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 아이 about writing2024. 10. 25. 04:58
며칠 전 발췌했던 <밤, 레닌그라드>의 후반부 일부. 미샤가 레닌그라드, 자신의 도시에 대해, 여름과 겨울에 대해, 극장과 파트너, 친구 혹은 애인에 대해, 그리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글쓰기 자체에 대해, 페테르부르크에 대해, 그리고 또 다른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아니, 생각했다기보다는 썼다. 이 글은 손으로 쓴 글이었다. 손이 머리보다 먼저 움직이는 글.
다닐로프는 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극장 행정감독(나는 이 글들에서 당시의 키로프 극장을 실제와는 약간 다르게 재구성했고 운영진도 바꾸었다). 말썽꾸러기 미샤 때문에 항상 골치아파하는 사람이다(동시에 많이 아끼긴 하지만) 지나는 종종 등장했던 미샤의 발레 파트너이자 좋은 친구. 안드레이는 트로이의 본명이다. 트로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여러번 발췌했다. 발췌문은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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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 성당의 열주 사이사이에 까마귀와 갈매기가 숨어 있다. 비둘기들은 공원 한가운데 분수 앞으로 모여든다. 분수 앞 벤치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아이스크림 콘 부스러기나 흑빵 귀퉁이를 던져주는 아이들과 봉지를 뜯어 모이를 수북하게 부어주는 노파들이 있다. 도처에 비둘기들이 가득하다. 참새들도 끼어든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을 때면 분수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튀면서 햇살이 반사된다. 돔 크니기의 날개 달린 거대한 지붕, 네프스키 대로를 지나가는 트롤리버스들, 바다를 뒤집어놓은 듯한 새파란 하늘이 물보라와 무지개 사이로 어른거린다.
이런 날씨에는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글자들은 산란하는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분수를 한 바퀴 돌고 한때 사원이었던 박물관 건물의 거대한 기둥들을 따라 대각선으로 걷는다. 숲속을 걷듯. 이쪽은 볕이 들지 않고 훨씬 습하고 어둡다. 까마귀가 날아가지도 않고 석조 기둥 아래 앉아 검은 깃털을 다듬는다. 갈매기는 좀 더 부산하다. 다가가면 곧장 회색 반점이 박힌 하얀 날개를 홱 펴고 공중으로 솟아오른다. 운하를 지나 네바 강으로 향할 것이다. 강물 위 저 멀리까지 나아가면 날개를 수평으로 편 채 거의 움직이지도 않는 척하며 조용히 활강할 것이다.
여름에는 모든 것이 빛과 색채들 뒤로 숨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밤도 없다. 부드러운 보랏빛 석양과 엷은 진홍빛 여명뿐. 그 두 개는 사실 하나의 빛, 하나의 하늘에 붙여진 다른 이름들일 뿐이다. 그 빛들이 네바 강과 운하들을 비추고 도시를 공중으로 부양시킨다.
비. 습기. 안개. 바람. 그리고 겨울이 온다. 길고 무겁고 조용하게. 빛은 아주 짧게 머문다. 얼음 위로 눈이 쌓이고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리는 햇살이 투명하고 차갑게 번쩍였다 사라진다. 운 좋은 날이면 우리에게 주어진 낮의 전부, 통틀어 하루 네 시간 동안 파란 하늘과 칼날 같은 햇살 아래 꽁꽁 얼고 온통 지저분해진 포석을 밟으며 운하를 따라 산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건 정말로 드문 행복이다. 기나긴 겨울 동안 그런 날은 거의 오지 않는다. 여름과 빛, 겨울과 어둠. 우리의 도시는 너무나 극단적이라 포용이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크류코프 운하와 니콜스키 사원은 온통 푸르고 하얗다. 우리의 소중하고 소중한 극장처럼. 창백한 에메랄드 청록색 극장과 정연하게 매달려 있는 램프들. 여름이면 오페라 가수들은 연습실 창문을 열고 노래를 부르고 나는 동료들과 함께 옥상으로 올라가 춤을 추곤 했다.
극장에 들어갔을 때 나는 사도바야 거리의 좁은 공동 아파트에서 동료들과 함께 살았다. 일 년 후 지나와 나는 극장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를 받았다. 다닐로프는 나를 따로 불러서 당에서는 우리의 결혼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
3년 후 지나가 결혼해서 바실리예프스키 섬으로 떠난 후에도 나는 계속 이곳에 머물렀다. 볼쇼이에 이적했던 일 년 동안에도 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집은 주소지일 뿐, 나는 도처에서 살았다.
한때 내가 가장 많은 밤을 보낸 곳은 안드레이의 조그만 아파트였다. 제르진스키 거리, 그러나 우리는 옛날 이름인 고로호바야를 선호했다. 한쪽에는 황금빛 해군성 첨탑이, 다른 한쪽에는 모이카 운하, 새빨갛게 칠해진 아름다운 교각과 사도바야 거리가 이어지는 곳. 걸어가도 극장까지는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운하를 따라 걸어가면 금세 도착해버린다. 그게 아쉬워서 운하 대신 뒷골목들을 빙글빙글 돌면서 한껏 시간을 늘리곤 했다.
밤에, 극장을 나와서 모이카 운하 대신 삭막한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를 따라 안드레이의 집까지 걸어오는 길이면 종종 나는 쇠락에 대해 생각한다. 어둠 속에서 건물들은 온통 그림자처럼 검은색으로 휩싸여 있고 보이지 않는 건너편에서 운하가 흘러간다. 소리는 없다. 그 고요한 어둠 속에서 나는 검은 물을 흘려보내는 무한하고 평행한 파이프를 떠올린다. 그럴 때면 깊고 조용한 공포 속에서 포석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한다. 세찬 비가 내리거나 눈보라가 칠 때면 달릴 수 없다. 버스를 타기 때문이다. 창 너머로 불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대하고 무관심한 건물들이 스쳐 지나갈 때면 두려워서 고개를 돌리거나 마주 앉은 승객과 차장 아주머니를 바라본다. 버스는 5분 만에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를 지나친다. 그러면 곧 웅장한 이삭 성당이 나타나고 조명 속에서 번쩍이는 묵중한 황금빛 돔과 청동 천사상들이 그 은밀한 공포를 한 꺼풀 덮어준다. 나는 빛 속으로 도피한다. 버스에서 내리면 쫓기듯 빠르게 안드레이의 아파트까지 달려간다. 그럴 때면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는다.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한 번에 두 개씩, 세 개씩 층계를 뛰어오른다. 마음먹는다면 절반쯤은 한 번에 뛰어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재산인 무용수이니 꾹 참는다. 그 자제심이 공포를 앞선다. 마침내 계단을 모두 올라오면 숨을 고르고 고개를 뒤로 젖힌다. 어깨와 허리를 펴고 익숙한 냄새를 들이마신다. 오래된 아파트에 배어 있는 발효되기 직전의 양파 껍질 냄새, 눅눅해진 먼지, 뜨뜻하고 들큰한 수프 냄새, 사람들의 흔적들. 나는 잠잠해지고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나는 안드레이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열쇠가 없더라도 문을 열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안드레이가 자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서 나는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문을 열고 소리 없이 발끝으로 선 채 천천히 들어간다. 발레리나들도 나의 스텝에 놀랄 것이다. 안드레이가 자고 있지 않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그가 식탁 앞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강의 준비를 하거나 뭔가를 쓰고 있으면 더욱. 그는 첨탑처럼 키가 커서 머리 위로 셔츠를 뒤집어쓸 때면 팔이 끝없이 뻗어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나를 위해 창가에 있던 소파를 치웠다. 나는 창틀을 붙잡고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 작은 동작들을 연습하기도 한다. 이따금 어깨 너머로 식탁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안드레이가 보이면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지고 몸이 더욱 가벼워지면서 살짝 뛰어오르기만 해도 오랫동안 하늘에 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뛰지는 않는다. 안드레이의 거실은 좁고 바닥과 천장 모두 낡았기 때문이다.
이 도시는 텅 비었고 동시에 온전하게 꽉 차 있다. 빛이고 어둠이다. 실체 없는 그림자이다. 모든 것이 번쩍이는 투명한 섬광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돌아온다. 거대하고 무관심하고 부드럽게. 숨을 수 없다. 하지만 드러나지도 않는다. 밤도 없고 낮도 없다. 무거운 물결들로 가득한 네바 강과 검게 내려온 하늘을 구분할 수도 없다. 나는 춤을 추고 뛰어오르고 공중을 돌고 두 팔을 날개처럼 퍼덕이며 계속해서 움직인다. 계속해서 돌아온다. 떠날 수 없다. 우리는 등록과 말소를 이해하지 못한다.
...
사진은 캡션에 있는대로 @paveldemichev 나도 카잔 성당이나 모이카, 발샤야 모르스카야 운하와 그외 미샤가 이야기하는 여러 곳들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이 노트북에는 별로 없네. 그리고 이분 사진이 근사함.
... 발췌한 미샤의 독백 중 한밤중과 파이프, 발샤야 모르스카야 거리와 쇠락에 대한 부분에 대해 다샤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다. 이 글 전문을 보여드린 건 다샤님 뿐이었다. 우리는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물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해 얘기했었다. 쓴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우리는 쓰는 행위를 통해 각자가 하나의 별로 존재하게 된다는 얘기를, 오글거리는 로맨틱한 기분에서가 아니라 정말 진지하게 얘기했었다. 그래서 이 글을 다시 들춰볼 때면 마음이 저릿하다. 그리고 저 파이프와 쇠락에 대해-비록 그 부분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나의 마음 속에 있었던 내밀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나도 미샤를 통해 저 말을 내뱉었을 때 괴로웠지만- 실제로는 나보다도 더욱 진지하고 괴롭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다샤님의 마음을 떠올리면 고통스럽고 깊은 미안함이 든다. 다샤님은 종종 '미샤가 어딘가 조금이라도 손상되고 쇠락한다는 생각을 하면 견디기가 힘들어요' 라고 했었다. 나와는 좀더 다른 방식으로 느끼셨고 나는 그 순간에도 그 마음을 상당 부분 이해하거나 상상할 수 있었지만 차마 더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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