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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이 매우 많았지만 몸이 너무 힘들어서 예기치 않게 휴가를 냈던 하루였다. 그러나 제대로 쉬지는 못했다. 중간중간 계속 일을 하고 업무 통화를 했다. 
 
 

간밤에 너무 피곤하게 잠들었는데 새벽 1시 좀 안되어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현관 밖에서 삐빅거리는 소리가 났고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댔다. 그러더니 누가 문을 두들겼다. 너무 놀라서 문을 꽉 잠근 채 밖에 누가 있나 살펴보니 웬 덩치 큰 남자가 만취한 채 전화를 하면서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얼추 자기 엄마를 계속 찾으며 비밀번호 알려달라, 문 좀 열어달라 하고 있었다. 내가 집 잘못 찾아왔다, 신고한다고 소리쳤지만 취해선지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전화 너머에서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이 그 인간에게 어디에 있냐고 묻는지 우리 집 주소를 대면서 몇 동 몇 호 앞에 있는데 왜 안 열어주냐고 계속 통화를 했다. 내 생각엔 이 남자가 동을 헷갈린 것 같다. 우리 동이랑 옆동이 숫자가 비슷하다. 취해서인지 발음을 뭉개며 계속해서 통화하면서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경비실에 전화를 해서 낯선 남자가 문 앞에서 계속 문을 두들기며 소란을 피운다고 좀 와달라고 했는데 그때도 목소리가 너무 떨렸다. 문앞 복도에는 불이 켜졌다 꺼졌다 했다. 센서 등이라 사람이 오가면 다시 켜지는데 그 인간이 자기 엄마랑 통화하며 왔다갔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비선생님은 빨리 안 오고... 그러다 복도 불도 꺼지고 잠잠해졌다. 그 인간이 간 것 같았지만 무서우니 당연히 문을 열어보지는 않았다. 자물쇠도 둘다 채워뒀고 방범고리도 걸어뒀지만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경비선생님이 한참 후에야 올라와서 복도를 두어번 돌아보고 갔다. 실루엣이나 유니폼, 모습이 경비선생님이 맞긴 했지만 문을 따로 열어보지는 않았고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하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놀라서 잠이 오지 않았다. 아아 너무너무 피곤했었는데... 두어시간 동안 잠을 못자고 괴로워했다. 머리도 너무 아팠다. 동거가족이 있는 사람들이나 남자들이라면 불안하더라도 이만큼의 수준은 아닐 것이다 ㅠㅠ 너무 못 자서 약을 조금 더 먹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여파도 있고 밤중에 크게 놀란 여파도 있는데다 과로 때문에 몸살이 심하게 났다. 새벽에 너무 힘들어서 오전 반차를 냈다. 좀더 자고 오후에라도 출근하려고. 그런데 오전에 3호선 단전으로 우리 동네에서 서울로 가는 노선이 멈췄다. 그리고 몸은 계속 너무 힘들었다. 잠은 제대로 못 잤다. 밤중에 놀라서인지 침입자가 들어와 내 목을 마구 조르는 무서운 꿈을 꾸고 엄청 괴로웠다. 도저히 오후 출근도 하기 어려운 몸 상태라 추가로 반차를 냈다. 그러나 제대로 쉴 수는 없었다. 일단 해야 할 일이 많았고 신경쓰이는 문제들도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일을 하고 업무 통화도 많이 해야 했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이 무겁고 아프고 내리누르는 듯해서 진통제도 먹었다. 몸 상태로는 그날이 다가오는 것 같긴 한데 빨리 시작해야 그나마 나을텐데... 
 
 
하여튼 생각지 않게 출근 안 하고 집에서 반쯤 쉬어버린 하루였다. 이런 식으로 날려버린 휴가도 아깝고 다 안 좋다. 최고임원에게 빨리 신경쓰이는 문제를 보고해야 하는데 오늘을 날려버렸다. 자꾸 생각하지 말고 남은 주말을 잘 쉬면서 몸을 회복해야겠다. 요즘의 과로로 몸이 견디기 힘들다. 밤이 되니 목이 붓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은교산이라도 먹고 자야겠다. 

 
 
좋은 일. 아빠가 오늘 퇴원을 하셨다. 아직까지는 순조로운 편이다. 식사를 하시면 계속 화장실에 가시지만 그건 회복하는 몇달 간은 그럴 것 같고... 통증은 거의 없다고 한다. 부디 잘 회복되시기를... 
 
 
 

 
 
 

오후에 차를 마실 때 냉동실을 털어서 초콜릿 캔디 한 알, 쿠키 한 개를 찾아냈다. 그리고 할바 조금. 저 초콜릿 캔디는 재작년 6월에 바르샤바행 폴란드항공에서 준 것이다. 말린 자두가 들어 있는 다크초코 캔디인데 폴란드는 자두가 유명한지 어딜 가나 자두 디저트나 초콜릿, 사탕이 있었다. 저때는 물론 그런 걸 몰랐고, 내가 공항 외의 바르샤바 다른 곳에도 가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이때 비행기가 많이 연착되었고 나는 바르샤바에서 빌니우스로 경유를 해야 했기 때문에 비행기를 놓칠까봐 너무 걱정이었다. 승무원에게 항공연착에 대해 물어봤는데 나한테 괜찮을거라고, 행운을 위해 이 초코캔디를 주겠다고 했다! 비행기 내의 시간을 보니 삼십분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알고봤더니 비행기 시간은 서머타임이 반영되지 않아 실제 유럽의 시간대보다 한시간 늦게 맞춰져 있었고... (이 망할놈의 폴란드항공), 결국 나는 바르샤바에서 비행기를 놓쳤다. 게다가 한밤중 비행기도 만석이라 결국 공항 근처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낮 비행기를 타야만 했었다.
 
 
그래서 저 초코캔디는 '에잇 뭐가 행운이야. 에잇 망할놈의 폴란드항공!' 하며 가방 구석에 처박아두었고, 나중에 빌니우스에서 돌아와 가방을 풀 때도 저놈을 보고는 와락 부아가 치밀어 ‘에잇, 비행기 놓쳤어. 에잇 망할놈의 폴란드항공!' 하며 냉동실에 처박았다. 그것이 여태 남아 있었음. 그래서 오늘 먹었다. 사실은 그 이후 작년 가을에 다시 폴란드항공을 타고 심지어 바르샤바에 다녀오게 되었는데, 그때도 비행기에서 저 초코를 주었다. 그런데 그 초코캔디는 가져와서 쥬인에게 줬던 거 같음. 하여튼 욕먹으며 여기저기 처박혀 있었던 놈이라 캔디 포장지가 막 구겨져 있음. 맛은 그럭저럭. 티타임 사진 몇 장 접어두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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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