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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발췌했던 에피소드 중에 아파트 수도관이 터져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친구인 트로이의 집으로 피신 온 미샤의 이야기가 있었다. 두 토막으로 나누어 올렸는데 하나는 흠뻑 젖은 미샤가 트로이네 집으로 오는 이야기였고 다음 얘기는 잠든 미샤를 바라보는 트로이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의 링크는 아래.



http://tveye.tistory.com/5524 (수도관 터진 날, 푸쉬킨,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http://tveye.tistory.com/5783 (깊은 잠, 멈춘 육체)



그 파트는 사실 트로이와 미샤가 처음으로 밤을 보내고 육체적 관계를 맺는 순간을 그리고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행복한 순간이었겠지만 돌이켜보면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래 발췌한 부분은 그 직후의 이야기이다(공개 블로그라 자기 검열에 의해 둘의 불꽃튀는-ㅋㅋ- 장면은 건너뜀) 덜컥 관계를 맺어버린 후 트로이와 미샤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사실 내겐 그들의 잠자리보다 이 순간이 더 중요했다.



실지로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이야기와 단어와 표현조차 그 순간의 트로이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미샤라면, 그는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농담을 하는 사람이다. 그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동시에 역설적으로, 작가로서의 나는 오직 그의 말만을 믿을 수 있다. 웬 횡설수설이냐고? 어쩔 수 없다. 애초부터 작가란 거짓말쟁이이며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인간이다.



발췌한 에피소드 아래에는 이 글을 쓰던 당시 내가 사적으로 남겼던 메모를 첨부했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한참 후 미샤가 몸을 일으키더니 그의 팔에서 빠져나갔다. 침대에서 내려가 방을 나갔다. 트로이는 잠깐 동안 어둠 속에 누운 채 두려움에 잠겼다. 그가 떠나 버릴까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봐. 그 두려움이 너무 생생하고 강렬해서 어지럽고 욕지기가 났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일어나 침실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갔다.



 미샤는 가버린 게 아니었다. 그는 부엌에 있었다. 식탁 구석에 오랫동안 놓여 있던 미지근한 과일주스를 팩 째로 마시고 있었다. 달착지근한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애였으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트로이는 냉장고 문을 활짝 열고 안을 뒤져 맥주 한 병을 찾아냈다. 막 뚜껑을 따고 들이키려는데 미샤가 병을 빼앗아 크게 두 모금 마시고 돌려주었다. 트로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 넌 마시지 마. ”



 “ 왜? 미성년자도 아닌데. ”



 “ 찬바람 맞고 왔잖아. 투어도 가야 한다면서. ”



 “ 폐렴에라도 걸릴까봐? ”



 트로이가 맥주 대신 물을 따라 주자 미샤는 컵을 들고 침실로 돌아갔다. 트로이는 술병을 거꾸로 들어 끝까지 다 마셨다. 차가운 알콜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까지 단숨에 흘러내려갔다. 하지만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는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을 손등으로 닦으며 침실로 갔다. 차가운 술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고 툴툴거리긴 했지만 미샤는 모포를 찾아내 몸에 두르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벽에 기댄 채 넓은 침대에 앉아 있는 미샤는 더 이상 격렬하게 그를 포옹할 때처럼 대담하고 강해 보이지 않았다. 사원을 기어오르던 악마도, 끝없이 그를 몰아대며 끌어당기던 젊은 폭군도 사라졌다. 부스스하게 뒤엉켜 사방으로 치솟은 검은 머리칼을 갸름한 얼굴 주위로 종려나무 잎사귀처럼 드리운 채 보풀 어린 모포로 어깨를 감싸고 사춘기 소년처럼 사지를 늘어뜨리고 앉아 트로이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 눈이 어둠 속의 고양이처럼 세로로 길게 빛나고 있었다. 트로이는 침대 위로 올라가 그의 어깨를 안고 베개 위로 눕혔다.



 미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이런 거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



 길 잃은 아이처럼 우울한 목소리였다. 미샤는 베개에 이마와 눈을 파묻고 몸을 웅크렸다.




 충격을 받은 게 당연해. 무경험, 친구의 배신, 충격.


 아니, 사회 윤리와 법률 위반도 있지. 발각되면 체포당할 짓이니까. 넌 항상 그런 규율과 질서를 경멸하는 것처럼 굴지. 하지만 어쩌면 넌 그렇게 강하지 않을지도 몰라.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었어도 마찬가지야. 넌 아직 애에 지나지 않아. 얕보이지 않으려고 허세를 부리는 애. 그런 상황을 거부할 용기가 없는 어린애. 그건 강간이나 마찬가지였을지도 몰라. 내가 그렇게 한 거야.




 트로이는 공포를 억누르려고 애쓰며 떨리는 음성으로 속삭였다.



 “ 네 잘못이 아냐. 내가 그런 거니까. 넌 아무 것도 몰랐잖아. ”




 “ 네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 ”



 알리사와 마찬가지였다.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알아차린 것이다. 미샤는 언제부터 알았던 걸까? 친구들도 모두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알리사는 조교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의 표정과 태도 전체에 선명하게 낙인이 찍혀 드러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토록 오랫동안 감추려고 애썼는데.



 미샤가 눈을 들어 충격에 잠긴 트로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 다른 애들은 모를 거야. 난 같이 자는 남자들이 많아. 보면 알아. ”



 “ 그럼 다른 것도 알았어?"



 그는 차마 ‘내가 널 원했던 것도 알았어?’ 라고 대놓고 묻지 못했다. 다시 두려움이 솟구쳤다.



 “ 몰랐어. 알고 싶지 않았어. 어쨌든 너와는 자고 싶지 않았어. ”




 “ 교회 첨탑 같아서? ”



 트로이는 억지로 농담을 짜냈다. 미샤는 웃지도 않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 파트너나 친구와는 자는 게 아니니까. 신뢰가 사라지잖아. ”



 “ 난 나보다 널 더 믿어.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야. ”



 “ 네가 그렇다는 건 알아. ”



 미샤는 그의 얼굴에 뺨을 마주대고 여전히 우울하게 말했다.



 “ 파트너는 바꿀 수 있어. 친구는 그게 안 돼. 내게 친구는 너 하나 밖에 없어. ”



 “ 주위의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쩌고. 극장 동기들은, 이고리는, 타냐는? ”



 “ 친구는 잘 사귀지 못해. 난 사람들을 믿지 않아. ”



 처음으로 트로이는 미샤의 완벽하게 서늘하고 우아한 아름다움 너머로 깊게 일그러지고 오그라든 어둠을 보았다. 어둠. 불. 추락. 크세니야가 했던 말. 불을 뿜으며 떨어지는 아이. 모스크바 역 좁은 의자에 앉아 공포에 질려 있던 소년.



 “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이상한데. ”



 그는 심각하게 들리지 않도록 애쓰며 팔 안의 몸을 천천히 끌어당겼다. 땀이 식으면서 한기가 느껴졌다. 미샤의 몸에는 아직도 열기가 남아 있었다.



 “ 세상이란 게 뭔데. 소비에트 연방?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




 
 그는 키로프라고 하지 않고 마린스키라고 했다. 레닌그라드 대신 페테르부르크라고 얘기한 것처럼.



 “ 우리 주위의 모든 것. 전부. ”



 “ 레닌그라드. ”



 미샤가 결론을 내리듯 단호하게 말했다. 트로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 그래, 레닌그라드. ”



 그는 미샤가 이 도시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의 깊이에 전율했다. 물 위에 돌로 지어진 도시, 학살과 절망의 도시, 피와 바람의 도시, 허위와 모방의 역사로 가득 찬 옛 수도, 이제는 모스크바의 광휘에 밀려나 퇴색하고 있는 도시를 향해 그런 절대적이고 강력한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 나하고 레닌그라드는 같을지도 몰라. ”



 미샤는 트로이의 귓가에 입술을 마주 댄 채 따스한 숨결을 내쉬며 말했다.



 “ 뿌리가 없어. 돌이킬 수 없이 안이 비었어. 파이프처럼. 운하의 검은 물이 그 안으로 차올랐다가 어디론가 빠져나가. 그래서 사람들을 잡을 수가 없어. 친구를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 ”



 2년 반 전 갈랴의 집에서 만난 이래 미샤는 단 한 번도 트로이에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어쩌면 그 누구에게도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그럼 나는? ”




 “ 내가 널 잡는 게 아니야, 네가 날 잡아주는 거지. 그래서 나한테는 친구가 너 하나 밖에 없어. 너하고 나는 레닌그라드에 같이 있으니까. ”



 그는 미샤의 말을 절반쯤 밖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는 지금껏 미샤를 이해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에게 있어 미샤 야스민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그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곤 깊은 사랑과 욕망뿐이었다.



 가슴을 에는 듯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며 안드레이 트로이츠키가 조용히 물었다.



 “ 누구든 사랑해본 적이 있어? ”



 “ 같이 자는 남자들은 많아. ”



 미샤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트로이의 목을 껴안고 따뜻하게 데워진 몸을 바짝 밀어붙였다. 한쪽 다리를 들어 트로이의 허리를 감았다. 엷은 갈색 털이 성기게 돋아난 트로이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애무하듯 쓸어내리며 턱을 들어 입을 맞췄다.



 키스를 잠시 멈췄을 때 미샤가 입술을 떼지도 않고 말했다.



 “ 좀 안아줘, 안드레이. 한번만 더 해줘. ”



 절망적이고 쓸쓸한 목소리였다. 불을 뿜으며 떨어지는 아이. 어둠 속에서도 보이는 생명체. 낯선 인간. 하지만 트로이는 더 이상 그게 새로 온 존재인지 그들 이전부터 있었던 존재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거라곤 ‘좀 안아줘, 안드레이. 한번만 더 해줘란 말과 ‘안드레이, 나 좀 잡아줘. 잠시만’ 이란 말이 똑같은 울림과 똑같은 깊이로 밀려나온다는 것뿐이었다. 파이프에서 검은 물이 빠져나오듯, 그렇게.



 그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시트가 말려 올라간 매트리스 위를 구르며 다시 사랑을 나눴다. 아침이 되었을 때 트로이는 면도도 하지 않고 강의 노트를 챙겨 학교에 나갔다. 그가 나갈 때 미샤는 기침을 하면서 모포를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파이프가 터져 엉망이 되었던 아파트는 예상 외로 다음날 곧 복구되었다, 레오니드 핀스키가 아는 수리공에게 보드카를 뇌물로 주며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샤는 3일 후 키예프로 투어를 떠날 때까지 트로이의 아파트에 머물렀다.





...







<2012년 가을의 메모 - 이 소설을 쓰던 무렵>




요즘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텅 빈 일종의 파이프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끔은 그 파이프 안으로 차가운 물이 들어와 위아래, 양옆으로 물결치는 것 같다. 그 물은 아주 차갑고 아주 검다. 주로 밤에 그렇다. 원래 밤이란 건 그런 시간이다. 


 
옛날에도 가끔 우울증에 시달렸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나 자신이나 주변과 타협하는 기술을 익히게 되면서 훨씬 나아졌다. 그런데 그건 사실 해결의 기술이 아니라 회피의 기술이다. 파이프에는 별 도움이 안된다.
 


오래 전 글을 쓸 때, 그리고 최근 다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난 동일한 인물의 입을 빌어서 한 인물의 내부와 외부에 오로지 어둠만이 존재하며 거기에는 어떤 정점도 어떤 바닥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없고 우울한 일인지 이야기했다. 난 그 느낌을 안다. 그건 파이프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그 인물은 파이프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하지만 어쨌든 난 그 느낌을 안다. 


 
어쩌면 내가 다시 글을 쓰기로 했을때 비슷한 성향이지만 훨씬 더 사랑스럽고 부드러웠던 다른 인물, 이미 정교한 플롯이 짜여져 있던 다른 이야기를 되살리는 대신 그 음울하고 고통스런 인물을 데려온 것은 그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주인공은 해결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망치기로 한다. 재능을 배신하고 열망을 버린다. 다른 세계로 옮아간다. 그건 기만이며 일종의 회피, 비겁한 행위이다. 딱히 살아남기 위한 열정에서 나온 회피도 아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말로 나쁜 건 어떤 식으로 행동하든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이해한다.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지금껏 내가 만들어냈던 그 어떤 인물보다도 더. 물론 나는 그와 같은 재능이나 매력을 갖춘 예술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다.


 
어쨌든 파이프가 되는 건 우울한 일이다. 어둠 속에서 헤매는 건 더욱 그렇다.



2012.10.19




..








* 사진들은 모두 작년 여름과 겨울에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찍은 것. 마지막 사진은 푸쉬킨 동상.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저녁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3시 반쯤 되면 해가 지고... 이 사진은 4시~4시 40분 사이에 찍은 것들임.

카잔 성당.


알렉산드르 푸쉬킨. 예술광장.

오늘은 도씨에게 먼저 가느라 좀 늦었어요,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 야! 내가 도스토예프스키보다 선밴데! 나한테 먼저 와야지!

토끼 : 맨날 당신한테 먼저 왔잖아요! 아직 표트르한텐 가지도 않았어요.

푸쉬킨 : 시인이 황제보다 우선하는 게 당연하지!

토끼 : 맞아요 사랑합니당~


(표트르 : 청동기사상 ㅋㅋ)


그리고 스파스 나 크로비 사원.

그리보예도프 운하는 얼어붙었고 눈이 쌓여 있었다. (추웠다.. 체감온도 영하 15도라고 나왔음 ㅠㅠ)


..


내일은 양말 두개 신어야지... 어그부츠 신었다고 방심해 양말 하나만 신었는데 오늘 발 시려웠음...


:
Posted by liontamer

 

 

 

 

 

아래는 이전에 여러번 발췌한 소설의 전반부에 포함된 에피소드이다. 1974년 3월. 미샤는 키로프에 입단한지 일년이 채 안된 시기이다. 우중충한 진창으로 가득한 음습한 3월의 어느날, 한밤중에 미샤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친구인 트로이의 아파트로 찾아온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3월 초였다. 날씨는 좀 풀렸지만 거리는 진창과 감기 환자들로 가득했다. 트로이는 일 년 중 이 시기를 가장 싫어했다. 오후 강의에도 감기로 빠진 학생이 세 명이나 있었다. 우중충하고 습한 날씨 때문인지 그날따라 학생들은 별로 어렵지도 않은 영문법을 따라가지 못해 쩔쩔 맸고 짧은 테스트에서도 무더기로 오답을 냈다. 마침내 트로이는 다음 주에 있을 시험을 거론하며 학생들을 협박해야 했다.

 

 강의를 마친 후 트로이는 녹초가 되어 학교를 나왔다. 그는 자신의 수업 방법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나이 차이가 대여섯 살 밖에 나지 않는 젊은 강사를 만만하게 여겨서 그러는 것인지 의문하며 길을 건너 버스를 타러 갔다. 평상시 같으면 다리를 건너 집까지 걸어갔을 테지만 그러기엔 녹은 눈 때문에 길거리가 너무 지저분했다.

 

 아직 이른 저녁이었지만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사흘 후 모스크바 대학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가야 했는데 아직 원고를 완성하지 못했다. 몇 시간만 매달리면 해결될 일이었지만 요 며칠 동안 그는 독감에 걸린 듯 머릿속이 뿌옇고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쩌면 얼마 전 다시 만난 톨랴가 그에게 퍼부어댄 원망 섞인 욕설 때문일 수도 있었다. 톨랴는 아직도 그가 청혼할 거라는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전구가 나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텅 빈 집으로 들어갔다. 지난 여름에 어머니가 재혼해 떠난 후 트로이는 아파트를 혼자 쓰고 있었다. 좁고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네프스키 대로 근처였고 방 두 칸과 거실, 부엌과 욕실이 딸려 있었으므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몇 번은 아기가 태어난 갈랴의 집 대신 그의 집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집 주인의 요리 솜씨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갈랴 부부의 집만큼 인기는 없었다.

 

 

 밑단이 흙투성이가 된 바지를 벗어 빨래통에 처박은 후 그는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서 끈끈하고 음습한 레닌그라드의 3월 공기를 씻어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아주 진한 커피를 한 잔 타 마시며 전날 알리사가 카페에서 사다 준 양귀비씨 빵으로 저녁을 때웠다. 결혼 후에도 알리사는 종종 들러 그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곤 했다.

 

 

 커피를 한 잔 더 내린 후 그는 책과 논문 뭉치를 들고 식탁으로 가서 발제 원고를 마저 쓰기 시작했다. 부엌의 조명이 가장 밝았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도 틀지 않고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아 서너 시간 동안 원고를 썼다.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았다. 머리를 식히려고 손에 닿는 의자에 놓여 있던 푸쉬킨 시집을 집어 아무렇게나 펴고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읽었다.

 

 

지금은 나의 계절, 나는 봄이 싫다.

눈 녹는 철은 지겨워, 악취와 진창도. 봄에는 앓게 되네.

몸 속의 피는 방황하고 감정과 예지는 우수에 사로잡힌다

엄동설한이 내겐 훨씬 좋다.

 

Теперь моя пора: я не люблю весны;

Скучна мне оттепель; вонь, грязь — весной я болен;

Кровь бродит; чувства, ум тоскою стеснены.

Суровою зимой я более доволен,

 

 

 

 악취와 진창을 얘기하는 푸쉬킨은 진정한 러시아인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며 트로이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하고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졌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무 것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곱슬머리의 가무잡잡한 시인이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유모를 만나지 않았다면, 리체이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래도 위대한 시인이 되었을까? 아니, 어쩌면 더 위대하고 더 사랑받는 영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재능은 유일무이한 것이며 불멸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런 재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며 특권이었다. 아무도 그의 곁에 있던 친구들과 이류 시인들을 기억하지 않았다. 그리 짙지도 않은 어둠 속으로 명멸해 사라진 자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네바 강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없었을까?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모임은 다음 주였고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혹시 알리사가 들른 걸까 싶어 트로이는 현관으로 나갔다.

 

 

 “ 누구세요? ”

 

 “ 나야. 들어가도 돼? ”

 

 

 트로이는 문을 열었다. 미샤가 가방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도 시커먼 얼룩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 어떻게 된 거야? ”

 

 “ 수도관이 터졌어. 집이 물바다야. ”

 

 

 트로이는 미샤를 안으로 들여놓고 가방을 받아 내려놓았다. 미샤가 물을 뚝뚝 흘리며 재채기를 해댔다. 트로이가 타월을 가지고 왔을 때 그는 신발과 재킷과 티셔츠를 아무렇게나 벗어 현관 바닥에 내팽개치고 있었다.

 

 

 “ 바닥 더러운데 나한테 줘. ”

 

 “ 괜찮아, 어차피 빨아야 돼. ”

 

 

 타월로 머리의 물을 떨어내며 미샤가 거실로 들어왔다. 바지도 엉망이었다. 가방 지퍼를 열어 마른 옷을 꺼내며 그는 다시 재채기를 했다.

 

 

 “ 온수 나와? ”

 

 “ 응, 아직은 나올 거야. 빨리 가서 씻어. 파이프가 터졌으면 잽싸게 튀어나올 것이지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한 거야? ”

 

 “ 고칠 수 있을 줄 알았지. 반쯤 고쳤는데 레냐가 뭘 잘못 건드렸어. 삽시간에 펑 터지잖아. 집 밖으로 나왔는데 거기서도 또 터졌어. ”

 

 

 졸업하고 기숙사에서 나온 후 미샤는 극장 동료 세 명과 함께 사도바야 거리 근처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하나는 동기였고 둘은 선배였는데 트로이는 미샤가 레냐라고 부르는 레오니드 핀스키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레트니 사드의 아폴로 조각상을 닮은 핀스키는 트로이가 유일하게 아는 미샤의 발레학교 동기였다. 극장에서 좀 더 좋은 조건의 집을 구해줬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나마 친한 친구와 같이 쓰게 되어 다행일지도 몰랐다.

 

 

 “ 그래서 다른 애들은 어떻게 됐어? ”

 

 “ 다 짐 싸서 뿔뿔이 피난갔지. 난 그나마 나아, 레냐랑 발로쟈 방은 직통으로 터져서 옷이고 책이고 다 잠겼어. ”

 

 “ 대신 물에 빠진 생쥐가 됐잖아. ”

 

 “ 뭐 몸으로 때우는 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

 

 

 미샤는 나무 바닥과 카펫 위에 더러운 물을 떨어뜨리면서 욕실로 갔다. 가는 내내 재채기를 했다. 트로이가 등 뒤로 물었다.

 

 

 “ 그런 몰골로 버스를 탄 거야? 같이 있는 애들한테도 차가 없어? ”

 

 “ 아무도 없어. 급료가 짜거든. 버스는 안 탔어. 경찰한테 잡혀갈 것 같아서. ”

 

 “ 그럼 걸어왔어? ”

 

 “ 알잖아, 운하 따라 오면 얼마 안 걸려. ”

 

 

 트로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시궁창에 구른 듯 흠뻑 젖은 상태로 운하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오는 게 정신이 제대로 박힌 무용수가 할 만한 짓인지 꾸지람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갈랴처럼 굴고 있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그는 부엌으로 가서 가스렌지에 주전자를 올려놓았고 찬장을 뒤져 그나마 깨끗한 컵을 한 개 찾아냈다. 제대로 된 찻잔은 하나도 없었다, 지난번 모임 때 오랜만에 새 소설을 탈고한 쥬진스키가 신이 나서 찻잔들을 가지고 무슨 퍼포먼스를 하다가 깨뜨렸기 때문이다.

 

 

 식탁에 너저분하게 늘어놓았던 원고와 책들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끓는 물과 찻잎을 컵에 붓고 있을 때 미샤가 나왔다.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가방에서 스웨터를 꺼내 티셔츠 위로 뒤집어쓰며 미샤가 투덜댔다.

 

 “ 중간에 더운 물 끊겼어. 우리 아파트만 그런 게 아니었나봐. ”

 

 “ 이쪽으로 와서 차 좀 마셔. ”

 

 진하게 우린 차에 얇게 썬 레몬 두 조각과 설탕을 한 숟갈 부어 넣으며 트로이가 의자를 가리켰다. 미샤는 잠깐 눈썹을 찌푸렸지만 두어 차례 몸을 떨더니 트로이의 손에서 숟가락을 빼앗아 직접 설탕을 더 퍼 넣었다.

 

 “ 더 넣어. 그래야 몸이 녹을 걸. ”

 

 “ 이미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가 심장병을 일으킬 분량인데. ”

 

 

 미샤는 제대로 젓지도 않고 컵을 입에 가져갔다. 뜨거운 차를 연달아 두 잔 마시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식탁 구석에 쌓여 있는 원고와 책들을 보았다.

 

 

 “ 강의 준비해? ”

 

 “ 아니, 금요일에 모스크바에서 세미나가 있어서. ”

 

 “ 아, 나도 금요일부터 투어 가. ”

 

 “ 어디로? ”

 

 “ 키예프, 사라토프, 아마 페름까지 갈 거야. 너 사라토프에 할머니 계시다고 하지 않았어? ”

 

 “ 아직도 기억하는구나. 우리 할머니 극장 좋아하니까 너 보러 갈지도 모르겠다. ”

 

 “ 그래, 오신다면 내가 앞자리 부탁해 놓을게. ”

 

 

 미샤가 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끌어왔다. 개켜놓은 옷들 사이를 뒤져 발레슈즈와 작은 천 지갑 같은 것을 꺼냈다. 자세히 보니 지갑이 아니고 바느질 도구가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벽에 등을 기대고 식탁에 다리를 걸친 채 능숙하게 발레슈즈에 바늘을 찔러 넣으면서 미샤가 물었다.

 

 

 “ 나 자고 가도 돼? 여자가 오기로 한 거 아냐? ”

 

 “ 무슨 여자? ”

 

 “ 여자 생겨서 바쁘다며. ”

 

 “ 깨졌어. ”

 

 “ 유감이네. ”

 

 “ 그냥 금요일까지 여기 있어. 우리 엄마가 쓰던 방 비어 있으니까. 파이프 터진 건 금방 고친다 해도 물 빠지고 치우는데 한참 걸릴 걸. ”

 

 “ 그래, 친구가 있어 다행이야. ”

 

 

 트로이는 매혹되어 미샤가 발레슈즈를 기우는 것을 지켜보았다. 전에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바느질을 할 줄 아는 것도 신기했다.

 

 

 “ 신발은 극장에서 다 대주는 건 줄 알았는데. 스타가 이런 걸 직접 하다니. ”

 

 “ 주긴 하는데 몇 켤레 안 줘. 그리고 아직 스타가 아니야. ”

 

 

 아마 미샤는 인민예술가 정도는 되어야 스타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트로이에게 강의와 모스크바 세미나에 대해 물어보면서 신발 세 켤레를 순식간에 기웠다. 그리고는 세 켤레를 돌아가면서 신고 이리저리 움직여 보며 상태를 점검했다. 그 모든 동작은 완벽하게 기계적이고 효율적이어서 군인을 연상시켰다.

 

 

 “ 투어는 며칠 정도야? ”

 

 “ 3주. ”

 

 “ 뭐가 그렇게 길어? ”

 

 “ 버스로 간대. 집단농장들도 들르고. ”

 

 “ 키로프라고 그렇게 화려한 게 아니구나. 버스로 투어 가고 급료도 짜고 직접 신발도 기워야 하고. ”

 

 “ 당연하지, 트로이츠키 동무. 여긴 평등의 사회인걸. ”

 

 “ 크류코바도 같이 가? ”

 

 “ 아니, 니나 정도 되면 계급 위에 존재하지. 그리고 니나랑 같이 가게 되면 더 골치 아파질 거야. ”

 

 “ 왜? ”

 

 “ 더 미움 받게 된다고. 투어에 니나 예전 파트너가 둘이나 같이 가거든. ”

 

 

 미샤는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트로이는 극장 내부의 위계질서가 얼마나 엄격하고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타냐에게 조금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수직으로 급상승하고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된 젊은 신입은 아마 선배들 사이에서 눈엣가시나 다름없을 것이다.

 

 

 “ 쓰던 거 계속 써. 나 연습 좀 할게. ”

 

 “ 테이프 챙겨 왔으면 음악 틀어놓고 해도 돼. ”

 

 “ 괜찮아, 몸만 풀 거야. 근육이 좀 뭉쳤어. ”

 

 

 미샤는 거실 쪽으로 나가서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했다. 트로이는 다시 원고를 쓰려고 했지만 도저히 미샤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리를 옮겨 거실에서 등을 돌리고 책과 원고에 집중하려고 애썼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미샤는 책장과 창틀을 잡고 다리를 길게 뻗으며 트로이에게는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동작을 연속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근육만 조금 푸는 동작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완전히 몰입하여 음악도 없이 좁은 공간에서 생소한 춤을 추고 있었다. 옆으로 다가가도 모를 것 같았다. 트로이는 푸쉬킨을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모든 것이 주어진다. 유일무이하고 불멸하는 재능.

 

 그는 고개를 돌렸고 원고를 이어 쓰기 시작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논리가 약해지면서 횡설수설로 변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다른 논문들을 인용하고 논지를 가다듬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주제를 잘못 택한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내용을 바꿀 수는 없었다.

 

 

 

...

 

 

얼마 전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시점으로 서술된 이야기를 짧게 발췌한 적이 있었다. 투어에서 돌아온 미샤가 폐렴에 걸린 얘기(http://tveye.tistory.com/5469 )였는데 그것이 위 에피소드에서 미샤가 말하는 '키예프, 사라토프, 페름'의 버스 투어였다. 시간적으로는 위 에피소드가 1974년 3월, 투어에서 돌아와 폐렴에 걸리는 것이 4월로 이어진다.

 

..

 

인용된 시는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가을'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리체이는 소년 시절의 푸쉬킨이 다녔던 기숙학교이다.

 

미샤가 차에 설탕 타면서 얘기하는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는 그의 발레학교 시절 은사이다.

 

..

 

수도관 터져서 난방 끊기고 물벼락 맞고 집에서 달려나온 미샤의 이야기는... 사실 내 경험에서도 좀 가져왔다. 나는 다행히 물벼락까진 안 맞았지만... 예전에 러시아 기숙사에 있을때 동네 수도관이 다 터져서 길바닥에선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하필 혹한이 몰아닥쳐서 얼어죽는 줄 알았었음.

 

그런데 그때 기숙사에는 그저 벽에 '기술적 문제로 난방 안됨'이라고만 씌어 있었고...

'그 망할놈의 기술적 문제! 맨날 저 문구야!' 하면서 덜덜 떨며 뜨거운 물을 끓이면서 텔레비전을 틀어보니 뉴스에 어디어디 수도관 터졌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는데 가만 보니 우리 동네였음 ㅠㅠ


 

그보다도 더 예전에 있을땐 겨울에 온수 안 나올때가 많아서 가스렌지에 물을 끓이기도 하고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기도 해서 그걸로 간신히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은 적도 있었음. 그러니 소련 시절인 1970년대의 미샤와 트로이네 집은 당연히 더 심했겠지 ㅠㅠ (저 에피소드가 벌어질 당시 미샤는 아직 극장 근처의 좋은 아파트를 얻기 전이었다)

 

..

 

 

페테르부르크 예술광장의 푸쉬킨 동상.

 

 

 

루돌프 누레예프.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사진은 alex gouliaev.

이번 뮌헨 바이에른 극장 무대에서 데뷔했던 존 크랑코의 로미오와 줄리엣 리허설 사진.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이 에피소드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5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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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5. 8. 25. 21:33

한겨울의 청동기사상, 나의 비밀 장소 russia2015. 8. 25. 21:33

 

 

내가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 중 하나. 나의 오래된 비밀 장소.

페테르부르크의 상징.

늪지대를 갈아엎어 물과 돌의 도시, 환상의 도시를 축조한 황제 표트르 대제에게 바쳐진 조각상. 그리고 푸쉬킨의 시로 불멸의 문학적 상징을 획득한 청동기사상이다.

 

지난 2월. 이 날은 추웠지만 날씨가 좋았다.

 

청동기사상에 대해서는 예전에 따로 쓴 글도 있고 사진들도 여러 차례 올린 적이 있다. 태그의 청동기사상이나 청동기마상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따로 썼던 글은 아래...

 

* 페테르부르크의 비밀 장소를 찾아서 : http://tveye.tistory.com/1233

* 페테르부르크 홍수 신화와 청동기사상 : http://tveye.tistory.co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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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내내 더워서 지치는 날씨다. 2월에 갔을 때 찍은 추운 페테르부르크 사진 세 장.

모두 2월 21일에 찍은 것. 이날은 진눈깨비가 내렸고 나중에는 겨울비로 바뀌었다.

 

먼저 예술광장의 푸쉬킨 동상. 푸쉬킨의 뒤로 보이는 건물은 루스끼 무제이, 즉 러시아 박물관.

 

 

 

이건 이탈리얀스카야 거리에 있는 '오네긴'이라는 기념품 가게. 머물던 호텔과 가깝기도 하고 여기 물건들 중 내 맘에 드는 예쁜 것들이 좀 있어서 몇번 갔다. 푸쉬킨 동상이랑 가까운 곳에 있고 이름도 오네긴 :)

 

 

 

이날 저녁, 발레 안나 카레니나 보러 갔다가 입장까지 시간이 남아서 산책하다 찍은 사진. 마린스키 신관.

 

아아, 추위가 그리워! 페테르부르크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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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그저께와 어제는 기온이 많이 낮았지만 하늘이 쨍한 날씨였으나..

오늘은 기온은 영하 3도에서 1도 정도로 따스했지만... 눈이 펄펄 내리고.. 아침엔 쌓였고 낮엔 기온 올라가서 그 눈이 다 녹으면서 길바닥은 진창으로... (이 진창 너무 싫다 ㅠㅠ)

 

이렇게 눈 오고 날씨 안 좋은 날은 무조건 박물관 가는 날이라서. 아껴뒀던 러시아 박물관 다녀옴. 숙소에서 10분도 안 걸리기 때문에 좋긴 한데...

 

오늘 가는 날이 장날인지. 전시실 몇개는 수리 중이고 원래 있던 그림들 중 다수가 투어를 갔거나 아니면 전시품 교체 기간에 딱 걸렸나보다(소장품이 많아서 가끔 그림들을 바꿔놓는다) 그래서 슬프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프 박스트 그림은 두 점 밖에 없고.. 제일 좋아하는 supper도 없고.. 크람스코이와 니콜라이 게도 오늘은 없고... 어흑... 대신 소모프를 비롯한 화가 그림들이 추가되긴 했지만... 나에게 박스트를 돌려달라고요 흐흑,..

 

20세기 소련 미술의 경우에는 오히려 추가되고 변경된 그림들이 전에 본 것들보다 맘에 들었다.

 

브루벨은 그래도 그대로 있어서 다행이었다 ㅠㅠ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러시아 박물관에 자꾸자꾸 가는 이유가 뭔데요 ㅠ 박스트와 브루벨, 게, 그리고 금발의 가브리엘 이콘 때문인데 ㅠㅠ 그래도 브루벨과 가브리엘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나와서는... 오늘 정말 운이 없었다. 코뉴셴나야 거리 쪽에 로모노소프 가게가 하나 더 있는데(보통은 네프스키 중심가에 있는 쪽으로 간다만) 거기로 가려고 했다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정신도 없고 눈 때문에 그랬는지 아무리 걸어도 가게가 안 보이고.. 평소엔 잘만 들렀던 곳인데. 멍때리고 걷다가 골목을 잘못 들었더니 빠져나가는 골목이 없어서 어느새 모이카 운하 지나 궁전광장에 와 있고 ㅠ 완전히 뺑뺑이 돌고 고생했다. 나 초짜 관광객도 아니고 심지어 여기 살았던 사람인데 왜 이러지 ㅠㅠ

 

눈오고 길 진창이고 바람 불고.. 하여튼 많이 고생. 너무 녹초. 배도 고프고..

그래서 오늘 찻잔 사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감.

 

그러나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것이다. 뺑뺑이 돌고 녹초가 된 가운데 너무 배가 고파서 헤매다 우연히 발견해 들어간 카페가 정말 최고였다. 간판과 유머러스한 메모에 끌려 들어간 곳인데 여기서 최고의 우하(생선 수프)를 만났다. 그리고 미소가 해사하고 매우 친절한 젊은 남자 직원도 만났고, 카페는 너무나 내 마음에 들었다. 맛있는 거 먹고 몸 녹이고 친절한 대화를 나누고 나오자 길 잃고 뺑뺑이 돌았던 고통이 눈녹듯 스러졌다. 그 카페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올려보겠다.

 

그럼 오늘의 사진 몇 장. 오늘은 날씨 안 좋아서 dslr 대신 후지x 디카 들고 나가서 화질은 그냥저냥. 여기는 눈 올때랑 안 올때랑 동네 분위기가 너무 다르다니까 ㅠㅠ 전에 올렸던 이 동네 사진들과 비교해보세요~

 

맨 위는 진눈깨비에 가까운 눈이 쏟아지고 있는 오전의 예술 광장.

 

 

우리 푸쉬킨도 눈 맞고 있다 ㅠㅠ

 

눈 오는 가운데에도 꿋꿋하게 푸쉬킨 머리랑 어깨엔 비둘기가 앉아 있다. 네놈들 저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알기나 하냐!!

 

 

푸쉬킨.. 춥겠다 ㅠㅠ

 

근데 클릭을 잘못했나, 서명이 왜 이렇게 안쪽으로 밀렸지.. 고치려니 귀찮다. 그냥 놔두자 ㅠ

 

 

 

 

 

전시 보고 러시아 박물관에서 나오는 길. 열린 정문 너머로 푸쉬킨이 보인다.

 

 

 

그리보예도프 운하 쪽으로 나왔다. 도자기 가게 가려고... 이때만 해도 몰랐지, 뺑뺑이 돌 줄은..

 

지금도 뭔가에 홀린 것 같네. 왜 길을 못 찾았지 ㅠㅠ 왜 모이카 운하를 삥삥이 돌아 궁전광장 쪽으로 갔나 어흑.. 조금 덜 걸어보려고 엘리세예프 가게 근처에 있는 로모노소프 대신 코뉴셴나야 근방 로모노소프로 가려고 했던 건데 서너배는 더 걸었네.. 뺑뺑이 도느라.. 어헝 ㅠ

 

 

 

 

 

하여튼 그렇게 오늘의 메모는 끝.

내일은 제발 날씨가 좋기를... 내일은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에서 발레 돈키호테를 본다. 레베제프의 충격적인(나쁜 의미 ㅠ) 라 바야데르 때문에 빈정 상했지만..(http://tveye.tistory.com/3504) 내일은 이반 바실리예프가 바질을 추니까 설마 괜찮겠지..!!

 

그러고 보니 한국은 이미 자정이 넘어서 설날이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추가 : 그 카페에 대한 소개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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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