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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마음의 위안 예약 포스팅은, 내 마음을 녹이는데 빠질 수 없는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

 

3.31 프리미어로 공연한 유리 스메칼로프 재안무의 청동기사상(메드느이 브사드닉)의 한 장면. 작은 배를 타고 약혼녀 파라샤에게 찾아온 예브게니 역.

 

사진은 Natasha Razina

 

 

아아, 이 사람은 짙은 녹색도 왜 이렇게 잘 어울린단 말이냐.. 게다가 저 호감가는 청년이 홍수로 약혼녀를 잃고 실성해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장면을 어찌 눈뜨고 볼 수 있으리오 ㅠㅠ

 

그런데 보고 싶다... 영상이라도 좀 올라오면 좋으련만 다음날의 비슈뇨바 공연은 마린스키에서 생방으로 보여주고 이 공연은 안 보여줌... 관객 반응을 보니 테료쉬키나와 슈클랴로프의 듀엣은 아주 좋았고 특히 슈클랴로프가 마지막에 광란할 때 많이들 울었다고 한다. 나도 보고 싶어 엉엉...

 

 

 

 

 

좋아해마지 않는 그의 솔로르...

 

터번 쓰고 있는 걸 보니 이건 아마 2013년 자신의 베네핏 공연 때인 듯.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 좋아지는 사진이라 화질은 별로 안 좋지만 올려본다. 작년 빅토리야 테료쉬키나 특별 갈라 공연 마지막 무대. 아마 다 끝나고 앙코르 공연으로 스메칼로프가 안무한 스패니쉬 댄스 추고 나서일 것이다. 테료쉬키나 매우 부럽구나!! 코르순체프가 번쩍 들어서 어깨에 앉혀주지.. 주변에 저 많은 마린스키의 내로라하는 남자 무용수들이 그녀를 받들어 모시고 있는 저 장면~~ 누구누구 있는지 한번 찾아보세요 :) 우리의 김기민씨도 있고..

 

맨 앞에서 '나 이쁘지롱~' 하는 포즈로 귀엽게 짠~ 하고 있는 것이 슈클랴로프. 역시 꽃돌이라서 장미꽃들 한가운데 앉아 포즈 취하고 계심. 그래도 네가 빅토리야보다 더 이쁘면 어떡하니 :) (완전 콩깍지)

 

 

 

 

 

마지막 사진은 최근, 디아나 비슈뇨바의 인스타그램에서.

 

블라지미르 말라호프와 디아나 비슈뇨바! 주말에 있었던 마린스키 발레 페스티벌 비슈뇨바 특별 공연(스승에게 바치는 무대였다)에 출연하기 위해 날아온 말라호프와 함께 :)

 

 

 내가 좋아하는 두 무용수도 모자라 아름다운 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에서 찍은 사진이라 마음의 위안을 아니 줄 수가 없다. 게다가 둘다 어찌나 스타일리쉬하신지.. 비슈뇨바의 저 녹색 숄 너무 예쁘다! 살짝 보이는 신발도 예쁘고.

 

 

 

 

:
Posted by liontamer

 

앞서 올린 첫번째 챕터(http://tveye.tistory.com/3390) 에 이어 두번째.

 

* 이 글을 무단으로 전재, 배포, 복제, 인용하거나 퍼가지 말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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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els

пасхальный рассказ

 

 

 

 

- 2 -

 

 

 

그건 부활절을 앞둔 주말이었다. 엄마는 목요일에 툴라의 외할머니 댁에 가면서 나와 아냐를 아빠에게 맡겼다. 좋은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뉴욕 공연에서 막 돌아온 미샤가 금요일 저녁에는 스케줄이 없다면서 아르바트에 새로 생긴 그루지야 레스토랑에 우리를 데려갔다. 나와 아냐는 맛있는 음식을 정신없이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미샤에게 뉴욕 얘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아빠는 미샤가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됐고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다음날 공연 리허설을 했으니 좀 기다리라고 우리를 달랬지만 미샤는 먹는 것보다 우리와 얘기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미샤는 뉴욕 관광 같은 건 하나도 못했다. 자유의 여신상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전부 못 가고 사흘 내내 극장과 리셉션 파티장과 호텔, 대사관 행사장만 돌았다면서 아쉬워했다. 아빠가 미샤의 접시에 음식을 얹어주면서 의아하게 물었다.

 

“ 마리야는 대사관엔 안 갔다던데. 어쩌다 거기까지 끌려갔어? ”

“ 스비제르스키가 자선 파티를 열었어. 백악관 관계자들을 불렀다나. 마리야는 행운이었지, 커튼 콜 때 무릎을 삐끗해서 호텔에 누워 있었거든. 안 그랬으면 같이 갔을 거야. 나도 그랬으면 좋았을 걸, 보드카나 들이부었으면 안 가도 됐을 텐데. ”

“ 그런 건 그냥 일이라고 생각하라고 했잖아. 농담이라도 그런 생각은 하지 마. 보드카 같은 소리. 한 모금만 마셔도 정신 못 차리는 주제에. ”

“ 어차피 내 방 미니바에는 물하고 우유 밖에 없었어. 알콜은 하나도 없더라고. 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마리야 방에 갔더니 냉장고에 듣도 보도 못한 술병들이 가득 차 있었어. ”

“ 너 술 못 마시는 거 알고 미국인들이 신경써준 건가? ”

“ 아니. 크라베츠가 손쓴 거야. 대사관 가기 전에 불러서 엄포를 놓더라고. 거기 가서도 샴페인이고 와인이고 손도 대지 말라고. ”

“ 왜? 스비제르스키도 아니고 크라베츠가? 그렇게 자상한 인간은 아닐 텐데. 극장에 대해선 관심도 없고. 백조랑 호두까기 구분도 못할걸. ”

“ 글쎄. 그 대단하신 정치가들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 아마 백악관 양키들 앞에서 볼쇼이 무용수가 취해 흐느적거리는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겠지. ”

 

아빠가 미샤의 접시를 포크로 탁 때렸다. 미샤는 나와 아냐 쪽을 힐끗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우리 앞에서 술 얘기도 모자라 양키 운운하는 단어를 써서 그런 것 같았다. 잠시 미샤는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생각난 듯 가방을 열더니 나와 아냐에게 선물을 주었다. 아냐는 굉장히 귀여운 곰 인형을 받자 꺅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애는 곰 인형이라면 사족을 못 썼다. 아냐가 인형을 안고 노래를 부르며 좋아하는 동안 미샤가 내게 크고 멋진 책을 한 권 주었다. 입체 그림책이었다. 근사한 그림들이 스프링처럼 튀어나와 좍 펼쳐졌다. 귀여운 여자애랑 토끼도 있고 도마뱀도 있고 과자와 티포트, 심지어 트럼프들도 있었다. 그렇게 호화스럽고 예쁜 책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너무 정신이 팔려서 아냐도 나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안 한 것 같았다. 미샤는 개의치 않았다. 우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그날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시차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지 내내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는데 그렇게 웃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마침내 나는 그림에서 시선을 돌려 동화책의 내용을 읽어보려고 했다. 그리고 꼬불꼬불하고 생소한 글자들을 발견했다.

 

“ 이게 뭐야? 영어야? ”

“ 응. 뉴욕 서점에서 샀더니 우리말로 된 게 없었어. ”

“ 난 영어 모르는데. 아빠는 알아? ”

“ 아빠는 조금밖에 몰라. 미샤가 알 거야. 읽어달라고 해봐. ”

 

그러자 미샤가 책을 읽어주었다. 그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맨 처음에 미샤는 우리말로 번역해서 읽어주었지만 나도 아냐도 생전 처음 보는 영어 그림책이 신기해서 영어로 읽어달라고 졸라댔다. 미샤는 아무도 우리 쪽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더니 한 페이지씩 영어로 읽은 후 우리말로 번역해 가며 끝까지 책을 읽어주었다. 내용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어쨌든 그림책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냐는 완전히 홀려서 꼼짝도 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입체 그림보다도 책의 내용이 더 재미있었다. 어쩌면 미샤가 읽어줬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미샤는 목소리도 좋았지만 연기도 잘했기 때문이다. 발레 무대에서야 대사가 없으니 그럴 기회가 없었지만 이따금 푸시킨 동화책이나 시를 읽어줄 때면 진짜 훌륭했다. 나는 아직도 미샤가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읽어주는 걸 몰래 녹음했던 테이프를 간직하고 있다. 하도 많이 들어서 절반쯤은 완전히 늘어져버렸지만. 그 앨리스 얘기도 붉은 여왕이 목을 치라고 무시무시한 명령을 내리는 장면을 읽어줄 땐 소름이 오싹할 정도였다. 아빠조차도 휘파람을 불었다.

 

“ 미셴카, 그렇게 무서운 붉은 여왕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붉은 여왕이 아니라 이반 뇌제 아냐? ”

“ 너무한데, 나름대로 여자 목소리 내보려고 노력했다고. ”

“ 여왕 목소리 같았어! 진짜야! ”

 

아냐와 난 열띠게 편을 들어주면서 빨리 다음 장을 읽어달라고 아우성쳤다. 마침내 미샤가 책을 끝까지 다 읽어줬을 때 우리는 너무 아쉬워서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우리는 미샤가 평소처럼 아빠의 집으로 같이 가서 놀다가 자고 갈 거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그가 극장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아냐는 엉엉 울었다. 미샤는 아냐를 안아주면서 부드럽게 달랬다. 언니가 된다는 건 참 불공평했다. 나도 아냐처럼 어렸다면, 아니, 동생이었다면 저렇게 막무가내로 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럼 미샤가 저렇게 번쩍 안아줬을 텐데.

 

아빠는 아냐에게 미샤가 내일 낮에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대신 저녁에 우리 집에 올 거고 같이 부활절 계란에 색칠을 하며 놀 거라고 했다.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연신 진짜냐고 물었고 미샤는 정말 올 거라고 약속했다. 안심한 아냐가 곰 인형을 다시 안고 깜박 잠들었을 때 미샤는 아빠에게 날 공연에 데리고 오라고 했다. 아빠는 잠깐 고민하는 눈치였다.

 

“ 그거 봐도 될까? ”

“ 왜, 지젤도 봤는데. 비슷하잖아. ”

“ 얘가 지젤을 보다니, 언제? 나스챠가 못 보게 했는데. ”

“ 작년에 키로프에서 내가 데려갔었어. ”

 

미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아빠는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내 쪽을 보면서 앞으로 이런 일은 아빠에게도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미샤와 둘이 비밀을 만들면 아빠가 속상할 거라고 했다. 어쩐지 큰 잘못을 한 것 같아서 울기 직전이었지만 미샤가 편을 들어주었다.

 

“ 애들이라고 못 보는 게 어디 있어. 우리도 열 살 때 발레학교 들어갔잖아. 그때부터 극장 무대에도 올라갔는데. ”

“ 그건 호두까기나 엄지동자 같은 거였지. 라 바야데르는 아니잖아. ”

“ 난 그거 일곱 살 때 봤다고. 라라 나이 땐 키로프 레퍼토리는 전부 다 꿰고 다녔어. ”

“ 아, 누가 말렸겠어. 어마어마한 말썽꾸러기였겠지. 안 봐도 뻔해. 밤마다 기숙사 창문을 넘었겠지. ”

 

아빠는 웃더니 날 데리고 낮 공연에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샤에게 연습실에 오래 있지 말고 빨리 들어가 자라고 했다.

 

 

*   *   *

 

 

토요일 낮에 아빠는 약속대로 날 극장에 데려가 주었다. 아냐가 친구 생일 파티에 가서 다행이었다. 만약 나 혼자 미샤의 공연을 보러 간다는 걸 알았다면 하루 종일 울고불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

 

낮 공연이었는데도 좌석은 매진이었다. 아빠의 손을 잡고 위층 카페에 올라가다 꽃다발을 든 여자들이 안내원 할머니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는 할머니도 있었지만 인사를 할 수도 없었다. 주스를 마시면서 아빠에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 미샤 팬들이야. 꽃은 안내원들에게 맡겨야 되는데 자꾸 가지고 들어가려고 해서 그래. ”

“ 그 언니들은 극장에 안 와봐서 그런 거야? 가지고 들어가도 소용없잖아. 무대에 올라가서 줄 수도 없는데. ”

“ 오케스트라 핏 앞으로 와서 무대로 꽃을 던지는 여자들이 있어. ”

“ 우와, 거기까지 꽃을 던지려면 팔 힘이 세야겠네. 나도 해보고 싶어! ”

“ 라루샤, 그러면 안 되지. ”

“ 왜? 나도 미샤한테 꽃 주고 싶어. 무대로 못 올라가더라도 커튼 콜 때 얼굴 보면서 주고 싶단 말이야. ”

“ 연주자들 머리 위로 꽃이 떨어지잖아. 무례한 행동이야. 극장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안 돼.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미샤가 추고 나면 그 자리에서 꽃을 던지거든. 그건 무용수한테도 결례야. ”

“ 왜? 나 같으면 기분 좋을 텐데.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거잖아. ”

“ 발레는 나 혼자만 잘하고 칭찬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야. 남자가 추고 나면 발레리나가 이어서 또 추잖아. 파트너에 대한 결례야. 그리고 바닥에 꽃이 떨어져 있으면 밟고 미끄러질 수도 있어서 위험해. 키로프에 있을 때도 그래서 미샤가 꽃을 다 줍고 들어가야 했어. ”

 

난 아빠의 말을 이해하긴 했지만 그래도 무대로 곧장 꽃을 던지는 게 굉장히 낭만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날 미샤가 춘 건 라 바야데르의 솔로르였다. 그 공연을 보았을 때에야 난 미샤가 지젤에 대해 했던 말을 이해했다.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며 무대의 배역은 누가 언제 어떻게 추느냐에 따라 언제나 다르다고.

 

라 바야데르는 여러 모로 지젤과 비슷했다. 사랑을 약속한 무희를 공주님과 약혼한다고 버려서 죽게 만드는 남자 주인공이 나왔다. 하지만 이쪽은 좀 더 무시무시해서 여주인공 니키야가 공주님과 칼부림을 하며 사랑싸움을 하고 급기야 꽃바구니에 숨겨진 뱀에 물려 죽어버렸다. 그런데도 남자 주인공 솔로르는 니키야를 구해주지도 않고 그녀가 보는 앞에서 공주님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기까지 했다. 마음 한 구석으로는 진짜 나쁜 놈이란 생각이 들었고 화가 나야 당연할 것 같았는데 놀랍게도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중에 친구들은 내가 솔로르를 본 게 아니라 내내 미샤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했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았다. 그 세 시간짜리 공연 내내 난 무대 위에서 날아오르고 춤을 추고 때로는 사랑을 속삭이고 때로는 괴롭게 몸부림치는 솔로르를 보고 있었다. 그게 미샤라는 생각은 커튼 콜 전까지는 전혀 들지 않았다. 깃털 달린 터번과 보석처럼 빛나는 구슬이 박힌 아름다운 의상을 입고 무대를 오가는 그 솔로르는 지그프리드 왕자님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심지어 연적을 없애려고 했던 공주님의 심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상 속에서 온통 새하얀 유령들에게 휩싸여 사랑하던 여자의 영혼 앞에서 무릎을 꿇는 그 솔로르라면 용서해주고 싶었다.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다른 무용수가 솔로르를 춘 라 바야데르를 꽤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미샤의 그 공연만큼 날 사로잡았던 솔로르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공주의 살인을 정당화해주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솔로르, 그리고 어떻게든 용서해주고 싶은 솔로르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공연을 마치고 무용수들이 인사를 하러 나왔을 때 결국 안내원 몰래 꽃을 반입하는 데 성공한 열성 팬들이 달려 나와 오케스트라 핏 너머로 꽃다발을 내던지고 정신없이 미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과 환성과 갈채를 보냈다. 놀랍게도 꽃다발들은 전혀 연주자들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았고 꽃잎이 흩날리지도 않았다. 나중에 백스테이지에 가서 미샤를 만났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꽃다발들 아래쪽에 예쁜 리본이나 스카프로 묶인 묵직한 상자가 달려 있었다. 상자 무게 덕에 휙 날아간 것 같았다. 상자 안의 내용물들은 각양각색이었는데 미샤는 힐끗 보더니 초콜릿 상자를 찾아내 내게 주었다. 까만 레이스 리본이 달린 화려한 상자를 보고 궁금해서 만져보려는데 아빠가 내 손을 잡아당기며 경고하는 말투로 이름을 불렀다.

 

“ 라라. ”

“ 잘못했어. 너무 예뻐서 궁금해서 그런 거야. 미셴카, 열어보면 안 돼? ”

“ 돼. 열어봐. ”

“ 아니, 라라는 안 보는 게 좋겠어. 그 초콜릿 먹고 잠깐 나가 있자. 미샤는 옷도 갈아입어야 하잖아. ”

“ 이럴 때면 영락없는 아저씨라니까. 늙고 있어, 스탄카.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다는 걸 벌써 잊다니. ”

 

미샤가 악의 없는 태도로 아빠를 놀렸다. 둘은 말을 놓는 사이이긴 했지만 아빠는 미샤보다 열네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미샤에게 아저씨 소리를 들은 아빠는 한숨을 쉬었지만 결국 내가 상자를 열도록 내버려 두었다. 뚜껑을 연 순간 난 아빠 말을 들을 걸 하고 후회했다. 안이 다 비치는 얇고 까만 레이스로 그물처럼 엮여 있는 엄청나게 야한 여자 속옷이 굴러 나왔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서 난 상자를 떨어뜨렸고 아빠 뒤로 달려가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감췄다. 아빠는 날 야단치는 대신 웃어버렸지만 잠시 후 미샤를 꾸짖었다.

 

“ 애한테 이런 거 보여주지 마. ”

“ 뭐가 어때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지. 라루츠카, 1막이랑 2막에서 니키야가 입었던 의상 생각 안나? 그거랑 비슷한 거야. ”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난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져서 그 예쁘고 야한 속옷을 집어 올려 샅샅이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 근데 왜 이런 걸 주는 거야? 이건 여자 거잖아. 입을 수도 없는데. ”

“ 나야 당연히 못 입지. 그래도 가끔 이런 선물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

“ 왜? ”

“ 자기가 입은 걸 보여주고 싶지만 그게 어려우니까 옷만 주는 거야. ”

“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서? 그 공주님처럼? ”

“ 글쎄. 그건 잘 모르겠어. ”

“ 저런 거 선물해주는 여자들 하나하나랑 다 결혼하려면 참 힘들겠네. 자, 라루샤. 나가 있자. 그래야 미샤가 빨리 갈아입고 나올 수 있지. 분장도 지워야 하잖아. ”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돼? 나쟈랑 비카가 꼭 미샤랑 찍은 사진 보여 달랬어. 분장하고 의상 입은 걸로... 지금까지 입었던 것 중에 이 옷이 제일 예쁘단 말이야. ”

“ 아, 라라는 푸른색을 좋아하는구나. 해적에서 입은 옷도 좋다고 했잖아. 이리 와, 같이 찍어. 스탄카가 찍어줄 거야. ”

“ 파란 옷도 예쁘지만 그 팔찌랑, 허리띠랑 깃털 터번이랑... 전부 예뻐. 진짜 보석 같아. ”

 

그러자 미샤가 팔찌를 풀어 내 손목에 채워 주었다. 내겐 너무 커서 두 번 돌려야 했다. 물론 그건 진짜 보석이 아니라 예쁜 구슬과 섬세하게 세공된 테두리가 달린 장신구였지만 그래도 난 너무 흥분해서 기절할 뻔 했다. 미샤는 터번도 풀어주려고 했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그 새하얀 깃털과 보석 구슬 박힌 터번을 두르고 있는 미샤가 너무 근사했기 때문이다. 미샤는 뒤에서 내 허리를 잡고 살짝 발레리나 같은 포즈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난 있는 힘껏 발끝으로 서서 버텼지만 아빠가 셔터를 누르고 나자 헉헉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부러지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가 둘 다 무용수였는데 난 왜 이렇게 뻣뻣한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미샤는 배운 적이 없어서 그런 거지 이만하면 꽤 유연하다고 칭찬해 주었다.

 

사진을 찍은 후 아빠는 내 손목에서 팔찌를 풀었다. 극장에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너무 갖고 싶었지만 무대 의상과 장신구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가 나오려고 했을 때 세료쟈 아저씨가 들어와 미샤에게 마사지를 해 주었다. 무용수들은 공연 후에 가끔 마사지를 받는 편이었으므로 별다른 일은 아니었지만 아빠는 얼굴을 찌푸렸다.

 

“ 어깨는 다 나은 줄 알았는데. 무대에서도 티 안 났는데 다시 아픈가? ”

“ 미셴카 어깨 아파? ”

“ 아니야, 내려가자. 너 초콜릿 자꾸 먹으면 저녁 못 먹는다. ”

 

걱정이 되어 문을 닫으면서 안을 다시 들여다보다 미샤가 상의를 벗는 것을 발견하고 부끄러워져서 딸꾹질이 나왔다. 장식이 많이 달려 있어서 그런지 세료쟈 아저씨가 벗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다가 미샤의 어깨와 등 위쪽에 피멍이 여러 개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굉장히 아팠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무용수는 너무 힘든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발레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가 반대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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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3장의 부활절 파티로 이어진다. (http://tveye.tistory.com/3393)

물론 소련 시절에야 러시아 정교는 탄압을 받았고 교회들은 폐쇄되었지만 정교 신자들은 많이 남아 있었고 부활절 달걀이나 과자 만드는 풍습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 얘기는 내일..

 

라 바야데르와 솔로르에 대한 이야기들은 dance 폴더에서 라 바야데르로 검색하면 여러 동영상과 리뷰, 사진 등을 볼 수 있다. 그래도 아쉬우니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의 솔로르 사진 한 장. 전에 올렸었지만..

 

 

 

 한 장으로는 아쉬우니.. 코끼리 타고 등장하시는 슈클랴로프 솔로르 사진 한 컷 더 :0

 

** 미샤가 키로프에서 췄던 라 바야데르에 대한 얘기는 여기 : http://tveye.tistory.com/2195

 

** 미샤와 라라 자매, 일린이 아르바트의 그루지야 식당에서 밥을 먹는 장면이 있어서..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 풍경 사진들 : http://tveye.tistory.com/3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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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