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 월요일 밤 : 꿈, 바토예바 프리마 승급 등 마린스키 얘기 조금, 저주받은 도시 fragments2022. 7. 11. 21:24
비가 많이 온다더니 습하고 덥기만 한 하루였다.
아침 꿈에서는 어느 건물 앞 광장 같은 곳에 갔는데 머리 위로 전투기 비슷하게 생긴 작은 비행기들이 에어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행기들이 색색의 연기를 내뿜고 바로 머리 위를 날고 있어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졌다. 왼편을 돌아보니 거대한 대포처럼 생긴 물체가 탑처럼 솟아 있었는데 그 포신으로 비행기들을 내쏘고 있었다. 비행기 모양의 폭탄처럼 느껴졌다. 정신없이 그곳에서 빠져나와 길을 건넜는데 어떤 지하보도 같은 곳을 통과해야 했고 그건 마치 벽돌로 빈틈없이 쌓아둔 성벽 내부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 갇혀 있었는데 나갈 곳이 보이지 않아서 난감해하다 손으로 돌을 잡아당기자 실리콘이나 녹은 플라스틱처럼 길쭉하고 얄팍하게 돌이 찢어지기 시작했다. 간신히 그곳에서 탈출하면서 광장에 엄마가 있는 것 같아 전화를 했는데 엄마는 나보다 먼저 빠져나왔다고 하셨다. 이런 꿈도 꾸고, 동생이 귀가했는데 중간고사 기간이라 빨리 왔다고, 시험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꿈속에서 아주 옛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하여튼 이런저런 꿈을 복잡하게 꾼 하루였다. 간밤까지 열심히 읽은 저주받은 도시의 영향도 좀 있는 듯하다.
마린스키 소식. 나데즈다 바토예바가 프리마 발레리나로 승급했다. 보통 이런 얘기는 dance 폴더에 적는데, 딱히 이 무용수에 대한 호불호가 별로 없어서 그냥 여기 간단히 적는다. 좀더 젊고 경험은 부족할지라도 매력과 무대 위의 카리스마, 개성 측면에서 보자면 레나타 샤키로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만, 하여튼 마리야 호레바보다는 훨씬 나으니 뭐 그럭저럭. 나는 바토예바의 무대를 마린스키에서 여러번 봤는데, 딱히 이 사람 보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다른 무용수 보려고 표를 끊었다가 파트너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예쁘고 무난한 발레리나인데 확 끌어당기는 개성은 별로 없다는 느낌이었다.
남자 무용수도 수석으로 한명쯤 승급할 때가 됐는데(이고르 콜브도 은퇴하고 벨라루스 볼쇼이 극장으로 갔고 잰더 패리쉬도 떠났으니) 사실 여기도 제1솔리스트 중에 '진짜 프르미에르 당쇠르' 느낌이 드는 무용수는 없다. 어째선지 남자무용수 대기근으로 1솔리스트가 세 명뿐임. 그나마 나라면 그 중에선 알렉산드르 세르게예프를 고를텐데 이 사람도 좀 성격배우 스타일이라 왕자님 느낌은 별로 없다. 아니면 무난한 콘스탄틴 즈베레프(그러나 이 사람은 또 바토예바의 남편이다 보니 승급시키면 부부 동시 승급 운운할지도), 그리고 역할을 좀 타는 필립 스쵸핀이 전부임. 1솔리스트 기근. 아니, 쓰다 보니 길어졌는데 이걸 댄스 폴더로 옮겨야 하나. 하지만 귀찮으니 놔둔다. 그리고 나의 올타임 페이버릿 최고의 그분 발로쟈 슈클랴로프님은 개인적 문제가 있는지 최근 무대 두 개를 모두 취소해서 좀 신경이 쓰임. 부상당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집안일이라고는 하는데 정확히는 모르겠고. 아내인 마샤 쉬린키나의 스케줄은 그대로 진행 중인 것 같으니 그나마 걱정을 덜 하는 것으로. 부디 다 괜찮기를 바란다.
내일은 친구가 사무실 근처로 찾아와 같이 점심 먹기로 했다. 작년에 논문 쓰는 거 도와줬던 친구인데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그외엔 역시 바쁜 하루가 될 전망이다.
저주받은 도시는 5부를 다 읽어간다. 전에 3부를 읽기 힘들었다고 적었는데 어우 이럴 수가, 5부가 제일 암울하다! 결말은 더욱 암울할 것만 같다. 이 형제들은 유머에도 장기를 발휘하지만 진정한 능력은 공포를 자아내는 데 있다. 환상적인 공포이지만 그 모든 것이 너무나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며, 억압적인 사회를 그대로 투사하고 재구성하는 상황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더욱 오싹하고 우울한 것 같다. 이 소설은 읽을수록 이들의 소설 중 '신이 되기는 어렵다'를 떠올리게 하고, 또 뒤로 갈수록 도스토예프스키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소련의 후세 작가들이 sf 버전으로 재구성한 악령의 쉬갈료프와 이반 카라마조프의 대심문관 시대 양떼들을 연상시키는 음울하고 고통스러운 비전이라고 해야 하나. 책 뒤표지에는 해외 서평들 일부가 인용되어 있는데 카프카적 세계라는 표현도 있다. 아마도 절망적이고 부조리하며 탈출하기 어려운 세계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나에겐 이 소설은 카프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적 세계에 가깝고, 거기서 구원과 열광을 들어내고 좀더 냉소적이며 거칠게 접근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5부에서는 레닌그라드에 대한 묘사가 잠깐 나오는데, 이 소설이 계속해서 '도시' 라는 단어를 되풀이하고 이 도시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세계라는 점에서 나는 지속적으로 소련과 레닌그라드를 떠올리며 읽고 있다. 이제 정말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는데 다 읽기가 좀 무서움.
어제 글을 좀 더 쓰고 잤다. 집중력이 좀 받쳐준다면 이 후반부는 쉽게 내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해가 갈수록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떨어지니 좀 속상하다.
'fragmen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7.13 수요일 밤 : 친구, 꿈에서 바가지 쓰고 영어로 말하고 케익 얘기하느라 이미 녹초, 호기심은 실패 (2) | 2022.07.13 |
---|---|
7.12 화요일 밤 : 무척 바쁘게 일하고 피곤해서 짧게 (2) | 2022.07.12 |
7.10 일요일 밤 : 월요일이 코앞, 읽고 쓰고, 초단기 목표들 (0) | 2022.07.10 |
7.9 토요일 밤 : 그냥 쉬면서 보낸 하루, 아주 짧음 (0) | 2022.07.09 |
7.8 금요일 밤 : 남은 꽃, 기나긴 일주일을 마치고, 피곤하다 (0) | 2022.07.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