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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제 월요일이 되고 말았네. 흑흑... 보통의 휴가를 생각하면 우와 일주일이나 남았다!’ 지만 흑흑 일주일 밖에 안남았어란 생각이 드니 인간이란 참 상대적이다.

 

 

어제 감기약 먹고 잤다. 아침에 엄청 피곤한 꿈을 꿨다. 이것도 종종 꾸는 꿈인데 잘 모르는 동네에 와서 택시를 잡아야 하는데 안 잡히는 꿈이다. 오늘 꿈에서는 카카오택시를 부르는데 카카오가 이상하게 변해서 무슨 게임처럼 되고 하여튼 택시는 못 잡고 괴로웠다. 이런 택시와 버스 꿈, 이상한 숙소 꿈, 고장나거나 이상한 곳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꿈 등등 다 뭔가 관통하는 본질이 있는 것 같다.

 

 

아침까진 감기약을 먹어주는게 나을 것 같아서(기침이 약간 나왔다) 조식을 챙겨먹고 올라왔다. 오늘부터 흐려지고 해 안 난댔는데 의외로 창 너머를 보니 해가 좀 났다. 그치만 내가 나갈 땐 흐려지겠지 하며 뭉기적거리다가 11시 반 즈음에야 방을 나섰다. 거리는 춥고 쌀쌀했지만 그래도 해가 좀 나고 있었다. 이러면 햇볕 쬘 수 있는 데를 가야 되는데 필리모의 커피 스펠에 가는게 맞는 선택인가? 해는 오후에는 사라진댔는데 하며 갈팡질팡했지만 그래도 결의를 다지며 버스를 타고 커피 스펠에 갔다. 커피 스펠 얘기는 따로 올렸으니 생략.

 

 

 

 

 

 

커피 스펠에서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요 며칠 몸 상태도 그렇고 먹은 것들을 생각해보니 뭔가 동물성 단백질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좀 걸어가면 그루지야 식당이 있었다. 필리모 거리 옆으로 빠져서 좀 걸어가니 전에 아이들과 함께 갔던 비르쥬 두오나가 있는 루드닌쿠 거리가 나왔고 식당은 그쪽에 있었다. 레스토랑이 이뻤다. 가지 요리 먹고팠지만 아니야 동물성 단백질 먹어야돼!’ 하며 샤실릭을 주문함. 샤실릭은 양고기, 돼지, , 연어, 플래터가 있었다. 소고기가 있으면 그걸 먹을까 했는데 소는 안 보였다. 그럼 닭을 먹어야 하나 싶었지만 구운 연어를 좋아하는 고로 생선이지만 동물성이라 할 수 있지. 심지어 더 건강한 단백질이지라고 생각하며 연어 샤실릭 주문. (그리고 역시 이 동네가 거의 그렇듯 생선은 육류보다 비쌉니다) 소스와 가니쉬를 선택하게 되어있는데 달콤한 석류 소스를 추천하길래 그것을 고르고 가니쉬는 구운 야채를 골랐다. 음료는 양이 적고 저렴하고 음식의 맛을 해치지 않는 걸 고르려고 탄산수를 보니 보르조미가 아닌 딴 브랜드길래 이건 안 짜겠지하고 그것을 주문.

 

 

 

 

 

 

탄산수는 보르조미만큼은 아니었지만 좀 짰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은 다들 하차푸리랑 힌칼리를 먹고 있었다. 드디어 내 샤실릭이 나왔는데 우왁, 꼬치를 세로로 꽂아서 가지고 왔다. 엄청난 비주얼! 다른 테이블 사람들이 내 쪽을 보며 저거 맛있겠다로 추정되는 이야기를 했다. 이렇게 보니 양이 엄청 많아 보인다만 이게 꼬치에서 빼면 그렇게까지 많진 않아서 나는 저 연어구이를 다 먹음. 석류 소스는 너무 진하고 달았다. 나는 원래 연어엔 레몬만 뿌려먹는 걸 좋아하는데 그루지야 요리에서 레몬만 주세요는 어쩐지 안 어울릴 거 같긴 함. 구운 야채도 맛있었다. 파프리카와 호박은 구워줬고 옆의 샐러드에는 석류알을 곁들여 주었다. 엄청 맛있게 잘 먹고 나왔다. 몸에 영양공급이 된 느낌.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하고 나왔는데 햇살이 따스해서 루드닌쿠 거리의 놀이터 앞에 잠깐 앉아서 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그리고는 영원한 휴가님과 오후에 보기로 했으므로 일단 보키에치우 거리로 가서 주변을 좀 배회하다가 따뜻한 햇살을 찾아서 디조이 거리로 꺾어 구시청사 앞 벤치에 앉아 책을 좀 읽었다. 분명히 2년 전 6월에 왔을 땐 이 시청 앞이 너무 싫었는데(그늘 없고 덥고 또 새벽의 문 쪽이라 여기쯤 오면 너무 지치고 지리도 잘 모르고) 지금은 시청 앞 벤치 따뜻하고 좋다란 인상이 꽉 박힘. 그래서 햇살 쬐며 벤치에 앉아 있다가 영원한 휴가님이 오셔서 함께 후라카나스의 후라칸에 갔다. 그 얘기도 따로 올렸으니 생략.

 

 

후라칸에서 나와서 우리는 슈가무어에 잠깐 들렀다. 여기 애프터눈 티세트가 있다고 하여 내일 오후로 예약하려고. 그런데 이거 예약이 드문 일인지 카운터의 남자 점원에게 얘기하자 점원이 막 당황함. ‘... 물어봐야돼요 잠깐만요..’ 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가며 산드라를 찾는다. ‘산드라, 애프터눈티 돼? 내일이래로 추정되는 얘기를... 그리고는 나와서 잠깐만요 내일 되나 안되나 물어볼게요라고 하고 다시 산드라한테 갔다. 산드라가 매니저인가 아니면 파티시에인가. 그러면서 화요일 17시에요?’ 라고 내가 말하지도 않은 시간을 얘기한다. 그래서 내가 아니요 화요일 두시. 두사람이요라고 정정해줌 ㅋㅋ 산드라가 된다고 했나 보다. 좀 밝아진 얼굴로 점원이 나와서 가능하다고 한다. 날짜, 시간을 적어주고 내 이름을 묻길래 잘 못 알아들을 거 같아서 내가 성을 직접 써주었다. 근데 보통 예약을 하면 전화번호도 받아야 하는데 이 점원은 내 이름만 받고는 다 됐다고 하네. 여기 사람들은 서로 신뢰도가 높은가... 노 쇼하면 어쩔라고... 너 그러다 산드라한테 혼나면 어떡해. 수수께끼의 궁금한 산드라. 하여튼 그래서 내일은 슈가무어에서 당분파티 예정 :)

 

 

예약 후 영원한 휴가님이 나를 필리모 가는 길까지 바래다주셨다. 나는 엘스카에 들러 책을 좀 읽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씻고 저녁 먹고(드디어 리미 김치를 거의 다 먹음!) 오늘 메모를 적는데 이게 또 왜 이렇게 길고 안 끝나나... 카페 얘기들을 써서 그런가보다. 나는 아무래도 빌니우스 카페 책을 내야 할 것만 같다. 출판사들이여 저에게 러브콜을 보내주세요 :)

 

 

오늘은 7,526. 4.9킬로.

 

 

내일은 비오고 흐리다고 한다. 흑흑 오늘도 흐리다 했지만 그래도 3시 무렵까진 해 났으니까 제발 내일도 해가 짠 하고 나오게 해주세요.

 

 

마무리는 디조이 거리의 구시청사 앞 벤치에서 책 읽은 사진이랑 시청사 풍경 사진. 뭔가 기억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이 벤치 쪽에만 햇살이 들어와서 골라 앉음. 이 초록분홍 치마가 얼마전 여기서 구입한 긴 치마. 따뜻하다. 

 

 

 

 

 

 

무지개까지 비쳐드는 시청사 앞. 여름엔 싫었지만 지금은 볕 쬐러 오는 곳이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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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0. 22. 04:04

늦은 오후 엘스카 2024 riga_vilnius2024. 10. 22. 04:04

 

 

 

어제는 이딸랄라에 가고 또 몸이 좀 피곤해서 빨리 들어오느라 엘스카에 안 갔다. 오늘은 후라칸에 갔다가 방에 들어가는 길에 아쉬워서,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들를 수 있는 루트라서 오후 늦게 엘스카에 들렀다. 4시 50분 다 되어 갔으니 평소보다 늦은 시각이었고 이미 그때는 햇살이 사라지고 흐려져서 빛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그래도 매우 한적한 시간대였고 좀 어둑어둑해진 엘스카도 또 이뻤다. 그리고 내가 앉고 싶었던 저 don't ask why 자리가 비어 있어 오늘 드디어 앉아보았다. 테이블이 낮은 건 안 좋았지만 책 읽기엔 괜찮았고 또 저 의자가 기대기에 참 편해서 좋았다. 

 

 

디카페인으로도 해준다고 되어 있어서 플랫 화이트를 디카페인으로 주문했다. 커피 초보이므로 맛의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플랫 화이트는 설탕을 넣어도 조금 씁쓸하다. 하여튼 디카페인이라서 걱정 없이 마시며 책을 읽었다. 편안하고 좋았다. 5시 반 정도에 일어났다. 엘스카가 우리 나라에도 있으면 참 좋겠다. 카페 에벨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었지. 엘스카는 에벨만큼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드는' 카페는 아니지만 그래도 참 좋다. 이제 며칠 안 남았네 흐흑...

 

 

늦은 오후 좀 어둑어둑하고 한적한 엘스카 사진 몇 장. 원래 여러번 간 카페는 따로 포스팅 안하고 메모에 같이 적는 편인데 엘스카는 매일 따로 올리고 있음. (사진이 많아서. 카페가 예쁘니까 사진을 자꾸 찍게 됨)

 

 

 

 

 

 

 

 

 

 

 

 

 

 

 

 

 

 

 

 

 

 

 

 

 

 

 

 

 

 

 

 

 

 

 

 

 

엘스카도 모퉁이에 있어서 건물의 2개 면을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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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
2024. 10. 22. 03:56

후라카나스의 후라칸 2024 riga_vilnius2024. 10. 22. 03:56

 

 

후라칸 커피는 체인이기 때문에 빌니우스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카페인만큼 많지는 않다. 그런데 후라칸은 지점마다 건물의 공간적 특성도 있겠지만 뭔가 제각각의 스타일이 있어서 가면 구경하며 다른 점 찾는 게 재미있다. 이 후라칸은 새벽의 문 근처, 디조이 거리와 에트모누(? 이름 정확하지 않음) 거리 교차점에 있는데, 오후에 영원한 휴가님과 만나서 어디 갈까 하다가 한적한 분위기가 좋다고 하신 이 후라칸에 같이 와보게 되었다. 

 

이 후라칸은 토토리우와 보키에치우의 후라칸과는 많이 달랐다. 덜 북적거렸고 좀더 아늑했고 흰색 계열로 밝았다. 그리고 테이블과 테이블 간격이 넓고 안쪽 홀과 옆쪽 복도 등 공간들이 묘하게 분할되어 있어 실제보다 왜곡이 느껴져서 미묘하게 아늑한 느낌이 있었다. 공간과 공간 사이가 넓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작은 방들로 이루어진 느낌이라 해야 하나. 테이블들보다는 입구 쪽 홀에 크게 자리잡고 있는 카운터와 바가 주인공인 느낌이다. 그리고 그 바 한가운데 카페 점원(역시나 1인만 있었는데 좀 매니저나 점장 같은 느낌이었다)이 여유롭게 계심. 

 

 

그런데! 그 점원이 바로 얼마전 보키에치우 후라칸에서 봤던 그 점원. 내가 후라카나스라고 이름붙인 사람이었다. 영원한 휴가님이 아마 체인이기 때문에 이 지점 저 지점을 돌면서 근무할 거라고 하셨다. 그 사람이다. 손님 너무 많아서 설거지를 못해서 컵도 없어서 플랫 화이트 종이컵에 줘도 되냐고 하고, 머그컵 구매하자 포장 박스 없다고 난감해 하고, 또 초짜 직원 가르치느라 더더욱 힘들어보였던 그 후라카나스! 근데 이 지점은 손님도 별로 없고, 바의 진열장에도 디저트 종류도 별로 없고 전체적으로 헐렁해보였다. 그래선지 후라카나스가 아주 여유있고 행복해 보였다! 심지어 문가 테이블에 앉은 두명의 아가씨와 즐겁게 대화를 하고 뭔가 농담따먹기로 추정되는 이야기도 하고 웃고(리투아니아어 모르므로 느낌만) 같이 과자도 먹고! 엄청 신나보였다. 가게 전체를 편안하게 장악하고 있는 느낌! 우리 나라로 치환하면 건물주가 하는 카페 주인같은 느낌! 분명 보키에치우에선 허덕거리고 있었는데... 후라카나스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하다 ㅎㅎㅎ

 

 

 

나는 얼그레이를 시켰고 영원한 휴가님은 더블 에스프레소. 그 이후 블랙 커피를 추가주문하셨다. (내가 매일 카페 메모를 적으면서도 커피 종류를 몰라서 물어보기 때문에 미리 알려주심 ㅎㅎ) 그런데 블랙 커피는 아메리카노랑은 다른것인가, 시킨 것을 보니 찐한 것이 꼭 러시아에서 쥬인이 시켜 마시던 그 타르처럼 진한 커피 닮았다고 묻자 아마 그거랑 비슷할 거 같다고 하심. 블랙도 카페에 따라 묽게 아메리카노 같은 곳도 있는데 후라칸은 진하다고. 생각해보니 후라칸 플랫화이트 엄청 썼음 ㅎㅎㅎ (그래서 감히 무적 테이스트 맵보다 쓰다고 내가 잘못 속단하기까지 함) 전에는 후라칸에서 얼그레이를 티포트에 마셨는데 여기선 주문할때 후라카나스가 '레귤러 사이즈?'라고 물어서 '뭐가 다른가? 어차피 티포트 아닌가?' 하며 네네 했더니 유리잔에 주었다. 유리잔에 주는 건 양도 조금 더 적고 아마도 좀더 저렴했을 것 같음(여러개 시키면 가격 잘 체크 못하는 자)

 

 

그리고 진열장에 디저트도 거의 없었는데 나는 그루지야 음식을 먹고 온 터라 단게 먹고파서 초콜릿 푸딩(갑자기 그 불어로 된 이름이 생각안나네. 데우면 안에서 초콜릿이 녹아서 흐르는 그거... 아아아 이름 뭐지... 기억력 다 감퇴됨. 하여튼 여기서는 초코 푸딩이라 적혀 있었음)을 시켰고 영원한 휴가님이 버터맛 타르트(브르타뉴 피라가스라고 적혀 있음)를 시키심. 후라칸은 디저트들은 그닥 뛰어나진 않지만 그래도 차랑 커피랑 먹으니 또 나쁘지 않게 잘 먹었다. (디저트는 이딸랄라가 더 좋은 걸로 결론. 비싸지만)

 

 

이 후라칸은 무척 맘에 들었고 후라카나스를 보는 것도 즐거웠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너무 좋았다. 많이 기억날 것 같은 곳이다. 근데 얘기하느라 정신팔려 사진은 별로 못 찍음. 그나마 찍은 사진 몇 장. 맨 위는 다 먹고 나가면서 찍은 우리 테이블의 잔해들. 여기는 역시 컵들이 이쁘단 말이야. 

 

 

 

 

 

 

손님들의 테이블이 아니라 바가 주인공인 카페! 그리고 후라카나스의 옆모습. 

 

 

 

 

 

 

 

 

 

 

 

 

 

 

조명 때문에 이쁘게는 안나왔다만. 하여튼 첨에 시켰을 때. 

 

 

 

 

 

 

내 찻잔 너머로 보이는, 손님들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계시는 후라카나스.

 

 

 

 

 

 

후라카나스만 계속 등장... 이게 내 자리에서 보이는 게 저 카운터가 제일 컸음. 

 

 

 

 

 

 

이건 외관 사진인데 오늘 찍은 게 아니고 10월 9일에 새벽의 문 다녀오다가 찍었던 사진 두 장

 

 

 

 

 

 

야외 테이블은 오늘 다 접혀 있었다. 해가 좀 났는데... 분명 후라카나스가 야외 테이블 펴면 잔도 치워야 되고 힘드니까 안 폈을 거라고 우리끼리 중상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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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스펠은 필리모 거리에 있다. 엘스카에서도 두세 정거장을 더 가야 한다. 여기서 좀더 올라가면 할레스 투르구스 시장과 새벽의 문이 나오니 숙소에서는 꽤 떨어져 있고 구시가지 관광지와도 떨어져 있다. 필리모 거리는 넓고 쭉 뻗어 있고 트롤리버스들과 자동차가 휙휙 지나다니는 거리로 구시가지만 놓고 보면 대중교통이 제일 많이 다니는 넓은 도로인 것 같다. 나는 이 거리를 걸어가면 페테르부르크의 리고프스키 대로가 좀 생각나곤 한다. 게디미나스 대로가 네프스키 대로라면(그만큼의 상징성과 매력은 없다만) 필리모는 좀 썰렁하고 관광지는 없고 버스랑 차가 많이 다니는, 그리고 기차역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면에서. 그러나 물론 나는 리고프스키 대로를 좋아해본 적이 없고 자주 걸어다니지도 않았으며 어쩌다 거기 가게 되면 '으으 여기는 힘든 곳...' 하고 괴로워했는데 필리모는 엘스카 때문에, 그리고 다른 동네들로 갈 때 이어지는 길목이 되기 때문에 거의 매일 가는 곳이 되었다!

 

 

하여튼 이 커피 스펠은 재작년에 처음 왔을 때 영원한 휴가님이 적어주신 빌니우스 구시가지 쪽의 가볼만한 카페 리스트에 들어 있었는데 그땐 짧게 머물렀고 숙소에서도 가깝지 않은데다 관광지 쪽도 아니어서 결국 못 갔다. 커피 스펠과 테이스트 맵이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꼭 가봐야지 했는데 위치도 그렇고 이래저래 가는 게 쉽지 않았다. 그리고 구글맵의 사진을 보니 테이블과 의자가 좀 식당 같은 느낌이었고 브런치 위주로 바뀌어서 음식 냄새가 날것 같고 볕이 잘 안 드는 위치일 것 같아서 차일피일 미뤘다. 그러다가 '뭐 나 가고 싶은 데만 가지뭐, 엘스카랑 이딸랄라, 후라칸만 가도 뭐 어때' 하게 되었다가... 여행이 일주일밖에 안 남게 되자 '그래도 안 가보면 나중에 돌아갔을 때 아 그래도 가볼걸 하고 아쉬워할거야' 란 생각에 오늘 분연히! 버스를 타고 커피 스펠에 갔다. 

 

 

여기는 정말 카페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 있다. 썰렁한 필리모 거리 한복판...보다는 조금 더 위에 있는데 건너편에는 시나고그가 있다. 그래서 창 너머로 시나고그가 보이는 것만이 이 카페의 위치적 장점인가 싶다. 영원한 휴가님 말씀으론 이 카페가 첨 생겼을 땐 테이블 위에 램프를 놓아두어서 어두운 겨울 아침에 지나가다 보면 창 너머로 램프 불빛이 새어나와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하셨는데 그 마음에 이입이 많이 된다. 어둡고 추운 겨울의 이른 아침, 컴컴한 건물들 사이로 창문을 희미한 오렌지빛으로 물들이며 스며나오는 램프 불빛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게 또 있을까?

 

 

카페 내부는 미니멀리즘과 식당 테이블의 결합처럼 느껴졌다. 맨벽과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고 장식도 거의 없었다. 카운터 뒤에 거대한 녹색과 청색 계열의 패널 같은 게 덧대어져 있는 것이 인테리어의 전부였다. 나는 그게 장식 패널이라 생각했는데(나올 때까지 끝끝내) 영원한 휴가님이 그건 이 건물의 옛날 벽면 일부를 그대로 유지한 채 카페가 들어온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사진을 잘 보니 정말 옛날 벽이었다. 칠 벗겨진 자리까지 그대로... 아아 나는 정말 뭘 보고 다니는 건가... 그런데 이 카페의 유일한 인테리어처럼 느껴지는 게 바로 이 옛날 벽임. 나에게는 좀 춥고 썰렁한 느낌이었다. 

 

 

나는 카푸치노를 시켰다. 커피 스펠이라고 하니까 좀 궁금해서. 그리고 점심을 먹어야 하므로 커피를 조금만 마시고 디저트 같은 건 안 먹으려고. 카푸치노는 조금 썼지만 아주 진하지는 않았다. 설탕 투하. 

 

 

카페는 조금 추운 편이었다. 처음엔 한적했지만 12시 무렵이 되자 사람들이 이어서 들어왔다. 대부분은 브런치를 먹었다. 팬케이크 종류와 베이글류, 샥슈카 등의 브런치가 많은데 사람들은 보통 팬케이크를 주문하는 것 같다. 나는 처음에는 홀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가 시나고그가 잘 보이는 창가의 높은 바 테이블로 기어올라가 앉았다. 그쪽은 의자에 등받이가 없어 불편했지만 어차피 오래 앉아 있지는 않을 거라서. 근데 역시 책을 읽기엔 테이블이 나에겐 좀 높았다. 맨 위 사진이 기어올라간 창가 테이블.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런치를 먹었으므로 아래 테이블들에 앉았다. 

 

 

카푸치노는 반 잔쯤 마셨다. 이미 수차례 읽었던 책이라 가볍게 넘겨가며 읽었다. 오늘은 스트루가츠키가 아니라 하루키의 잡문집을 들고 왔다. 그 이유는... 맨 아래에도 사진이 있지만 여기가 문앞에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푸틴 쿨하다 생각하면 들어오지 마라' 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너무 단언적인 그 명령에 사실 '전쟁도 푸틴도 싫지만 이런 건 좀 불편하다' 라는 느낌에 커피 스펠에 오는 걸 미루게 된 것도 좀 있다. 하여튼 소심한 나는 '푸틴 편이라고 오해되면 우째, 노어로 된 책 들고 가서 당당히 못 읽겠어, 무싸와' 라는 생각에 우리말로 된 책 들고옴. 흑흑... 

 

 

그리고 여기서 나는 막판에 화장실에 갇혀서 못나오는 줄 알았다. 빌니우스 카페들은 화장실에 가면 문 잠그고 열때 가끔 고생을 하는데, 여기도 그랬다. 분명히 한번 돌려서 잠갔는데 나가려고 아무리 돌려도 열리지 않음. 한번 돌려도 두번 돌려도 세번 돌려도 안 열리고... 침착하자, 다시 해보자, 열릴 것이다 하고 정말 스무번을 돌려도 안 열림. 허헉, 소리쳐야 하나... 열어달라고 도움을 요청? 밖에서 손잡이를 뽀개야 하나... 정말 너무 안열려서 고생고생했는데 어쩌다 막판에 열렸다. 이게 어쩌면 잠긴 건 열렸는데 내가 요령이나 힘이 없어서 손잡이와 문을 힘차게 팍 열지 못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런 곳들도 많기 때문이다. 대체로 문이 무겁고... 하여튼 그래서 커피 스펠은 '화장실에 갇힐 뻔한 곳'으로 마지막 인상이 남아버릴 뻔 했는데 나갈 때 결국 그 '푸틴 좋으면 들어오지 마' 로 각인되었음. 이 카페는 나에게는 한번쯤 들르고 족한 카페로 남을 것 같다. 아래 사진들. 

 

 

 

 

 

 

이게 필리모 거리 따라서 올라가다 보이는 모습. 간판도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 오후까진 생각보다 해가 나서 좋았다. 

 

 

 

 

 

 

내부. 첨에 앉았던 홀의 테이블. 설탕 투하 전의 라떼 아트가 살아있는 카푸치노. 

 

 

 

 

 

 

정말 별 장식 없는 내부 공간. 나는 이 의자들이 너무 식당 느낌이라 맘에 안 들었는데, 생각해보니 프라하의 카피치코도 의자가 좀 이런 식이었다. 하지만 카피치코는 좀 아기자기한 스타일이라서 다르긴 하다. 그리고 여기는 벽에 콘센트가 많았다. 

 

 

 

 

 

 

카운터 뒤의 옛날 벽. 저렇게 버젓이 벗겨진 칠과 벽돌 등등 '나 옛날 벽이오' 하고 있고 심지어 안으로 들어가 있는데! 나는 저것을 장식 패널이라고 착각하고(패널이었으면 튀어나와 있어야 하는데)

 

 

 

 

 

 

가려져서 뭔지는 안보이지만 월요일 오전에 브런치를 먹으며 즐거운 사람들. 

 

 

 

 

 

 

그런데 여기서 인상깊었던 점 하나. 내가 창가 테이블로 기어올라갔을 때. 특이하게 이 아래 벽에 콘센트와 함께 가방걸이가 있었다! 옷걸이라기에는 너무 낮게 달려 있어서 이것은 가방걸이가 분명했다. 우와 이건 너무 좋다! 안그래도 '가방을 바닥에 놓으면 부자가 될 수 없다!'라는 리투아니아의 전승에 대해 몇년 전 영원한 휴가님께 들은 이래 바닥에 가방 놓는 게 너무 신경쓰였는데... 그래서 빈 의자에 놓거나 심지어 내 등 뒤에 가방을 놓아야 했는데... 이거 세심하고 좋다. 커피 스펠에서 제일 맘에 들었던 건 바로 이거였습니다 :) 

 

 

 

 

 

 

반쯤 마신 후 일어나면서 찍은 창가 사진. 이쪽에서 보면 시나고그가 안 보임. 

 

 

 

 

 

 

하루키 잡문집은 어제도 얘기했듯 편차가 심한데, 특히 음악에 대한 얘기들은 좀 피곤하다(어쩌면 나랑 취향이 달라서 그럴테지만 이 사람은 재즈 얘길 하면 좀 스노브처럼 변함. 내용보다는 문체가...) 그러나 역시 글쓰기나 번역에 대한 쪽으로 가면 재미있다. 이 파트는 '언더그라운드'를 집필하는 과정과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진의 저 부분은 읽을 때마다 '흐흑, 이입돼...' 상태가 되어서 찍어둠. 

 

 

 

 

 

 

내부 모습 한 컷 더. 

 

 

 

 

 

 

이게 그 푸틴 관련 문구. 영원한 휴가님이 '거기 이런 문구 적혀 있어요' 라고 말씀해주셔서 좀 그랬는데 들어갈 땐 이걸 못봐서 '그 문구 이제 없어요' 라고 알려드렸다. 그런데 나오면서 보니 여전히 있었다. 심적으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아마도 저 문구의 단정적인 스타일 때문에 '쿨하다 생각하지 않고 전쟁도 푸틴도 지지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의 명령조 문구를 보면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막 생기진 않는걸' 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 같음. 그리고 맞은편엔 시나고그가 있고... 시나고그에는 가자에서 납치된 사람들을 돌려달라는 내용으로 추정되는 전단들이 붙어 있는데(아닐지도 모름. 자세히 안 봤음) 그렇게만 보기엔 또 팔레스타인에서 학살되고 있는 생명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니 여러 모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간판 사진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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