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금요일 저녁 : 여행 준비 중, 혼자, 우리, 집단, 샐러드 등등 about writing2013. 3. 23. 02:55
* 주말에 비엔나에 다녀올 예정이다. 원래는 화-목 정도를 생각했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눈이 오고 추워진다고 해서 토~월로 변경했다. 덕분에 어젯밤에 버스 티켓 예매와 호텔 예약하느라 피곤했다.
기차를 타고 갈까 했는데 스튜던트 에이전시가 기차보다 훨씬 저렴해서 버스 표를 끊었다. 카를로비 바리 두시간 타고 가는 것도 살짝 버거웠는데 과연 5시간 동안 잘 타고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다녀올 듯.
날씨 때문에 앞당기긴 했지만 주말도 역시 춥다는 예보가 있다. 체감온도가 영하 4~5도라나. 부츠를 신고 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
여기 와서 후회한 것 중 하나가 백팩을 안 가져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레스포삭 가방도 안 가져왔다. 뭘 얼마나 쏘다니겠어 싶어서. 막상 이렇게 다른 곳에서 자야 하는 경우엔 가방 들고 가기가 참 난감하다. 그렇다고 기내 가방을 끌고 갈 수도 없고. 하루를 자든 이틀을 자든 화장품과 세면도구와 잠옷을 챙겨가야 하니 부피와 무게가 늘어난다.
다시금 루키야넨코의 명언을 되새기는 중. 돈 없는 자들만이 여행가방을 바리바리 꾸려가지고 다닌다. 부자는 현지에서 모든 것을 조달할 수 있다.
* 전에는 혼자 쏘다니는 것이 좋았다. 게으르고 겁도 많은 편이지만 혼자 출장도 잘 다니고 여행도 잘 다녔다. 그런데 요즘은 피곤해서 그런 건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가보지 않았던 나라와 도시들을 찾아 떠나는 것이 전처럼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설레는 마음도 훨씬 덜하다. 이렇게 사람이 칙칙해지나 보다.
전 같으면 벌써 비엔나 관련 모든 정보를 검색해서 메모를 하고 근처 서점에 가서 지도라도 사 와서 체크를 하고 있었을 텐데 지금은 한국에서 몇장 뜯어온 비엔나 관련 여행 책자를 한번 들춰보고 지하철, 트램 노선을 폰에 저장한 것이 끝. 호텔에 가면 지도를 주겠지, 가서 대충 쏘다니자 이런 마음이다.
이제 혼자 열심히 찾아서 챙기고 쏘다닐만큼 부지런하거나 열망으로 넘쳐나지 않게 된 것 같아 좀 씁쓸하다. 이렇게 해서 나이를 먹고 급기야는 패키지 여행에 끼게 되나보다. 지금까지는 패키지, 단체여행이라면 정말 토할 것처럼 싫지만.
그 좋아하던 미술관들과 음악, 공연들에 대한 갈망도 전 같지 않다. 아마 이건 내가 작년부터 이쪽에 서서히 피로를 느끼고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미술 쪽이 그렇다. 업무 관련해서 심적으로 많이 소진되었는지 프라하에 와서도 미술이나 건축 쪽은 그렇게 많이 보러 다니지 않았다. 꼭 가보고 싶었던 현대 미술 갤러리가 몇 군데 있었는데 곁을 지나치면서도 들어가본 적도 없다.
* 패키지, 단체 여행 얘기가 나와서 잠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집단으로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학여행을 비롯해 교련, 운동회, 매스 게임 등등을 모두 싫어했다.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주의의 횡포를 견딜 수가 없다. 아니, 이게 꼭 횡포가 아닐 수도 있다. 순기능적인 면이 강조될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횡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내겐 그게 횡포였다.
직장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우리 회사는 그런 면이 꽤 덜한 편이라 다행이지만. 그래도 부임해오는 임원에 따라 가끔 주말 산행이 생겨나기도 했다. 나는 '조직 문화'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단체행동이 사실은 강압이며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굳이 주말이 아니라 해도, 본래 회사에서 봄이나 가을에 정례적으로 개최하는 체육대회나 산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게을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난 줄을 서서 다 같이 뭔가를 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집단 행동을 함으로써 단결력이 강화되고 '우리'라는 끈끈한 정이 생겨난다는 말을 믿지도 않는다. 그래본 적이 없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상당히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며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집단 행동을 통해 '우리'라는 이름의 뜨거운 결속력을 획득하고 팀으로서 거듭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쪽에 포함되지 않았다. 단 한번도. 아마 내가 소련 시절에 태어났다면 정치 이념이나 먹고살기 힘든 사회나 그런걸 다 떠나서 그 망할 놈의 집단주의 때문에 미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을 것 같다.
작년부터 쓰고 있는 시리즈의 주인공에게도 그런 성향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물론 그는 나와는 꽤 다른 인물이지만, '우리'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집단주의를 견뎌내지 못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래서 보안위원회의 어느 인물은 어느 날 그 애를 불러다놓고 이런 말을 한다. '애'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것이 저 당시 주인공은 아직 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었다.
... 그런데 내가 아주 미워하는 애들이 있어.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들, 이토록 선량하고 교양 있는 나조차도 그런 녀석들은 아주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그건 말이지, 혼자 다니는 놈들이야. 모두가 노래할 때 혼자 침묵하는 녀석, 다같이 컨베이어 벨트를 돌릴 때 혼자 뒤돌아 서 있는 녀석, 동지들끼리 모여 차를 마실 때 길거리로 사라지는 녀석. 가끔 가다 보면 꼭 그런 인간이 있어. 차라리 떠들고 선동하는 놈들이 나아, 왜냐하면 그것들은 항상 여럿이 모여 있으니까. 그리고 무리 짓는 인간들은 언제나 소비에트의 품에 안길 준비가 되어 있는 놈들이야. 문제는 바로 혼자 다니는 애들이야. 도무지 집단에 끼어들지 않는 놈, 미제 자본주의자들의 타락한 정신을 따라가는 놈. 줄을 서는 게 싫다는 이유로 빵과 우유를 사러 가지 않고 꼬박 며칠 동안 처자식을 굶기는 놈, 존경하는 레닌 동지와 레오니드 일리치 동지를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해버리는 건방진 놈들. 차라리 소리 높여 욕하는 놈들이 훨씬 나아. 언제나 혼자 있으려고 하는 놈들, 자기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하며 이 세상에서 혼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놈들, 그런 놈들이 제일 나빠....
.. 저 자의 장광설은 이후에도 계속된다. 물론 저 설교가 주인공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저때 꽤 혼이 나고 고생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 애는 여전히 '혼자 다니는 놈'으로 남는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 오늘은 8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그래도 중간에 한번 깨서 1시간 넘게 뒤척이긴 했다. 계속 자고 싶어서 괴로웠는데 바깥을 보니 어제보다 날씨가 더 흐렸다. 오늘은 나가지 않고 내일 비엔나 갈 준비와 다른 이것저것들을 했는데 열어놓은 창 너머에서 불어들어오는 바람이 매우 찼다.
틈날 때마다 꾸준히 걷고는 있지만 운동 부족이 분명하다. 그런데 따뜻한 날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더 움직이고 싶어도 힘들었다. 며칠 동안 입맛도 없고 몸이 힘들었는데 내일 5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좀전에 힘을 내어 카프레제 샐러드를 만들어 먹었다. 여기는 아주 조그만 모짜렐라 치즈 덩어리를 한팩씩 포장해 팔기 때문에 편하다. 가격도 싸고.
* 아이팟 랜덤 재생을 해놨더니 new kids on the block의 time is on our side 가 나오고 있다. 좋아했던 노래인데. 역시 세대가 나오는군 :) 요즘 아이들은 뉴키즈 잘 모르겠지 ㅠ.ㅠ
... 그러고 보니 이걸 어느 폴더에 넣어야 할지 모르겠다. 글 얘기가 있으니 about writing 에 일단 넣어 둬야겠다.
'about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시 : 글, 사과 파이 등 (4) | 2014.10.04 |
---|---|
잠시 : 요즘 쓰는 글 + 로파트키나의 오데트 솔로 클립 (0) | 2014.09.28 |
잠시 : 알브레히트를 추는 무용수에 대해 예전에 썼던 글 발췌 (4) | 2014.09.21 |
잠시 : 야채 싫어하던 레냐, 그리고 그보다 먼저였던 릴렌카와 메밀죽 이야기 (0) | 2014.07.06 |
카페 엘리펀트, 카를로비 바리 (0) | 2013.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