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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나는 미샤의 10대 후반에서부터 20대 초반까지, 발레학교 상급생에서 키로프 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춤추던 초기 4년까지의 시기를 배경으로 꽤 긴 소설을 썼었다. 원래 쓰려던 소설은 아니었다.



그때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가브릴로프 본편을 구상했었다. 워밍업으로 드미트리 마로조프와 미샤가 비행기에서 나누는 대화를 주축으로 한 단편 Frost를 먼저 썼고(이 글에 대해서는 여러번 포스팅한 적이 있다) 그 후 가브릴로프 본편을 시작하려고 플롯과 인물들을 직조하기 시작했다. 트로이는 이 시기에 떠오른 인물이다. 떠오르기보다는 거의 필연적으로 왔다.



그리고 어쩌면 쓸데없이, 어쩌면 과잉, 혹은 게으름, 주제일탈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트로이에 대해 생각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 이 사람은 왜 여기에 있을까.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행동하고 왜 이렇게 이야기할까. 그것은 내가 미샤 야스민이란 인물에게 다가갔던 과정과 조금 비슷했다.



그때는 글을 쓰기가 좀 힘든 시기였다. 역설적으로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트로이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아니, 트로이의 렌즈를 통해 미샤라는 인물에 대해 좀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완성된 소설은 내밀했고 여기저기 금이 가 있는 유리조각 같았고 조용했고 동시에 시끄러웠다. 나는 트로이를 심리적 화자로 등장시켰고 다분히 고의적으로 미샤의 곁을 맴돌게 했다. 그는 행성이 되었고 때로는 그보다도 못한 위성이 되었다. 하지만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들 모두가 항성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의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이지만 분명한 이유로 '트로이'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아래 발췌문에 나온다.



아래 발췌문은 이 소설의 1부 3장, 아주 초반부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것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 소설에서는 트로이라고 불리며 오로지 미샤 야스민으로부터만 '안드레이'라고 불리는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의 장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일반적으로 인물에 대해 쓰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떤 등장인물에 대해 이런 식으로 줄줄이 설명하는 것은 양날의 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이런 방식이 필요했다. 오직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에 대해서만.



발췌된 글 말미에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내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라는 인물을 어떻게 불러냈는지에 대한 짧은 메모가 붙어 있다.



맨 위 사진은 페테르부르크의 이즈마일로프 사원, 별칭으로는 트로이츠키 사원이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식을 올렸던 사원. 그리고 내가 트로이의 이름을 따온 곳이다. 그의 성은 이 사원에서 가져왔다. 그의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래 발췌문에 나온다. 맨 위와 아래의 트로이츠키 사원 사진은 둘다 웹에서 가져옴(내가 이렇게 잘 찍으면 얼마나 좋을까 ㅎㅎ)



갈랴, 알리사 등은 모두 트로이의 친구들이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다. 보통 그 정도로 키가 큰 사람들은 시선을 끌기 마련이지만 트로이츠키는 그렇지 않다. 아마 그의 별 특징 없는 머리색과 흐릿한 얼굴 윤곽, 언제나 앞으로 굽어 있는 어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197센티미터의 키에 언제나 뻣뻣하게 뒤엉키는 긴 팔다리를 늘어뜨린 나무인형 같은 사람이다. 새치가 드문드문 섞인 우중충하고 어두운 금발을 전형적인 문과 대학원생 스타일로 멋대가리 없이 짧게 깎은 데다 아무리 다림질을 해도 결국은 어딘가가 구겨지고 마는 셔츠와 소매가 접히는 재킷을 입고 다닌다. 구두 뒤축은 언제나 찌그러져 있고 바짓단에는 자주 진창 얼룩이 진다. 그는 구부정한 자세로 왼쪽 발을 살짝 끌면서 걷는다.




   
 부드러운 잿빛 눈의 뼈대가 굵고 조금 야윈 남자, 두세 명만 옆에 있어도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사람이다. 아마 당신은 네프스키 거리나 국립대학 앞 강변을 걷다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와 수십 차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임이나 파티에서 당신에게 그를 소개해준다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한 후 돌아서자마자 그의 얼굴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굵고 낮으며 부드러운 편이지만 무릎을 떨리게 할 만큼 섹시하지도 않고 콤소몰 중창단에 들어갈 만큼 근사한 것도 아니다. 딱히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다, 그는 당과 강령에 충성을 다하는 붉은 영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사고를 친 적도 없고 경찰서에 끌려간 적은 더더욱 없다. 그가 알기로는 KGB 요원을 달고 다닌 적도 없다. 물론 밝은 대낮에 마주친다 해도 그는 그게 보안요원인지도 모를 것이다. 그에게는 예리한 직감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1949년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중학교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쳤고 아버지는 수학 교수였다. 그는 단 한 번도 레닌그라드를 떠나서 산 적이 없다. 해외에 가본 적도 없다. 이혼 후 리가의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아버지 때문에 여름 방학 때 두어 번 그곳에 가본 적이 있지만 물론 연방은 해외가 아니다.



 껑충한 키 때문에 그는 농구나 배구를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실상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모든 종류의 운동에 소질이 없으며 피오네르 캠프 교사는 그에게 수영을 가르치기 위해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교육법을 다 동원해야 했다. 지금 그가 친구들과 흑해에 가서 물에 몸을 띄울 수 있는 것은 모두 그 책임감 강한 교사 덕분이다. 어린 시절 그는 기다랗게 튀어나온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지곤 했다. 아무도 그에게 별명을 붙여준 적이 없지만 트로이츠키는 남몰래 자신을 회색 거미라고 생각하며 우울해하곤 한다.



 그는 별다른 노력 없이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에 진학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언제나 5점을 받는 우등생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좋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었다. 교사들은 그를 모범생이라고 여겼지만 특별히 사랑하거나 챙겨주지는 않았다. 그는 평균 이상의 언어적 재능을 갖추고 있었고 작문도 곧잘 하는 편이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학부를 선택해야 할 때 같은 반 단짝이었던 알리사가 외국어학부에 가서 영어를 공부하자고 꼬드겼다. 트로이츠키는 친한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데다 오래 전부터 영미 문학에 대한 은밀한 사랑을 품고 있었으므로 그러기로 했다. 그의 부모는 어쨌든 유망한 학과이므로 찬성했다.



 영어권 국가에 나가본 적이 없고 원어민에게 교습을 받은 적이 없는 것을 감안한다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의 영어 실력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담당 교수 스베들로프는 그에게 넌지시 KGB 관련 진로를 추천한 적이 있다. 트로이츠키는 나름대로는 외교적인 태도로 품위 있게 거절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 일 년 동안 교수는 그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석사 학위를 마쳤을 때 스베들로프는 다시 한 번 그 제안을 하게 된다.



 트로이츠키가 해외 진출과 출세가 반쯤 보장된 그 길을 택하지 않은 것은 그가 격렬한 반 소비에트 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나약하고 소심한 성격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레닌그라드와 친구들 때문이다. 그리고 절반쯤은 미샤 야스민 때문이다. 몇 년 후 그는 동베를린과 오슬로 측으로부터 연구직 초청을 받게 되지만 고민 끝에 그 기회를 거절하게 될 것이다. 그때 미샤 야스민이란 이름은 어느 정도도 아니고 절반도 아닐 것이다. 그 이유의 완벽한 전부를 차지할 것이다.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딱히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멸망한 고대 국가 트로이를 동경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성을 따서 트로이라고 불러달라고 청했을 뿐이다. 톨스토이를 좋아했던 그의 부모가 ‘전쟁과 평화‘의 안드레이 공작에서 그의 이름을 가져왔다. 트로이츠키는 톨스토이를 싫어하며 안드레이 공작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인물의 따분하고 비관적인 회의주의 때문이 아니라 그를 집어삼킨 길고 고통스러우며 무의미한 죽음 때문이다.



 그의 선량한 친구들은 부탁을 받아들여 그를 트로이라고 부른다. 멸망한 고대 국가의 러시아식 이름은 트로야이지 트로이가 아니며, 더구나 트로이란 별명은 트로이카, 즉 기껏 3점짜리 점수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친구를 그렇게 부를 수 없다는 갈랴 예피모바만 빼고. 트로이츠키는 오랜 친구 갈랴가 자신을 안드류샤라고 부르도록 허락하지만 내심 그렇게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드물게 미샤 야스민이 그를 안드레이라고 부르는 순간이면 트로이츠키는 톨스토이와 죽은 공작에 대한 자신의 뿌리 깊은 혐오를 완전히 망각한다.





 ...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남몰래 습작을 한다. 10대 소년 시절부터 모눈 공책에 시를 써 왔고 가끔은 소설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완성된 소설은 거의 없다. 피오네르 시절 그는 영웅도시 레닌그라드와 폭격에서 청동기사상을 구하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날랐던 시민들에 대한 시를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지만 알리사를 제외한 모임 친구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는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될까봐 걱정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의 수많은 시들과 미완성 소설이 적힌 노트들을 들춰보았던 건 알리사와 미샤 야스민 뿐이다.



 알리사와는 중고등학교 시절 서로의 습작 노트를 공유하며 토론하던 사이지만 트로이츠키는 항상 알리사가 순수 문학보다는 풍자와 비판을 더 좋아한다는 것과 그녀가 언젠가는 글쓰기를 그만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리사는 대학에 진학한 후 더 이상 습작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서와 토론은 여전히 좋아해서 그와 함께 모임을 시작했다. 그녀는 트로이츠키에게 요즘 쓰는 글이 있으면 좀 보여 달라고 습관처럼 말을 걸지만 그는 번역 필사본과 평론, 영문학 수업과 관련된 메모가 아니면 더 이상 알리사에게도 자기 노트를 보여주지 않는다. 자신의 재능이 매우 흐릿하며 끈질기게 노력하고 매달려야만 간신히 조그만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말까 하는 정도란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불꽃을 가지고 태어나긴 했지만 그건 미지근하고 어둡게 깜박이는 촛불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깊은 우울증에 잠겨 한밤중에 네바 강으로 가서 빠져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미샤 야스민은 알리사와는 완전히 다른 경우다. 그때 트로이츠키는 논문이 잘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식히려고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미샤는 언제나처럼 불쑥 들렀다가 뒤집혀진 책상 서랍과 너저분하게 널려 있는 상자들 사이에서 펼쳐진 모눈 공책을 발견하고 모든 금서와 사미즈다트 애호가답게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뒤늦게 트로이츠키가 그 재앙을 알아차리고 사색이 되어 뛰어왔을 때 미샤는 유일하게 깨끗한 공간인 부엌 식탁 위에 걸터앉아 공책을 네 권 째 읽고 있었다. 트로이츠키가 얼굴이 붉어져서 심하게 말을 더듬거리며 공책을 빼앗았을 때 미샤 야스민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 영어로 쓰면 바깥에서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때 미샤가 시의 내용이나 형태에 대해, 그 무엇보다도 재능에 대해 침묵해 준 것에 대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움을 느꼈다.



 몇 년 후 미샤 야스민이 드라마 극장 무대에 프로코피예프 음악을 짜깁기한 15분짜리 모던 발레를 안무해 올렸을 때 그는 트로이츠키의 노트에 적혀 있던 시 몇 편을 제멋대로 해체하고 오려붙여 브이소츠키 풍의 발라드를 만들어 에피그라프처럼 삽입했다. 그건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의 생애에서 분명 가장 영광스런 순간 중 하나였다.




 트로이츠키는 여전히 글을 쓴다. 때로는 자신의 문장과 단어와 인물에 홀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따금 그는 사랑의 시를 쓴다. 밤이 지나고 나면 그 자신조차 다시 읽기 부끄러운 시들을.




 ...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학교의 몇몇 여학생들과 연상의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여자들은 그가 자상하고 선량한 남자이지만 수줍음이 많아 좀처럼 사귀자는 말을 먼저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 비친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이따금 끼는 안경이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공부벌레이며 어디를 가나 나서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를 배신하거나 꼭 필요한 순간 그 자리에 없는 얄미운 부류에는 절대 속하지 않을 사람이다. 그는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섹시한 상대는 아니지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안정적인 파트너로 보인다. 즉 연애 상대라기보다는 결혼 상대로 적합한 남자이다.




 트로이츠키는 오랜 기간 동안 여자를 사귄 적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 주변 사람들은 그와 알리사가 커플이라고 오해하곤 했다. 사실 그들은 아주 친한 친구였을 뿐이며 트로이츠키는 단 한번도 알리사에게 연애 감정이나 성적 충동을 느낀 적이 없다. 알리사는 일 년에 두어 번씩 남자친구를 바꿨고 가끔은 트로이츠키에게 자신의 연애사를 상담하기도 했다. 알리사는 석사를 마친 후 아버지가 소개해 준 남자와 결혼하지만 6개월 만에 이혼하게 된다. 이혼 후 알리사는 곧장 트로이츠키의 아파트로 와서 밤새 울고는 기분 전환을 하겠다며 냉장고를 몽땅 뒤집어 일주일 동안 먹어도 모자랄 만큼의 보르쉬와 펠메니, 감자 샐러드, 다진 고기파이와 버섯파이, 온갖 종류의 피클, 꼬치구이, 콤포트, 거의 보드카 도수에 육박하는 정체불명의 강력한 펀치를 만들어 놓고 떠난다. 그 산더미 같은 음식들을 처리하기 위해 트로이츠키는 모임 장소를 갈랴의 집에서 자기 아파트로 바꿔야 할 것이다.



 알리사 외에도 그에게는 여자 친구들이 많지만 애인은 없다. 그가 가장 오래 사귀었던 여자는 대학원 동기인 이라 티호노바였지만 그것도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친구들은 가끔 그에게 여자를 소개시켜 주기도 하고 소심증을 극복해보라고 각종 조언을 해주지만 그럴 때마다 트로이츠키는 언젠가 자기 짝을 만나면 결혼할 거라고 판에 박힌 대답을 하며 넘긴다.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자신이 결코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가족이나 친구들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는다.





...








아래 노트는 2013년 1월 말에 이 소설을 마치고 퇴고를 거듭한 후 쓴 후기의 일부이다. 이 노트에서 나는 그로부터 몇달 전, 처음 이 소설을 구상하고 트로이란 인물을 떠올렸을 때의 메모를 그대로 첨부했다. 그리고 이 메모는 위에 발췌했던 실제 소설의 일부에도 그대로 들어가 있기도 했다.




<2012년 가을의 메모에 대한 2013년 1월의 노트> 





 .... 소설을 시작할 때 나는 트로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메모를 적었다. 두 번째 단락은 1부 3장에서 그에 대한 소개를 할 때 거의 그대로 집어넣었다.




 나는 적당한 만큼의 엘리트이며 적당한 만큼 재능이 있고 그래서 우울하게도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에 해당되는 인물을 만들기로 했다. 그의 이름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이며 1949년생이다. 배경은 1971년~ 1977년의 레닌그라드이다. 트로이츠키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을 밟는 일종의 지식인이며 회색 종자다.
  


 키가 껑충하게 큰 그는 어깨를 구부정하게 굽히고 다니며 긴 팔다리가 언제나 볼품없이 뒤엉키는 나무인형 같은 사람이다. 새치가 섞인 우중충한 블론드를 당시 소련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멋없이 짧게 깎고 있으며 부드러운 잿빛 눈을 가진 남자, 두세 명만 옆에 있어도 전혀 눈에 띄지 않는 타입의 사람이다. 아마 당신은 네프스키 거리나 국립대학 앞 강변을 걷다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와 수십 차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모임이나 파티에서 당신에게 그를 소개해준다면 생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인사를 한 후 돌아서자마자 그의 얼굴을 잊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에게는 내부에 은밀한 뭔가가 있으며 그건 브레즈네프 시대 소련의 평범한 대학생 청년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누군가는 불꽃과 빛을 타고 나며 누군가는 굳어져가는 촛농에 남아 있는 희미한 온기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물론 후자이다. 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어둠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며 물론, 욕망과 사랑도 있다. 사실 그건 아주 강력한 것이다. 결코 우스꽝스럽지도 않고 약하지도 않다. 
  


 글을 쓰는 입장에서든 읽는 입장에서든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그렇게 어려운 인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재능은 우리들 많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흐릿하고 나약하기 때문이다.



 'Frost'와는 달리 나는 3인칭을 골랐다. 따라서 안드레이 트로이츠키는 드미트리 마로조프처럼 관대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아마도 전이는 있을 것이다. 그것도 강력하게. 이번에는 관대함과 전이 사이의 틈새를 따라가는 글쓰기가 필요할 것이다.




....





글에 대한 이야기는 제게 큰 힘이 됩니다 :)
그리고 제 글은 여기서만 읽어주세요. 절대로 복사하거나 가져가시거나 인용/도용하지 말아주세요.

 


:
Posted by liontamer

페테르부르크에 머무는 마지막 날.

 

어제부터 비가 오더니 오전에도 내내 그치지 않고 내렸다. 비가 오니 행동반경에 제약이 온다. 1시쯤 숙소를 나섰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왔다. 남은 달러를 다 바꿔서 마지막 탕진을 하기로 했다. 네프스키 대로에 있는 로모노소프 가게에 가서 찻잔을 두개 더 샀다. 망했음.

 

그 로모노소프 가게 위에 블린 가게인 쩨레목이 있었기 때문에 아점을 거기서 스메타나 소스와 닭가슴살 든 블린인 '알료샤 뽀뽀비치'와 블랙베리 모르스로 해결했다.

 

 

 

 

비가 계속 왔다. 버스를 타고 이삭 성당 앞에서 내렸고 아스토리야 로툰다에서 차를 한잔 마셨다. 어차피 이제 돌아가야 하니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아했던 카페 중 하나에서 차 마시고 가려고. 여기는 bravebird님과 왔었고 나 혼자서도 두번 왔었다. 이 호텔에서 못 자니 차라도 실컷 마시고 가자 ㅠㅠ

 

여기 메도빅이 매우 맛있었다! 새로운 발견! 고스찌만큼 맛있다!!! (하지만 비싸 ㅠㅠ)

 

..

 

차 마시며 앉아 있다보니 늦은 오후가 되었고 비가 그쳤다. 여전히 흐리고 쌀쌀했다. 일단 버스를 타고 마린스키 앞에서 내린 후 숙소까지 걸어갔다. 찻잔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은 후 다시 나갔다. 그래도 비가 안 오니 트로이츠키 사원에 가려고.

 

 

 

트로이츠키 사원은 내가 머무는 림스키 코르사코프 거리에서 좀더 올라가 보즈네셴스키 대로를 따라 쭉 내려가다가 판탄카 운하를 건너 이즈마일로프 대로로 내려가야 나온다. 원래 이름은 이즈마일로프 사원이지만 성삼위일체를 모셨다고 해서 트로이츠키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가장 아름답고 특이한 사원 중 하나로, 내부보다는 외부의 금별 그려진 파란색 세개의 돔이 워낙 유명하다. 2006년인가 화재가 나서 재건축을 해서 그런지 금별이 옛날보다 훨씬 번쩍번쩍거린다.

 

이 사원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두번째 부인인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와 결혼했다.

 

몇년 전 쓴 본편 우주에 속한 소설에서 나는 심리적 화자에게 트로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의 본명은 안드레이 트로이츠키이다. 바로 이 성당에서 따온 성이었다. 안드레이라는 이름도 어딘가에서 따왔지만 그건 나중에... 그래서 미샤는 항상 트로이를 '사원 같은 사람', '교회 종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바깥에서 구경만 했지 실제로 들어가본 건 이번이 놀랍게도 처음이었다. 내부는 생각보다 휑하고 넓었다. 루블료프 풍의 삼위일체 이콘들이 가장 많았다. 나는 성 게오르기 이콘 앞으로 갔다. 가족과 나를 위해 초를 켜고 기도를 했다. 나는 정교 신자도 아니고 제대로 된 신앙을 가져본 적도 이미 오래전인 것 같지만,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쩌면 용기일지도 모르기에.

 

..

 

사원에서 나왔는데 술에 취한 러시아 아저씨 한명이 와서 정교 신자냐 부터 시작해 사원의 역사와 건축가에 대해 줄줄이 설명을 했다. 아마 날 데리고 다니며 열심히 가르쳐주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난 약속도 있었고 또 좀 무섭기도 해서 '고마운데 난 약속이 있어요' 라고 한 열번은 말한 후 간신히 도망쳤다. 아저씨가 악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불편하긴 했어요 ㅠㅠ

 

..

 

마린스키 구관과 신관 사이 크류코바 운하변에 the repa라는 레스토랑이 새로 문을 열었다. 예전엔 '자 스쩨노이'란 이름(백스테이지란 뜻)의 유명한 식당이 있었는데 극장 사람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이번에 긴자프로젝트 체인에서 새로 인수해 유명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겨서 새로 오픈했다고 한다. 가본 적이 없었고 트위터에서만 보며 궁금해했는데 료샤가 떠나기 전날이니 같이 가서 저녁먹자고 예약을 해주었다.

 

레스토랑은 근사하고 아름다웠다. 극장 느낌이 물씬 났다. 연지 얼마 안돼서 손님은 거의 없었고 막판엔 나와 료샤만 있었다. 가게 다 우리 거라고 농담하며 좋아했다.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이후 료샤가 숙소까지 태워다 주었다. 오늘은 짐을 싸야 해서 료샤에게 차를 못 우려줌.

 

내일 오후 2시에 공항으로 떠난다. 가기 전에 료샤랑 레냐랑 가능하면 꼭 보기로 했다. 근데 늦잠을 안 자야 할텐데...

 

..

 

돌아와서 괴로워하며 짐을 쌌다. 찻잔이랑 차가 왜 이렇게 많지 ㅠㅠ 엉엉... 뽁뽁이를 이번에 안 가져와서 면세에서 챙긴 뽁뽁이가 너무 적다... 종이랑 옷으로 잘 싸서 열심히 포장은 했다만.. 깨지면 안되는데... 내일 가방 패킹을 부탁해야겠다. 짐싸는 거 너무 힘들다.

 

..

 

나는 3주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글은 하나도 쓰지 않았다. 많이 누워 있었다. 잤고 숨을 쉬었고 먹었다. 걸었고 공연을 봤다. 슈클랴로프 나오는 공연도 운좋게 4편이나 봤다. 좋은 사람 몇명을 만났다.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아름다운 도시, 내가 사랑하는 도시에 와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그게 일시적인 치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좀 슬프다.

몇달 더 남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일 돌아간다.

 

나에게 용기와 평온과 힘이 생기기를!

 

내일은 좀 일찍 일어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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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