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리온 호텔의 작은 기억들 2017-18 praha2024. 6. 8. 16:46
이런저런 호텔방 시리즈는 계속되고... 나중에 호텔 시리즈로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다. 우아하고 근사하고 비싼 호텔은 별로 없고(가뭄에 콩나듯 두세개 있으려나) 그냥 여행지의 작은 호텔들 :)
이건 2017년 5월말~6월초의 프라하. 구시가지의 들로우하 거리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요세포프 끝자락과 체추프 다리 사이에 있는 클라리온 호텔이다. 여기는 위치가 올드타운 중심지는 아니어서(좀 걸어야 함) 비슷한 가격 대비 다른 호텔들에 비해 방이 좀더 넓었고 조그만 발코니도 딸려 있어 좋았다. (그런데 요새 다시 검색해보니 그 사이 가격이 많이 올라서 더이상 좋은 선택지가 아니게 되었다 ㅠㅠ 전반적으로 프라하 물가가 정말 많이 올랐다) 이 방은 프라하에서 묵은 숙소들을 놓고 보면 널찍했고 시원해서 좋았다. 다만 위치가 딱히 좋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동네들에 가려면 많이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 단점이었고 근방에 큰 마트가 없었다. (이때는 교통카드 어플 같은 게 없었거나 내가 몰랐음) 그래서 여기 묵을 땐 주로 구시가지 위주로 걸어다녔다. 며칠 후엔 말라 스트라나의 다른 호텔로 옮겼다.
이 방은 작은 발코니가 딸려 있었지만 나가서 놀지는 않았다. 창 너머로 좀 우중충한 체추프 교각과 약간은 황량한 블타바 강이 보였다(좀더 왼쪽으로 거슬러올라가 마네수프 다리나 카를교 쪽으로 가야 블타바 강 풍경이 화려해짐) 이 사진은 볼때마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져서 좋아한다. 저격수나 암살자, 탐정 뭐 그런 사람이 이렇게 창 너머로 바깥을 보며 뭔가 행동을 준비 중... 혹은 반대로 창 너머 빨간 차에서 미행하는 인간이 이 방을 지켜보고 뭐 그런 느낌이랄까.
이 사진은 생각없이 찍었던 것 같은데 거울에 비쳐서 구도가 신기하게 나와서 좋다. 이 방에 묵었던 때는 날씨가 무척 습하고 더웠다. 32도까지 올라갔던 시기였다. 이때 나는 당일치기로 드레스덴에 가서 영원한 휴가님과 처음 만나기도 했고, 나중에는 료샤가 놀러와서 이 방 창가에 앉아 볶음너구리와 유부우동, 산딸기와 서양자두를 먹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래선지 이 방과 이 호텔에 대한 기억이 좋게 남아 있다. 엄청 덥고 습해서 헉헉거리며 방에 돌아와 시원한 시트 위에 늘어져 쉬다가 창 너머로 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기도 했다.
방의 실체는 이렇다 :) 그냥 평범한 (프라하의) 4성 호텔 방.
여기는 요세포프와 가까워서 내가 예전부터 자주 갔던 베이크숍 프라하에 들러 티라미수를 사와서 이렇게 창가에서 먹었다.
료샤가 왔던 날. 아직 오기 전. 비오기 직전의 엄청난 습기와 더위에 지쳐서 뻗었을 때. 오른쪽 조그만 땡땡이 주머니는 구시가지 광장에 갑자기 깔린 좌판에서 샀던 라벤더 포푸리. 불면증이 있는 나는 저 주머니를 한국으로 가져가 베개맡에 두고 잠을 청하곤 했다. 뼈가 앙상한 토끼발 ㅠㅠ (어째선지 다 둥실둥실한데 발은 앙상...)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 구경.
이건 신시가지 테스코의 화장품 코너에서 건져온 아이라이너. 가져갔던 아이라이너가 다 돼서 새로 사야 했는데 당시 첨보는 브랜드였고 너무 가격이 저렴해서 수지맞았다는 기분으로 은색과 검정색 두개를 샀다. 그런데 싼게 비지떡이라 아주 질이 안 좋아서 뭉개지고 번지기 일쑤라 조금 쓰다가 말았다 ㅠㅠ 사진을 보고서야 아 맞아 나 저런 거 샀다가 망했었어 하는 기억이 되살아나서 올려본다.
** 료샤가 왔던 날 이야기는 아래. 나는 료샤가 프라하에 오면 언제나 만다린 오리엔탈이니 힐튼이니 운운 비싼 호텔에만 묵었다고 생각했는데 예전 사진과 메모들을 보니 이녀석이 나때문에 툴툴대며 내가 묵었던 (저렴한) 호텔들에도 두어번 묵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고맙네. 이녀석 요즘 잘 지내고 있으려나 ㅠㅠ 연락 못한지 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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