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5 목요일 저녁 : 존 레넌 벽(스밀라님 생각), 오노 요코? 새로운 카피치코, 아이스 맥심이 간다~ 2016 praha2016. 9. 16. 02:41
앞선 포스팅대로 정오부터 맥주와 굴라쉬로 아점을 먹고.. 몽롱하게 좀 늘어져 있다가 오후에 다시 호텔을 나섰다. 어제 료샤랑 폰으로 검색해서 알아낸 결과! 카피치코는 미셴스카 거리에서 말테세 광장 쪽으로 옮긴 것이었다!! 내가 머무는 호텔에선 미셴스카보다 말테세 광장이 좀 더 가깝다.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원래는 료샤랑 오후에 카피치코에 가기로 했지만 다량의 맥주와 돼지무릎 덕에 숙취에 시달린 그는 늦잠을 잤고 미팅 시간도 좀 늦추는 바람에(불쌍한 상대방 ㅜㅜ 내가 상대방이라면 도대체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라 생각할듯) 오후 늦게나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나 혼자 갈게~ 있다가 봐~' 라고 했더니 료샤가 섭섭해했다.
료샤 : 나도 맛있는 커피 마시고 싶은데 ㅠㅠ 오늘 약속 장소는 커피 맛없어. 그래서 안 마시고 있다가 너랑 카피치코에서 마시려고 했는데 ㅠㅠ
나 : 커피 마시지 말고 와. 내가 카피치코보다 더 맛있는 커피 줄게.
료샤 : 다른 카페가 또 있어?
나 : 맥심 아이스 가져왔다!
료샤 : 아흐, 우흐, 오흐, 류블류 찌뱌!!!
(앞의 세 단어는 노어의 감탄사 ㅋㅋ 뒤의 문장은 '사랑해~'임 ㅋㅋㅋ 아재 입맛에게 맥심 아이스를 주면 뜬금없는 사랑고백을 받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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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와 굴라쉬 때문에 배도 덜 꺼졌고 자꾸 졸려서 좀 걸어야 할거 같았다. 그래서 뒷골목 산책을 하고 말테세 광장과 네루도바 쪽 뒷골목, 캄파 쪽을 좀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존 레넌 벽에 갔다. 여기 가면 블로그에 가끔 들러주시는 스밀라님 생각이 난다 :)
역시 오랜만에 왔더니 벽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땐 겨울이라 좀 황량한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해가 찬란해서 그런지 색이 더 선명하고 강렬했다. 그때보다 오늘이 더 좋았다.
(딱 하나 맘에 안 들었던 건 담장 꼭대기 어디에 크게 욱일승천기 무늬가 그려져 있던거 -_- 페인트라도 갖고 와서 지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평화를 노래하던 존 레넌 벽에 전범기 무늬가 웬말이야 ㅠㅠ 뭐 서양애들이야 몰라서 그랬겠지... 그래도 난 기분 안 좋았음. 그래서 벽 전체 사진은 안 올린다. 그 무늬가 나와있어서 ㅠㅠ)
나는 존 레넌 솔로보다는 비틀즈 때가 더 좋았지만... 비틀즈 노래를 들으면 중학생 시절이 생각난다.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를 처음 산 후 비틀즈 베스트 테이프를 사서 늘어지도록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구석구석 낙서를 구경하고 문구를 읽고 좀 놀았다. 서너명이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나는 길 잘 가르쳐주고 사진도 잘 찍어줄 거 같은 이미지인 거야... 길 가르쳐주는 별 아래에서 태어난 토끼인 거야)
심지어 어떤 남자애들은 나에게 '오우, 스컬! 투게더! 롹 스피릿~ 오예~' 라며 락앤롤~ 포즈를 취하며 사진까지 같이 찍었다. (나 오늘 해골무늬 긴팔 티셔츠 입고 있었음 ㅋㅋ) 걔들도 영어권 애들은 아니었는데 대낮부터 병나발 불고 신났다(근데 뭐 나도 낮술 마시고 와서 ㅋㅋ) 훌리간들은 아니었고 그냥 신난 상태에서 해골옷 입은 나를 보고 동질의식을 느낀듯.... (머리 빨강노랑 물들이고 징박힌 재킷 입고 마냥 신난 애들이었음)
그리고는 '굿~ 나이스~ 아우어 오노 요코~' 하며 박수를 쳐주었다. 내가 동양 여자라서 그런거까진 알겠는데! 야! 오노 요코 못생겼잖아! (오노 요코 팬들 미안합니다 ㅠㅠ 근데 제 눈엔 안 예쁘다고요) 나 오노 요코 하나도 안 닮았는데! 차라리 '굿~ 나이스~ 아우어 래빗~' 이러든가 ㅋㅋㅋ 근데 존 레넌 벽 앞에서 오노 요코 소리 들으며 박수받은 건 뭔가 칭찬이라고 믿고 싶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그리고 오노 요코 나름대로 스타일리쉬하고 멋있었으니 칭찬이라고 생각하자!
(근데 또 생각해보니 오노 요코랑 존 레넌 누드 사진들이 막 떠오르면서... 잉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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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치코가 정말 있었다. 그것도 내가 몇번이나 지나쳐간 골목 귀퉁이에 있었다. 말테세 광장 한쪽... 예전에 우 말레 벨리비라는 작은 해산물 식당이 있었던 곳에... 가슴이 뛰었다. 반가웠다. 없어진 게 아니었구나... 그냥 이사간 거길 바랬는데 정말이구나... 다행이다.
전보다 좀더 좁아졌다. 그리고 전에는 안쪽 홀에 어린이용 동화책이랑 인형이 많았는데 그것도 많이 없어졌다. 그땐 젊은 여점원이 빵끗 웃으며 맞아줬는데 이번에 갔더니 처음 보는 나이든 아저씨가 문가 테이블에 어떤 손님이랑 같이 앉아 있다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손님인가 했는데 알고보니 주인이었다. 여기 전에 자주 왔었는데 주인 첨봤다!!!
나 : 안녕하세요. 여기가 미셴스카에 있던 그 카피치코 맞아요?
주인 아저씨 : 맞아요, 그 카피치코에요.
나 : 우와.... 미셴스카 갔었는데 다른 가게가 있어서 진짜 실망했어요. 없어진 줄 알았는데 너무 반가워요. 3년 전에 자주 왔었어요.
주인 아저씨 : 올해 부활절 즈음에 그쪽 닫고 7월에 여기 새로 열었어요. 기억해서 찾아주시다니 고마워요! 전보단 좀 좁아졌죠. 그래도 손님처럼 다시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 기쁘답니다.
나 : 제가 무척 좋아하던 곳이에요!
아저씨가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손으로 쓴게 그대로였다. 3~5코루나씩 오른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저렴했다. 역시 다즐링과 메도브닉이지!!!
카페에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괜히 맘이 짠했다. 미셴스카에 있을 때가 더 넓고 복작거렸던거 같아서. 아르바이트 점원 없이 주인 아저씨 혼자 하시나 싶기도 하고. 근데 나중에 또 막 사람들이 왔다. 여기는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그리고 단골이 많아서 들어오면 전에도 점원들과 그랬지만 이번에도 막 주인 아저씨랑 큰소리로 인사하고 반가워한다. 보기 좋다. 젊은 체코 아가씨 한명도 그렇게 밝게 인사하더니 내 앞쪽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워머와 포트에 나오는 잎차 다즐링. 그리고 49코루나(전엔 45코루나였지)의 저렴하지만 정말 맛있는 메도브닉. 여기 메도브닉은 그랜드 카페 오리엔트 메도브닉보다는 조금 더 포실포실하고 가루가 많지만 그래도 참 맛있다. 그 맛은 여전했다. 그리고 창 너머로 스며드는 햇살도 같았다. 행복했다.
노트북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수첩을 펼치고 글에 대한 메모를 좀 했다. 몇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올랐다... 에벨과 카피치코, 둘다 있어줘서 고마워요.
나중에 일어나서 계산을 했다. 팁과 함께. 그리고는 아저씨랑 잠깐 얘길 나누었다.
나 : 카피치코가 없어지지 않아서, 여기 있어서 너무 기뻐요!
주인 아저씨 : 저도 그래요.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계속 있을 거예요! 지금 유럽 여행 중이신가요?
나 : 프라하만요. 있잖아요, 저 사실 카피치코가 그리워서 미셴스카 거리에 가까운 쪽으로 숙소를 잡았답니다. 그래서 미셴스카에 갔을 때 너무 슬펐어요. 새로운 곳에 전처럼 있어줘서 행복해요.
주인 아저씨 : 진짜 보람있네요. 고마워요!!! 또 오세요 꼭 또 오세요!
나 : 또 올게요 :)
근데 나중에 잠깐 방에 돌아왔을 때에야 아저씨가 내게 준 계산서를 자세히 보고 웃었다 :) 귀여운 카피치코 명함에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써서 계산서를 만들어 주었다. 근데... 맨 아래에 일본말로 뭐라고 써 있었다. 히라가나였다. 히라가나는 몇글자밖에 기억이 안나는데 대충 아리가또 같긴 했다. 일어를 아는 쥬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뭐라고 씌어 있냐니까 아리가또 맞단다. ㅋㅋ 아마 나를 일본인으로 생각하셨나봄... 다시 가면 '저 일본인 아니에요 한국 사람이에요 그래도 고마워요~' 라고 말해주고는 '고마워요'나 '감사합니다'란 단어를 가르쳐줘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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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돌아와서 아이스 맥심을 챙겼다. 기다려라 친구야, 아이스 맥심이 간다 :)
저녁엔 료샤랑 같이 밥먹은 후 아이스 맥심 타주고 보름달 봐야겠다. 지금까진 맑은데... 달이 보였으면 좋겠다 :)
한국은 이미 추석이 지났겠구나... 다들 즐거운 명절 보내셨기를... 그리고 남은 연휴도 즐겁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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