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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레트니 사드의 새들과 고양이 사진 올리고 나니 문득 떠올라서 일년여 전 썼던 중편의 후반부에서 발췌해보는 짧은 에피소드. 갈매기, 고양이, 판탄카 강변의 집, 그리고 미샤와 게냐가 나온다. 계속 미샤의 집에 머무르다가 한 달만에 자신의 원룸에 돌아온 게냐가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를 듣고 예전 기억을 떠올린다. 이 중편은 게냐가 바실리예프스키 섬 바닷가에 있는 어느 호텔 카페에서 옛 여자친구인 리다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해 바닷가에 있는 그녀의 친정 아파트, 바실리예프스키 섬 중심가에 있는 미샤의 발레단 스튜디오, 네바 강변, 그리고 도심에서 좀 떨어진 공장지대에 있는 옛 코무날카 아파트에 있는 그의 원룸을 시간적 순서대로 가로질러 간다. 이 허름한 아파트는 가장 최근 썼던 단편인 마냐와 미샤의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이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아파트 옥상과 마냐의 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맨 위 사진은 판탄카 강변 풍경. 판탄카는 상당히 길게 뻗어 있기 때문에 한쪽으로 가면 레트니 사드가 나오고 다른 쪽으로 가면 트로이츠키 사원이 나온다. 미샤의 집은 트로이츠키 사원과 가까운 쪽 강변에 있다. 

 


 
 

 
 

 
 
발췌문은 아래 접어둔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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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반쯤 남은 차를 싱크대에 버렸다. 젖은 운동화를 대충 헝겊으로 물기만 닦아내고 라디에이터에 올려놓고 있는데 뭔가가 바깥에서 창문을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거대한 새가 젖은 날개를 부딪치는 소리 같았다. 우리 집은 운하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그런 일이 없었지만 미샤의 집은 판탄카 강변에 있어서 종종 새들이 창문 유리를 쪼아대곤 했다. 미샤가 테라스나 창턱에 나가 빵조각을 던져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짓은 청소부 아주머니들만 힘들게 하는 거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어느 날은 그런 가사도우미 중 하나인 카챠가 침실 창문을 너무 깨끗하게 닦아놓은 나머지 멍청한 갈매기 한 마리가 전속력으로 유리를 들이받아서 날개가 부러졌다. 미샤는 갈매기의 날개에 부목을 대고 테이핑을 해주었고 우하 수프에서 연어 두어 조각을 건져내 먹인 후 수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죽지는 않겠지만 뼈가 부서져서 다시는 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접골도 깁스도 소용없다고 했다. 미샤는 몹시 침울해했다. 함께 갔던 키라가 새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돌봐주겠다고 했다. 며칠 후 들러보니 상처는 아물어 있었다. 날개가 안쪽으로 구부러져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키라가 전화를 걸어서 갈매기가 운하를 가로질러 날아갔다고 알려주었다. 미샤는 뛸 듯이 좋아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새에게 소용없는 먹이를 주고 웅덩이에 빠진 새끼고양이를 건져왔다.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돌봐주기에는 너무나 바빠서 집에 붙어 있지도 못하면서,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결국 고양이를 데려간 것도 키라였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건 나 때문이었지만. 내가 고양이를 견뎌내지 못했으니까.

 

 

 내가 키라에게 그 갈매기가 진짜 날아갔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망설였다. 그런 구부러진 날개로는 결코 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아마 그 갈매기는 죽었을 것이다. 운하 옆길의 딱딱한 포석 위로 추락했거나, 아니면 키라가 키우는 고양이들에게 물려 죽었을 것이다. 키라는 갈매기가 정말로 날아갔다고, 나에게 세상에는 이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진짜 대답은 그녀의 망설임 속에 들어 있었다. 아마 미샤도 알았을 것이다. 해부학에 대해서, 뼈와 근육에 대해서라면 잘 알았으니까, 따로 강의도 듣고 공부도 했으니까. 그러면서 믿는 척했을 것이다. 믿고 싶었을 테니까.

 

 

 나는 미샤가 아니었고 새들에게 빵부스러기를 던져주는 버릇도 없었다. 다친 새나 고양이를 주워오지도 않았다. 새가 부딪혀 떨어졌다면 그걸 치울 일이 골치 아플 뿐이었다. 모른 척하고 놔두고 싶었지만 계속해서 철썩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별수 없이 창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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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페테르고프 바닷가에서 찍었던 갈매기. 
 
 

 

 
 


 

판탄카 사진 한 장 더. 백야 시즌이었는데 빛이 번져서 흐릿하게 나왔다. 판탄카는 네바 강과도 이어져 있고 네바 강은 바다와도 연결되어 있어 갈매기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키라는 미샤의 동년배 친구로 화가이다. 미샤가 80년대초 가브릴로프에 유배되었을 때 우정을 쌓아서 나중에는 아예 레닌그라드-페테르부르크로 거주지까지 옮겼다. 발췌문에서 키라가 데려갔다는 고양이는 이 90년대 이야기의 첫 단편인 <판탄카의 루키얀>에 등장하는 새끼고양이 슬론이다. 비에 흠뻑 젖어 죽어가는 놈을 미샤가 건져와서 살려주었는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게냐 때문에 키라가 데려가 키우게 되었다. 
 



 
<판탄카의 루키얀>은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다. 그 이야기의 배경은 1997년 10월이다. 위에 발췌한 이야기보다 한달쯤 전. 화자는 마린스키 극장 마사지사 루키얀. 다른 글보다 짧고 가볍다. 비번은 fontanka 
 
moonage daydream :: 판탄카의 루키얀 (tistory.com)

판탄카의 루키얀

tveye.tistory.com

 
 

 

 
 

 
 


 
판탄카 강변 사진 한 장 더. 이건 늦은 오후에 찍었던 것. 
 


 
위 발췌문이 포함된 중편 <구름 속의 뼈>는 전문을 모두 올려놓았다. 파트 1~2는 공개, 3~5에는 비번을 걸어두었다. 비번은 파트 2 끝에 적혀 있음. 발췌문은 마지막 파트에서 가져왔다. 이 중편 링크는 여기. 
 
moonage daydream :: 구름 속의 뼈 (Part 1) (tistory.com)

구름 속의 뼈 (Part 1)

이 글은 작년 한 해 동안 조금씩, 꾸준히 썼다. 약 100페이지 가량이고 호흡도 조금은 더 긴 편이라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아서 그냥 중편이라고 부르고 있다. 제목은 '구름 속의 뼈'.

tveye.tistory.com

 
 

:
Posted by liontamer




 
 

주말이 다 지나갔다. 아파서 금요일에 휴가를 냈으니 본의아니게 사흘을 내리 쉰 셈이다. 몸이 계속 안 좋더니 오늘 붉은 군대가 도래했다. 차라리 이래버리는 게 나음. 하지만 내일 많이 아프고 고생을 하겠지 ㅠㅠ 
 
 
별로 한 일이 없이 쉬었다. 저녁이 되자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이번주에 기다리고 있는 일들 때문이다. 수요일에는 작년 성과와 관련해 빡센 프리젠테이션 심사를 받아야 해서 내일과 모레는 그것을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금요일 휴가를 내는 바람에 놓쳐버린 최고임원 보고도 화요일에는 해내야 한다.
 
 
사실 이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보고가 많이 늦어졌는데 그 사이 과제가 쌓이고 또 쌓여서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을 해낼 사람들도 없고... 너무 버겁다. 그리고 이 최고임원을 내가 어려워해서 그런 것도 있다. 예전 임원은 별로 안 그랬는데 작년에 오신 이분은 상당히 다혈질인데다 요구도 많이 하시고 우리쪽 분야에 관심이 엄청 많다. 여러가지로 힘들다. 아아 담대해지고 싶다 ㅜㅜ 나와 절친한 동료는 '임원보고 같은 거야 한두번 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지금까지 짬밥이 얼만데 그런 걸로 쫄거나 하는 시기는 애저녁에 지났잖아' 라고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도 쪼는 걸까 흑흑... 내가 너무 소심한 토끼 따위라서 그런거야 엉엉. 



 
이번주는 토요일에도 행사를 진행해야 해서 출근한다. 즉 아주 빡센 일주일이 기다리고 있다. 아아 기운을 내자. 압! 이제 곧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잘 자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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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3. 17. 16:52

일요일 오후 tasty and happy2024. 3. 17. 16:52

 

 

 

일요일 오후 티타임. 이제 휴일은 모두 지나가고 내일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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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