 탈 수가 있다.















조식 먹으러 내려와서는 꽤 만족했다. 음식도 나쁘지 않았고(심지어 푸성귀가 있다!) 기사들의 갑옷들이 진열되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도 있고 피아노 연주자도 있다.



부르주아라 웬만한 좋은 호텔 다 가본 료샤도 맘에 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맨날 이름있는 삐까한 호텔만 묵어봐서 이런 풍의 호텔은 처음이라는 거였다. 기사 갑옷 입어보고 싶다고 해서 '너 저거 입으면 갑옷 다 터지겠다' 하고 놀려주었다. 그러자 료샤는 '그렇지! 역시 내가 키도 크고 근육질의 멋진 남자니까 저런 갑옷 따위도 나한텐 안 맞겠지~' 라고 좋아했다. 좋아하라고 말해준 건 아니었는데 ㅋㅋㅋ



..




조식 먹은 후 료샤는 일을 잠깐 처리한 후 공항에 레냐를 데리러 갔다. 비서와 그의 아내가 레냐를 데리고 오기로 되어 있었다. 료샤 말로는 비서 베냐에게 일 시켜먹으려고 출장 오게 만들었는데 오는 김에 레냐 데리고 오라고 했단다... 불쌍한 베냐 ㅠㅠ 그래도 료샤는 일이 별로 없고 주말엔 아내랑 프라하에서 놀 수 있으니 이런 출장을 오게 해주는 자기가 얼마나 좋은 보스냐고 으쓱거린다. 야 임마... 그래도 일은 일이라고 ㅠㅠ 나는 일 때문에 해외출장 갔을 땐 한번도 좋은 적 없었어어어 ㅠㅠ



그동안 나는 트램 22번을 타고 로레타에 갔다. 이번 여행에선 프라하 성과 카를 교는 전부 패스하기로 했다. 어차피 좋아하는 곳도 아니고... 원래는 프라하 오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에벨과 로레타인데 이번에는 숙소를 말라 스트라나로 옮기는 후반부까지 로레타를 아껴놓았다.



열한시 반 정도에 도착했다. 일부러 정오 종소리 들으려고 맞춰 간 것이다. 로레타 부근은 가까운 프라하 성 쪽과는 달리 고요하고 한적한 편이다. 주변을 산책하다 10여분 전이 되었을때 사원 앞의 돌계단에 앉았다. 사원 안을 보지 않고 종소리만 듣고 싶을 땐 항상 이 계단에 앉는다. 시계탑과 종들도 잘 보이고 나름 좋은 자리이다.











정오에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여전히 아름답고 쨍하고 깊고 동시에 가벼운 울림과 함께 사라지는 로레타의 종소리. 오늘 하늘은 새파랬다. 햇살이 눈부셨다. 로레타의 지붕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고 종들이 순서대로 울려퍼졌다. 로레타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만큼 행복하고 충만하고 온전한 순간이 또 있을까? 아마도 네프스키 수도원의 종소리?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의 종소리? 하지만 후자들은 경건하고 전자는 경건하다기보다는 그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




종소리를 들은 후 다시 트램을 타고 말로스트란스카 지하철역까지 왔다. 오늘 이제껏 프라하에 여행왔을 때와 지냈던 거 통틀어서 처음으로 트램에서 검표원과 마주쳤다. 그래도 티켓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우 크노플리치쿠 카페에 갔다. 빨간 입술 그려진 머그에 차를 우려주고 케익이 저렴하고 맛있는 곳이다. 작년에 머물때 종종 갔었고 글도 썼었다. 오늘도 하니 앤 손즈 다즐링 티백 홍차와 자허토르테를 시켰다. 여기 자허토르테는 좀 조그맣지만 나름대로 딸기에 휘핑크림도 잔뜩 얹어주고 초콜릿 코팅 안에는 살구잼까지 들어있는 등 있을 건 다 있다. 그리고 홍차랑 자허토르테 다 합쳐서 90코루나, 45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프라하에서 내가 좋아하는 카페 중 가성비가 제일 좋다.




(찻잔 이가 나가서 좀 슬프긴 했지만... 그래도 가성비 좋은 카페니까 용서함... 나도 입술무늬 옆에 내 입술자국 찍음)







..



우 크노플리치쿠에 앉아 스케치를 좀 하며 쉬고 있으니 료샤가 레냐를 데리고 왔다. 레냐는 작년 겨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봤을 때보다 또 커 있었다! 그리고 살이 좀 빠져 있었다. 아니 벌써 쭉쭉 크는 나이로 접어드는 건 아니겠지 흐흑...



레냐는 카페 안으로 뛰어들어오더니 '쥬쥬~' 하고 소리치며 곧장 내 테이블로 와서 뽀뽀를 쪽 했다 :)) 그리고는 '쥬쥬! 머리색이 바뀌었어! 쥬쥬! 오늘은 원피스를 입었어~ 해골 어디 갔어?' 하고 조잘댔다. 나는 '해골 옷도 가져왔는데 너네 아빠가 싫어해' 라고 대답했다. 레냐는 하하 웃더니 '나는 해골도 좋아~' 라고 한다. 아이고 귀여워... 내 약혼자의 무한한 사랑 :))


그러더니 역시나 내 접시의 케익을 보며 '우아... 나도 케익. 아빠 나도 케익' 하고 조르기 시작... 료샤는 엄격하게 거절!



료샤 : 안돼! 점심 먹어야 돼! 벌써 두시가 다 됐어!


레냐 : 쥬쥬는 케익 먹었는데 ㅠㅠㅠ


료샤 : 쥬쥬는 한국 사람이니까 우리랑 좀 달라!


나 : 한국 사람이라서 다른 게 아니야아아... 너네 기다리면서 잠 깨려고 차 마셨어. 차 마시면 케익 먹고프단 말이야아


레냐 : 그래 맞아! 차랑 케익 먹으면 맛있어! 초콜릿도!!!!


료샤 : 안돼! 지금은 점심 먹어야 돼!!!!!



..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페 사보이에 점심 먹으러 갔다. 사실 어제부터 영원한 휴가님 포스팅에 있던 프렌치토스트 때문에 사보이의 맛있는 프렌치토스트가 먹고프긴 했는데 점심 시간이라 밥을 먹어야 했고 게다가 나는 이미 자허토르테를 한조각 해치운 후라서 토스트는 포기...






대신 치킨 슈니첼 시켰는데 이것이 꽤나 맛있었다. 곁들여준 감자샐러드도 맛있었다. 그래서 지난번 드레스덴에서 먹었던 얇고 질긴 가죽같던 비엔나 슈니첼의 슬픔을 만회하였다(물론 오늘 먹은 건 송아지 고기가 아니라 닭고기였지만...) 슈니첼 양이 많아서 레냐에게도 좀 나눠주었다. 료샤는 포크 슈니첼을 먹었고 레냐는 뭔가 완자 같은 음식을 먹었다. 나보고 먹어보라 했지만 돼지고기가 들어 있어서 먹지는 못했다 ㅠㅠ






레냐는 카페 사보이의 화려한 천정 장식을 보며 좋아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해서 내가 손잡고 데려갔다. 카페 사보이 화장실은 지하에 있어서 나선계단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아이 혼자 내려가는 게 어쩐지 위험한 것 같아서. 화장실이 있는 층에는 통유리창이 있고 주방이 그대로 보인다. 레냐는 신기해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오면서 레냐가 물었다.



레냐 : 쥬쥬, 프라하가 페테르부르크보다 더 좋아?


나 : 아니. 페테르부르크가 제일 좋아.


레냐 : 근데 왜 여름에 우리한테 안 오고 프라하로 왔어?


나 : 으응, 페테르부르크 가는 비행기가 더 적고 더 비싸서 ㅠㅠ


레냐 : 그렇구나... 그러면 프라하 온 거 용서해줄게.



아빠보다 더 쿨한 아들 레냐 ㅋㅋㅋ



..




카페 사보이에서 나와서 우리는 골목을 좀 거닐었고 호텔로 돌아왔다. 레냐가 하품을 했다. 아침에 비행기 타고 온데다 간밤에 게임하느라 늦게 잤다고 한다. 나도 졸렸고 무척 피곤했다. 료샤가 선심썼다는 듯 '낮잠 자고 좀있다 놀자!' 하고 선언했다. (사실은 이놈도 밥먹으면서 맥주 한잔 마셔서 졸렸던 것임)



그래서 우리는 각각 방으로 돌아가서 낮잠을 좀 잤다. 한시간 좀 넘게 잤는데 정말 피곤하고 달게 잤다. 몸이 막 침대로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낮잠 잔 후 좀 게으름피우다가 나오니 저녁 일곱시였다. 같이 캄파 공원과 블타바 강변을 산책했다. 공원에서 두명의 뮤지션이 퍼커션과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완전 내 취향이었다. 바이올린보다는 첼로를 더 좋아하지만 그건 클래식일 때 그렇고, 일렉트릭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적당한 비트가 가미되는 모던은 나도 좋아한다. 모르는 음악이었지만 리히터를 좀 연상시키는 리듬과 멜로디여서 한동안 근처에 서서 음악을 들었다.






료샤는 지루한 것 같았지만 나와 레냐가 손잡고 음악을 듣고 있으니 할수 없이 기다렸다. (레냐는 음악을 좋아한다. 작년엔 나랑 둘이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연주회도 갔었다)



한곡 더 듣고팠지만 료샤가 불쌍해서 우리는 다시 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안젤라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료샤는 목마르다면서 망고 소르베를 시켰고 레냐는 스트라치아텔라(내가 추천함), 나는 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료샤는 '야! 어제는 올리브유 바질 먹더니 오늘은 쌀이야?' 하고 기가 막혀 했다.



나 : 너 리조 아이스크림 안 먹어봤어?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되게 맛있는데. 덜 달고 담백하고...


료샤 : 달지 않으면 그게 아이스크림이냐!


나 : 달긴 달아 근데 많이 달지 않은 거지... 맛있어, 한번 먹어봐


료샤 : 싫어! 어제처럼 피볼 거야!


레냐 : 나는 먹어볼래 쥬쥬!






레냐는 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다는 것이다. 그래, 맛있다니까!


료샤도 좀 궁금해졌는지 한 입 먹어보았다. 그러더니 이건 괜찮다고 함. 칫, 올리브유 바질도 맛있었다고... 지는 망고 먹으면서... (정작 나는 망고 아이스크림 매우 싫어해서 맛도 안 봤음 ㅋㅋ)



..




료샤 방에 올라가서 체리랑 샌드위치랑 과자 같은 거 늘어놓고(+ 레냐를 위해 내가 사온 양갱도) 같이 늦은 저녁 먹으며 윷놀이함... 셋이서 윷놀이를 한 결과... 료샤 1등, 레냐 2등, 나 꼴등... 사실 레냐에게는 내가 져주긴 했는데... 죽어도 료샤는 못 이기겠다... 그에게 도박꾼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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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벌써 6월이 되었다. 이제 프라하 머무는 것도 며칠 안 남았네... 너무너무 아까워라...


..



오늘은 숙소를 옮기는 날이었다. 아침에 체크아웃을 한 후 료샤의 렌트카에 가방을 실어놓았다. 체크인은 두시부터이기 때문이다. 료샤는 오전에 다시 사업 파트너를 만나러 가고(전략적인 수법을 잘 실행하긴 한 건지... 그런 전략을 쓸 거라면 시계도 풀어놓고 가라고 내가 충고해 주었음) 나는 구시가지를 천천히 걸어서 에벨에 갔다.



오늘은 에벨의 여주인이 들렀다, 귀여운 코기와 함께. 카페 에벨의 주인 이름은 에벨인데(ㅎㅎ) 엄청 귀엽고 순한 웰쉬 코기를 키운다. 이따금 가게에 데리고 온다.








이 코기는 너무너무 순해서 손님들 테이블 아래로 슬금슬금 기어와 배깔고 엎드려 있길 좋아한다. 엄청 얌전한데 자기랑 잘 아는 사람이 오면 좋아서 그런지 저음으로 '웡!' 하고 짖는다 ㅋㅋ 오늘도 주인과 친한 것으로 추정되는 손님이 오자 '웡~' 그러면서 막 꼬리치고 난리났음. 아아 너무 귀엽다... 내 옆 테이블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넋놓고 코기만 바라보다 잠깐 쓰다듬어주기도 했음. 이쁘다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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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벨에 앉아 어제 있었던 일화를 스케치한 후 좀 쉬다가 오후에 나왔다. 아침까지 머물렀던 호텔 앞으로 가자 료샤가 시간 맞춰 왔고 옮기는 숙소로 갔다. 두번째 숙소는 말라 스트라나의 캄파 쪽에 있다. 작년에 머물렀던 우예즈드 그 동네이다. 확실히 이 동네가 더 밝고 사람 사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호텔은 사이트에 나와있는 이름과 실제 간판이 달라서 우리는 한참 골목에서 왔다갔다 뺑뺑이 ㅠㅠ 좀 고생했음. 여기서는 4박만 하고 월요일에 프라하를 떠나게 된다. 너무너무 아쉽구나...


짐을 대충 풀고 나서 료샤와 말라 스트라나를 함께 거닐었다. 출출해져서 전에 갔었던 카페 알바에 가서 모짜렐라 토마토 페스토 팔라친키(크레페)랑 오렌지에이드를 시켜서 먹었다. 그런데 작년에 만들어준 팔라친키보다 속도 훨씬 적게 들어 있고 오렌지에이드는 너무 싱거워서 쫌 실망했음. 료샤도 투덜투덜...



(진짜로 작년보다 양도 속도 다 적어짐! 나한테도 모자람!!! 료샤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고 툴툴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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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안젤라또에 갔다. 이 동네 안젤라또가 구시가지 안젤라또보다 목이 좋은지 항상 줄이 엄청 길다. 한참 줄서서 젤라또를 샀다. 료샤는 초콜릿을 먹기로 했고 나는 새로운 메뉴가 나타난 것을 보고 그것을 골랐다. 이름하여 올리브유와 바질!!!!



료샤는 기겁을 했다.



료샤 : 경고하는데!!! 너 그거 입맛 안 맞아도 난 안 먹어줄거야! 내 초콜릿 안 줄거야!!!


나 : 초콜릿 한입, 올리브 바질 한입 번갈아먹으면 맛있을거 같아서 시킨 건데 그러기야?


료샤 : 야! 올리브유랑 바질은 요리용이잖아! 어떻게 그런 걸 젤라또에 넣을 수가 있어! 난 안 먹어!!!


나 : 내가 먹을 거야아아!! 근데 초콜릿 진짜 한 입도 안 줄 거야? 나 저번에도 초콜릿은 안 먹어봤단 말이야!!!


료샤 : 나 혼자 먹기도 모자라!!!!


나 : 이 돼지야! 어제 내 바클라바도 뺏아먹더니만.... 두고보자!



그런데 막상 젤라또를 주문하면서 내가 컵을 따로 달라고 안 했기 때문에 점원이 컵 한개에 두가지를 같이 퍼주었음 ㅋㅋㅋ 료샤는 나보고 '너 일부러 컵 따로 달라 안 한 거지!' 하고 투덜댔다. 그래서 나는 '야! 각각 1개 컵씩 시키면 80코루나인데 한 컵에 두개 퍼주면 75코루나란 말이야!' 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자 경영학 전공이자 나름대로 전략적이라 자부하는 료샤는 할말이 없어져서 끄덕끄덕했다.



우리는 젤라또 컵을 들고 길을 건너 페트르진 공원으로 올라갔다.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젤라또를 먹었다.







그늘은 시원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올리브유 바질 젤라또가 맛있었다!!!! 내 입맛엔 잘 맞았다. 료샤가 질색팔색을 했지만 내가 열심히 강권하여 한숟가락을 먹여보았다. 료샤는 '웩! 젤라또에서 파스타 맛이 나!' 하고 투덜대더니 초콜릿 젤라또를 두숟갈이나 급하게 퍼먹었다.



나도 초콜릿 먹어봄. 진하고 맛있었다. 올리브유 바질만 먹으면 정말 쪼끔 요리 느낌도 났지만 그거 서너 스푼 먹고 달고 진한 초콜릿 한 스푼 먹으니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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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라또를 먹은 후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료샤는 작년에 내가 복직한 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물었다. 전화나 메일로는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작년 겨울에 있었던 일들부터 시작해 지금도 역시 회사를 사로잡고 있는 혼란, 나 자신의 고민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료샤도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다. 요즘 자기도 권태감에 사로잡혀 있고 가끔은 다른 곳으로 휙 가버리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사업이 정말 잘 안되나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어차피 얘가 손대는 건 별로 없고 부자 아빠가 거의 다 하고 있으니... 



전부인인 이라와 함께 사는 레냐는 볼때마다 쑥쑥 크는 것 같은데 항상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것도 좀 속상하고, 너무나 사랑하는 셰퍼드 네바도 점점 늙어가니 속상하다고 한다. 그리고 여자들과 이따금 데이트는 하는데 별다른 열정도 안 생기고 어떻게든 다시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삶을 꾸려야겠다는 열렬한 소망도 거의 퇴색된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최소한 너는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 뭔지는 알잖아' 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건 가장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다. 나는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안다. 언제나 그랬다. 좋아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결정을 내리지는 못한다. 지금의 위치와 지금의 삶과 안정을 버리지 못한다. 다른 여러가지가 얽혀 있기도 하다. 그는 정말 좋아하는 것들을 모른다. 딱히 정말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을 대지도 못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들은 거의 다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반쯤 농담으로, 그리고 반쯤은 진담으로 말했다.



나 : 너는 부르주아고 나는 프롤레타리아라서 그래. 반대였으면 좀 편했을 걸!


료샤 : 싫어! 난 부르주아 할래! 너처럼 뼈빠지게 일하는 거 싫어!


나 : 쳇... (확인사살 ㅠㅠ)



..



늦은 오후에 먹은 팔라친키와 달콤하고 진한 젤라또 때문에 우리 둘다 저녁 먹을 입맛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를 따라 타락하였다. 같은 호텔이지만 조금 더 넓고 좋은 료샤의 방에 가서 윷놀이를 이어서 하면서(나 어제 3대 0으로 졌음 ㅠㅠ) 사과주스랑 감자칩 먹었다. 료샤는 맥주랑 감자칩이랑 하리보 젤리 먹었음... (뭐야... 어떻게 맥주랑 하리보를 먹을수가 있느냐...)




(감자칩이랑 맥주 사러 갔던 가게에서 하리보 진열대 발견하고 료샤 흥분...

이 녀석이 세상에서 젤 좋아하는 것은 바로 하리보 젤리~)




나도 맥주 먹고팠지만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꾹꾹 참았다. 대신 근처 가게에서 발견하고 기뻐하며 사온 체리를 좀 씻어서 같이 먹었다.







프라하도 체리 비싸다.... 하벨시장보다는 약간 더 쌌지만 그래도 비싸다... 500그램에 거의 1만원 가까이 한다!!! 료샤는 투덜대더니 '그러니까 뻬쩨르에 왔으면 체리도 더 싸게 먹었잖아! 음식도 훨씬 맛있고!' 라고 했다. 뭐라 반박할 수가 없다.... 나도 솔직히 프라하에선 카페는 좋은데 음식은 별로라서... 차라리 러시아가 낫지...



오늘의 윷놀이 결과 나는 또 3대 1로 졌다... 료샤는 아무래도 작년부터 지금까지 내내 집에서 윷놀이를 연마한 모양이다... 얼마나 기세등등하게 나대는지...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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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7킬로나 걸었다. 다리도 무지 아프다... 처음 왔을 때보다 확실히 살은 쭉 빠지고 있음... 돌아가면 다시 둥실 두둥실해지겠지만...



내일 날씨가 괜찮으면 로레타에 종소리 들으러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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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작년 9월. 프라하. 


나는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고 말라 스트라나 우예즈드의 어느 허름한 호텔 앞에 내렸다. 프라하에는 이미 다섯번째였지만 이 동네에 묵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이트에는 4성이라 되어 있었지만 호텔은 전혀 4성이 아니었고, 특히 내가 묵은 방은 저렴한 싱글룸이었기 때문에 옥상 다락방 같은 아주 좁고 이상한 방이었다. 천정이 삼각형이었다. 의자도 없어서 묵는 내내 피곤했다. 이때 프라하에는 3주 가량 머물렀는데 그 방에서 절반, 나중에 구시가지의 다른 방에서 절반을 묵었다.


하지만 그 호텔에는 유일하고도 훌륭한 장점이 하나 있었다. 1층에 입점한 젤라또 가게였다. 이름은 안젤라또. angelato. 이곳의 젤라또는 정말 맛있었다. 주민들이고 관광객들이고 줄을 섰다. 주민들이 특히 많이 줄을 섰다.


도착한 날. 시차 때문에 프라하는 아직 저녁이었고 9월이라 늦게까지 밝았지만 나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근처 수퍼에 물을 사러 갔고 들어오면서 그래도 뭔가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젤라또 가게에 들어갔다. 줄을 섰고 스트라치아텔라를 먹었다.


저 스트라치아텔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하고 가장 시원하고 맛있는 젤라또였다.



작년 가을 프라하에 머무는 동안 아주 여러번 그 가게에 갔고 각종 젤라또를 먹어보았다. 하지만 스트라치아텔라가 제일 맛있었다 :)



오늘 출장 갔다 돌아오면서 서울역에서 스트라치아텔라 사먹었다. 그럭저럭 맛있긴 했지만 물론 안젤라또의 저 스트라치아텔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립다. 안젤라또.


그리고 프라하. 말라 스트라나. 우예즈드. 심지어 지금은 그 망할 삼각형 방마저 그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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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 백남기님의 명복을 빕니다.

시민에게 물대포 쏴서 죽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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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많이 걷고 무리하긴 한 모양이다. 여기 와서 약 3주 가까운 기간 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방에 콕 박혀있었던 날이 없긴 했다. 첫 주말에 몸이 안좋아서 카페를 전전하긴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돌아다녔다.


두시간마다 깨서 무척 피곤했다. 조식은 포기하고(아무래도 떠나는 날까지 안 먹을듯 ㅠ) 나중에 일어나 머리 감고 부스스하게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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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벨에 조식 먹으러 갔다. 딱 붐비는 브런치 시간대라서 여태 한번도 앉아보지 않은 엄청 작고 좁은 테이블 앞에 앉았는데 카운터가 그대로 보여서 또 좋았다.


그리고 아마 카페에 케익을 대주는 분인지 아니면 혹시나 주인인지 어느 여자분이 와서 케익들을 넣고 점원들과 얘길 하고 커피랑 빵을 드셨는데 엄청나게 투실하고 귀엽고 순둥순둥한 웰시코기를 데려와서 나는 정말 귀여움에 미쳐버리는줄 알았다 :)


(에벨에 오시면 커피 좋아하시는 분들은 커피를, 케익 중엔 메도브닉과 딸기무스치즈케익을, 그리고 이 모짜렐라토마토루꼴라 페스토 베이글을 꼭 드셔보세요~~ 이 싱싱하고 화려한 자태~~ 루꼴라 잔뜩!!!)



모짜렐라 루꼴라 베이글과 생강차로 아점 먹고 나왔다. 날이 춥진 않은데 몸이 많이 피곤했다. 맘같아선 오늘 말라 스트라나에 다시 가고 카피치코도 가고 캄파 쪽에서 석양도 볼까 했지만 무리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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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치코 여인이 소개시켜줬던 커피 러버스 카페 분점이 구시가지 광장 근처 말레 나메스티 안에 있어서 거기 가보았다. 지나가다 봤을땐 인테리어가 빨간색이라 맘에 들어서.




작은 카페였는데 여기도 슬프지만 금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프라하든 러시아든 베니스든 비슷하지만 광장 안쪽은 응달이어서 밖이 따뜻해도 은근 춥다. 문가에 앉았는데 문이 열려 있어 그런지 추웠다(그래도 서양인들은 악착같이 야외 테이블에 앉지 ㅋㅋ)


차와 요거트과일케익을 먹었다. 차는 그냥 그랬고 케익은 촉촉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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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 매뉴팩투라 매장에 가서 작은 선물을 몇개 샀다. 그러고보니 돈을 좀더 찾아야 할거 같았다(ㅠㅠ) 어차피 가는 날 택시를 타야 하는데 그 금액도 꽤 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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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고 배도 아프고 짐도 무거워서 일단 방에 들어갔다. 다행히 3시쯤인데 청소가 돼 있었다 (전엔 5시에 청소하고 있었던 적도ㅠ)


카메라랑 기념품 내려놓고 잠깐 폰 충전만 하고 나가려 했는데 어느새 침대에 쓰러져서 모로 누워 잤다. 옷도 안 갈아입고 이불도 안 덮고.. 자다 추워서 이불 덮으려다 그럼 못 일어나니까 안 덮어야지 하다 한시간 반 가까이 자버렸다. 그냥 이불 덮을걸.



자고 일어나니 5시가 다 되어 있었고 춥고 배고팠다. 피로가 쌓여서 그런가보다. 중국집이라도 가서 쌀을 먹기로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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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텍 쪽 atm에서 돈을 좀 찾은 후 오랜만에 나 프르지코페 거리로 가봤다. 자라, 망고 등 옷가게가 많은 거리인데 쭉 따라가면 화약탑이 나온다. 멍하게 걷다가 무슨 건물 안에 중국집이 있어 들어갔다.


힘들어서 마파두부랑 밥 먹었다. 돼지고기 한쪽으로 밀어놓고 먹느라 힘들었지만 하여튼 꾸역꾸역 다 먹었더니 좀 따뜻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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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 테스코에 갔다. 수퍼에 잠깐 들렀다 나왔다. 카프로바에 있는 작은 에벨이나 베이크숍 프라하에 가고 싶었지만 다리도 아프고 오늘은 쉬어야 할거 같아 다 포기하고 숙소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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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다 숙소 근처 모퉁이에 있는 안젤라또에 갔다(첨 묵었던 호텔 일층이랑 바로 여기에 이 가게가 있다 ㅋ) 추워서 먹지 말까 했지만 중국집 때문에 달고 시원한게 먹고파서 매우 안전한 스트라치아텔라 먹음


진짜 맛있었다. 첫날 와서 먹은 이후 두번째로 맛있었다. 피로가 극대화되어 있을 때 먹으면 천국을 맛볼수 있는 젤라또이다 ㅋㅋ






젤라또를 먹고 있자니 또 멍해지면서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상태가 되고 맛있구나.. 하며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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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방으로 올라와 씻었다. 오늘은 7시 전에 들어왔다. 잘 자고 피로 풀고 내일은 말라 스트라나 가고 싶다.



수요일엔 돌아간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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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