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 불과 바람, 물과 돌 about writing2016. 3. 13. 18:32
지난주에 소년 시절의 미샤와 그의 오랜 후원자이자 정부인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첫 만남에 대한 단편 초반부를 약간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는 그 이후 쓴 수용소 배경의 프리퀄 2부에서 발췌한 것이다. 2부의 심리적 화자는 게오르기 벨스키이다. 역시 미샤의 예술적 후원자이며 그를 현재 본편인 가브릴로프로 보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후계자이기도 하다.
나는 지난주의 그 단편과 마찬가지로 이 수용소 소설도 지금처럼 많이 우울하고 힘들 때 썼다. 그때의 감정과 괴로움, 고민은 지금과 그 강도가 달랐고 이유도 조금은 달랐지만 어쨌든 그때도 나는 전락과 추락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추락에 대해 생각할 때 나는 사실 함께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내버려두고 올라왔다고 믿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 미샤는 언제나 페테르부르크, 당시의 레닌그라드와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아이 역시 그 사실을 잘 안다. 물론, 나보다도 더 잘 안다. 나에게 그 아이는 운하와 네바 강의 물결, 습한 안개와 차디찬 대리석의 도시, 그 유령의 도시에서 태어나 불길을 내뿜으며 날아다니고 때로는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고 꺼졌다 다시 켜지고 또 사라졌다 나타나는 바람일 것이다. 아마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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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난 지금도 벨스키는 미샤가 왜 그렇게 주변 사람들에게 강력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지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를 격렬하게 원하거나 격렬하게 미워했다. 중간은 없었다. 그게 다양하게 뒤섞인 혈통에서만 나올 수 있는 외모의 아름다움 때문인지, 아주 강인하고 단단하면서도 때로는 사춘기 소년 같고 때로는 양성적으로 느껴지는 그 무용수의 육체 때문인지, 혹은 언제나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 찌르는 듯한 시선과 결코 타인 앞에서 겁먹거나 물러서지 않는 태도 때문인지 똑바로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단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미샤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심신을 산란하게 만들었는데 완벽하게 정상이며 성적 도착과는 거리가 먼 벨스키도 그 자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적이 거의 없고 미샤 야스민의 경우라면 정식 후원 입장조차 밝힌 적이 없는 드미트리 마로조프는 딱 한 번, 벨스키와 대규모 예술행사 추진 관련 회의를 진행하다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 야스민? 걘 불로 만들어진 애야. 가슴을 갈라보면 불과 바람 밖에 없을 걸. 그런데 레닌그라드에 꽉 잡혀 있어. 물과 돌의 도시에. ”
..
벨스키가 회상하는 드미트리 마로조프의 시점으로 전개된 단편의 지난주 발췌본은 여기 :
http://tveye.tistory.com/4485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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