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

« 2024/12 »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벌써 2주가 훨씬 지나갔고 나는 다음주 수요일에 돌아가는 비행기를 탄다. 즉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간밤에도 여러 꿈을 꾸었다. 이주일 전 프라하에 와서는 오랜만에 다시 오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향수에 빠져서, 돌아다니느라, 그리고 친구가 와줘서 함께 다니느라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보고 걷고 차를 마시고 좋아했던 장소에 가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내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것으로 충분히 바빴다. 삼각형 방과 의자 부재의 문제가 제일 골치아픈 정도였다

 

 

그리고 친구는 돌아갔고 나는 구시가지로 숙소를 옮겨왔다. 내가 이전에 머물렀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다.

 

 

역시 구시가지는 관광객들로 넘치고 공기 자체가 다르다. 예전에도 그런 걸 느꼈는데, 구시가지는 좀더 화려하고 웅장한 대신 어딘가 차갑고 싸늘하다. 아마도 요세포프와 거대한 고딕식 광장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말라스트라나 쪽 역시 관광객들이 많지만 이쪽보다는 훨씬 덜하고 그쪽은 좀더 주민들이 많다. 해가 더 잘 들고 좀더 아기자기하고 조금 더, 뭐랄까, 사람 사는 동네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선지 구시가지로 옮겨오자 좀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래도 한국에 돌아갈 날도 가까워지고 휴직 기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 그런지 좀 불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기도 하다. 아마 그래서 꿈도 꾸고 자다가 깨어나면 한동안 잠이 안 오나보다.

 

 

..

 

 

 

오늘 급여가 들어오는 날이었는데 물론 휴직 중이라 상당 부분 삭감되었고(질병으로 인한 휴직일 경우 초기 3달 동안은 급여의 일부를 좀 받을 수 있다) 작년도 평가 결과도 별로 좋지 않아(뭐 자업자득이다. 작년 하반기에 내가 워낙 방황을 했으니) 더 깎였다. 회사 다니는 내내 성과평가 결과나 등급에 대해 걱정해본 적이 없었는데 아프고 나서, 그리고 작년 같이 특수한 경우 등을 겪고 나니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싶다. 그래서 이번달 수입은 매우 적고, 물론 지출은 많다. 여기 오기 전에 1년짜리 묶어놨던 적금도 한개 풀어서 자금을 좀 조달해 왔다. 이럴 거라고 미리 생각하긴 했지만 확실히 눈에 보이는 숫자가 나타나면 좀 고민이 되기 마련이다.

 

 

나는 8월에 퇴사를 결심했었고 실제로 이를 실행하러 갔었다. 노조의 도움으로 잠시 휴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물론 그건 그리 매끄러운 과정이 아니었다. 만일 내가 정말 간절하게돌아갈 생각이었다면, ‘정말 간절하게 이 자리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나는 노조에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고 노조의 도움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쨌든 임원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이었고 노조에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하고 도움을 받음으로써 사측에 대해 일종의 스트라이크 행위를 보여준거나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연차와 나의 위치에서 이 행위는 사실 영리한 건 아니었다. 앞날을 생각한다면, 남는다고 생각한다면. 하지만 그땐 전혀 그런 생각을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나는 그렇게 행동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회사와 밀고 당기기를 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그때 나는 너무 절박했고 떠나기로 마음먹었고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나에게 노조에 얘기한 것은 잘한 행위라고 했다. 나 역시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만일 그때 처음 생각했던 대로 말없이 퇴사하고 떠났다면 그리 타당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무척 괴로워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있자니 아마도 페테르부르크에 갔을 때보다 좀더 객관적이 된 것 같고 좀더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한다. 아마도 나는 아직 두려운 것 같다. 통장 잔고. 앞으로의 미래. 새로운 직업에 대한 가능성 여부. 부모님. 나이. . 그냥 모든 것이. 그래서 이러다가 그냥 돌아가게 되는 걸까?’ 하고 자문하게 되기도 하고 그건 자신에게 비겁한 행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 대한 꿈을 꾸고 회사 사람들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곁에 누가 있어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한다. 아마도 많이 쓸쓸했고 그만큼 자신감도 상실했고 약해진 모양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성숙하고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건 일종의 환상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며 성숙하고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그것을 확장해나가는 가운데 강해질 것이다.

 

 

 

..

 

 

 

 

하여튼..

 

 

오늘은 조식을 먹어보려 했지만 어제 잠이 모자랐기 때문인지 오늘은 아침에 깼다가 자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이불을 두개나 덮고 잤지만 추웠다. 밤 기온이 6~7도니 그럴만도 하다. 그리고 구시가지는 말라 스트라나보다 더 춥다. 예전부터 느낀 점이다.

 

 

늦게 일어났고 어제 폴에서 사온 빵이랑 차를 먹고 나갈까 하다가 몸이 많이 허해진 것 같아 한국식당에 가서 런치를 먹기로 했다. 구시가지 들로우하 거리를 다라 쭉 가다가 베네딕트스카 쪽으로 접어들면 mamy라는 한국 식당이 있었는데 3년 전에 두어번 갔었다. 그때 많이 쓸쓸했던 때라 한국말을 듣고 인사를 했을때 슬며시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숙소에서 600미터쯤 떨어진 거리라 금방 갔다. 예전에 많이 돌아다니던 지역이기도 하고. 많이 변했다. 장사가 잘 되는지 다른데도 분점을 냈다. 그땐 한국음식 위주의 좀 소박한 메뉴와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스시와 각종 라멘, 각종 요리 등등 좀 중국식당처럼 굉장히 다양한 메뉴로 바뀌었다. 마케팅도 그렇다. 대신 현지인들이 많이 찾고 아시아인들도 중국사람들이 꽤 있었다. 런치도 전엔 두어가지였으나 이제 스시를 포함해 요일별로 매일 5가지 정도 있다. 그런데 나는 돼지고기 알레르기 때문에...

 

 



계란프라이를 얹어주는 짜장볶음밥 런치가 159코루나여서 그것을 고르고, 거기에 미니 된장찌개를 시켰다. 짜장은 춘장을 볶아 만든 것 같은데 볶음밥에 간장과 참기름이 들어갔는지 좀 짠 편이었다. 전반적으로 간이 세서 아쉬웠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밥과 된장찌개를 먹고 나왔다. 한국인이 하는 가게가 잘돼서 좋긴 한데 어쩐지 난 3년 전의 그 가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음식도 그렇고...

 

 

마미에서 나와서 오랜만에 들로우하와 마스나, 리브나 등등 그쪽 길을 걸었다. 이쪽은 좀더 외지고 응달이고 어둡다. 낙서도 더 많다. 가는 길에 체코 포스터와 엽서 가게에 들러 맘에 드는 엽서를 몇장 샀다. 이쪽에서는 아녜슈카 수도원이 가깝다. 그래서 거기 갔다.

 

 

..

 

 

 

내가 프라하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개의 사원. 로레타와 아녜슈카이다. 후자는 매우 오래된 곳이고 돌로 만들어져 있고 아주 소박한 장미창과 아치가 있어 바로크풍의 화려한 로레타와는 완전히 다르다. 아녜슈카에는 중세 성화들과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 내가 비밀스럽게 좋아하는 그리스도 조각상이 하나 있다. 매우 인간적이고 매우 처절하고 또 불완전한 조각상, 진짜 예술가의 세련된 솜씨가 아니라 어딘가 서툴게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나는 사실 아녜슈카에 그 조각상과 장미창의 빛을 보러 가곤 했다. 별로 싸지 않은 입장료를 내고.

 

 

오랜만에 갔더니 많이 변했다. 샵도 생기고 로비도 많이 바뀌고 심지어 코트보관소까지 생겼다. 그러나 슬프게도, 전시품이 몇개 되지 않았다. 알고보니 발트슈테인 궁전 쪽에서 중세를 아우르는 큰 전시를 하면서 거기에 아녜슈카 전시물들이 상당부분 가 있었다. 오늘 산 입장권으로 거기 가서 볼수 있다고 한다. 가보면 되긴 하는데... 주중에 로레타 갔다가 들러볼까 한다. 왜냐하면... 그 그리스도 조각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훨씬 얌전하고 정통으로 만들어진 목각 그리스도상 뿐이었다. 슬펐다.

 

 

..

 

 

 

아녜슈카에서 나와서 그쪽 동네를 잠시 거닐었다. 산책하고 사진 찍기 좋아하던 고적한 장소였다. 그리고 언제나 이곳은 어딘가 싸늘하다. 요세포프의 시나고그들이 있는 곳들이 그렇듯. 그러다 플레이모빌 샵 발견!!! 테스코에 용감한 조지 친구들 사러 갔다가 없어서 슬퍼했었는데 어린이 장난감 가게 진열창에 거대한 플레이모빌이 빵긋 웃고 있었다! 정신없이 들어가 홀린 듯이... 기사와 천사와 악마 모빌을 사버림 ㅠㅠ 망했다. 통장 잔고 보고 슬퍼한 게 불과 두시간 전이잖아 ㅠㅠ 용감한 조지 친구들에 그만 눈이 멀어... 뭐 그렇게 비싼 금액은 아니지만 한푼두푼 모여 이미 유리지갑은 가루먼지로... 이제 정말 아무것도 안 사야지..

 

 

..

 

 

 

한국식당에서 먹은 짜장볶음밥과 김치 때문에 입안이 안좋아서 차와 케익을 먹으러 베이크숍 프라하에 갔다. 여기는 가격대가 좀 있지만 그래도 빵과 케익이 맛있는 곳이다. 예전에 두달 동안 살때 가끔 가서 빵을 사기도 하고 애플파이나 티라미수를 테이크아웃해오곤 했다. 여기 티라미수는 프라하에서 제일 맛있다. 좀 진하고 두껍고 슬라이스아몬드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이탈리아에서 먹은 티라미수와는 약간 다르지만(도리어 이탈리아에서 먹은 티라미수는 좀더 부드럽고 아이스크림 같고 묽은 제형이 많았음) 맛있다. 오늘 다시 먹으며 느꼈다. 맛있네.

 

 

..

 

 

걸어서 숙소에 돌아왔다. 짐과 카메라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들고 다시 나왔다.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아.... 며칠 전 갔던 황금수탉 건물의 찻집에 갔으나 자리가 없어 바츨라프 광장 쪽의 도브라 차요브나에 왔다. 료샤가 보스턴 티파티를 안 마시고 내가 카쉬미르의 향기를 마셨다가 피봤던 그곳이다 오늘은 다즐링 히말라야를 시켰다. 내 노트북의 엘지 마크 때문인지 주인이 나에게 한국에서 왔느냐면서 재작년에 tea trip을 갔었다며 보성과 부산, 제주도를 갔다고 한다. 내가 보성 녹차밭 가셨냐고 했더니 그렇다면서 판타스틱했다고 한다. 녹차아이스크림 드셔보셨어요 했더니 그거 못먹었다고 아쉬워한다... 근데 사실 나도 보성 녹차밭 못가봤어 ㅋㅋ

 

 

보스턴 티파티는 좀 강할 것 같아 다즐링 히말라야 시킴. 너무 맘에 드는 푸른색 세라믹 티포트와 조그만 찻잔을 줬는데 이거 너무 갖고 싶다... 하지만 이거 파는 거냐고 물어보지 않을거야 유리지갑 가루... 아 근데 이 찻잔 너무 예쁘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푸른색과 녹색이다 ㅠㅠ

 






 

근데 여기도 와이파이가 왔다갔다 하네. 이 글이 올라갈지 모르겠다.. 이거 올려놓고는 숙소로 돌아가 저녁 대충 먹고 글 좀 쓰다 자려고 한다.

 

 

 ... 찻집에서도 와이파이 끊겨서 나왔는데 라진님 쉑쉑버거 포스팅 때매 버거 먹고파서 버거킹 와서 와퍼 먹고 있음. 히티틀러님 생각도 나네요... 여기서 와이파이가 잡혀서 올려보고 있음. 역시 패스트푸드점과 스타벅스여야 하나 ㅠㅠ

 


'2016 praha'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 무스텍 근방  (4) 2016.09.22
오늘은 세개나 찾았어요!  (2) 2016.09.22
아녜슈카 수도원  (2) 2016.09.21
베이크숍 프라하에서 잠시 쉬는 중  (4) 2016.09.21
빨간 구슬손잡이 빈티지 머그  (4) 2016.09.21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