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금요일 밤 : 갑자기 꽃들, 지속되는 과로, 감당하기 어려움, 바이크 꿈, 나도 끄고 싶다 fragments2023. 3. 24. 20:52
기온이 너무 올라서 갑작스럽게 꽃망울이 마구 터졌다. 기다려가며 조금씩 꽃들을 바라보는 설렘도 없이. 아마도 너무 바빠서 주변을 찬찬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회사 쪽은 온갖 꽃이 다 피었고 우리 동네는 기온이 좀더 낮은 편이라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다른 친구네 동네는 라일락도 피었다는데 우리 동네는 혹시나 하며 아파트와 공원의 몇그루 안되는 나무를 살폈지만 라일락은 아직이다.
어제 너무 지치고 힘든 채 잠이 들었다. 새벽에는 너무 추워서 깼다. 이불을 한겹 덜어냈는데(두개 겹쳐 덮고 자곤 했다), 역시 새벽엔 기온이 내려가서 추웠다. 덜덜 떨며 깨어나 얇은 이불을 하나 더 꺼내서 덮었다. 자다깨다 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7시 반부터는 일을 시작했다. 사무실 공사가 아직 끝나지 않아 오늘도 재택이었다. 죽어라고 일했고 엉망진창인 사업계획을 두개나 손봐주었다. 어제 모든 사고가 마비되고 극심한 무력감과 막막함에 사로잡혀 정말 힘들었고 머리가 너무 아팠는데 오늘 아침에 붉은 군대가 조금 일찍 도래했다. pms도 한몫 했던 것일까 싶지만 오늘도 사실 힘이 들었다.
오후에는 반차를 내고 진료를 받으러 갔다. 보통은 출근을 해서 사무실에서 진료받으러 이동하는데 그 거리도 만만치 않다만, 우리집에서 곧장 가면 정말 멀어서 지하철만 한시간 이상 스트레이트로 쭉 가야 한다. 몸이 힘들어서였는지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견디기가 힘들었다. 돌아오면서도 계속 폰으로 업무체크를 해야 했고 윗분과도 꼬여 있는 업무에 대해 통화를 하다 다시 두통이 심하게 도졌다. 귀가해서도 일을 좀 했다. 반차는 어디로...
진료를 받으러 가서 선생님에게 어제의 너무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지금 무엇이 어떻게 힘든지를 이야기했다. 도무지 이제 감당이 안되고 너무 벅차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능력 밖의 일들이 자꾸 겹쳐지니 이제 정말 그저 쉬고 싶은 마음만 드는데 뾰족한 방법이 보이지 않고 그저 막막하고 피곤하다는 이야기들이었다. 감당이 안되는 일들이 지속되고 추가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인 것 같다.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야기라도 털어놓으니 좀 나았다.
오늘의 낙은 꿈에서 커다란 바이크를 탔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 꿈도 그리 즐겁지는 않았고 역시 '길을 찾지 못하는' 패턴의 꿈이었지만. 꿈에서 나와 어떤 동행(누구인지 모르겠다. 꿈에선 친한 사이였다)은 뭔가에 쫓기고 있었다. 전쟁인지 아니면 악당들과의 나쁜 일에 휘말린 건지 모르겠지만 총격으로 누군가가 죽었고 위험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망치려는데 길가에 바이크 몇대가 세워져 있었고 한대는 잠겨 있지 않았다. 그것을 타고 도망치기로 했는데, 내 동행이 나보다 작았기에 앞에 태우고 나는 뒤에 탄 채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해야 했다. (자전거, 바이크, 자동차 모두 현실에서는 다룰 줄 모름) 바이크의 핸들은 너무 높았고 내 몸에 비해 동체도 너무 컸다. 거의 몸을 세운 채 핸들을 잡고 나아가야 했다. 그러나 어쨌든 한동안 도로를 달렸고 꿈속에서는 무섭고 불안했지만 동시에 놀랍고 신비한 경험이기도 했다.
바이크를 타고 우리는 달려서 어느 동네에 도착했다. 그곳은 어린시절 이모와 외가 식구들이 살았던 순천 쪽 동네였다. 꿈속에서 그 동네의 어떤 집에는 엄마와 이모가 있었다. 아주 잠깐 그 집에 갔지만 그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지도를 보며 우리는 다시 떠났다. 길을 잘못 들어서 질주하던 바이크를 간신히 멈췄다. 도로 어딘가부터 납작한 테트리스 블럭 모양의 금속과 플라스틱 판이(지금 생각하면 반도체 판 같기도 했다) 쫙 깔려 있었는데 그 바닥판이 급격하게 끝나면서 길도 끝나고 바다로 추락하게 되어 있었다. 간신히 끝에 도달하기 전에 멈췄다. 다른쪽 길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바이크를 돌렸고 이제 그 다음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깨어났을 것이다. 꿈속에서 이런 것을 자유자재로 다뤄본 적이 없다. 마치 제대로 달릴 수 없는 것처럼. 어쨌든 그 거대한 바이크를 모는 느낌은 하늘을 나는 꿈과 조금 비슷했다. 두렵고 좀 무섭지만 행복하고 고양되는 느낌.
저녁이 다 되어 귀가했다. 밥먹기 전에 군것질을 안 하고, 특히 단것은 먹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두통이 너무 심해서 이 미니 딸기푸딩을 먹었다. 이것을 먹으니 마치 카페인을 섭취한 듯 당분의 영향으로 잠시 두통이 가셨다.
분명 5시간 전에 약을 먹었는데... 진통제 기운이 너무 빨리 떨어져서인지 머리가 너무 아프고 무겁고 이마와 머릿속에 뭔가가 꽉 차서 터질 것만 같다. 이 메모를 마치고 약을 먹어야겠다. 그래도 금요일 밤이라 다행이다. 주말엔 일 생각 안하고 쉬어야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윗분도 내가 지금 몸도 너무 안좋아지고 정신적으로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임을 아시고 어제 걱정하며 집에 가면 그냥 스위치를 꺼버리라고 충고하셨다. 그러고 싶은데 업무 연락은 계속 오고,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 많으니 정말 그게 잘 안되네 ㅠㅠ 나도 그러고 싶다. 일단 지금 아프니까 약부터 먹어야겠다. 오늘은 아침저녁으로 처방받은 알레르기 약을 눈에 넣었고 중간에는 인공눈물도 넣었다. 어제 진료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지금 눈이 아픈 거였구나! 그냥 이물질 때문만이 아니었구나! 흑흑 아픈 게 그냥 일상이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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