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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오면 너무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첫날 도착해 정돈된 차가운 시트 위에 맨 다리를 쭉 뻗고 누울때의 그 기쁨(오늘이 첫날이니까 많이 남았다~)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니 ㅠㅠ



옮겨온 호텔 방은 에어컨이 없고 미니 선풍기가 있다. 옛날 건물을 개조한 호텔이라 고풍스럽고 예쁜데 대신 좀 구식이다. 엘리베이터도 도착하면 바깥 도어를 밀어서 열어야 탈 수가 있다.















조식 먹으러 내려와서는 꽤 만족했다. 음식도 나쁘지 않았고(심지어 푸성귀가 있다!) 기사들의 갑옷들이 진열되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도 있고 피아노 연주자도 있다.



부르주아라 웬만한 좋은 호텔 다 가본 료샤도 맘에 들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맨날 이름있는 삐까한 호텔만 묵어봐서 이런 풍의 호텔은 처음이라는 거였다. 기사 갑옷 입어보고 싶다고 해서 '너 저거 입으면 갑옷 다 터지겠다' 하고 놀려주었다. 그러자 료샤는 '그렇지! 역시 내가 키도 크고 근육질의 멋진 남자니까 저런 갑옷 따위도 나한텐 안 맞겠지~' 라고 좋아했다. 좋아하라고 말해준 건 아니었는데 ㅋㅋㅋ



..




조식 먹은 후 료샤는 일을 잠깐 처리한 후 공항에 레냐를 데리러 갔다. 비서와 그의 아내가 레냐를 데리고 오기로 되어 있었다. 료샤 말로는 비서 베냐에게 일 시켜먹으려고 출장 오게 만들었는데 오는 김에 레냐 데리고 오라고 했단다... 불쌍한 베냐 ㅠㅠ 그래도 료샤는 일이 별로 없고 주말엔 아내랑 프라하에서 놀 수 있으니 이런 출장을 오게 해주는 자기가 얼마나 좋은 보스냐고 으쓱거린다. 야 임마... 그래도 일은 일이라고 ㅠㅠ 나는 일 때문에 해외출장 갔을 땐 한번도 좋은 적 없었어어어 ㅠㅠ



그동안 나는 트램 22번을 타고 로레타에 갔다. 이번 여행에선 프라하 성과 카를 교는 전부 패스하기로 했다. 어차피 좋아하는 곳도 아니고... 원래는 프라하 오면 제일 먼저 가는 곳이 에벨과 로레타인데 이번에는 숙소를 말라 스트라나로 옮기는 후반부까지 로레타를 아껴놓았다.



열한시 반 정도에 도착했다. 일부러 정오 종소리 들으려고 맞춰 간 것이다. 로레타 부근은 가까운 프라하 성 쪽과는 달리 고요하고 한적한 편이다. 주변을 산책하다 10여분 전이 되었을때 사원 앞의 돌계단에 앉았다. 사원 안을 보지 않고 종소리만 듣고 싶을 땐 항상 이 계단에 앉는다. 시계탑과 종들도 잘 보이고 나름 좋은 자리이다.











정오에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여전히 아름답고 쨍하고 깊고 동시에 가벼운 울림과 함께 사라지는 로레타의 종소리. 오늘 하늘은 새파랬다. 햇살이 눈부셨다. 로레타의 지붕은 황금빛으로 반짝거렸고 종들이 순서대로 울려퍼졌다. 로레타의 종소리가 울려퍼질 때만큼 행복하고 충만하고 온전한 순간이 또 있을까? 아마도 네프스키 수도원의 종소리?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사원의 종소리? 하지만 후자들은 경건하고 전자는 경건하다기보다는 그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




종소리를 들은 후 다시 트램을 타고 말로스트란스카 지하철역까지 왔다. 오늘 이제껏 프라하에 여행왔을 때와 지냈던 거 통틀어서 처음으로 트램에서 검표원과 마주쳤다. 그래도 티켓을 끊어놓았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우 크노플리치쿠 카페에 갔다. 빨간 입술 그려진 머그에 차를 우려주고 케익이 저렴하고 맛있는 곳이다. 작년에 머물때 종종 갔었고 글도 썼었다. 오늘도 하니 앤 손즈 다즐링 티백 홍차와 자허토르테를 시켰다. 여기 자허토르테는 좀 조그맣지만 나름대로 딸기에 휘핑크림도 잔뜩 얹어주고 초콜릿 코팅 안에는 살구잼까지 들어있는 등 있을 건 다 있다. 그리고 홍차랑 자허토르테 다 합쳐서 90코루나, 45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프라하에서 내가 좋아하는 카페 중 가성비가 제일 좋다.




(찻잔 이가 나가서 좀 슬프긴 했지만... 그래도 가성비 좋은 카페니까 용서함... 나도 입술무늬 옆에 내 입술자국 찍음)







..



우 크노플리치쿠에 앉아 스케치를 좀 하며 쉬고 있으니 료샤가 레냐를 데리고 왔다. 레냐는 작년 겨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봤을 때보다 또 커 있었다! 그리고 살이 좀 빠져 있었다. 아니 벌써 쭉쭉 크는 나이로 접어드는 건 아니겠지 흐흑...



레냐는 카페 안으로 뛰어들어오더니 '쥬쥬~' 하고 소리치며 곧장 내 테이블로 와서 뽀뽀를 쪽 했다 :)) 그리고는 '쥬쥬! 머리색이 바뀌었어! 쥬쥬! 오늘은 원피스를 입었어~ 해골 어디 갔어?' 하고 조잘댔다. 나는 '해골 옷도 가져왔는데 너네 아빠가 싫어해' 라고 대답했다. 레냐는 하하 웃더니 '나는 해골도 좋아~' 라고 한다. 아이고 귀여워... 내 약혼자의 무한한 사랑 :))


그러더니 역시나 내 접시의 케익을 보며 '우아... 나도 케익. 아빠 나도 케익' 하고 조르기 시작... 료샤는 엄격하게 거절!



료샤 : 안돼! 점심 먹어야 돼! 벌써 두시가 다 됐어!


레냐 : 쥬쥬는 케익 먹었는데 ㅠㅠㅠ


료샤 : 쥬쥬는 한국 사람이니까 우리랑 좀 달라!


나 : 한국 사람이라서 다른 게 아니야아아... 너네 기다리면서 잠 깨려고 차 마셨어. 차 마시면 케익 먹고프단 말이야아


레냐 : 그래 맞아! 차랑 케익 먹으면 맛있어! 초콜릿도!!!!


료샤 : 안돼! 지금은 점심 먹어야 돼!!!!!



..




그래서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페 사보이에 점심 먹으러 갔다. 사실 어제부터 영원한 휴가님 포스팅에 있던 프렌치토스트 때문에 사보이의 맛있는 프렌치토스트가 먹고프긴 했는데 점심 시간이라 밥을 먹어야 했고 게다가 나는 이미 자허토르테를 한조각 해치운 후라서 토스트는 포기...






대신 치킨 슈니첼 시켰는데 이것이 꽤나 맛있었다. 곁들여준 감자샐러드도 맛있었다. 그래서 지난번 드레스덴에서 먹었던 얇고 질긴 가죽같던 비엔나 슈니첼의 슬픔을 만회하였다(물론 오늘 먹은 건 송아지 고기가 아니라 닭고기였지만...) 슈니첼 양이 많아서 레냐에게도 좀 나눠주었다. 료샤는 포크 슈니첼을 먹었고 레냐는 뭔가 완자 같은 음식을 먹었다. 나보고 먹어보라 했지만 돼지고기가 들어 있어서 먹지는 못했다 ㅠㅠ






레냐는 카페 사보이의 화려한 천정 장식을 보며 좋아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해서 내가 손잡고 데려갔다. 카페 사보이 화장실은 지하에 있어서 나선계단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아이 혼자 내려가는 게 어쩐지 위험한 것 같아서. 화장실이 있는 층에는 통유리창이 있고 주방이 그대로 보인다. 레냐는 신기해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오면서 레냐가 물었다.



레냐 : 쥬쥬, 프라하가 페테르부르크보다 더 좋아?


나 : 아니. 페테르부르크가 제일 좋아.


레냐 : 근데 왜 여름에 우리한테 안 오고 프라하로 왔어?


나 : 으응, 페테르부르크 가는 비행기가 더 적고 더 비싸서 ㅠㅠ


레냐 : 그렇구나... 그러면 프라하 온 거 용서해줄게.



아빠보다 더 쿨한 아들 레냐 ㅋㅋㅋ



..




카페 사보이에서 나와서 우리는 골목을 좀 거닐었고 호텔로 돌아왔다. 레냐가 하품을 했다. 아침에 비행기 타고 온데다 간밤에 게임하느라 늦게 잤다고 한다. 나도 졸렸고 무척 피곤했다. 료샤가 선심썼다는 듯 '낮잠 자고 좀있다 놀자!' 하고 선언했다. (사실은 이놈도 밥먹으면서 맥주 한잔 마셔서 졸렸던 것임)



그래서 우리는 각각 방으로 돌아가서 낮잠을 좀 잤다. 한시간 좀 넘게 잤는데 정말 피곤하고 달게 잤다. 몸이 막 침대로 빨려드는 느낌이었다.



낮잠 잔 후 좀 게으름피우다가 나오니 저녁 일곱시였다. 같이 캄파 공원과 블타바 강변을 산책했다. 공원에서 두명의 뮤지션이 퍼커션과 일렉트릭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완전 내 취향이었다. 바이올린보다는 첼로를 더 좋아하지만 그건 클래식일 때 그렇고, 일렉트릭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적당한 비트가 가미되는 모던은 나도 좋아한다. 모르는 음악이었지만 리히터를 좀 연상시키는 리듬과 멜로디여서 한동안 근처에 서서 음악을 들었다.






료샤는 지루한 것 같았지만 나와 레냐가 손잡고 음악을 듣고 있으니 할수 없이 기다렸다. (레냐는 음악을 좋아한다. 작년엔 나랑 둘이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연주회도 갔었다)



한곡 더 듣고팠지만 료샤가 불쌍해서 우리는 다시 공원을 산책했다. 그리고 안젤라또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료샤는 목마르다면서 망고 소르베를 시켰고 레냐는 스트라치아텔라(내가 추천함), 나는 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료샤는 '야! 어제는 올리브유 바질 먹더니 오늘은 쌀이야?' 하고 기가 막혀 했다.



나 : 너 리조 아이스크림 안 먹어봤어? 쌀로 만든 아이스크림 되게 맛있는데. 덜 달고 담백하고...


료샤 : 달지 않으면 그게 아이스크림이냐!


나 : 달긴 달아 근데 많이 달지 않은 거지... 맛있어, 한번 먹어봐


료샤 : 싫어! 어제처럼 피볼 거야!


레냐 : 나는 먹어볼래 쥬쥬!






레냐는 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맛있다는 것이다. 그래, 맛있다니까!


료샤도 좀 궁금해졌는지 한 입 먹어보았다. 그러더니 이건 괜찮다고 함. 칫, 올리브유 바질도 맛있었다고... 지는 망고 먹으면서... (정작 나는 망고 아이스크림 매우 싫어해서 맛도 안 봤음 ㅋㅋ)



..




료샤 방에 올라가서 체리랑 샌드위치랑 과자 같은 거 늘어놓고(+ 레냐를 위해 내가 사온 양갱도) 같이 늦은 저녁 먹으며 윷놀이함... 셋이서 윷놀이를 한 결과... 료샤 1등, 레냐 2등, 나 꼴등... 사실 레냐에게는 내가 져주긴 했는데... 죽어도 료샤는 못 이기겠다... 그에게 도박꾼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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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7. 4. 10. 21:34

로레타 사원 앞에서 잠시 2016 praha2017. 4. 10. 21:34




작년 9월. 프라하.


작년에는 여러모로 많이 힘들었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주워모으고 일으키기 위해 거의 무의식적으로, 혹은 자력에 이끌리듯 바깥으로 나다녔다. 새로운 곳에 가지는 않았다. 이미 익숙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가 이방인으로 있을 수 있는 곳. 동시에 무척 사랑하는 곳. 페테르부르크와 프라하에 가서 몇주씩 머물렀다.


여기는 프라하. 로레타 성당 앞 돌계단에 잠시 앉아 지친 발을 쉬는 중이었다. 햇살이 쨍했고 상당히 더운 날이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어정거리며 다가왔다. 빵조각이라도 먹고 싶었던 것 같은데 나는 목말라서 물만 마시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주자 '그럴 줄 알았다~' 하며 시크하게 지나쳐감






아픈 발을 좀 쉬고 물을 마신 후 이 문을 통과해서 티켓을 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다. 이 사원 자체보다는 이곳의 종소리를 좋아한다. 프라하에서 딱 한 곳만 가라고 하면 카페 에벨이고 두 곳을 가라고 하면 카페 에벨과 이곳이다. 여기서 종소리를 듣는 것은 정말 행복하고 가슴 벅찬 일이다. 이곳의 종소리를 듣고 있으면 상처가 치유되는 기분이다.




여기 종소리 cd도 사오긴 했는데 역시 파란 하늘 아래 울려퍼지는 라이브 종소리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래도 아름답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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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6. 11. 19. 22:51

수용소 면회실에서, 얼룩들, 왜냐하면 about writing2016. 11. 19. 22:51

 

 

 

 

아래 글은 3년 전 프라하에서 쓰기 시작해서 서울에서 마무리한 중편이다.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2부는 프라하에서 썼고 3부는 서울에 돌아와서 썼다. 여기서 나는 나의 주인공 미샤가 체포된 후 레닌그라드 정신교화 수용소와 모스크바 비밀 클리닉, 그리고 면회실에서 겪는 일들을 다뤘다.

 

사실 이 이야기는 원래 쓰고자 했던 가브릴로프 본편에서 간단한 회상 정도로만 처리하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프라하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그것은 나에게 옳았다. 그때는 2013년이었다. 지금의 정부가 들어선 해였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고민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고민으로 괴로워하고 있었고 지금처럼 잠시 회사를 쉬고 있었다.

 

그때도 나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는 않았었다. 나는 글을 썼고 수면으로 올라왔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때 이 글을 썼던 것이 나에게 필요했듯, 지금도 아마 어떤 다른 종류의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종류가 됐든 결심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 것이다.

 

발췌한 내용은 소설의 3부이다. 주인공 미샤의 절친한 친구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이 모스크바 KGB 비밀병원의 면회실에서 미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일어나는 일이다. 일린은 전에 발췌한 글들에서 여러번 등장한 적이 있다. 모스크바 토박이, 볼쇼이 극장 무용수 출신의 유능한 안무가이며 미샤의 얼마 안되는 진짜 친구이다. 이전에 일린과 그의 어린 딸 라라, 미샤가 등장하는 부활절 단편을 전문 게재한 적이 있다. 이 면회실에서의 일린과의 대화 역시 토막토막 발췌한 적이 있다.

 

 

내가 왜 지금 이 부분을 발췌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건 얼마 전 내가 소년 시절의 미샤와 심문관 그라도프의 이야기(http://tveye.tistory.com/5348 : 사제 없는 고해. 심문관의 독백, 혼자 다니는 사람, 집단주의) 를 올렸던 이유와 많이 겹치겠지. 그리고 지금이 바로, 여기가 바로 저곳이며 저때나 다름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

 

 

중간에 언급되는 라라와 아냐는 일린의 두 딸이다.

 

벨스키는 미샤를 후원하는 공산당 고위 간부 중 하나이다. 전체 이름은 게오르기 벨스키. 정치적으로 온건파이며 미샤를 이후 수용소에서 빼내 소도시 가브릴로프로 유배시키도록 힘쓰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전에 등장했던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나 드미트리 마로조프와는 달리 미샤와 사적인 관계로 얽혀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의 3부에서 일린을 클리닉에 보내 미샤를 면회할수 있도록 해준 것도 벨스키이다.

 

지나는 미샤의 키로프 발레단 시절 파트너 발레리나인 '지나이다'이다. 전에 지나에 대한 얘기도 두어번 발췌한 적이 있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이제 미샤는 왼쪽 어깨를 천천히 여러 번 돌리면서 깊고 불규칙한 호흡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아프다고 하지는 않았다. 내 앞에서조차 그는 아픈 것을 제대로 인정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내 곁에 앉아 있는 그 야윈 몸으로부터 점점 열기가 퍼져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창백한 얼굴에는 사람을 홀리던 아름다움이 여전히 반쯤은 남아 있었는데 어쩐지 그건 인위적이고 비정상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아마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눈 때문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뺨과 이마 위로 물감을 끼얹은 듯 번지는 홍조 때문일지도.

 

 나는 그의 오른쪽 손등을 감싸 쥐었고 그 타는 듯한 열기에 놀랐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얼음장처럼 차갑던 손이었다.

 

 

 “ 너 괜찮아? ”

 

 “ 그럼. ”

 

 

 그는 내 앞에서 제대로 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짧은 단어를 내뱉는데도 숨을 헐떡였다. 나는 그의 목을 칭칭 감고 있는 스카프를 풀어 주었다. 열이 올라 답답한 것 같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조잡한 색깔의 천 조각을 더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스카프를 풀어서 소파 한켠에 내던져버렸을 때 미샤는 두어 번 기침을 하더니 한결 깊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진작 풀어버릴 걸 그랬다고 말해주려다 나는 잠시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애의 턱 아래와 목덜미 전체에 멍이 가득했다. 짓밟힌 듯, 뭉개진 듯, 끔찍한 색깔과 이상한 모양의 일그러진 얼룩들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찍혀 있었다. 그건 심지어 붉은색도, 보라색도 아니었다. 엉망으로 더럽혀진 진흙탕 같았고 토사물 같았고 빛바랜 잉크, 지저분하게 번진 커피 얼룩 같았다.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쇄골 전체가 라라의 첫 유화 수업 팔레트처럼 우중충하게 뒤섞인 어둡고 음산한 얼룩들로 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미샤는 숨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내가 자신을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도 아직 초점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 시선을 본다기보다는 느낀 것 같았다.

 

 

 “ 왜? ”

 

 “ 다른 데도 그래? ”

 

 

 그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 명민하던 애가, 내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금세 눈치 채던 애가 이제는 순진한 어린애처럼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내 질문이 무슨 뜻인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오른쪽 소매를 걷어보았다. 그것들이 팔에도 있었다. 목덜미보다 더 많아서 얼룩이 사슬처럼 서로 겹쳐져 있었다.

 

 

 “ 멍들었잖아. 다른 데도 다 이래? ”

 

 

 팔목을 그렇게 세게 쥔 것도 아니었는데 미샤가 낮게 소리를 질렀다. 아주 짧고 작은 비명이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 같았다. 아픔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미샤가 왼손으로 내 손등을 잡아당겼다. 그건 라라보다도, 아니 이제 열 살 밖에 안된 내 조그만 아냐보다도 더 미약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미샤의 팔목을 놔주었다. 이마로 열기가 치솟았다. 가능한 한 차분한 목소리를 내려고 애쓰며 그 애를 향해 똑바로 물었다.

 

 

 “ 맞았어? 맞아서 생긴 멍이야? ”

 

 

 나는 수용소에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나의 지식은 평범한 소련 시민이 솔제니친 류의 소설들, 그리고 각종 수기나 기사 따위를 읽고 주워 모을 수 있는 내용들로 국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30년대도, 50년대도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육체적 폭력. 그게 죄수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든 심문 과정에 포함된 것이든, 혹은 양쪽 모두이든 상관없다. 그건 비단 수용소뿐만이 아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폐쇄된 공간에 남자들을 몰아넣었을 때, 그리고 힘의 논리로 모든 것이 결정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기 위해 굳이 보고서와 수기를 읽을 필요는 없었다. 발레학교 기숙사에서도, 그리고 우아하고 고상할 거라는 오해를 받는 극장의 연습실에서도 크고 작은 폭력 사건은 늘 있었다. 다시금 내 눈 앞에 그 사진이 어른거렸다. 하지만 그토록 빽빽한 얼룩들을 만들어놓으려면 대체 몇 명이 얼마나 집요하게 두들겨 패야 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게 충격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미샤는 거의 달래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맞아서 그런 거 아냐. 화내지 마. 때리지 않았어. ”

 

 

 그 말을 하면서 그는 잠깐 한 손으로 가슴팍 쪽을 눌렀다. 그것도 무의식적인 행동 같았다.

 

 

 “ 맞은 게 아니면 뭔데... 너 많이 아팠잖아. 지금도 팔 건드리니까 아파했잖아. ”

 

 “ 없어지고 있어. 이제 괜찮아. ”

 

 

 그 순간 나는 이제껏 왜 그 애의 얼굴에서 인위적이고 기묘한 느낌이 배어나오고 있었는지 퍼뜩 깨달았다. 야위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창백하고 가면 같은 안색과 부드러운 핏기가 도는 뺨과 입술. 그 모든 것이 사기였다. 그 애는 분장을 하고 있었다. 무대에 올라갈 때처럼. 의상을 입고 춤췄을 때처럼. 손수건을 꺼내 광대뼈와 뺨을 문지르자 파우더와 화장품이 잔뜩 묻어났다. 입술도 마찬가지였다. 손수건이 지나간 자리에는 석고처럼 하얗고 완전히 핏기가 없는 피부가 새로운 얼룩처럼 드러났다. 입술조차 거의 아무런 색채가 없었다. 나는 그 애가 발레 무대에 올라가던 때에도 그렇게 화장품을 두텁게 겹쳐 바른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미샤는 일반적인 동료 무용수들과는 반대로 피부색보다 짙은 파운데이션과 섀도를 사용한 적이 더 많았지만 결코 무대 메이크업을 많이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조금만 손을 대도 강렬하게 눈에 띄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애가 죽은 사람처럼 새하얀 얼굴을 예순 살 노부인들보다 더 두터운 파운데이션으로 빽빽하고 두텁게 칠한 채, 조금 창백하고 아주 조금 아파 보일 뿐 그저 야윈 것에 지나지 않는 척 하며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아니, 그 애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화장품 팔레트와 붓조차 제대로 들 수 없는 상태였다. 그자들이 공금으로 그 끔찍한 옷을 입혔듯 그 애에게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다. 광대뼈와 콧등에 블러셔와 하이라이터를 문지르고 이마와 턱 가장자리에는 셰이드까지 칠해서 그 애를 무대도 없이 광대로 만들고 자본주의조차 없이 상업화보 모델로 만들었다.

 

 

 그러자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거의 고함을 지르기 직전이었다.

 

 

 

  아니, 괜찮지 않아. 전혀 괜찮지 않아. 그놈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더러운 놈들이 네게 무슨 짓을 한 거냐구!

 

 

 

 미샤가 발을 한 번 굴렀고 내 옷자락을 붙잡더니 아이처럼 흔들어댔다.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입술을 움직여 단어를 하나 만들어냈다. ‘도청’, 그 단어를 말도 없이 두 번, 세 번 되풀이했다. 그러더니 오른손을 뻗어 내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내 얼굴 앞에서 두 손을 교차해 잠깐 십자 모양을 만든 후 다시 손가락을 내 관자놀이에 대고 가만히 있었다. 그건 우리가 청년 극장에서 발표했던 짧은 춤을 위해 발레 마임을 토대로 고안했던 동작들이었다.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했다.

 

 

 도청당하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마. 널 체포할지도 몰라. 위험해질지도 몰라.

 

 

 상관없어. 들으라고 해. 네가 이렇게 아픈데 어떻게 입을 다물 수 있어. 얘기해봐, 미셴카. 그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런 짓 전부 불법이야. 넌 시민권을 박탈당한 것도 추방당한 것도 아냐. 정식 재판을 받은 것도 아니잖아. 네가 지금까지 연방을 위해 해준 일이 얼만데... 어떻게 너한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약이야? 그놈들이 마약으로 이렇게 만든 거야? 약물로 고문한 거냐고! 외국에서 떠드는 얘기가 정말인 거야?

 

 

 미샤는 이제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이는 것도, 마임을 시도하는 것도 포기했다. 한 손을 뻗어 그대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화장이 반쯤 지워진 그 창백한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애는 몸을 떨고 있었다. 왼쪽 팔과 다리에서 시작된 경련이 전신으로 퍼져 나갔는데 꼭 영하 30도의 날씨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 얼음 구덩이에 던져진 사람처럼 떨었다. 너무 몸이 떨려서 내게까지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그래도 그는 완강하게 내 입을 꽉 틀어막고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손을 떼어내는 대신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자 정수리까지 치솟았던 열기와 분노가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폭발할 듯한 감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심장 한가운데 그대로 고여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그런 분노와 증오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미샤는 내가 잠잠해지자 한숨을 내쉬었고 손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여름이 아니었다면 벗어줄 재킷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꼴도 보기 싫은 스카프를 다시 주워 그 애의 목과 어깨에 둘러 줘야 했다. 마치 자주색의 죽은 뱀을 둘러주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미샤는 추워서 그런지 스카프를 감아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초점이 흐릿한 검은 눈만이 불안하게 문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감시자들이 들어와 나를 끌어내 체포할까봐 두려운 것 같았다. 그 애가, 나의 미셴카가,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그 어떤 권위와 위협 앞에서도 굴복할 줄 모르던 미샤 야스민이 그런 시선으로 문을 바라보다니, 두려움으로 내 입을 막고 몸을 떨다니. 문득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건 아주 설득력이 있어서 난 거의 넘어갈 뻔 했다. 그 애의 몸에서 발산되는 불처럼 뜨거운 열기와 죽어 넘어진 페트루슈카를 연상시킬 정도로 심한 경련이 아니었다면 분명 난 꿈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쳤을 것이다.

 

 

 나는 한 팔을 미샤의 팔 아래로 넣어 그의 몸을 부드럽게 감아 안았다. 다른 팔을 뻗어 허리에 둘렀다. 그러자 경련이 조금 잦아들었다.

 

 

 “ 어깨에 기대. 그럼 좀 편해질 거야. ”

 

 “ 네 어깨는 작은데. ”

 

 “ 그래도 너 하나쯤은 기대게 해 줄 수 있어. 전에도 그랬잖아. ”

 

 “ 그랬지. ”

 

 

 미샤가 순순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짧은 머리칼이 얇은 셔츠를 파고들며 살갗을 찔렀다. 그 애의 이마와 뺨이 닿은 자리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웠다.

 

 

 “ 걱정하지 마. 날 체포하지는 않을 테니까. 벨스키가 보냈다고 했잖아. ”

 

 “ 왜 흥분하는 거야? 제일 안전할 줄 알고 네 이름 댔는데. 좀 무서운걸. ”

 

 “ 난 약과야. 지나가 왔으면 더 소리 지르고 화냈을 걸. ”

 

 “ 지나가 그러는 건 무섭지 않아. 걘 조용한 게 무섭지. 넌 반대잖아. 내 앞에서 화낸 적 없었는데. ”

 

 “ 너한테 화내는 게 아냐. ”

 

 “ 음, 나한테 화를 내면 안되지. 그럼 라라에게 이를 거야. ”

 

 “ 지금 농담한 거야? ”

 

 “ 미안, 여전히 재미없어서. ”

 

 

...

 

 


이 소설 1부에 등장하는 심문관들의 이야기를 올린 적이 있다.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48 : 수용소, 심문자들, 유령들, 인체발화, 다시 세 개의 메모

 

역시 이 소설 3부에서 화자인 스타니슬라프 일린과 미샤가 면회하는 장면은 전에 서너번 토막토막 올린 적이 있다. 아래.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을때, 수용소 면회실에서의 조우 : http://tveye.tistory.com/4521

푸에테와 이반 왕자와 불새 : http://tveye.tistory.com/3613

농담에 약한 주인공, 타협,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 http://tveye.tistory.com/4468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 : http://tveye.tistory.com/4341

 

 

일린과 그의 딸 라라, 미샤의 이야기(부활절 단편) Jewels 전문은 여기


1장 : http://tveye.tistory.com/3390
2장 : http://tveye.tistory.com/3391
3장 : http://tveye.tistory.com/3393 
4장 : http://tveye.tistory.com/3394
5장 : http://tveye.tistory.com/3395

 

 

..

 

 

 

 

 

 

맨 위 사진들과 아래 사진들은 모두 프라하 성 비투스 성당, 아녜슈카 성당, 성 이르지 성당에서 내가 찍은 것들.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사진은 프라하 로레타 사원에서 내가 찍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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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가끔 발췌했던 트로이와 미샤가 등장하는 장편의 중반부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지난번에 지나이다가 병실의 미샤를 면회하러 온 이야기(http://tveye.tistory.com/5309)를 올린 적이 있는데 이 에피소드는 그 이야기 직전에 있었던 일과 미샤의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미샤는 사적인 일로 운나쁘게 부상을 입고 트로이의 아파트에서 밤을 보낸다. 트로이는 그를 보살펴주고 발췌본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미샤의 오랜 애인이자 주치의인 유리 아스케로프(미샤가 부르는 애칭은 유라)가 들러서 그를 치료해주고 돌아간 직후이다. 트로이는 진통제 약물에 취한 미샤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기억들을 들춰낸다. 그리고 미샤가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한다. 발레학교를 졸업하기 몇달 전 겪었던 일에 대해.

 

..

 

 

나는 이 소설을 2012년 겨울부터 2013년 초까지 썼다. 당시 나는 몸이 아파서 잠시 일을 쉬고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좀 힘든 일들이 있기도 했다. 물론 지금과는 좀 다르지만. 그리고 2012년 겨울은 '그' 2012년 겨울이었다. 

 

이 소설을 마친 후 얼마 있지 않아 잠시 프라하에 가 있었다. 거기서 이 소설과 현재의 가브릴로프 본편을 잇는 프리퀄을 구상해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아래 에피소드 중 후반부에서 KGB 심문관 그라도프의 독백 일부를 발췌하며 이런 메모를 남긴 적이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집단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여행을 비롯해 교련, 운동회, 매스 게임 등등을 모두 싫어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주의의 횡포를 견딜 수가 없다. 아니, 이게 꼭 횡포가 아닐 수도 있다. 순기능적인 면이 강조될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횡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겐 그게 횡포였다.

 

직장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우리 회사는 그런 면이 꽤 덜한 편이라 다행이지만. 그래도 부임해오는 임원에 따라 가끔 주말 산행이 생겨나기도 했다. 나는 '조직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단체행동이 사실은 강압이며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주말이 아니라 해도, 본래 회사에서 봄이나 가을에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체육대회나 산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게을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난 줄을 서서 다 같이 뭔가를 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집단 행동을 함으로써 단결력이 강화되고 '우리'라는 끈끈한 정이 생겨난다는 말을 믿지도 않는다. 그래본 적이 없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며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집단 행동을 통해 '우리'라는 이름의 뜨거운 결속력을 획득하고 팀으로서 거듭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쪽에 포함되지 않았다. 단 한번도. 아마 내가 소련 시절에 태어났다면 정치 이념이나 먹고살기 힘든 사회나 그런걸 다 떠나서 그 망할 놈의 집단주의 때문에 미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을 것 같다.

 

작년부터 쓰고 있는 시리즈의 주인공에게도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물론 그는 나와는 꽤 다른 인물이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주의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래서 보안위원회의 어느 인물은 어느 날 그 애를 불러다놓고 이런 말을 한다. '애'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이 저 당시 주인공은 아직 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다.

 

 

... 그런데 내가 아주 미워하는 애들이 있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이토록 선량하고 교양 있는 나조차도 그런 녀석들은 아주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그건 말이지, 혼자 다니는 놈들이야. 모두가 노래할 때 혼자 침묵하는 녀석, 다같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릴 때 혼자 뒤돌아 서 있는 녀석, 동지들끼리 모여 차를 마실 때 길거리로 사라지는 녀석. 가끔 가다 보면 꼭 그런 인간이 있어. 차라리 떠들고 선동하는 놈들이 나아,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여럿이 모여 있으니까. 그리고 무리 짓는 인간들은 언제나 소비에트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야. 문제는 바로 혼자 다니는 애들이야. 도무지 집단에 끼어들지 않는 놈, 미제 자본주의자들의 타락한 정신을 따라가는 놈. 줄을 서는 게 싫다는 이유로 빵과 우유를 사러 가지 않고 꼬박 며칠 동안 처자식을 굶기는 놈, 존경하는 레닌 동지와 레오니드 일리치 동지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건방진 놈들. 차라리 소리 높여 욕하는 놈들이 훨씬 나아. 언제나 혼자 있으려고 하는 놈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이 세상에서 혼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놈들, 그런 놈들이 제일 나빠....

 

 

저 자의 장광설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물론 저 설교가 주인공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저때 꽤 혼이 나고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 애는 여전히 '혼자 다니는 놈'으로 남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저날 메모의 전문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1948 (2013.3.22 금요일 저녁 : 여행 준비 중, 혼자, 우리, 집단, 샐러드 등등)

 

 

..

 

 

내가 왜 지금 이 에피소드를 발췌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이 에피소드는 이 소설에서 가장 우울한 파트 중 하나이고, 또 내밀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블로그에 올리거나 타인에게 공개하는 건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이 이야기가 그때도, 지금도, 아마 이후에도 내겐 중요하다. 여러 측면에서 그렇다. 아마 나는 의사에게 그냥 이 이야기를 소리내어 읽어주고 싶었던 적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한번쯤은. 물론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글쓰기란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올리고 있는지, 솔직히 나도 머리 아프다.

 

모범적으로 말해보자면, 아마 글쓰기가 양날의 검이며 사적인 행위인 동시에 타인을 향한 외침이기 때문이겠지.

 

 

..

 

 

 

언급되는 이름 순서대로. 여기서 표트르 일리치와 레오니드 일리치를 빼고는 모두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루뱐카와 프시후슈카는 실재했고.

 

표트르 일리치는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이다. 미샤는 존경하는 역사 속 인물을 이름과 부칭을 붙여 부르는 버릇이 있다.

 

루뱐카는 모스크바의 KGB 본부 속칭이다.

 

게르만 스비제르스키는 몇차례 언급되었고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도 등장했던 공산당 고위 간부이다. 모스크바 쪽 의원이며 KGB 출신으로 미샤의 후원자이자 정부이다.

 

베리야는 스탈린 시절 비밀경찰의 권력자로 온갖 횡포와 수탈, 어린 소녀들에 대한 농락 등 각종 범죄를 자행한 인물이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마로조프는 레닌그라드 쪽 의원으로 역시 고위 당 간부이며 미샤가 소년 시절부터 관계를 맺어온 사람이다. 이 사람의 시점으로 전개된 단편을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그라도프가 그를 추기경이라고 부르기는 하는데 진짜 추기경은 당연히 아니고 정치계에서 그가 가진 별명 중 하나이다. 서리의 왕도 마찬가지이다.

 

니콜카는 미샤의 정부 중 하나이다.

 

레오니드 일리치 동지는 당시 소련 최고 권력자인 당 서기장 브레즈네프의 이름이다.

 

세르게이 야스민은 미샤의 아버지이다.

 

프시후슈카는 정신교화 수용소이다.

 

 

..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30분 쯤 후 미샤가 깨어나 부엌으로 왔다.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남아 있던 식은 차를 정신없이 마셨다. 갈증이 가시지 않는 듯 식탁 위에 놓여 있는 보드카 병을 움켜쥐더니 입으로 가져갔다. 트로이는 술병을 뺏지도 않고 놔두었다. 이미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지치고 취해서 내버려두고 싶었지만 미샤가 싱크대로 가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려고 했기 때문에 의자에서 일어나 저지해야 했다.

 

 

“ 더 토하고 싶어? ”

 

“ 석회질이 마약을 걸러내 줄 거야. ”

 

“ 대신 누가 좋아하는 작곡가처럼 콜레라에 걸려 죽겠지. ”

 

“ 내 앞에서 표트르 일리치를 모독하면 안 되지. 그리고 이건 운하 물이 아냐, 권위 넘치는 레닌그라드 수도국에서 틀어주는 물이야. ”

 

 

트로이는 싱크대를 자기 몸으로 가로막았다.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이면서 두통을 견디지 못해 보드카를 한 병 더 땄다. 이고리와 코스챠가 지난번에 싸들고 왔던 술이었다. 미샤가 손을 뻗지 못하게 하려고 손을 높이 쳐들어 병째로 마셨다. 미샤는 술에 흥미를 잃은 듯 끓인 물을 컵에 따르고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시 평소처럼 침착한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 같았다. 이른 새벽이었기 때문에 부엌에 깔려 있던 어둠 위로 푸르스름한 빛이 스며 들어오기 시작했다.

 

 

물을 마신 후 미샤가 의자 옆 바닥에 앉았다. 트로이의 무릎에 기대면서 생각난 듯 말했다.

 

 

“ 좋지 않아, 그렇게 많이 마시는 건. ”

 

“ 많이 마시는 게 아니야. 네가 술이 약한 거지. ”

 

“ 충분히 많이 마시고 있어. 이고리보다 더 심해. ”

 

“ 난 걔들처럼 매일 마시지 않아. ”

 

“ 곧 매일 마시게 될지도 몰라. ”

 

“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게다가 난 춤을 추는 인간도 아니잖아. ”

 

“ 아... ”

 

 

미샤가 침묵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를 기댄 채 두 팔로 의자 다리와 그의 무릎을 끌어안았을 뿐이었다. 그 포옹이 너무 세차고 부드러워서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갑자기 울고 싶었다.

 

“ 그때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

 

 

그는 차마 루뱐카라고 묻지 못했다.

 

 

미샤가 대답해주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약 기운에서도 어느 정도 풀려나 있었고 평소 같으면 결코 보여주지 않았을 모습을 드러낸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조금 전에 던졌던 그의 정부들에 대한 쓸모없는 질문들처럼. 차라리 그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볼쇼이에 갔었어, 계약하자고 해서. 문화국에서도 불렀고... 스비제르스키도. ”

 

“ 스비제르스키는 그때부터 알았어? ”

 

“ 아니, 71년인가 콩쿠르 때부터. 그때 후원자였거든. 그래서 그 개자식이 콩쿠르 출신 애들을 모아서 크레믈린 궁전 강당에서 춤을 추게 만들었어. 이틀 연속으로. 문화국 간부들이랑 자기 서클 패거리들 앞에서. 자기 집에서 파티도 하고. 거기서도 춤추게 시키고. ”

 

“ 왜 집에까지 데려가서 그런 걸 시키는 거야? ”

 

“ 그놈들 많이들 그래. 요즘도 가끔 가, 별장들에. 나만 그런 거 아냐, 극장에 있으면 그런 일이 많아. ”

 

“ 베리야 같은 놈들. ”

 

“ 꼭 그런 건 아냐. 그냥 여흥이 필요해서 부르는 경우가 더 많아. 다행히 난 여자가 아니니까 같이 자야 하는 일은 훨씬 덜하지만. ”

 

“ 그럼 볼쇼이는 잠깐이고 내내 당 간부들에게 끌려다닌 거야? ”

 

“ 음, 그래야 했는데 두 번째 날 크레믈린 무대에 안 갔어. "

 

“ 뭐라고 핑계를 대고? ”

 

“ 무슨 핑계가 필요해, 난 학생이었는데. 아직 발레 단원도 아니었는데. 그놈들에게 그럴 권리가 어디 있어. ”

 

“ 그럼 말도 안하고 그냥 숨었어? ”

 

숨지는 않았어. 트레치야코프에도 가고 전에 알던 사람들도 만나고 아르바트에서 놀았어. 내가 어디 있는지 다 알았을 걸. 어두워지니까 누가 나타나서 스비제르스키 집 파티에 데려갔으니까. 심지어 내가 제일 빨리 도착했어. ”

 

“ 그럼 파티에서는 춤춰야 했겠네. ”

 

“ 안 췄어. 도망쳤어. ”

 

 

미샤가 무의식적으로 입을 막았다. 다시 역겨워지는 것 같았다.

 

 

춤추는 것도 모자라서 그 위선자들 옆에 앉아 귀염 받으며 밥 먹고 헛소리 듣고 기념사진까지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의상으로 갈아입으러 갈 때 빠져나와서 정원사 자전거 훔쳐 타고 시내로 돌아왔어. 레닌그라드 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가방이랑 지갑을 전부 거기 놔두고 와서 할 수 없이 숙소로 돌아간 거야. 그때 무임승차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자전거를 팔아치울 수도 있었는데 그날 밤에는 생각을 못했어. ”

 

“ 그래, 가방 챙겨다 준 사람은 있었어? ”

 

“ 없었어. 아침에 자전거를 팔면 되겠다는 생각이 나서 역으로 가려고 하는데 경찰이 들이닥쳐서 차에 태웠어. ”

 

“ 자전거 훔쳐서? ”

 

 

미샤가 그의 무릎을 더 꽉 끌어안았다.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세게.

 

 

“ 이제 그만하자. 졸려. ”

 

“ 얘기해봐. 그럼 훨씬 나아질 거야. ”

 

“ 뭐가? 얘기한다고 변하는 것도 없는데. 기분이? ”

 

“ 그래, 기분이. ”

 

“ 글쎄. 그냥 다시 기절하게 해줘. ”

 

“ 원한다면 귀 막고 있을게. 저쪽에 가서 얘기해. ”

 

“ 왜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해야 돼? ”

 

“ 그럼 네 기분이 좀 나아질 거야. ”

 

“ 교회에 가서 고해하는 것처럼? ”

 

“ 그래. ”

 

“ 사제도 없이 종탑에 대고? ”

 

“ 어차피 무신론자라며. ”

 

“ 문학적 표절인데. ”

 

“ 난 푸쉬킨이 아니니까 좀 봐줘. ”

 

“ 난 푸쉬킨보다 널 더 좋아해. ”

 

 

 

트로이는 의자에서 내려왔다.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미샤의 머리를 감싸안고 성한 쪽 뺨에 입을 맞췄다. 한 손으로 어깨와 등을 쓸자 손바닥에 붕대가 만져졌다. 니콜카를 죽여버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유리 아스케로프도. 스비제르스키도. 그리고 마로조프, 이름과 부칭으로 불리는 그 도살자를.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던 다른 무수한 정부들과 애인들을. 그들 모두가 미래에서 온 살인자들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를 파괴하고 상처 입히고 마침내 울게 만들고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영영 도망쳐버리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미샤가 코끝으로 그의 귀를 가만히 비볐다. 때로 그에게는 그런 조그만 동물 같은 면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트로이는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강렬하게 밀려오는 보호 본능을 느꼈다. 그건 애정보다 더 원시적이고 깊은 감각이었는데 어쩌면 결코 생겨나지 않을 그 자신의 아이와 마주하게 될 때에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일지도 몰랐다.

 

 

미샤가 딱딱한 부엌 바닥에 길게 누웠다. 여전히 트로이의 귀와 목덜미 사이에 머리를 묻은 채 몸을 꼭 밀착시켰다. 두툼하게 감겨진 붕대가 와 닿았다, 비정상적인 열기가 발산되는 맨몸도. 잠옷을 찢어 내던진 후 그는 짧은 복서 팬티 하나 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트로이는 담요를 가지러 일어나는 대신 자기가 입고 있던 제니트 티셔츠를 벗어 그에게 덮어씌웠다. 미샤는 셔츠를 입혀주도록 잠깐 머리와 팔을 들었을 뿐 다시 그에게 바짝 기댔다. 다치지 않은 쪽 다리로 그의 다리를 감았다. 한순간 트로이는 아스케로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 같으면 할 거야, 그것도 오늘. 그래서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그때 아스케로프의 그 말을 떠올리지 않았다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미샤의 부어오른 입을 자신의 키스로 막고 그 고통스러운 기억을 그 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다시 몰아넣었을 것이다. 그 열기가 깊게 찔린 상처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애의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안았을 것이다. 오로지 위안과 평온을 위해. 그것도 미샤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위안을 위해, 귓가에 웅웅거리는 니콜카의 고함 소리들을 잠재우고 전신으로 부드럽게 스며들 이기적 평온함을 위해서. 그건 그와 어둠 속의 그림자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마침 유리 아스케로프의 말이 떠올랐고 그는 그 타오르는 애의 몸을 취하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들도 함께 정지했다.

 

 

 

*    *    *

 

 

 

거긴 일반적인 사무실이나 다름이 없었어. 책상이 있고 의자가 있었어. 서랍과 캐비닛이. 회색 벽이 있었어. 그림도 걸려 있었지. 말레비치 모사품이. 거기 그자가 기다리고 있었어. 성은 그라도프. 이름은 몰라. 직위도 계급도. 채찍을 몇 갈래로 꼬아서 맨 위에 이콘 후광처럼 둥그런 머리를 얹어놓은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그 실루엣 밖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 키도, 체격도, 얼굴도, 아무 것도. 기억나는 건 채찍 위의 이콘 후광뿐이야. 건드리면 굴러 떨어질 것처럼 보였어.

 

 

심지어 목소리조차 기억나지 않아. 그는 낮고 툭툭 긁히는 어조로 말했는데 그 모든 말들은 타자기로 찍어내는 단어들처럼 하나하나 튀어나와 지루한 공산주의 선언문처럼 눈앞의 잿빛 벽에 등사되는 것 같았어. 나는 그의 말을 듣는다기보다는 읽었어. 어쩌면 그건 주사 때문이었을지도 몰라. 그자의 사무실에 들어오기 직전에 비서실에 앉아 있던 어떤 여자가 내 소매를 걷더니 바늘을 찔러 넣었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마치 검역이나 예방접종 같았어.

 

 

그는 맨 처음에 내게 왜 볼쇼이와의 계약을 망설이느냐고 물었어. 그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대답했어. 아직 졸업식도 하지 않았고 다른 극장들과의 면담도 많이 남아 있다고. 그러자 그자가 말했어. 레닌그라드에 남고 싶은 이유가 드미트리 마로조프 때문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어. 모스크바로 온다면 게르만 스비제르스키가 기꺼이 새 후원자가 되어줄 거라고 했어.

 

 

그때 난 그자를 한 대 치려고 했던 것 같아. 내게 그런 이름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난 결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에게 내 무대를 봐달라고 한 적이 없어. 만일 그 서리의 왕이 단 한번이라도 학교나 극장에, 콩쿠르에 내 이름을 비추며 압력을 가한 적이 있었다면 난 다시는 그를 보지 않았을 거야. 나와 춤 사이에는 그 어떤 것도 없었어. 스비제르스키는 또 뭐란 말야, 그자가 크레믈린 무대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자기 파티에 와서 춤추게 강요한다고 해서 거기 끌려간 애들 전부가 그자의 노예가 되는 건 아니잖아. 걔들은 그저 명령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을 뿐이야. 그 역겨운 인간이 지폐와 금붙이를 쌓아놓고 꼬드긴다 해도 결코 그런 놈을 후원자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거야.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내 주먹은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날아갔어. 그라도프는 웃기만 했어. 그리고는 캐비닛을 열고 서류철을 꺼냈어. 상투적이지, 안 그래? 꼬박 10분 동안 그는 내 서류를 읽었어, 라디오 방송처럼. 별로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었어. 그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한 부분은 읽지 않았어, 어쩌면 아예 적혀 있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유라에 대해서는 단 한 줄, 시립병원의 외과의라고 언급했어.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는 너도 알 수 있을 거야. 그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한 인간을 서류에서 지워버릴 수 있어. 그리고 서류에 존재하지 않는 인간은 인생에서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지.

 

 

나는 그들이 증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라도프는 그저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내 행적을 짜맞추고 있을 뿐이었어. 그래서 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처럼 굴었어. 내게는 여자 친구들이 많았어. 학교 파트너들도. 그라도프도 그걸 알고 있었어. 그는 별로 흥분하거나 동요하지도 않고서 나중에 확인해보자고 했어. 그런데 그 ‘나중에’란 말이 갑자기 너무 무섭게 느껴져서 난 깜짝 놀랐어. 난 협박에 민감한 편이 아니야,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 그런데 그 순간에는 너무 무서워서 기절할 것 같았어.

 

 

그건 내 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야.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지고 있었어. 그제야 난 내가 그라도프의 말을 듣고 있지 않고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그의 얼굴은 이콘 후광처럼 단번에 그려 넣은 하나의 원에 지나지 않으며 그 원은 여러 갈래로 꼬인 채찍 위에 얹혀서 좌우로 까딱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난 다시 한 번 손을 들어올려 보려고 했어. 하지만 팔이 너무 무거워서 아래로 축 처지기 시작했어.

 

 

그라도프가 내게 의자에 앉으라고 했어, 자기 사무실에서는 누구나 서 있어야 하지만 내겐 특별히 허락해주겠다고 했어. 그런 말을 듣고 의자에 앉을 놈은 세상에 없을 거야. 그런데 난 앉았어. 마치 내 몸이 나와 분리되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았어.

 

 

그자가 서랍을 열더니 다른 서류를 꺼냈어. 낡고 오래된 종이 뭉치를. 그는 직인이 찍힌 그 서류 앞장을 내게 잠깐 보여주었어. 그리고 내 출신 성분에 대해 말했어. 12년 전 오늘 체포되어 사라진 세르게이 야스민의 서류를 읽었어. 그의 죄목과 재판정에서의 그의 항변, 수용소에서의 불복종과 징계, 치료, 그리고 죽음에 대해 연대기를 읽듯 기술했어. 그때쯤 난 이미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엎드려 있었어. 의자가 아니라 바닥에.

 

 

그라도프가 다가왔어. 의자에 앉았어. 이콘 후광이 이제 위아래로 까딱거리며 여러 겹의 원으로 변했어. 서류 뭉치로 내 머리를 건드렸어. 종이 한 장이 바닥에 떨어져 바스락거렸어. 난 아마 영원히 그 빛바랜 종이 위에 떠올라온 글자들을 기억하겠지, 갈색의 둥근 커피 얼룩이 핏자국처럼 번져 있는 그 조서의 맨 윗줄에 씌어 있는 이름을. Е 모음이 반쯤 비스듬하게 걸려 있고 М의 끝부분이 반쯤 잘려나간 형태로 타이프된 세르게이 야스민이란 이름을.

 

 

후광을 얹은 채찍이 천천히 몸을 흔들면서 노래하듯 말하기 시작했어. 그건 장조였어, 그것도 4분의 2박자짜리 경박한 춤곡이었어.

 

 

 

 

아,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동지. 난 언제나 당과 사회를 비판하고 선동을 일삼는 놈들에겐 연민을 느끼지. 뭐 그놈들을 미워해본 적은 없어, 왜냐하면 그런 놈들 대부분은 구제불능의 알콜 중독자이며 수탉처럼 제 잘난 맛에 취해 사는 얼간이들이기 때문이지.

 

물론 그놈들은 몽땅 잡아들여야 해, 대부분은 재판에 회부할 필요조차 없어. 많은 경우 술병을 빼앗으면 얘기는 끝나. 어떤 놈들은 두들겨 패주면 되고, 어떤 놈들은 좀 귀찮긴 하지만 수용소에 처넣어 버릇을 고쳐주면 돼. 다들 정신을 차려. 선동자들이 가장 쉬워. 나사를 반대로 돌려주기만 하면 최고의 프로파간다 기술자가 될 수 있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내버려둔다 한들 큰 문제도 없어. 가끔 몇 놈을 붙잡아 들여 본보기를 보여주면 될 뿐, 그냥 떠들게 내버려둬도 괜찮아. 골치 아프게 굴면 그냥 미국 따위 제국주의자 놈들에게 추방해버리면 돼.

 

 

그런데 내가 아주 미워하는 애들이 있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이토록 선량하고 교양 있는 나조차도 그런 녀석들은 아주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그건 말이지, 혼자 다니는 놈들이야. 모두가 노래할 때 혼자 침묵하는 녀석, 다같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릴 때 혼자 뒤돌아 서 있는 녀석, 동지들끼리 모여 차를 마실 때 길거리로 사라지는 녀석. 가끔 가다 보면 꼭 그런 인간이 있어. 차라리 떠들고 선동하는 놈들이 나아,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여럿이 모여 있거든. 그리고 무리 짓는 인간들은 언제나 소비에트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야.

 

문제는 바로 혼자 다니는 애들이야. 도무지 집단에 끼어들지 않는 놈, 미제 자본주의자들의 타락한 정신을 따라가는 놈. 줄을 서는 게 싫다는 이유로 빵과 우유를 사러 가지 않고 꼬박 며칠 동안 처자식을 굶기는 놈, 존경하는 레닌 동지와 레오니드 일리치 동지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건방진 놈들, 차라리 소리 높여 욕하는 놈들이 훨씬 나아. 언제나 혼자 있으려고 하는 놈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이 세상에서 혼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놈들, 그런 놈들이 제일 나빠.

 

그런데 그런 놈들 중에서도 더 악질적인 애들이 있어. 그건 바로 뭔가 내세울 게 있는 인간이야. 혼자 다니는 놈들 대부분은 병신들이야, 열등감에 사로잡힌 우울증 환자에 지나지 않아. 그런데 가끔 가다 뭔가 잘못된 경우가 있어. 누가 봐도 잘난 놈인데, 미래에 소비에트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당으로부터 훈장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재능이 뛰어난 놈인데 궤도를 잘못 탄 거지.

 

난 그런 놈들을 오랫동안 유심히 관찰했어. 애초부터 우리 안에 끼어 있어야 정상인데 가족이나 환경을 잘못 만나면 그렇게 되는 거라고 결론을 내렸어. 예를 들어, 당원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교육을 잘 받고 콤소몰 경력도 나쁘지 않았던 남자가 당과 서기장과 국가 정책을 비방하며 선동을 일삼는 거야. 맨 처음엔 알콜 중독자가 아닌가, 나사를 조여주면 우리 쪽으로 돌아올 선동가 타입이 아닌가 의심을 해보지만 재판과 심문 결과 그자는 혼자 다니는 놈에 더 가깝다는 게 밝혀지지. 그런 인간을 교정하기 위해서는 수용소의 강제 노동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그래서 그자는 프시후슈카로 후송되지.

 

그럼 그런 인간을 아버지로 두고 자란 아이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운 좋게 어릴 때 아버지가 체포되었으니 완전한 악영향을 받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분명히 영향이 있었을 거야. 이미 얼룩이 튀어버린 거야. 그래서 엇나가기 시작하지. 이탈을 반복하고 춤을 핑계로 피오네르 활동과 이념 교육은 완전히 무시하지. 아마 콤소몰에도 가입하지 않으려고 버티겠지. 집단의 신성함 자체를 무시하고 언제나 혼자 생각하고 혼자 머리를 쳐들고 걸어가지. 그런데 재능이 있어, 그것도 눈을 의심할 만큼 분명하고 강력한 재능이. 그런 애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다른 애들이라면 평생 영광으로 생각할 크레믈린 무대와 의원님의 초청을 헌신짝처럼 무시하고 달아나는 젊은이는 과연 우리에게 필요하기나 한 존재일까?

 

혹은, 이 건방진 녀석은 그저 자기를 후원하는 어마어마하게 높은 자리에 계신 각하의 위세를 믿고 까불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거라면 일은 간단하지, 각하들은 도처에 존재하며 언젠가는 권좌에서 내려오게 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높으신 분들이야 그런 꼬마들이 조금만 나이를 먹거나 미모가 손상되자마자 다른 애들로 갈아타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어,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야스민 동지. 네가 어느 쪽인 건지. 아, 넌 그렇게 불리는 걸 싫어한다면서. 볼쇼이에 낸 서류에도 이름을 줄여 기재했던데. 부칭은 약자조차 쓰지 않았더군, 미샤 야스민. 그 볼품없이 짧은 이름이 전부였어. 그게 반동으로 체포되어 죽은 아버지 이름과 연관되는 게 싫어서라면 칭찬할 만한 일이겠지. 그런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단 말이야.

 

그래, 널 뭐라고 불러야 할까. 미샤라고 부르기는 싫은데. 내가 아는 수많은 미샤들은 전부 모범적이고 착하고 순종적인 남자들이었지. 그건 보수적이고 영웅적인 소련 인민들의 이름이야. 차라리 미하일루슈카나 미슐랴는 어때? 그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는 어떻게 부르나, 귀여워하며 미셰츠카라고 부를까? 상투적으로 꼬마 비둘기, 작은 태양? 아니면 무대 위의 천사라고? 그래, 아마도 천사라고 부르겠지, 그게 높으신 분 성향에 더 맞을 테니까. 하긴 이름 따윈 아예 부르지도 않을 수도 있어. 그 얼음의 제왕은 자길 놀라게 하는 애들을 좋아하지. 그중 예쁜 애들은 데리고 자고. 계집애든 사내애든 관계없이.

 

오해하지 마, 미하일루슈카. 난 추기경 각하에겐 전혀 악감정이 없어. 우리도 그런 분은 건드리지 않아.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받들어 모신다고 해서 너까지 가만히 내버려둘 거라고 믿는다면 그건 오산이야.

 

 

 

 

그라도프가 내 팔을 잡아 일으켰어. 분명 발이 땅에 닿는 게 보였어, 내 발로 걷고 있는데도 다리에 감각이 하나도 없었어. 잿빛 벽 구석에는 문이 하나 더 있었어. 그는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어. 작은 직사각형 문이 열리자 냉기와 어둠이 뻗어 나왔어. 그 어둠이 너무나도 농밀하고 새까매서 냄새와 질감이 그대로 느껴질 정도였어. 왜 내 발이 바닥을 딛는 것은 느껴지지 않으면서 그 어둠의 촉감은 그토록 생생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 그러나 그 어둠은 내게 낯익었어.

 

 

내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어. 잠시 어둠 속에 잠겼을 때 그라도프의 숨결이 오른쪽 귓가에 와 닿았어. 건조하고 차가운 바람 같은 숨결이었어. 그는 내게 혼자 움직여 보라고 했어. 걸어보라고, 무대 위에서처럼 회전하고 뛰어올라보라고 했어. 그럴 수 있겠느냐고 물었어. 난 물론 그 개 같은 놈의 말을 무시하려고 했지. 그런데 내가 움직이지 않은 건 그놈의 명령에 불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난 말 그대로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어. 심지어 내 힘으로 서 있는 것도 아니었어. 그라도프가 내 양쪽 어깨를 꽉 잡은 채 벽에 기대어 세워 놓고 있는 거였어.

 

 

도처에 어둠이 있었는데 그 어둠은 안팎에서 밀려나오고 있었어. 그때 그라도프가 스위치를 올려 불을 켰지. 그 방은 먼젓번 사무실보다 작았고 정방형이었어. 그건 끔찍한 방이었어.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방. 바닥조차 흰색이었어. 벽에는 결박 도구가 고정되어 있었고 이상한 모양의 의자가 하나 있었어. 스위치들과 전선들이 보였어. 방 한가운데에는 크롬으로 도금된 듯한 직사각형의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어. 그리고 또다시, 그 어둠이 밀려들었어. 눈부신 형광등 빛과 정방형의 흰색들 사이에 그 어둠이 있었어.

 

 

안드레이, 나는 그게 뭔지 잘 알아. 그 어둠이 뭔지. 하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 어쩌면 난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해서 춤을 추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 그런데 그라도프가 그걸 알았던 걸까? 그럴 리가 없잖아, 그놈은 그저 독창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관료에 지나지 않아. 그놈이 협박에 사용한 문구들은 모두가 이전에도 신물 나게 써먹었던 표현에 지나지 않아, 분명 그놈들에게는 복사해 돌리는 심문 매뉴얼이 있을 거야. 그라도프는 그 어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그 작자는 그저 약물을 썼을 뿐이야. 날 겁주기 위해. 길을 들이기 위해. 혹시라도 미래에 드러날지도 모르는 반항의 싹을 꺾기 위해. 그게 전부야. 하지만 왜 그런 공력을 들이는지 알 수가 없었어, 아직 졸업조차 하지 않은 내게, 극장 계약도 하지 않은 내게. 아마도 내 행동에 꼭지가 돌아버린 스비제르스키가 친분이 두터운 KGB 심문관을 매수해 내 버릇을 고쳐주라고 했던 걸지도 모르지. 아니면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를 실각시키기 위한 무수한 시도들의 일부였을지도.

 

 

그라도프가 약물에 대해 말했어. 우리 아버지에 대해 말했어. 프시후슈카에서 아버지에게 놓은 주사에 대해, 정신 교정 약물에 대해 설명했어. 우리 아버지는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죽었어, 시체를 발견한 간수는 심장 발작이라고 보고했지. 그때 그는 이미 한쪽 다리와 두 팔을 쓰지 못했어. 정신은 완전히 나가 있었어. 그라도프는 그게 약물 때문은 아니었다고, 그저 우리 아버지가 특이 체질이었을 뿐이며 그건 아마도 심장 발작이 아니라 정신병으로 인한 자살이었을 거라고 했어.

 

 

볼쇼이에 대해 대답한 이후 처음으로 난 입을 열었어. 그 개자식에게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했어. 우리 아버지를 죽인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 잘난 당과 소비에트 권력이라고 말했어.

 

 

그라도프는 화를 내거나 꾸짖지도 않았어. 단지 여전히 툭툭 긁히는 목소리로 자기는 여전히 우리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는다고 했어. 스스로 목을 매거나 뛰어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타살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세르게이 야스민은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간 것 자체에 책임이 있다고 했어. 자신은 언제나 그 약물의 효과에 감탄하곤 했다고 말했지. 만일 그 약물이 듣지 않았다면 그건 우리 아버지의 체질에 문제가 있었을 뿐이라고. 내가 믿지 않는 것 같은데 한번 실험을 해보자고 했어.

 

 

그리고 그자가 다시 주사를 놨어. 이마에. 그는 실험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게 몇 가지 있다고 했어. 내게 기분이 어떤지 물었어. 손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했어, 원한다면 눈이라도 깜박여 보라고 했어.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 이콘 후광과 겹쳐진 채찍이 점점 사악하고 거대한 그림자로 변하고 있었어. 입술도 혀도 움직이지 않았어. 살아있는 박제가 된 것 같았어. 정말 박제가 맞았던 건지도 몰라. 그라도프가 나를 벽에 세워놓은 채 짐승 껍질을 벗기듯 옷과 신발을 모조리 벗겼는데 맨살에 공기가 와 닿는 순간 온몸이 그 자리에서 불타 없어지는 것 같았어. 너무나도 아프고 쓰라려서 견딜 수가 없었어.

 

 

 

 

 

...

 

 

 

미샤의 회상은 조금 더 계속되는데 일단 여기까지만... (좀 우울한 얘기들이라)

 

 

그라도프에 대한 미샤의 회상 중 아주 짧은 문단을 먼저 발췌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가브릴로프 본편 프리퀄인 미샤의 수용소 이야기와 함께 발췌했다(나의 이 우주에서 미샤는 여기 발췌된 그라도프와의 기분나쁜 심문 이후 약 8년만에 정신교화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때 발췌했던 얘긴 여기 :

http://tveye.tistory.com/4748  수용소, 심문자들, 유령들, 인체발화, 다시 세 개의 메모

 

이 수용소 프리퀄에 대해서는 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링크는 아래.


<2부 : 게오르기 벨스키와의 면회>

불과 바람, 물과 돌 : http://tveye.tistory.com/4502

 

<3부 : 스타니슬라프 일린과의 면회>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을때, 수용소 면회실에서의 조우 : http://tveye.tistory.com/4521

푸에테와 이반 왕자와 불새 : http://tveye.tistory.com/3613

농담에 약한 주인공, 타협, 장식품 애완견 샴페인 캐비아 : http://tveye.tistory.com/4468

견딜 수 있을만한 압력, 눈을 돌리고 넘어갈 수 있을만한 더러움 : http://tveye.tistory.com/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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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무용수 사진 몇장.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청동기사상.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젊은이와 죽음. 사진은 alex gouliaev)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사진은 nina alo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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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아주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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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뒤척거리며 자다깨다 어쨌든 일고여덟 시간 정도는 자고 있다. 낮에 돌아다니다 보니 밤에 잠이 안 오지는 않는다. 누우면 곧 잠들긴 하는데 중간에 깨는 건 변함이 없다...


조식 안 먹을까 하다가 방에 의자도 없는데 밥이라도 먹어주마 싶어서 아침에 머리도 안 말리고 화장도 안 하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내려가 스크램블드 에그와 토마토, 빵 한쪽과 주스, 차, 그리고 웬일로 오늘 서양자두가 있어서 반가워하며 그거 한 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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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날씨가 좋고 더웠다. 주말 쯤 호르몬 주기 때문에 드러누울 게 뻔하므로 오늘 로레타 성당이랑 프라하 성에 다녀와야겠다고 맘먹었다.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피곤하지 않으면 미셴스카 골목의 카피치코에 가야지 하고도 생각했다.


지금 숙소의 장점은 바로 앞에 트램 22번이 온다는 것이다. 22번은 로레타 사원, 프라하 성, 그리고 테스코와 무스텍 역이 있는 나로드니 트르지다를 연결해서 관광객들이 많이 탄다. 트램 타고 로레타 사원 근방에서 내렸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두정거장 전인 프라하 성에서 우르르 내리기 때문에 로레타는 찾는 이들이 좀더 적은 편이다. 나는 프라하 성보다는 로레타와 스트라호프 수도원 쪽이 더 좋다.


내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자면, 개인적이고 내밀한 공간은 카페 에벨과 미셴스카 골목(+카피치코)이겠지만 '프라하'를 사랑하게 된 곳, 혹은 프라하의 깊은 아름다움에 감동받은 곳은 로레타 성당과 아녜슈카 수도원이다. 프라하 성의 비투스 사원은 거대하고 화려하지만 전혀 내 취향이 아니다(오히려 프라하 성에서는 거기보단 가장 오래된 성 이르지(성 조지) 사원을 더 좋아한다)






로레타 성당은 성당 자체가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종소리 때문에 좋아한다. 십년 전 추운 겨울날 로레타에서 정오를 알리는 명종곡을 들었을 때 나는 종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종소리가 사람의 영혼 깊이 평온을 안겨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사원의 종소리를 들으며 울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녜슈카 수도원은 그곳의 중세 미술들과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빛 때문에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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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도착하자 마침 정오가 다 되어 있었다. 초를 켜고 기도를 한 후 정오의 종소리, 아름다운 명종곡을 들었다. 맑고 아름다운 음악이 울려퍼지는 순간 온몸이 정화되는 기분이었고 파란 하늘 아래에서 쇠종들이 딸랑딸랑 짤랑짤랑 땡땡 뎅뎅 대--앵 등 흔들리며 내는 소리들이 내 몸 전체를 관통하고 지나가며 샤워처럼 물줄기를 퍼붓는 느낌이었다.







사랑해요, 로레타. 내게 사원의 종소리를 들으러 떠나고 싶다는 열망을 처음으로 간직하게 해준 곳.



2층에는 이 성당의 유명한 성물들(보석 박힌 어마어마한 성물이 많다)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에는 없던 전시물이 하나 생겨 있었다. 바로 로레타 종소리의 비밀!!!! 짧은 다큐 영상으로 명종곡이 어떻게 울리게 되는지 종탑의 내부구조, 톱니와 실린더, 건반과 종을 때리는 해머 등등 복잡한 모든 구조가 나와 있었고 그림으로도 그려져 있었다. 오오 이것은 나를 위해 새로 생긴 것인가!!!


헤드폰 쓰고 약 15분 정도 열심히 영상을 봤다. 아, 저렇게 해서 27개(맞나? 22개인가 아 헷갈려)의 종들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게 되는구나... 나는 그냥 종을 친다고 생각했지만 영상을 통해 수많은 종들을 울려 아름다운 명종곡을 연주하는 것은 아주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으음, 난 종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무작정 땡땡 치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니었어 엉엉... (대신 지금 구상하는 글 어딘가에 반영할 수 있게 되어서 아까 카페에 앉아 열심히 메모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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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로레타를 나왔다. 프라하 성에 가려고 걸어내려가다가 스트라호프 수도원 방향으로 향하는 흐라드차니 언덕길의 좁은 골목 사이에 있는 예쁜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예전에도 지나갈때 간판만 봤었는데 엄청 좁은 골목에 있는 간판이라 맨날 예쁜 사진만 찍었던 곳이었다. 배도 엄청 고팠고 덥고 피곤해서(1시 반쯤 되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런치는 175코루나로 저렴한 게 있었는데 이게 구운 고기 곁들인 감자덤플링과 디저트로 이루어진 거라 아무래도 돼지고기 같아 나는 그냥 돈 좀 더주고 정식 요리를 먹었다. 요거트 소스를 곁들인 야채와 함께 구운 닭고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음료는 생강 레모네이드. (나온 걸 보니 레모네이드는 아니고 그냥 시원한 생강 음료였는데 나쁘지 않았다)


올리브유에 구운 닭가슴살(..로 추정) 스테이크와 역시 구운 파프리카, 적양파, 버섯이 나왔는데 처음엔 좀 짰지만 그래도 다른데보다는 짜지 않았다. 그리고 먹을 수록 맛있었고 오히려 요거트 소스 없이 닭고기와 야채, 올리브유, 소금, 허브의 조합으로 아래에 촉촉하게 고여 있는 육수 소스(ㅋㅋ)가 더 맛있었다. 하긴 올리브유와 야채와 닭고기, 바질, 굵은 소금이 들어가는데 맛이 없을 리가.... 

 

레스토랑 창 너머로는 스트라호프 수도원과 흐라드차니, 프라하 전경이 보였다. 작고 호젓하고 맘에 드는 곳이었다. 친한 사람들과 함께 오고 싶은 곳이다. 료샤 데리고 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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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은 후... 프라하 성 가는 거 포기. 왜냐하면 이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그대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산책로인 흐라드차니 언덕길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프라하 성 가기엔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음)


이 길은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엄청 언덕길이라 절대!! 내려갈때만 걸어가야 함. 올라갈땐 트램 타고 로레타 쪽에서 내려서 이쪽으로 내려와야 함!!! 옛날에 맨첨 왔을땐 암것도 모르고 이 언덕길 따라 올라가다 토할뻔....


오랜만에 다시 흐라드차니 언덕길을 걸으니 행복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는데 여긴 와이파이 상태가 별로니까 나중에 많이 올려보고 여기는 몇 장만...




흐라드차니 언덕길 따라 내려가면 프라하 전경이 이렇게 보인다.




뒤돌아보면 보이는 스트라호프 수도원. 영화 아마데우스의 무대가 된 곳인데 나는 아마데우스보다는 여기 가면 장대한 도서관 때문에 정신이 혼미하고 황홀하다. (안으로 들어가 열람은 못하고 그냥 줄쳐놓은 바깥에서 구경만 할수 있음 ㅠㅠ 그래도 아름답게 장정된 중세의 거대한 책들이 전시된 걸 좀 볼수 있다. 칼라풀한 성서 필사본과 삽화들은 그야말로 아름다움의 절정!)




이 열매 이름이 무엇일까요.. 아는 분 꼭 가르쳐주세요 :)

마가목이랑 비슷하긴 한데 아닌거 같고.. 마가목 열매는 더 빨간데 이건 나중에 보라색, 검정색으로 변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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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욱 내려가 카를교 앞까지 왔다. 물론! 난 카를교 안 건넌다!! 카를교 복잡해! 뭐 오랜만에 왔으니 한두번은 건너야겠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인 카를교 왼쪽 골목으로 빠져 미셴스카 골목 가기 시전.





가슴이 두근거렸다. 에벨 다음으로 좋아했던 카페가 바로 미셴스카 골목의 카피치코였다. 금연 카페. 빛이 잘 들고 아늑한 곳. 저렴한 가격에 커다란 포트와 워머가 완비된 다즐링, 그리고 45코루나에 맛있는 메도브닉을 주던 곳. 내가 좋아하는 골목에 있는 카페.


근데... 미셴스카 골목 접어들어서 반갑고 설레던 맘도 잠시...


으악, 카피치코 없어졌어 ㅠㅠ 아악, 문닫았어... 다른 가게로 바뀌었어 엉엉...


론리플래닛에도 나오고 사이트들에도 많이 소개되고 인기많은 곳이었는데 왜, 왜, 왜!!!!


넘 충격받았다, 어데 갔니 카피치코야 엉엉 ㅠㅠㅠ



(창문 모양이랑 디자인마저 비슷하지만 다른 가게야 어흑.. 다른 간판, 창문에 그려진 그림이랑 글씨도 다 달라... 카피치코 어디갔어 ㅠㅠ)




너무 섭섭하고 아쉬웠다... 이번에 머무는 동안 전반부는 말라 스트라나, 후반부는 구시가지쪽으로 숙소 잡은 것도 전자는 카피치코가 가깝고 후자는 에벨이 가까워서인데... 카피치코에 글쓰러 갈 생각이었는데 ㅠㅠㅠ


아아 카피치코야 ㅠㅠ


완전 문 닫은 거 아니고 다른 데로라도 옮겨서 살아 있었음 좋겠다... 프라하 최초의 금연카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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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셴스카 골목 맞은편의 셰익스피어 앤드 선즈 서점에 잠깐 들러 영문책들을 구경하다 나왔다. 여전히 카피치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슬퍼하며 도로 길을 거슬러 올라와 말로스트란스케 광장을 지나 숙소 있는 우예즈드 쪽으로 걸어갔다. 덥고 피곤했다 ㅠㅠ 카피치코에서 다즐링 마시고 이번 프라하 첫 메도브닉 먹으려 했단 말이야 우앵....




그저께 찍어놓은 카페 하나가 있어 거기 갔다. 실은 어제 저녁에 가려고 했는데 알고보니 6시에 문을 닫아서 허탕친 곳이다. 비엔나의 유명한 Julius Meinl 쪽에서 낸 가게인 것 같은데 빵과 케익 종류가 많았고 차와 커피도 있고 안쪽 자리가 편해 보였다. 다즐링과 메도브닉을 주문하고 안쪽에 앉았는데 오, 여기 괜찮았다... 밤까지 하면 좋겠지만... 낮에 여기로 글쓰러 와야겠다. 의자도 그리 불편하지 않고...



나에게는 뭔가 글이 써지는 카페라는 곳이 있는데 이게 뭐라고 딱 찝어서 이런 곳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건 그냥 그 카페에 들어가서 앉아봐야 안다. 그런 데가 별로 없다. 에벨은 처음부터 그랬다. 카피치코도. 그리고 여기도 그랬다.








(수첩 메모를 블러로 지웠더니 사진이 지저분해졌다 ㅠㅠ)



메도브닉도 맛있었고(카피치코보단 훨씬 비쌌지만 우리 물가로는 그리 비싼 건 아니다. 4천원 정도) 다즐링도 잎차 티백이라 나쁘지 않았고 창가로 빛이 스며들었고 바깥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앉아서 수첩을 꺼내 두어장 메모를 했다. 에벨에서 다시 풀기 시작한 메모가 좀더 확장되었다. 오늘 로레타에서 종소리 들으면서 새롭게 떠오른 개념들도 적었다.


이 동네 있는 동안 가끔 갈것 같다.


그래서 카피치코는 잃었지만 새 카페를 하나 얻었으니 완전 마이너스는 아니다. 카페 이름은 u zlateho pstrosa 라고 한다. 체코어 표기로는 s 위에 뭐가 달려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영자판으로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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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오니 엄청 덥고 끈적하고 피곤했다. 샤워를 했다. 점심 잘 먹었으니 저녁은 그냥 방에서 먹어야지 했는데 으악, 생수 안 사왔어 ㅠㅠ 물 거의 없는데...


그래서 노트북 들고 기어나와 근처 식료품점에서 생수 사고, 등이랑 허리 덜 뽀개지려고 호텔 로비 바에 앉아 노트북 펴고 오늘 메모 적고 사진 옮김. 여기도 딱히 편하진 않다. 소파는 너무 커서 등을 기댈 수가 없고.... 역시 등이랑 허리 아프다. 그나마 소파에 앉아서 엉덩이가 덜 저린다는 게 낫다.


로비 소파니까 그냥 앉아서 노트북 쳐도 될거 같긴 한데 그래도 바와 카페가 있으니 좀 그래서 라즈베리에이드 시켰다. 근데 의외로 맛있고 시원하다. 별로 달지 않고.


정 궁하면 밤에는 여기 내려와야겠다. 근데 날벌레가 있네 ㅠㅠ


하여튼 이 글만 올려놓고 방으로 올라가야겠다.


글 남겨주시는 이웃분들 항상 감사해요!!!!!  



** 화질 좋고 선명하고 쨍한 게 카메라로 찍은 것, 약간 파스텔톤에 화질 흐린 사진과 정사각형 사진은 폰으로 찍은 것이다. 오늘은 흐라드차니 언덕길에서 네루도바, 미셴스카 등 산책하며 카메라 많이 쓰긴 했는데 순발력 있게 찍을 수 있는 건 확실히 폰이 좋은 거 같다. 아이폰4 시절엔 생각도 못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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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만에 다시 로레타 성당에 왔고 아름다운 명종곡을 들었다. 종소리는 역시 너무나 아름다웠다.


초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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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서 근처의 아주 호젓하고 예쁜 레스토랑에 우연히 들어와 맛있는 점심 먹음. 약간 가격대는 있지만 연이틀 컵라면에 즉석국밥 먹었으니 괜찮다고 세뇌 중 ㅋ









스트라호프 수도원 부근이라 창 너머로 프라하 전경이 바라보인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오고 싶은 곳이다.







이제 힘내서 언덕길 내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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