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티타임. 새파란 스프레이 델피늄 색깔에 맞춰서 이딸라의 파란 찻잔을 꺼냈다. 어제 쥬인이 부산 다녀온 얘기를 해주면서 보여준 귀여운 카페 사진에 이 찻잔이 있어서 나도 간만에 꺼내봄.
스프레이 델피늄의 이 파란색은 정말 예쁘다. 수명이 짧은 것과 꽃잎이 하늘하늘 계속 떨어져서 청소하기 귀찮은 것을 감내해야 한다만.
쥬인이 어제 사준 물. 나는 미네랄 농도가 높은 물을 좋아해서 이 물맛이 궁금했었다. 이 물은 에비앙보다 더 진하다. 맛있긴 한데 매일 마시기에는 가격과 농도가 둘다 좀 부담될 것 같다.
지난주 꽃들 중 남은 공작초와 베로니카, 그리고 델피늄과 리시안셔스 짜투리 함께. 이 유리컵은 예전에 프라하의 틴 광장에 있던 앤티크 가게에서 샀던 것이다. 그 가게는 곧 문을 닫았다. 나는 꽃병이라 생각했지만 긴 금발머리를 잡아맨 슬픈 눈의 가게 주인은 '중세 유리잔'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리고 어제 도착한 하얀 리시안셔스와 파란 델피늄 사진들 몇 장. 리시안셔스가 만개해 꽃송이가 너무 커져서 델피늄을 두어 대만 남기고 다른 화병으로 옮겨야 했다.
토요일 오후 티타임. 몸 상태를 생각하면 디카페인티를 마셔야 했지만 어제의 심적 타격으로 스트레스도 받고 빡치는데 차라도 맛있게 마셔야지 하며 그냥 다즐링 서머골드 우려마심. 첫물을 진하게 우려서 버렸으니 카페인이 좀 빠졌겠지 세뇌하며.
며칠 전이 페테르부르크 321주년 생일이었다. 그래서 페테르부르크 찻잔 꺼냈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빨리 전쟁이 끝나야 할텐데... 아주 오랜 옛날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 도시의 대로와 골목을 거닐며, 대학 교정에서 나오며 즐겁게 웃었고 '페테르부르크 300주년에 궁전광장에서 만나자!' 라고 했었는데. 그 300주년에 우리는 그곳에 가지 못했다. 나는 300주년으로부터도 몇년 후에야 그 도시에 다시 갔다. 그때의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차를 반쯤 마셨을때 이번주의 꽃이 도착했다. 연분홍 작약, 베로니카, 조그만 장미, 공작초, 명자란 조합이었다. 나는 사실 작약을 내 돈 주고 사본적이 없는데 이번엔 랜덤믹스였다. 작약은 예쁘긴 한데 한번 꽃이 피면 걷잡을수없이 커지고 또 금방 시드는터라 별로 내 취향의 꽃이 아니다. 지나가다 구경하는 건 좋지만... 그래도 이렇게 받았으니 덧없이 금방 커졌다 시들어버리는 그 아름다움을 즐겨야겠다. 완전한 봉오리 상태로 왔다. 근데 막상 꽃이 피면 나는 출근해서 하루종일 집에 없으니 제대로 핀 꽃 구경은 못할지도 ㅜㅜ
꽃을 다듬어 꽂은 후엔 빛이 들어오는 서재 방으로 잠시 가져다두었다. 거 실 쪽 베란다 블라인드를 내려두어 어두웠으므로. 그래서 평소와는 다른 구도의 꽃 사진 몇 장.
오늘은 평소의 토요일보다는 조금 일찍 차를 마셨다. 오늘 티타임을 요약하면 not enough 라고 해야 하나... (아워 레이디 오브 피스의 노래 제목에서 막 가져옴) 몸 상태 때문에 디카페인 티를 마셔야했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즐링 마가렛의 호프를 우려마셨다. 그러나 우물쭈물 연하게 우려 마신 탓에 별로 맛있지 않아서 정말이지 낫 이너프였음.
위에 있는 찻잔 사진이랑 같은 사진 두 장 아니냐고 한다면... 미묘하게 구도가 아주 조금 다름. 이 러브라믹스를 꺼낼 때마다 프라하의 헤드샷 커피, 바르샤바 호텔방, 그리고 이제는 멀리 떠나가신 내 친구 다샤님이 생각난다. 영원한 휴가님이 나의 이 찻잔을 보고는 빌니우스의 카페에서 이것과 세트인 티포트를 사서 바르샤바까지 가져오셨었다. 분명 빌니우스 카페에서 왔지만 나에게는 바르샤바의 그 호텔 방 기억과 결부되었다. 다샤님이 몇년 전 홍콩의 차찬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며 사진을 보여주셨고, 나는 비슷한 느낌의 칼라풀한 이 러브라믹스 찻잔을 선물해드렸었다. 내가 처음에 고른 건 빨간색이었지만 다샤님은 이 색깔로 바꾸셨었다. 프라하, 바르샤바, 홍콩... 친구들.
토요일 오후 티타임. 오늘의 차는 작년 가을 바르샤바의 홍차 가게에서 100그램 사왔던 '네팔 골드'. 이것을 같이 샀던 영원한휴가님이 이 차 이름을 '네팔왕'이라고 부르셔서 내 입에도 그렇게 익어버렸다. 원래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서 며칠 전 봉지를 꺼내서 보니 네팔 골드라고 적혀 있었다. 맛은 다즐링 퍼스트플러쉬에 가까운 연한 맛이다. 좀 싱거운 편이라 오늘은 찻잎을 좀더 넣었더니 맛이 나았다. 내일은 또 디카페인 티를 마셔야겠지.
좀 이른 티타임 사진.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우중충한 날씨. 중간에 비까지 내리기 시작함. 눈을 보호하려고 폰과 모니터 밝기를 조정하고 야간모드로 맞춰놔서 이제 폰으로 찍은 사진 색감이 실제로는 어떤지 잘 모르겠다 ㅜㅜ 날이 어두워서 찍고 나서 사진의 밝기 조정만 좀 올렸음.
좀 늦게 우려 마신 토요일 오후의 티. 오늘은 이른 새벽 출근해서 행사를 진행하고 오후에 귀가했다. 주말인데 주말 아닌 날.
오늘 도착한 꽃은 스타티스인데 이런 짙은 보라색이 올 줄은 몰랐다. 아래 사진들보다는 이 사진 색감이 제일 정확하다. 아래 사진들은 빛이 들어오면서 색이 옅게 나왔음. 이런 색깔 꽃은 포인트로 몇 송이 정도 있는 편이 더 예쁜데 이렇게 우르르 모여 있으니 조금 부담스럽다. 그리고 아무리 스타티스라 해도 그렇지, 이미 꽃이 거의 다 마른 상태로 와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간만에 주문했던 건데. 연보라색인 줄 알고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