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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닐 하름스를 다시 읽고 있다. 편지와 일기가 수록된 선집을 화정에서 들고 왔는데 무거워서 어제 좀 고생을 했다. 위의 사진은 웬만한 하름스 선집에는 다 포함되어 있는 짧은 희곡 "История Сдыгр Аппр" (즈듸그르 압쁘르 이야기)이다. 옛날에 하름스의 원문들을 읽을 때는 다른 작품들에 더 끌렸는데 이번에 다시 읽으니 이 작품이 가장 생각난다. 마술적으로 심장 한구석을 슥슥 잡아당기는 느낌이 있다. 



Сдыгр Аппр는 하름스가 만들어낸 의성어인데 이 사람이 원체 말장난에 능한 작가이기도 하고, 또 이 부조리하고 엽기적인 미니 희곡에서는 폭력적인 주인공이 중간에 노래하듯 읊어대는 대사에서 추임새처럼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р는 러시아어의 r인데 영어와 달리 rrrrr 하고 혀를 부르르 굴려주며 발음하기 때문에 이 대사를 쭉 읽으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우스운 주문을 외는 듯, 노래하는 듯 느껴진다. 아마 원어민들에게는 더욱 재미있었을 것이다. 희곡은 주인공이 상대방과 악수를 하면서 한 손을 뽑아버리는 것으로 시작해 중간에는 의사의 귀를 물어뜯고(이 부분을 읽다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서 스타브로긴이 지사 어르신의 귀를 물어뜯는 장면이 생각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잠든 등장인물들의 귀를 몽땅 잘라내고 도망간다. 



여러번 되풀이해 읽곤 하는데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몇년 전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에서 바로 이 작품으로 작은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어쩐지 딱 어울린다. 그때 가서 봤으면 참 좋았을텐데 아쉽다. 이스또리야 즈듸그르 압쁘르~



이것이 거의 맨 마지막. 주인공 뾰뜨르가 사람들 귀를 몽땅 잘라냈다는 지문이 적혀 있음. 엽기적이긴 한데... 이 작가 스타일이 원래 이렇다. 나는 20세기 초중반 작가들 중 미하일 불가코프를 제외하면 조셴코와 하름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조셴코의 유머가 서민적이고 거의 누구에게나 먹히는 유머라면 하름스는 좀더 뒤틀리고 섬뜩하고 뒤통수를 때리는 부조리한 유머이다. 인텔리겐치야와 폭력이 뒤섞여 있다고 해야 하나... 



예전에 글을 쓰며 미샤에 대해 묘사할 때 나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일린과 이런 대화를 나누게 했었다. 미샤가 조셴코 농담은 재밌어서 다들 웃는데 왜 자기가 농담하면 다들 안 웃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자 일린은 너의 농담은 조셴코가 아니라 하름스에 가까워서 그렇다고 한다. 



사실 그 글은 꽤나 심각한 이야기였지만 그 부분에서 나는 조금 농담을 섞고 있었다. 결론은 농담으로 안 느껴졌음. 그 글을 발췌한 적도 있다. 여기 : https://tveye.tistory.com/4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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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모는 쓰다 보니 거의가 다닐 하름스와 이스또리야 즈듸그르 압쁘르,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것이라 fragments 폴더가 아니라 books 폴더로 분류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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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39주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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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일했었다. 어제는 기차 타고 2집에 돌아온 후 너무너무 피곤해서 10시도 되기 전에 잠이 들었다. 새벽에 두어번 깼지만 도로 잠들어서 거의 10시가 다 되어 일어났다. 날씨까지 꾸무룩해서 계속 잘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억지로 일어났다. 



아침에 잠깐 집 앞에 나가 별다방에서 티푸드를 사서 들어왔다. 산책을 하고 싶었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우산도 소용없이 빗방울이 얼굴을 마구 때려댔기 때문에 그냥 별다방만 들렀다 돌아옴. 아침 챙겨먹고 차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오후에 너무 졸려서 한시간 반쯤 또 잤다. 피로가 정말 엄청나게 쌓여 있었던 것 같다. 내 몸 안에서 잠이 계속 밀려나오고 또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날이 습하다. 이미 에어컨을 돌리고 있다. 여름이 다가오는 것 같아서 무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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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