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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ward Villella'에 해당되는 글 1

  1. 2016.11.27 체제의 이름, 비행사, 천사 이름 붙은 도시 34

 

 

촛불을 들고 나가지는 못했지만, 8시 소등이나마 함께 하고서...

 

아래 글은 얼마 전 발췌했던 수용소 중편 2부 후반부이다. 전에 썼듯 이 소설은 미샤가 레닌그라드 정신교화 수용소에서 겪는 일(1부), 모스크바 비밀 클리닉에서 그의 후원자였던 정치가와 면회하는 이야기(2부), 역시 같은 클리닉에서 절친한 친구 일린과 면회하는 이야기(3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내가 원래 구상했던 가브릴로프 본편의 프리퀄이기도 하다.

 

2부까지는 프라하에서 썼다. 2부에서 미샤는 고문 후유증 때문에 심신이 매우 피폐해져 있는 상태에서 후원자였던 유력 정치가인 게오르기 이바노비치 벨스키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여기 발췌한 부분은 그 대화의 후반부이다. 지난번 몇번 올린 적 있는 3부의 일린과의 면회보다 시간적으로 앞에 있었던 일이고, 미샤는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아직 회복이 많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여기서 게오르기 벨스키는 그를 어떻게든 수용소에서 빼내 자신의 고향인 소도시 가브릴로프로 보내려고 한다. (그래서 이 중편이 가브릴로프 본편 프리퀄이 된다)

 

언급되는 '파나예바'는 모스크바 비밀 클리닉의 의사이다.

미샤가 말하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는 전에 몇번 발췌했던 단편의 화자였던 정치가 드미트리 마로조프이다. 내가 구상한 이 우주에서 벨스키는 마로조프의 후원을 받아 정치계에 데뷔한 인물이다. 그리고 미샤가 불쑥 비행사니 폭격이니 하고 중얼거리는 이유는 벨스키가 공군 장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루슬란'은 미샤가 제일 처음 안무했던 작품 '루슬란과 류드밀라'이다. 물론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작품임.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파나예바는 미샤에게 진정제를 놓거나 억지로 재우려고 들지 않았다. 통통하고 짧은 팔을 벌려 그 야윈 몸을 포옹했고 미샤가 반항하거나 소리치지 않자 주름지고 부드러운 뺨을 그의 얼굴에 대고 가볍게 비볐다.

 

 “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니까. 이제 전부 괜찮아질 거야. 그 사람도 갔어. 저건 게오르기 이바노비치야. 모스크바에서 잠깐 들르신 거야. 여기서 나가게 해주려고 그러는 거야. 도와주려고. 그러니까 이제 괜찮아. ”

 

 미샤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통통하고 가무잡잡한 파나예바의 쿠션처럼 부드러운 품 안에서 그는 날개가 부러진 커다란 새처럼, 높은 곳에서 떨어진 천사처럼, 브루벨 그림의 검은 머리 악마처럼 길 잃은 눈을 멍하게 뜨고 몸을 웅크린 채 침묵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파나예바가 포옹을 풀고 베개를 고쳐 대주려고 했을 때 미샤가 벨스키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놀랄 만큼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 왜 오셨는지 다시 얘기해주세요. 기억이 안 나는데. ”

 

 “ 내가 누구인지는 알아? ”

 

 “ 게오르기 이바노비치. 그런데 성은 생각나지 않아요. 중요해요? ”

 

 “ 지금은 별로. ”

 

 “ 아, 그건 기억해요. 당신 어머니가 무용수였죠. 어느 극장이었더라, 천사 이름이 붙은 도시였는데... 당신 비행사였죠.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가 얘기했었지, 양키들이 도발해오면 크레믈린에 앉아 있는 얼간이들 중 유일하게 진짜 폭격기를 몰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건 중요해요. ”

 

 “ 미국 놈들을 폭격하러 갈 수 있어서? ”

 

 “ 아니, 그건 멍청한 짓이죠. 절대 그런 짓은 하면 안돼요. 지도 위의 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좌표를 폭격하는 것도 살인이니까. 당신들 벌써 너무 많이 죽였어. 그건 좋지 않아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

 

 “ 그럼 뭐가 중요하지? ”

 

 “ 비행사라는 것. 지금도 할 수 있어요, 비행기 조종? ”

 

 “ 그건 자전거나 수영과 비슷한 거야. 아마 할 수 있을 걸. 자네가 다시 춤을 출 수 있는 것처럼. 일어나면 전처럼 출 수 있겠지.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까. ”

 

 “ 아니, 전 다시 추지 않을 거예요. ”

 

 

 그는 다시 추지 못할 거라고 말하지 않았다. 추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벨스키는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는 파나예바가 자신을 병실에서 내쫓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래 목적에 맞는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 그래, 이제 추지 않을 거라고 했었지. 하지만 극장을 떠나겠다고는 하지 않았잖아. 계획하고 있었던 작품들이 여럿 있었지. 그것들 무대에 올리고 싶지 않아? ”

 

 “ 글쎄요, 제가 그러고 싶다고 해서 올릴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아사예프는 그 순진하고 무해한 루슬란도 취소해 버렸는데요. 몇 년 동안 올렸던 건데. 프로그램도 다 찍어냈는데, 5일 앞두고 들어냈어요. ”

 

 “ 아사예프야 겁이 나서 그랬겠지. 자네가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재판에 회부됐으니까. 반체제주의자의 작품을 레퍼토리에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

 

 “ 그 체제란 게 뭔지 누가 제대로 설명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

 

 

 미샤는 파나예바의 걱정스런 시선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벨스키는 그녀에게 괜찮다는 의미로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여줘야 했다. 그 나이든 여의사는 아직 온전한 정신을 찾지 못한 미샤가 당 고위 간부 앞에서 본심을 드러내며 돌이킬 수 없는 발언을 할까봐, 그래서 석방될 수 있는 기회를 완전히 날려버리게 될까봐 공포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에는 벨스키를 당장 내쫓고 미샤에게 주사를 놓아 재워버려야겠다는 결연한 표정이 급박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 그걸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면 애초부터 자넬 체포되게 내버려두지도 않았겠지. ”

 

 

 미샤는 납득한 것 같지 않았지만 짜증을 내거나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저 명백한 사실을 기술하듯 무심하게 대꾸했을 뿐이었다.

 

 

 “ 어쨌든, 이제 키로프에서는 절대 안 올려줄 걸요. 그것들을 받아줄 극장은 이제 없어요. ”

 

 “ 레닌그라드에서는 그렇겠지. 모스크바도. ”

 

 

 벨스키는 미샤의 흐릿한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고 과연 이것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 내가 자네 빼줄 수 있어. 하지만 레닌그라드로 돌려보낼 수는 없어. 나라고 해도 지금은 불가능해. 극장은 다른 곳에도 있어. 거기서 머리 좀 식히면서 기다리면 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

 

 “ 잘 모르겠어요. ”

 

 

 미샤는 오른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잠깐 심호흡을 했다. 벨스키는 그가 다시 피를 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파나예바가 더 이상 참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를 내쫓는 것도 모자라 다시는 면회를 시켜주지 않고도 남을 여자였다. 그 조그만 여의사가 그에게, 게오르기 벨스키에게 그런 위축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마 파나예바의 태도가 그의 아내를 연상시키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미샤는 기침을 하거나 피를 토하지 않았고 파나예바도 벨스키를 쫓아내지 않았다. 다만 환자의 체온을 확인한 후 고개를 한 차례 흔들더니 벨스키에게 엄격한 어조로 말했을 뿐이었다.

 

 

 “ 5분만 더 드릴 거예요. 너무 오래 깨어 있었어요. 제가 자리를 비워드려야 하나요? ”

 

 

 벨스키는 그럴 필요 없다고 대꾸했다. 파나예바가 나가면 미샤가 그를 다시 스비제르스키와 혼동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긴 미샤는 이제 그녀가 곁에 있다는 것도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 자네 아까 내 어머니에 대해 얘기했었지. 어떤 극장 무용수였다고. 거긴 내 고향 도시야. 기억나나? 전에 한 번 행사 때문에 같이 가기도 했잖아. 춤은 안 췄지만. ”

 

 “ 천사 이름 붙은 도시. ”

 

 

 미샤는 거의 기계적으로 대꾸했지만 자신의 대답에 확신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갑작스럽게 열이 오르는 듯 창백하던 뺨과 코, 이마 위로 비정상적인 홍조가 물감을 풀어놓은 듯 넓게 번지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기운은 환자복 칼라 사이로 드러난 멍든 목덜미까지 퍼져나갔다. 벨스키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 그래. 거기 극장이 있어. 물론 키로프나 볼쇼이는 아니지. 하지만 그렇게 나쁘지 않은 극장이야. 거기 새 예술 감독이 필요해. 수용소에 돌아가서 그런 끔찍한 일을 다시 겪는 것보다는 거기 가는 게 훨씬 나을 거야. ”

 

 

 미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베개에 머리를 던진 채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을 뿐이었다. 이제 눈꺼풀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벨스키는 문득 그가 자신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젊은 아이가 제대로 회복되기 힘들 것이고 설령 운 좋게 건강을 되찾는다 해도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 모든 제안은 헛된 일에 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뜨거운 분노가 치밀었다. 그게 그들의 견고하고 이상적인 체제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에 대한 분노인지, 아니면 그 찬란한 재능을 가지고도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고 또 파괴해 마침내 부서진 조각들을 짜맞출 수조차 없는 상태로 몰아넣은 미샤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조차 분간이 가지 않았다.

 

 

 

...

 

 

 

 

 

 

이 수용소 중편은 이전에 조각조각 여러번 발췌한 적이 있다. 그 중 몇개 링크는 아래.

1부) 수용소와 심문자들 http://tveye.tistory.com/4748
2부) 게오르기 벨스키 http://tveye.tistory.com/4502
3부) 일린과 미샤의 면회 : http://tveye.tistory.com/5551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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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