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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케치는 자기 신작의 무대 디자인 스케치들 넘겨보며 하나하나 까다롭게 체크 중인 구 말썽쟁이 현 안무가/예술감독 미샤. 디자인 스케치를 대충 봐서는 호두까기 인형 재안무로 추정됨.

 

 

미샤 : 엥이... 의상 디자인 맘에 안 들어. 미술감독 바꿔버릴까...

 

미술감독 : 야! 그럼 네가 직접 그리든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주문만 많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넘이 막 명령하고... 완전 피곤해!!

 

미샤 : 그림 그릴 줄 알았음 내가 그렸지 너한테 시켰겠냐! 그리고 토끼가 날 바가지 머리로 애처럼 그려놔서 그렇지 나 머리에 피는 말랐어!!!

 

토끼 : 바가지 머리가 그리기 쉬우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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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너무 더워서 고생했다. 사무실은 아직 냉방을 해주지 않는데다 내 자리는 창문 바로 앞이라 정말 덥다. 냉방해주는 기차 안에서도 쉽사리 시원해지지 않았는데 아마 더위를 좀 먹은 것 같다.

 

 

나는 여름을 싫어하지만, 겨울나라 쏘련의 레닌그라드에 사는 눈땡글 꼬마 미샤는 오매불망 백야의 여름만 기다리고... 시원한 주스 마시며 여름 만끽 중(그러나 긴 팔 티셔츠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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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케치는 자기가 안무한 신작의 프로그램 북 들고 홍보 중인 구 말썽쟁이 미샤 감독님. '여러분 내 작품 많이많이 보러 오세요~' 하고 홍보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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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퀵 스케치는 뽀글뽀글 헤어 스타일의 미샤. 새로 안무한 작품 때문에 머리 볶았음.



망연자실한 저 표정은... 뽀골뽀골 라면머리가 되어 하늘 무너지는 기분이라 그런 게 아니고 무대에서 리허설하며 연기 중 찍힌 스틸 컷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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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닐 하름스를 다시 읽고 있다. 편지와 일기가 수록된 선집을 화정에서 들고 왔는데 무거워서 어제 좀 고생을 했다. 위의 사진은 웬만한 하름스 선집에는 다 포함되어 있는 짧은 희곡 "История Сдыгр Аппр" (즈듸그르 압쁘르 이야기)이다. 옛날에 하름스의 원문들을 읽을 때는 다른 작품들에 더 끌렸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이 작품이 가장 생각난다. 마술적으로 심장 한구석을 슥슥 잡아당기는 느낌이 있다. 



Сдыгр Аппр는 하름스가 만들어낸 의성어인데 이 사람이 원체 말장난에 능한 작가이기도 하고, 또 이 부조리하고 엽기적인 미니 희곡에서는 폭력적인 주인공이 중간에 노래하듯 읊어대는 대사에서 추임새처럼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р는 러시아어의 r인데 영어와 달리 rrrrr 하고 혀를 부르르 굴려주며 발음하기 때문에 이 대사를 쭉 읽으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우스운 주문을 외는 듯, 노래하는 듯 느껴진다. 아마 원어민들에게는 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다. 희곡은 주인공이 상대방과 악수를 하면서 한 손을 뽑아버리는 것으로 시작해 중간에는 의사의 귀를 물어뜯고(이 부분을 읽다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서 스타브로긴이 지사 어르신의 귀를 물어뜯는 장면이 생각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잠든 등장인물들의 귀를 몽땅 잘라내고 도망간다. 



여러번 되풀이해 읽곤 하는데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몇년 전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에서 바로 이 작품으로 작은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어쩐지 딱 어울린다. 그때 가서 봤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이스또리야 즈듸그르 압쁘르~



이것이 거의 맨 마지막. 주인공 뾰뜨르가 사람들 귀를 몽땅 잘라냈다는 지문이 적혀 있음. 엽기적이긴 한데... 이 작가 스타일이 원래 이렇다. 나는 20세기 초중반 작가들 중 미하일 불가코프를 제외하면 조셴코와 하름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조셴코의 유머가 서민적이고 거의 누구에게나 먹히는 유머라면 하름스는 좀더 뒤틀리고 섬뜩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부조리한 유머이다. 인텔리겐치야와 폭력이 뒤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 글을 쓰며 미샤에 대해 묘사할 때 나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일린과 이런 대화를 나누게 했었다. 미샤가 조셴코 농담은 재밌어서 다들 웃는데 왜 자기가 농담하면 다들 안 웃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자 일린은 너의 농담은 조셴코가 아니라 하름스에 가까워서 그렇다고 한다. 



사실 그 글은 꽤나 심각한 이야기였지만 그 부분에서 나는 조금 농담을 섞고 있었다. 결론은 농담으로 안 느껴졌음. 그 글을 발췌한 적도 있다. 여기 : https://tveye.tistory.com/4468



..



오늘의 메모는 쓰다 보니 거의가 다닐 하름스와 이스또리야 즈듸그르 압쁘르,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것이라 fragments 폴더가 아니라 books 폴더로 분류해 놓아야겠다.



..



5.18, 39주년. 잊지 않겠습니다.



..



이번주에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일했었다. 어제는 기차 타고 2집에 돌아온 후 너무너무 피곤해서 10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들었다. 새벽에 두어번 깼지만 도로 잠들어서 거의 10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날씨까지 꾸무룩해서 계속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억지로 일어났다. 



아침에 잠깐 집 앞에 나가 별다방에서 티푸드를 사서 들어왔다.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우산도 소용없이 빗방울이 얼굴을 마구 때려댔기 때문에 그냥 별다방만 들렀다 돌아옴. 아침 챙겨먹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오후에 너무 졸려서 한시간 반쯤 또 잤다. 피로가 정말 엄청나게 쌓여 있었던 것 같다. 내 몸 안에서 잠이 계속 밀려나오고 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날이 습하다. 이미 에어컨을 돌리고 있다. 여름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무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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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스케치는 펄펄 내리는 눈을 맞으며 운하를 따라 극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미샤. 



눈 오고 추운데 코트에 달린 털모자는 쓰지도 않고, 지각 직전인데도 여유만만하게 천천히 걸어가고 있음. 심지어 입단 첫해 신삥. (얘는 왜 이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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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그렸던 눈땡글 꼬맹이 미샤랑 역시 눈땡글 꼬맹이 시절 알리사 스케치. 겨울이라 둘다 모자랑 숄로 머리 꽁꽁 싸매고 있음. 근데 둘다 어째선지 엄청 뿌루퉁한 표정.

 

위가 미샤, 아래 빨간 후드가 알리사 :(

 

아마 미샤는 아이스크림 못 먹어서 삐친 것 같고...

 

 

 

알리사는 그냥 매사에 뿌루퉁한 표정이라서 이런 것 같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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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위안을 위해, 폭신폭신 검은 고냥이 안고 있는 분홍 스웨터 미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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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7. 21:44

꿀잠이여 오라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9. 5. 7. 21:44



잠이 모자라서 종일 피곤했다. 그래서 오늘은 부디 빨리 잠들고 중간에 깨지 않기를 바라며 꿀잠 기원 쿨쿨 미샤 스케치로 마무리. 불면 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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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퀵 스케치는 갈랴네 아파트에서 열린 문학모임에 가서 다른 사람들 얘기 듣고 있는 중인 말썽쟁이 미샤. 아직 학생 시절이라 반쯤 바가지 머리~ (바가지 머리 그리는 게 젤 쉽다. 그래도 미샤의 이미지를 위해 앞머리를 많이 길러주었다. 진짜 100% 바가지 머리 버전도 한번 그려보고프다 ㅋㅋ)

 

예전에 발췌했거나 전문 올렸던 글에서 언급했듯 갈랴네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문학모임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문학이나 어학 전공한 대학생이나 대학원생, 그들의 인텔리 친구들이다. 미샤는 어느날 지인 누님을 따라 모임에 왔다가 금서 읽는 것도 재밌고 친구들도 맘에 들어서 종종 들르게 된 것 같다(아마 그럴 거라고 트로이나 알리사는 믿고 있다)

 

트로이랑 알리사가 어떤 영미 소설 놓고 열띤 토론 벌이고 있는 걸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미샤. 뭔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신비로운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와 알리사 누나 영어발음 진짜 좋다~' 하고 있는 건지도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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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4. 20:21

흑빵 드시는 중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9. 5. 4. 20:21

 

 

오늘 스케치는 연습하다 쉬는 시간에 간식으로 흑빵 드시고 있는 말썽쟁이 미샤. 러시아어로는 흘롑. 러시아 흑빵은 일반적 호밀빵보다 훨씬 까맣고 축축하고 시큼하다. 처음 먹는 사람들은 시큼함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나도 옛날에 첨 러시아 갔을 땐 안 좋아했는데 점점 익숙해져서 지금은 좋아한다. 이른바 어른의 입맛이라 해야 하나.

 

여기에는 치즈나 햄, 오이 따위를 얹어 먹기도 하고 (돈많으면) 캐비아를 얹기도 한다. 물론 버터나 마가린 + 잼 콤보를 발라 먹기도 한다. 보드카와 찰떡궁합. 러시아 식당에서 수프 같은 거 시키면 흑빵을 꼭 곁들여 준다. 좀 괜찮은 식당이면 파슬리 허브 버터도 같이 내준다.

 

하여튼 보통은 뭘 발라서 먹는다만... 식이요법에 깐깐한 미샤는 암것도 안 바른 맨빵 그냥 드시고 있음. '버터 안 바른 건 상관 없지만 누가 홍차 한 잔만 우려다 주면 참 좋겠다...' 라고 생각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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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식 맑은 생선수프 우하. 엄밀하게 말하자면 원래는 우크라이나 쪽 수프이다. 여기 크림을 넣으면 핀란드식 우하가 된다. 얼마 전 써서 이 폴더에 전문을 올렸던 미니단편 '핀란드 우하'에서 미샤가 취한 채 계속해서 '나는 맑은 우하가 좋은데' 하고 알리사에게 찡찡대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이것. 안에 든 연어와 당근, 레스토랑 조명 때문에 좀 붉게 나오긴 했는데 하여튼 맑은 국물이다.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러시아 음식점 '고골'의 우하. 여기 음식이 좀 비싸긴 해도 맛있는데 갈수록 유명해져서 점점 자리 잡기가 힘들어지고 있음. 이제는 가기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흑흑 예전이 좋았는데... 이 사진은 2016년 겨울에 갔을 때. 따끈한 생선 수프 우하를 먹으면 몸이 데워진다.

 

단편에서 미샤가 맑은 우하 타령을 하자 알리사가 '맑은 우하는 노인네 입맛이거나 보드카 마시는 사람에게나 어울리는 거야' 하고 타박을 준다. 근데 사실 나도 미샤랑 입맛이 비슷한 편이라서 크림 넣은 핀란드 우하보단 이 맑은 우하가 더 좋다 :)

 

 

그 미니 단편 '핀란드 우하'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950

 

 

 

 

보드카를 곁들이면 좋겠지만 이때 나는 심신이 많이 힘들 때라 모르스 주스를 마셨다.

 

 

 

 

 

제대로 된 맑은 우하에는 이 '뽐뿌슈까'를 곁들여 먹게 되어 있다. 마늘 브리오쉬인데 폭신하고 마늘향이 감도는 게 무척 맛있다.

 

 

 

 

폰으로 찍었던 클로즈업 사진 두 컷 더.

 

 

 

비밀을 털어놓자면... 사실은 알리사도 크림 넣은 핀란드 우하보다는 이 맑은 우하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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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스케치는 도서관에서 커다란 책 한 권 빌려 나오고 있는 소녀 시절 율리야. 미래의 미샤네 엄마. 헤어스타일만 바꾸면 소년 미샤랑 똑같이 생겼습니다 :)




엄마의 리즈 시절에 이어, 세월이 흐른 후 역시 도서관에서 책 잔뜩 들고 가는 중인 아들내미 미샤. 이 스케치는 예전에 그렸던 건데 신기한게 아무 생각 없이 색칠했는데 오늘 그린 율리야 스케치랑 둘이 옷 색깔이 똑같음. 후배들이랑 책 빌리러 왔다가 무겁다고 다 들어주는 도서관 오빠 모드 미샤~ (그러나 지나는 자기 책 들어줄 필요 없다고 버럭 화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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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랑 오늘 그린 크로키 세 장. 순서대로 말썽쟁이 미샤, 미샤의 친구이자 안무가인 스타니슬라프 일린, 그리고 알리사. 



미샤는 학생 시절, 반쯤 바가지 머리 :) 수업 시간에 멍때리며 딴 생각 중. 






일린에 대해서는 쓰는 것도 좀 힘든데 그리는 건 더 어려워서 거의 그린 적이 없다. 이건 엄청 휘갈겨서 빨리 그렸는데 원래 인물에 대한 느낌이랑은 좀 다르다(내가 똥손이어서임)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이 사람은 훨씬 왜소하고 좀더 턱과 코가 뾰족하고 눈썹색이랑 머리색도 더 옅고 눈 색깔도 더 연한데 그런 사람 그리기 너무 힘들어 ㅠㅠ 






마지막은 제일 그리기 쉬운 알리사 :) 심지어 조금 헐벗고 있음. 죽어라 일하고 집에 와서 목욕 중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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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도 많이 바쁘고 피곤했다. 그저께랑 어제 스트레스 풀려고 색깔 막 문대면서 휘갈긴 미샤 크로키 세 장. 스냅 컷 연속 세 장이라고 하면 되려나. 발레단 재원 마련하려고 열심히 펀딩하러 다니고 쥬얼리 광고도 찍고 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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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카 운하. 작년 9월 저녁.


이 운하를 따라 걸을 때면 종종 글쓰기에 대해, 내가 만든 인물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이따금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가 운하 난간에 기대어 새들에게 흑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물론 혼자 걸을 때만. 이 길은 가끔 료샤나 레냐랑도 같이 걷곤 했다. 그러면 우리는 웃고 떠들고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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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실토실한 뺨을 마주대고 방글방글 웃고 있는 눈땡글 꼬맹이 시절 미샤랑 지나 :) 세상이 아직 장밋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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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스케치. 피곤한 일주일을 보냈던 터라 빨간색을 잔뜩 칠하며 기분 전환함.

 

새빨간 목도리 칭칭 두르고 산책 중인 말썽쟁이 미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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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4. 19:44

독서삼매경 알리사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9. 4. 14. 19:44



오늘 스케치는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알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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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1. 21:10

바람 부는 날 산책 중 sketch : 지나와 말썽쟁이2019. 4. 11. 21:10




오랜만에 그린 말썽쟁이 미샤. 바람 부는 날, 레닌그라드 운하 따라 산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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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9. 21:48

크림을 넣은 생선수프와 흑빵 about writing2019. 4. 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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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스케치 한 장. 노동노예 옥토끼나 말썽쟁이 미샤, 빨간머리 지나 대신 음식 스케치. 며칠 전 올린 미니 단편에 나오는 핀란드 우하(크림을 넣은 생선 수프)와 러시아 흑빵 두 조각. 앞발이라 대충 그려서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는다만 사실 맛있습니다 :) 수프에는 알리사가 말한대로 연어와 대구, 파슬리와 우끄롭(딜), 그리고 감자와 당근이 들어갔습니다. 잘 찾으면 셀러리도 있음. 그리고 크림.

 

핀란드식 생선 수프와 흑빵, 보드카에 대한 그 미니 단편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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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7. 21:12

겨울 2016 petersburg2019. 4. 7. 21:12

 

 

 

어제 핀란드 우하 이야기(https://tveye.tistory.com/8950)에 첨부하려던 사진 두 장. 스크롤 때문에 이 두 장은 안 올렸었다. 역시 차갑고 황량한 잿빛 겨울의 페테르부르크 그 동네 풍경. 바실리예프스키 섬. 바람 소리와 마른 나뭇가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적막한 외곽 동네.

 

 

사진은 2016년 12월에 갔을 때 찍었다. 무척 추웠던 날이었다.

 

 

 

 

창문에는 작은 장식이 되어 있었는데 소박하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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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몇 주 동안 주말에 쓴 아주 짧은 단편을 올려본다. 제목은 '핀란드 우하'. 우하는 생선 수프이다. 각종 생선과 야채를 넣어 끓이는데 보통 우하라고 하면 맑은 국물의 수프이다.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대구지리나 복지리 같은 것. 정석으로 끓이자면 생선뼈와 머리로 육수를 내고 비린내를 날리기 위해 보드카도 들어간다. 핀란드식 우하는 크림을 넣어서 끓이는 생선 수프이다. 나는 맑은 우하를 좋아하지만 몇년 전 페테르부르크에서 진눈깨비 오던 날 길을 잃고 헤매다 꽁꽁 얼었을 때 어느 카페에 들어갔다가 핀란드 우하를 먹고 몸이 녹았던 기억이 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핀란드 우하와 너무나도 친절했던 청년 데니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단편은 아주 짧다. 12폰트로 A4용지 9~10페이지 가량. 플롯도 거의 없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었는데 몇주 전 저녁에 아무런 기승전결 없이 그저 단어 몇개와 한두 줄의 대화를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나는대로 대화들을 적어나갔고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어떤 글들은 그냥 그렇게 시작된다.

 

 

짧은 파편 스케치이다. 사실 독립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오랫동안 쓰고 있는 미샤와 레닌그라드, 가브릴로프 우주에 속해 있다. 이 글의 배경은 1970년대 초, 소련 레닌그라드이다. 예전에 썼던 레닌그라드 장편(미샤의 친구 트로이가 심리적 화자로 나온다)과 배경이 같고 등장인물도 그 글에 나왔던 알리사와 미샤이다. 화자는 알리사. 애칭은 알랴. 트로이와 가장 친한 친구이고 레닌그라드 국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트로이와 함께 문학 모임을 조직해 외국 문학을 읽고 사미즈다트(지하문학)와 금지문학들을 돌려보며 토론하는 인물이다. 친구들과는 달리 노멘클라투라 집안의 딸이고 어릴 때는 정치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좀 했다. 알리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예전에 몇번 발췌한 적이 있다. 

 

 

아래 글에 이름만 언급되는 갈랴, 료카, 코스챠, 이고리, 스베타 등은 모두 이 문학 모임 멤버들이다. 이 글에서 미샤는 아직 발레학교 학생이다. 아파트 주인은 갈랴와 료카 부부이다. 예전에 쓴 레닌그라드 장편은 트로이와 미샤가 갈랴의 아파트에서 열리는 문학모임에서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었다.

 

 

 어느 눈보라 치는 겨울 밤, 갈랴의 아파트에서 문학 모임이 열린다. 다들 만취해 뻗는다. 알리사 혼자 깨어 있다. 그리고 미샤가 문을 두드린다. 이야기는 짧고 가볍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핀란드 우하






 

 

 

 초인종은 고장 나 있었다. 갈랴는 2주일째 출장 중이었고 료카는 초인종을 고칠 줄 몰랐다. 수리 요청 서류를 쓰기가 싫다고 했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된다고 태평하게 굴었다. 결국 트로이가 서류를 써서 관리사무실에 갔다. 네 번쯤 갔고 수리 접수하는데 사흘이 걸렸다. 고치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어차피 불편한 건 없었다. 료카 뿐만 아니라 갈랴도 문을 잠그지 않을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은 툭하면 열렸다. 시간을 가리지 않았다. 별의별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드나들었다. 문제는 아파트 곳곳에 널려 있는 지하출판물들과 우리 번역 원고들이었다. 참다못해 내가 ‘제발 문 좀 잠가! 경찰들이라도 들이닥치면 어쩌려고 그래!’ 하고 성질을 내자 이고리가 ‘괜찮아, 나랑 트로이가 다 찢어서 먹어버리면 돼. 보드카 한 병만 있으면 금방 해치울 수 있으니까 5분만 벌어줘. 네가 미인계를 쓰면 되겠네.’ 라고 농담을 했다. 발칵 화를 내려는데 료카가 그 하염없이 상냥한 표정으로 빙긋 웃는 바람에 나도 결국 흐지부지 웃어버리고 말았다. 료카가 그렇게 유순하게 웃으면 너무나도 예세닌을 닮아서 나는 금방 허물어져버린다. 트로이는 나에게 ‘그런 게 어디 있어. 넌 예세닌 좋아하지도 않잖아. 비논리적이야’ 라고 투덜거린 적이 있다. 무슨 소리, 나는 예세닌을 좋아한다. 외모만. 

 


 그래서 2주일 동안 문을 벌컥벌컥 열거나 발로 걷어차는 녀석들에게 익숙해진 나머지 처음에는 노크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늦은 밤이었고 눈보라 때문에 창문이 엄청나게 덜컹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들 술에 떡이 되어 나자빠져 있었다. 눈을 뜨고 있는 건 나와 코스챠 뿐이었다. 우리는 누군가가 필사해 온 브로드스키 시들을 함께 읽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코스챠는 너무 취해서 그게 단어인지 가게 전표 숫자인지 구분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이따금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그래, 알랴. 네가 다 맞아. 참 좋아’ 하고 추임새를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트로이는 그날 없었다. 있었다면 같이 재미없는 농담을 주고받고 있었을 텐데. 

 


 꼬맹이는 지치지도 않고 끈질기게 노크를 했다. 마침내 나는 긴가민가하며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눈썹이 하얗게 얼어붙고 입술이 파래진 미샤가 환하게 웃으며 좋아했다.

 


 “ 다 자는 줄 알았어. 그냥 돌아갈까 했는데. ”

 

 

 “ 문 열려 있었는데. ”

 


 “ 예의를 지키느라. ”

 


 “ 예의바른 꼬마는 새벽 한시에 남의 집 문을 두들기지 않아. ”

 


 “ 그래도 소리치지는 않았잖아. ”

 


 “ 빨리 들어와. 얼어 죽겠네. ”

 

 


 미샤는 순식간에 모자와 목도리와 코트를 벗었다. 작은 눈 폭풍을 몰고 들어온 것 같았다. 바닥이 흥건하게 젖었다. 그래도 부츠를 벗고 슬리퍼를 신을 때 보니 양말은 보송보송하게 말라 있었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꼬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 신발은 좋은 거 신거든. ”

 


 “ 그래야겠지. 발로 먹고 살아야 되잖아. ”

 


 “ 음, 굳이 안 그래도 당이 먹여 살려주긴 할 거야. 소련 시민인데. ”

 


 미샤가 다시 한 번 활짝 웃었다. 이 녀석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주제에 돼먹지 않은 농담을 좋아한다. 나중에 키로프에라도 가면 저 말버릇 때문에 고생하게 될 것이다. 아니, 볼쇼이에 갈지도 모르지. 어쨌든 여기 우리끼리야 상관없다. 

 

 


 나는 미샤를 부엌으로 데리고 갔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코스챠의 재킷을 낚아채 꼬마의 어깨에 뒤집어 씌웠다. 미샤는 한쪽 무릎을 굽히며 우아하게 인사를 했다. 제대로 무용수 티를 냈다. 평소에는 애들이 아무리 ‘피루엣 한번만 보자. 점프면 더 좋고...’ 따위 간청을 해도 그냥 웃어넘기곤 했는데. 지금은 꽁꽁 얼어붙은 채 연달아 재채기를 하고 콧물을 훌쩍이면서도 무대 위의 왕자님이라도 된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귀여운 꼬맹이 같으니. 이 모습을 타냐가 봤어야 하는 건데. 

 


 
 찻물을 올리려고 보니 주전자도 없고 빈 냄비도 없었다. 전부 설거지통에 쌓여 있었다. 아니, 주전자는 아까 이고리가 깔고 앉아 찌그러뜨렸다. 료카는 하고많은 살림살이 중 하필 주전자냐며 울상을 지었다. 갈랴가 탈린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저 주전자를 도로 펴놓든지 아니면 어디서 하나 구해 오라고 투덜거렸다. 초인종 고장 난 건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기껏 주전자 하나에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구는 게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물을 끓이기가 어렵게 되자 나도 이고리를 한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설거지를 하기는 더 싫었다. 렌지 위에 있는 냄비 뚜껑을 열어보니 저녁에 스베타가 가져왔던 생선 수프가 좀 남아 있었다. 박박 긁으면 한 접시 정도 나올 것 같았다. 크림이 굳어서 엉겨 있었기 때문에 물을 좀 부었고 숟가락으로 살살 저으며 데우기 시작했다.

 


 미샤는 차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카펫도 깔려 있지 않은 부엌 바닥에서 슬리퍼를 신은 채 타닥타닥 발을 구르고 팔을 이리저리 뻗어보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옆으로 돌렸다 난리였다. 어깨에 걸쳐줬던 모직 재킷이 두터운 날개처럼 펄럭거렸다. 결국 나는 꾸짖었다.

 


 “ 먼지! ”

 


 “ 창문 열면 되는데. ”

 


 “ 집안까지 시베리아로 만들 셈이야? ”

 


 “ 아 그러면 안 되지. 마가단... ”

 


 미샤는 잠잠해졌다. 팔짝팔짝 뛴 덕에 몸이 좀 녹았는지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더니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뭔가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 동안 나는 다 데워진 생선 수프를 접시에 부었다. 

 

 


 수프 접시를 밀어주었을 때 꼬맹이가 콧잔등을 살짝 찡그렸다. 빵이라도 곁들여줘야겠다 싶어 찬장을 뒤지고 있는데 등 뒤에서 미샤가 조그맣게 투덜거렸다.

 


 “ 핀란드 우하야? 에이... ”

 


 “ 투정하지 말고 그냥 먹어. 꽁꽁 얼었잖아. ”

 


 “ 난 그냥 우하가 좋은데. 크림 넣은 건 별로야. ”

 


 “ 맑은 우하는 노인네나 보드카 마실 줄 아는 사람들한테 어울리는 거야. 넌 아니잖아. ”

 


 “ 뭐가 아니야? ”

 


 “ 보드카, 못 마시잖아. ”

 


 “ 무슨 소리. 마실 수 있어. 세 잔까지는 거뜬해. 많이 봤으면서. ”

 


 “ 거짓말 안 통해. ”

 


 나는 반쯤 말라붙은 흑빵 두 조각을 미샤의 접시 옆에 내려놓았다. 미샤는 숟가락조차 들지 않은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까만 두 눈에 작은 파란 불빛이 반짝거렸다. 목덜미 어딘가가 따끔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 언제부터 알았어? ”

 


 “ 뭘? ”

 


 “ 나. 술 못 마시는 거. ”

 


 “ 처음부터. ”

 


 “ 다들 모르던데. ”

 


 “ 난 ‘다들’이 아니야. ”

 


 “ 안드레이도 모르던데. ”

 


 “ 트로이라고 불러. 걔 그 이름 싫어해. ”

 


 “ 난 좋은데, 그 이름. 안드레이 공작은 별로지만 우리 안드레이는 좋아. ”

 

 


 나는 미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마치 그 애와 처음으로 눈을 마주치고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사실 그랬다. 우리는 항상 필사 원고나 갱지 인쇄본을 놓고 토론을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와 트로이가 이야기를 했고 꼬맹이는 듣고 있었다. 이따금 질문을 하는 게 전부였다. ‘이건 어떻게 읽는 거야?’, ‘세 번째랑 네 번째 행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어떻게 돼?’ 등등. 미샤는 말수가 적은 애였다. 

 


 트로이는 그 애와 따로 만나 번역 노트를 보여주고 책도 같이 읽곤 했다. 나는 미샤와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 애에게 나는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똑똑한 누나였다. 그리고 나는 트로이만큼 상냥하고 배려심이 깊은 성격도 아니었다. 타냐처럼 그 애의 재능에 경탄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발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극장에는 가끔 갔지만 무용보다는 연극을 더 좋아했다. 그리고 미샤에게는 어딘가 좀 신경을 긁는 구석이 있었다. 한마디로 좀 건방졌다. 하긴 어릴 때부터 무대에 올라간 데다 누구에게나 잘한다 잘한다 하고 인정을 받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트로이는 꼬마의 그런 면에 매료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미샤는 여전히 수프를 뜨지 않았다. 흑빵을 조금 뜯어서 먹고 있을 뿐이었다. 뺨이 불그스름했다. 다시 재채기를 했다. 

 


 “ 수프 먹으라고 했잖아. ”

 


 “ 모레 무대 올라가야 돼. 크림은 좋지 않아. 고지방. ”

 


 “ 그냥 먹어, 그깟 지방질 이틀이면 다 녹아 없어져. 핀란드 우하가 얼마나 맛있는데. 크림 들어 있어서 부드럽고 고소해. 몸도 따뜻해질 거야. 연어랑 대구가 들어 있어. 파슬리랑 우끄롭도. 스베타네 할머니가 끓여놓은 거 몰래 한 냄비 퍼왔댔어, 우리는 아까 다 한 그릇씩 먹었어. ”
 

 

 


 꼬마는 수프를 한 숟갈 떠서 먹었다. 까만 눈에 구슬 같은 광채가 돌았다.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먹어보니 맛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미샤가 뜬금없이 물었다.

 

 


 “ 알랴, 핀란드 가봤어? ”

 


 “ 가봤지. 가깝잖아. 너는? ”

 


 “ 엄마가 그러는데 어릴 때 아빠랑 엄마랑 같이 갔었대. 기억은 안 나. 너는 핀란드가 좋았어? ”

 


 “ 글쎄. ”

 


 “ 그러면 어디가 좋았어? 넌 어릴 때 외국에 살았잖아. 여기저기. ”

 


 “ 나는 런던이 좀 나았어. 암스테르담은 싫었고. ”

 


 “ 왜? 난 가보고 싶어, 암스테르담. 여기처럼 운하도 있고. ”

 


 “ 그래서 싫었어. ”

 

 


 나는 식탁 한가운데 놓여 있던 술병을 끌어당겼다. 기적적으로 보드카가 남아 있었다. 한 잔 따라서 마셨다. 미샤는 내 입술에 잔이 닿는 것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거의 갈망하는 눈빛으로 보였다. 내가 아니라 알콜을.

 

 


 “ 난 그래서 가보고 싶은데. 운하. 암스테르담. 아빠는 런던에 가본 적이 있다고 했어. 엄마가 말해줬어. 우리 엄마는 불어 공부했는데 프랑스에는 못 가봤대. 엄마는 모든 곳이 같을 거라고 했어. 그럴까? 런던과 암스테르담과 레닌그라드, 헬싱키가 같았어? ”

 

 


 보드카는 뜨거운 칼처럼 목구멍을 찌르고 태웠다. 말라서 딱딱해진 흑빵 조각을 오래 씹어 넘기자 취기 대신 축축하고 둔한 통증이 느껴졌다. 약간 달콤하면서도 구수하고 시큼하고 전반적으로는 씁쓸한 맛이 입 안과 목구멍 전체를 채웠다. 말 그대로, 흑빵의 맛.

 

 


 “ 아니, 같지 않았어. 그런데 똑같이 지루했어. ”

 


 “ 도시가? 사람들이? ”

 


 “ 사는 게. ”

 


 “ 그땐 어렸잖아. 어떻게 그래? ”

 


 “ 인생은 어른이든 어린애든 똑같은 거야. ”

 


 “ 아니, 사는 거 말고. 지루하다는 거. 애들일 땐 시간이 빨리 가는데. 모든 게 빨리 달아나. 안 가본 곳들도 너무 많아서 매일 새롭게 길을 잃기에도 시간이 모자라. 엄마랑 아빠, 친구들도 있고... ”

 

 “ 그거랑 지루한 건 다른 거야. ”

 


 “ 뭐가 다르지? 문학적인 표현인 거야? ”

 


 “ 아마도. ”

 


 “ 흐음. ”

 

 


 우리는 잠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미샤는 진한 크림이 엉겨 있는 뜨거운 수프를 떠먹었다. 먹다가 숟가락을 놓쳐서 테이블보에 연어 부스러기와 감자조각을 흘렸다. 꼬마는 빵 끄트머리로 크림 얼룩을 닦았다. 테이블보가 아니라 자기 입술에 묻은 자국을. 별처럼 반짝이는 까만 눈 어딘가에 취기가 어려 있었다. 그때에야 나는 이 망나니 녀석이 이미 다른 곳에서 코가 삐뚤어지게 퍼마시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그러니까 살점이 떨어져 나갈듯 추운 길거리를 쏘다니고 아무도 문을 안 열어주는데도 줄기차게 노크를 해대고 실없는 소리들을 지껄이고 있는 거겠지. 술김에. 언제부터 나랑 이렇게 얘기하는 사이였다고. 말썽쟁이 꼬맹이 같으니. 기껏 열일곱도 안 된 주제에, 졸업하려면 일 년이나 남았는데 허세만은 이미 하늘을 찔렀다.

 

 


 나는 새 잔을 꺼내왔다. 이 집에 딴 건 몰라도 보드카와 술잔만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갈랴와 료카는 은근히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잔에 보드카를 가득 따라서 미샤에게 건네주었다. 꼬마는 거부하지도 않고 잔을 받아 홀짝 마셨다. 쉬지도 않고, 한방에 끝까지. 그리고는 기침이 나오는 걸 숨기려고 수프를 잽싸게 두 숟가락이나 떠먹었다. 그래봤자 눈가와 코가 새빨개지고 있었다. 

 


 
 한 잔 더 따라주었을 때 미샤가 노래하듯 부드럽게 말했다.

 

 


 “ 그러면 새 수프로 바꿔줘. 크림 든 거 말고. 맑은 우하로. 나 지금 보드카 마시잖아. ”

 


 “ 아니, 크림 든 우하도 보드카랑 어울려. 수 쓰지 말고 다 먹어. ”

 


 “ 나 사실 노인네 입맛인데. ”

 


 “ 웃기지 마, 아이스크림 좋아하면서. ”

 


 “ 알랴는 엄마 같구나. 우리 엄마도 그랬는데. 내가 으깬 감자 먹기 싫다고 우니까 감자 다 안 먹으면 아이스크림 안 준다고 했었지. 아빠가 그거 몰래 먹어줬어.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어떤 날은 하루에 두 개나 사주셨어. 에스키모. 플롬비르. 너무 좋아서 밤에 잠이 안 올 정도였어. 아빠랑 아이스크림,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헷갈리기까지 했어. 매일이 그런 하루라면 어떻게 지루할 수가 있어? 핀란드에도 아이스크림이 있겠지, 런던에도, 암스테르담에도. 아빠도. 그러면 모든 게 빨리 달아날 거야. 잠도 못 잘 거야. 날아다닐 거야. 지루한 게 뭔지 난 모를 거야. ”

 

 



 나는 아빠에 대해 생각했다. 대사관과 관리들, 제복들, 볼가 승용차들, 서류들, 라디오, 스모그, 물이끼, 운하, 안개, 바다, 호수, 작은 창문들, 책들, 회색의 거리들, 서로 다르지만 똑같이 지루한 도시들. 아빠에게 인사하는 사람들. 스몰니 집의 거실. 보드카. 그루지야 와인. 우유 넣은 홍차. 터키 과자. 아빠를 찾아오는 사람들. 당. 위원들. 파벨. 아빠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했다. 돌마예프가 밀려났으니 아빠도 아마 몇 년 못 갈 거라고. 나를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상대를 찾아줘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는 파벨을 골라왔다. 당과 모스크바가 밀어주는 모범적인 남자. 안정적이고 탄탄한 가문.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를 위해서. 그런데 이 모든 게 지루하지 않다고?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당돌하고 바보 같은 허세쟁이.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그러기엔 너무 귀여운 이 꼬맹이. 

 

 

 

 미샤는 새로 따라준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시고 수프를 먹었다. 어느새 접시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흑빵으로 크림을 몽땅 닦아 먹었다. 남은 보드카를 홀랑 다 마셨고 결국 기침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빵이 목에 걸렸다고 뻥을 쳤다. 그리고는 여전히 노래하는 어조로 말했다.

 



 “ 아, 잊었네. ”

 


 “ 뭘? ”

 


 “ 건배. 알랴를 위해. 건강을 위해. 푸쉬킨을 위해. 우리 그렇게 하잖아. ”

 


 “ 나중에. 다같이 마실 때. ”

 


 “ 하긴 두 잔밖에 안 마셨으니까. 그럼 푸쉬킨은 남겼네. ”

 


 “ 이제 몸 녹았지? ”

 


 “ 응. 따뜻해졌어. 졸려. ”

 


 “ 너 잠은 잘 자니? ”

 


 “ 잘 때도 있고 못 잘 때도 있어. ”

 


 “ 오늘은 잠 잘 올 거야. 핀란드 우하도 먹고 보드카도 마셨으니까. ”

 


 “ 좋아. 잠이 오면 정말 좋아. ”

 


 “ 저쪽으로 가서 자. 소파 하나 비었어. ”

 


 “ 나중에. 다같이. 안드레이도 오면. 남은 한잔 같이. 푸쉬킨을 위해. 그때는 맑은 우하. ”

 

 



  꼬마는 취해서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거의 잠꼬대였다. 부엌 구석의 낡은 소파로 데려다 주자 금세 인사불성이 되어 잠들었다. 바닥에 내팽개쳐져 있던 코스챠의 재킷을 주워서 덮어주자 담요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옷깃을 꼭 쥐고 목까지 끌어올리며 쌕쌕 숨소리를 냈다.

 

 



 나는 크림 찌꺼기가 말라붙은 접시를 설거지통에 쑤셔 박았다. 그리고 남은 보드카를 따라 마셨다. 반 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덕분에 다 떨어진 수프와 흑빵을 아쉬워하지 않아도 됐다. 술 때문에 더워져서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지만 꼬맹이의 본을 받아 ‘나중에, 다같이. 트로이도 오면.’ 하고 혼잣말을 하며 거실로 돌아가 남은 필사본을 다 읽었다.

 

 

 

 



FIN
2019.3.9 ~ 3.30


 

 

..

 

 

 

 

 

 

 

미샤와 알리사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단어 몇개.

 

마가단은 스탈린 시절 악명높은 강제노역수용소가 있었던 곳이다.

 

예세닌과 브로드스키는 러시아 시인. 에스키모와 플롬비르는 러시아 아이스크림 종류이다. 전자는 초콜릿 입힌 하드 아이스크림, 후자는 유지방이 높은 둥글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콘.

 

트로이가 본명인 안드레이란 이름을 싫어하고 이 이름을 택하게 된 유래는 예전에 발췌한 적이 있다. 여기 : https://tveye.tistory.com/7043

 

'알랴, 건강. 푸쉬킨을 위해' 라는 말은 전에 쓴 글들에서 유래했다. 갈랴의 문학 모임 멤버들의 습관이다. 보통 러시아인들은 건배할 때 첫잔부터 순서대로 여인을 위해 건배하고, 이후에는 건강, 그 다음엔 성공이나 뭐 이것저것 순서대로 하는데(물론 때에 따라 다르다) 이 친구들은 아무래도 문학 모임이다 보니 세번째 건배는 항상 '푸쉬킨을 위해!' 하고 외치는 버릇이 있다. 이 건배사는 미샤의 입에도 붙어 있기 때문에 예전에 쓴 단편 Frost 에서도 미샤가 비행기 안에서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술을 마실 때 써먹는다.

 

알리사에 대한 발췌본 몇개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5016 (알리사와 기계벌레, 불가코프와 도스토예프스키)

https://tveye.tistory.com/5178 (문을 여는 사람, 악령과 성모)

https://tveye.tistory.com/5040 (파리의 알리사)

 

 

 

 

맨위에서 언급했던 그 카페 '두셰브나야 꾸흐냐'에서 내 몸을 녹여주었던 핀란드 우하. 이때 에피소드는 여기 : https://tveye.tistory.com/3535

 

언젠가 이 우하와 카페, 데니스에 대해 단편이나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신 이 미니 단편을 쓰게 되었다.

 

 

 

 

이건 내가 집에서 끓였던 약식 핀란드 우하.

 

크림을 넣어 끓이는 핀란드 우하 레시피에 대해 전에 번역해 올린 적이 있다. 여기 : https://tveye.tistory.com/3538

 

 

 

 

갈랴와 료카의 아파트. 현재의 페테르부르크,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의 바실리예프스키 섬 쉡첸코 거리에 있다. 내가 예전에 지냈던 기숙사가 있던 동네이고 이 아파트는 그 근처에 있다. 이 건물 어딘가에 트로이와 알리사네 모임 아지트인 갈랴네 집이 있다. 이건 여름에 가서 찍은 사진이라 햇살이 좋고 밝게 나왔지만 겨울엔 물론 춥고 어둡다.

 

이 동네와 아파트들에 대한 사진들은 여기 : https://tveye.tistory.com/8509

 

 

 

 

이런 창문들 중 하나가 갈랴네 집 창문일 것이다.

 

 

 

겨울의 그쪽 동네. 이 겨울 풍경은 몇년 전 찍은 거지만 사실 레닌그라드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
Posted by liontamer






어젯밤 마친 글은 알리사의 1인칭 시점으로 썼다. 아주 짧고 가볍고 조용한 미니 단편이었다. 알리사는 예전에 트로이에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지만 서술자로 나선 적은 없었다.



아마 몇주 전 무의식적으로 단어 하나와 대화 몇개를 떠올리고 곧 그녀를 불러내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 어느 순간이든 내가 알리사와 뭔가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 역시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쓰는 순간이면 그게 어느 누구가 되었든 작가는 그 인물과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최소한의 일부를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찻물을 올리려고 보니 주전자도 없고 빈 냄비도 없었다. 전부 설거지통에 쌓여 있었다. 아니, 주전자는 아까 이고리가 깔고 앉아 찌그러뜨렸다. 료카는 하고많은 살림살이 중 하필 주전자냐며 울상을 지었다. 갈랴가 탈린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저 주전자를 펴놓든지 아니면 어디서 하나 구해 오라고 투덜거렸다. 초인종 고장 난 건 아무렇지도 않아 하면서 기껏 주전자 하나에 세상 무너진 것처럼 구는 게 우습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물을 끓이기가 어렵게 되자 나도 이고리를 한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설거지를 하기는 더 싫었다.




...





우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얘기했어. 아직도 내가 빌려줬던 번역 노트들을 기억하더라. 시 같은 건 난 구절도 가물가물한데 걘 다 외고 있었어. 난 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지만 걔는 자기 얘기는 별로 안 했어. 나에 대해 물었지. 런던에서 내가 어떻게 사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사람들과는 잘 지내는지.



난 하마터면 울 뻔 했어. 왜냐하면, 트로이. 걔가 정말로 묻고 있었던 건 내가 그곳에서는 덜 외로운지, 조금이라도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놓고 관대해졌는지, 그래서 자신을 조금이라도 사랑하게 됐는지에 대한 거였으니까.




..






찌그러진 주전자에 대한 단락은 어제 마친 글에서, 아래의 대사는 몇년 전 쓴 글에서 발췌했다. 둘다 화자는 알리사이다.



어제 마친 글은 퇴고를 마치고 맘이 내키면 이 폴더에 전문을 올려보겠다. 겨울밤 알리사와 미샤가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스케치 파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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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19. 3. 31. 20:06

간밤, 비 내리기 sketch fragments 2019. 3. 31. 20:06




예전에 쥬인과 같이 살던 시절, 밤늦게 노트북을 펴놓고 글을 쓰고 있으면 쥬인이 '토끼가 또 비를 내리는구나' 라고 했었다. 자판을 타닥타닥 두들기는 소리가 비 내리는 소리 같아서. 



간밤에 짧은 글을 한 편 완성했다. 비를 내렸다.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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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