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

« 2024/11 »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이 호텔은 블라지미르 성당 맞은편에 있어 아침에 종소리가 들린다. 나는 언제나 사원 종소리를 좋아했다. 급하게 잡아 모든 것이 가격 대비 후진 호텔이지만 유일한 장점이다. 아침에 종소리를 듣는 것.

 

간밤에 미하일로프스키에서 사라파노프의 돈키호테를 보고 돌아왔고 2시 좀 안 되어 잠들었다. 근데 정말정말정말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계속해서 2~3시간마다 깨어나고 있다. 꿈속에선 회사와 사람들이 반복해 나오고 나는 화를 내기도 하고 답답해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꾸짖고 소리치기도 한다. 심지어 새벽엔 회사 꿈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개구리를 쥐고 있다 확 던졌는데 그 망할 개구리가 내 몸으로 확 뛰어올랐다! 너무너무너무 놀라서 '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퍼뜩 깬 내 귀에 들린 내 비명이 거의 영화 사이코의 샤워 살인씬처럼 무서운 비명이었음. 아악 개구리 무서워 엉엉... 왜 꿈에 나와 흐흑..

 

4~5시간쯤 잔 후 또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7시부터 조식이 시작되는데 6시 반 즈음부터는 여기 묵고 있는 단체 관광객들이 부산하게 복도를 오가며 떠들기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중국인, 일본인 순으로 많고 스페인 사람인지 멕시코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스페인어 쓰는 관광객들도 많다. 다들 목소리가 크다..

 

오늘은 공연이 없었다. 게다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창밖도 컴컴했다. 조식 포기하고(어차피 맛도 없어!!) 어둠 속에 멍하게 누워 있었다. 오후 3시즈음 청소하러 온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 손잡이에 걸어놓은 '방해하지 마시오'가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노어로 '누구세요!'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아주머니도 놀라고 나도 놀람. 좀 미안해졌다.

 

생각해보니 6월부터는 계속 미친 듯이 일하고 또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을 연달아 겪고 심신을 혹사당한 후 연휴에도 일하고 밤중에 올라와 짐 싸고 곧장 비행기 갈아타고 여기로 날아온 후 개인적 일 두어개, 공연 두개 보는 등 전혀 쉬지 않았었다. 불면증은 여전하고 아무리 해도 안 빠지던 살도 빠졌다. 근데 좋게 빠진 게 아니어서 볼살이 없어지고 퀭해지고 하여튼 순식간에 급노화 토끼가 되었음. 모레 료샤와 레냐가 날 보면 놀랄 거 같다. 특히 레냐는 자기 약혼녀 어디 갔냐며 울지도 ㅠㅠ

 

그래서 오늘은 그냥 아무데도 안가고 쉬기로 했다. 그러나 방에는 먹을 게 없고 티포트조차 없으므로 호텔 건물에 붙어 있는 큰 쇼핑센터에 갔다.

 

여기는 전에 료샤랑 장보러 지하 큰 슈퍼만 갔는데 오늘은 1층의 리브 고쉬(우리나라 올리브 영 같은 곳)에 갔다. 너무 정신없이 날아왔고 당연히 호텔에 있을거라 생각해 안 챙겨온 게 세개 있는데 샤워젤, 린스, 빗이었다. 빗은 요청해서 플라스틱 빗 한개 받았지만 전자 두개가 없다. 그래서 저렴하고 용량 적은 헤어컨디셔너 하나와 샤워 젤을 샀는데.. 집에 와서 보니 그것은 샤워 젤이 아니라 바디 오일이었음. 망했다. 똑같이 생긴 게 되게 여러개라 향기를 보고 고른 건데 어쩐지 그것만 아몬드와 동백향이 씌어 있더라니.. 아아, 어떻게 '겔'과 '마슬로'를 안 읽고 냄새 묘사에만 눈이 멀어 덥석 집어왔단 말인가.. 호텔에 바디 로션은 있단 말이야 허헝... 그냥 이 호텔 있는 동안은 비누 써야겠다. 그나마도 친구가 줬던 자연주의 무자극 화장품 브랜드에서 나온 어성초 비누를 가져왔었다. 나쁘진 않은데 그래도 좀 건조해지는 느낌이긴 하다. 그리고 샤워하고 나면 몸에서 한약 냄새가 나, 흑흑..

 

하여튼 그후 4층으로 올라가 무슨 퓨전 아시아 음식점에 들어갔다. 4시가 넘었는데 아무 것도 안 먹은 상태라 너무 어지러웠기에 일단 쌀과 국물이 필요했다. 김치 수프란 게 있어 큰 의심을 품은 채 그것과 탕수소스 두부라는 것과 계란볶음밥을 시켰다. 김치 수프엔 김치가 없었고 두부와 미소와 미역이 들어 있고 국물만 살짝 매콤했다. 탕수소스 두부는 고수가 들어 있어 좀 괴로웠고 계란볶음밥이 의외로 맛있었다. 하여튼 다들 좀 느끼했지만 살기 위해 꾸역꾸역 먹었다.

 

먹고 나서 지하 수퍼에 갔다. 여기는 료샤가 소개해줬던 곳으로(전에 자기한테 밥해달라고 ㅋㅋ) 여태 페테르부르크에서 가본 수퍼 중 제일 크고 삐까한 곳이다. 수퍼를 박물관보다 좋아하는 쥬인이 많이 생각나서 몰래몰래 사진 많이 찍음. 나중에 쥬인을 위한 수퍼마켓 스페셜 사진들을 올려보겠다~ 기다려라 쥬인아~

 

차를 안 마셔서 더욱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1층에 있는 베이커리에 갔다. 차와 커피, 패스트리와 케익류를 팔았다. 근데 이름이 브리티쉬 베이커리라 또다시 큰 의심을 품었다, 영국 거 맛없는데! 하면서.. 하지만 다행히 러시아식 디저트와 파이들이 있었다 ㅋㅋ

 

 

 

볶음밥과 탕수두부 때문에 너무 느끼해서 얼그레이 홍차를 주문했고 거기에 러시아 오면 항상 먹는 추억의 까르또슈까(표기법대로 하면 카르토슈카)를 시킴. 보통 까르또슈까는 세베르에서 먹곤 했지만 여기 까르또슈까는 모양이 좀더 정성들여 만든 것 같아서 시켜봄. 맛있었다. 추억의 맛... 소련 디저트.. 그래선지 료샤에게도 추억의 디저트라고 한다.

 

까르또슈까도 그렇지만 비록 티백에 지나지 않으나 차를 들이키자 좀 살것 같았다. 빈속에 차 마시면 아플것 같아서 요즘은 꾹 참고 오후에만 마셨기 때문이다. 6시가 다 되어 차를 마시자 그제서야 머리가 좀 맑아지는 것 같았다. 몸에 에너지가 돌았다. 카페인의 힘이겠지.

 

 

 

 

맛없는 조식 포기하고 그냥 여기나 근처 카페에서 아점 먹을까 생각 중이다. 티백 얼그레이 홍차와 저 까르또슈까 합쳐서 150루블 나왔다. 환산하면 3천원이 안된다.

 

..

 

그리고 나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밀린 속옷과 양말 빨래를 좀 하고 어제 공연 사진을 좀 옮겼다. 그런데 또 졸린다. 주기가 다가오고 있긴 하다.

 

이제 전에 쓴 글 좀 들춰보고 책 좀 읽다 자야겠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휴식과 잠이 필요하다.

 

오늘은 제발 푹 잘 수 있기를..

 

:
Posted by liontamer

 

 

감기약을 먹고 나갔었는데 찬 바람을 쐬며 걸어서 그런지, 한국에서 걸려온 후두염이 악화되어 그런 건지 머리가 너무 무거워서 오후에는 쉬고 있다. 세베르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까르또슈까와 메도빅과 함께 :)

 

이제 뻬쩨르에도 근사한 카페와 디저트 샵들이 생겼지만 그래도 추억과 향수 때문인지 여전히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은 바로 오래된 세베르이다. 소련 시절부터 변함없이 사랑받아온 저 까르또슈까와 체코 메도브닉에 비하면 훨씬 달고 물컹하고 크리미한 메도빅을 입에 넣으면 아주 소박한 느낌이 든다.

 

오늘은 이거 먹고 지난주에 다 썼던 글 퇴고하다가 감기약 먹고 일찍 자야겠다...

 

 

메도빅은 이것보다 세배 정도 큰데 양이 많아서 잘랐다. 남은 거 냉장고에 넣어놔야 하는데 미니 바에 워낙 호텔쪽 음료가 꽉 차 있어서 들어갈 자리가 없네 ㅠ.ㅠ

 

까르또슈까는 언제나 그 맛. 까르또슈까 :)

 

 

이렇게 보잘것 없는 투명 박스에 넣어주는데 테이크 아웃을 하면 상자 값을 받는다. 무려 10루블 -_-; 우리 나라는 오히려 자리값 때문에 테이크아웃해 가면 5백원 깎아주는 카페도 많은데 여기는 그렇지 않다. 공산주의 시절 물자가 귀해서 그랬던 걸까 하고 혼자 맘대로 생각하며 나왔다. 생각해 보니 프라하에서도 테이크아웃해 가면 상자 값을 받았다. 유럽 다른 나라들도 그런가? 잘 모르겠네. 많이 가 본 것도 아니고 그나마 갔던 곳들은 거의가 출장 때문에 가서 뭔가 상자에 포장해 테이크아웃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russi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찬란하고 싸늘한 아침, 판탄카 운하  (0) 2014.04.05
네바 강변 산책  (0) 2014.04.03
수도원, 월귤 주스와 사과 파이, 부활절 차  (2) 2014.04.01
궁전 광장  (0) 2014.03.31
역시 여기는 뻬쩨르, 눈이 펄펄  (2) 2014.03.31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