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차 about writing2024. 10. 20. 04:36
나는 이 글을 2020년 초부터 4월까지 썼다. 그때 나는 매우 바쁘게 일하고 있었고 몇년 간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년에 아주 짧은 단편을 썼고(그건 알리사가 화자로 등장하는 '핀란드 우하' 라는 글로 여기에도 전문을 올린 적이 있다), 이후 아주 집중해서 이 글을 썼다. 내게 있어 모든 글쓰기는 내밀한 그 무엇이지만 이 글은 특히 더 그랬다. 예전에 이 글을 쓰는 동안 이 폴더에 가끔 메모를 발췌한 적이 있다.
단편의 제목은 '밤, 레닌그라드' (Ночь, Ленинград) 였다. 시간적 배경은 1981년 9월. 정치범으로 체포되었다가 수용소에서 약물쇼크를 일으키고 사경을 헤매다 가석방되어 지방 소도시 가브릴로프로 유배 결정된 미샤가 호송 과정에서 레닌그라드에 24시간 동안 들르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 사람을 비롯한 이 글들의 우주에서 처음으로 미샤가 1인칭으로 이야기하며 그것도 내밀한 독백들과 환상을 뒤섞고 또 뒤섞는다. 아마 이후에도 나는 이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게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썼었다. 이 글에서 미샤는 환각과 꿈, 기억, 마음과 감각의 미로에 빠져 있는데 실질적인 플롯의 축은 이 사람이 레닌그라드의 자기 아파트로 돌아와 오랜 애인이자 주치의인 유라와 재회하고 돌봄을 받고 계속해서 이게 꿈인지 아닌지 의심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까지 중요하지는 않다.
아래 발췌한 내용은 전반부. 미샤가 레닌그라드로 호송되는 차 안과 휴게소 식당에서 옛날을 잠깐 회상한다. 미샤의 아버지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인텔리겐치야였다가 정부의 우주정책에 반하는 농담 때문에 체포되어 미샤가 어릴때 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미샤를 데리고 본격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글을 쓰기 시작할 때(더 오래전에 썼던 짧은 단편 두엇은 제외하고) 바로 그 농담과 죽은 아버지로 시작했었다. 미샤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이 가브릴로프 이야기의 패러디 픽션인 <서무의 슬픔> 시리즈에서도 몇 번 나온다. 특히 파인애플에 대해서. 그리고 가장 최근에 쓴 단편 <4월의 로켓>에서 미샤는 마냐와의 대화 도중 자기 아버지와 수용소에 대해 언급한다. 그로서는 아주 드문 일이다.
여행을 와서 새 글을 시작하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에게 있어 여행은 글을 쓰기에 좋은 시기가 아니다.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고 보고 느끼고, 혹은 쉬면서 쌓는 시기이다. 그날그날의 순간과 행위들을 '기록'하는 시기이지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 그것을 잘 알면서도 항상 바란다.
이 글을 발췌하게 된 건 이번 여행에서 내가 생각지 않게 커피를 마시고 있기 때문이다. 커피와 차.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쓰는 것도 읽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사실은 언제나 다른 무언가들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층들 사이에서 나온다.
...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
차는 계속해서 흔들렸고 그건 구름 위를 나는 느낌이 아니라 여름 궁전으로 향하는 작은 배를 타고 있는 기분이었어. 잠시 난 몸을 일으켜 보려 했어. 물살이 튀어 창문을 때리고 갈매기들이 잿빛 날개를 펼치고 솟구쳐 날아가는 걸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어, 모범적인 호송 요원이 내 몸에 안전벨트를 채워놨거든. 벨트를 풀어보려고 했는데 몸을 움직이자 현기증도 났고 어차피 창문은 온통 검게 칠해져서 아무것도 안 보일 테니 헛수고란 생각이 들었어.
어느 순간 차가 멈추었어. 도착한 건 아니었어, 그저 휴게소였을 뿐이야. 요원이 내 벨트를 풀어주고는 먼저 나갔어. 문을 닫지도 않고. 내가 도망치면 어쩔 셈이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사실 그렇게 어리석은 질문도 없었지. 끝도 없이 뻗어 있는 도로 한가운데 그 휴게소 하나만 섬처럼 떠 있었으니까. 게다가 알고보니 뒷자리에 요원 두 명이 더 있었어. 차에서 내리니 문 앞에는 운전기사가 서 있었어. 정장을 차려입고 그럴싸한 권총을 차고 있었어. 장시간 운전을 하면서 그런 옷차림에 총까지 차고 있으면 걸리적거리지 않는지 궁금했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니 도살자의 차를 운전하던 놈들도 모두 똑같은 모습이었어.
허름한 휴게소 식당에서 요원들은 교대로 식사를 했어. 기사는 나에게 살구 주스와 너무 익어서 푹 퍼진 메밀죽, 초콜릿 푸딩이 담긴 쟁반을 가져다줬어. 친절도 하시지. 난 주스만 조금 마셨어. 역겹도록 달았고 걸쭉했어. 하긴 난 살구 주스를 좋아해 본 적이 없어. 엄마는 내가 아빠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어. 아빠는 살구와 복숭아를 싫어했고 커피에는 우유와 설탕을 넣었고 차는 마시지 않았어.
엄마와 처음 만났을 때 아빠는 뜨거운 차가 담긴 양철 컵을 건네줬다고 했어. 조그맣게 착착 접힌 갱지 주머니를 찢어서 설탕을 부어줬다고, ‘이건 지금 먹으면 탈이 날 거야’ 라면서 비스킷은 주지 않았다고 했어. 봉쇄 시절이었고 엄마는 며칠 동안 굶은 상태였지. 아빠는 전방에서 입은 부상을 치료하려고 시내 병원으로 가던 길이었어. 엄마는 너무 굶주리고 아파서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아빠의 이름조차 묻지 않고 양철 컵을 꼭 쥔 채 차를 정신없이 마셨지. 나중에는 갱지 주머니를 펼쳐 거기 묻어 있던 설탕 알갱이도 모조리 핥아먹었어. 그러고 나서야 엄마는 정신이 들었고, 차를 다 마셔버려서 미안하다고 말했어. 아빠는 웃지도 않고 아주 진지하게 대답했지. 괜찮아, 난 차를 마시지 않거든. 안 좋아해. 난 커피를 좋아해.
그래서 엄마는 그게 정말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대. 나중에, 한참 후에야 아빠가 커피만큼 차도 좋아한다는 걸, 차에는 꿀보다는 설탕 넣는 걸 더 좋아하고 레몬이 있을 땐 두 개씩 넣는다는 걸 알았다고 했지. 하지만 아빠는 엄마랑 있을 땐 차 대신 커피를 마셨다고 했어. 봉쇄가 끝난 후에도, 렌필름 윗분들과의 인맥 덕에 물건들을 많이 얻어온 후에도, 줄을 조금 덜 섰을 때에도, 다른 집보다는 먹을 것들이 더 있었을 때도. 집에 찻잎이 가득 든 깡통이 두 개나 있었을 때도. 엄마가 ‘그냥 차 마시지 그래, 사실은 좋아하잖아. 전쟁도 끝났는데’ 라고 했을 때 아빠는 또다시, 웃지도 않고 아주 진지하게 ‘차는 당신 거, 커피는 내 거. 그럼 모든 게 완벽하니까 그걸로 좋은 거야’ 라고 대답했어.
난 아빠랑 같이 차를 마셔본 적이 없어. 커피도. 난 너무 어렸으니까. 아빠는 나에게 우유와 주스를 줬고 아이스크림을 사줬고 얇게 자른 흰빵에 연유를 발라줬지. 내가 많이 아플 때면 밀수를 하던 방송국 동료를 구슬려서 파인애플 통조림을 가져왔어. 미제였어. 그건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가장 시원하고 가장 달콤했지. 열이 금세 내리곤 했어. 내가 파인애플을 한 조각 먹고 깡통에서 따라낸 설탕물을 마시면 아빠는 내 이마를 닦아주면서 ‘이제 땀이 났네, 다 나았구나’ 라고 말하곤 했지. ‘아빠도 파인애플 먹어’ 라고 하면 아빠는 웃으면서 ‘아빠는 파인애플 안 좋아해. 엄마는 좋아하니까 가서 같이 먹으렴’ 하고 대답했지.
이제 알아, 아빠는 살구와 복숭아는 정말로 좋아하지 않았어. 알레르기가 있었으니까. 차는 사실은 좋아했지만 엄마를 위한 장난으로 남겨두었어. 우리 아빤 그런 사람이었던 거야, 농담을 진짜 삶으로 만들었어. 사랑하는 여자를 매번 웃겨주고 싶다는 이유로 차 마시는 걸 포기했어. 정작 자기는 웃지도 않으면서 농담을 했지. 그런데 파인애플은 모르겠어, 엄마도 물어본 적이 없고 나도 물어본 적이 없어.
아빠가 가버린 후 엄마는 커피를 마셨고 차는 친구들과 있을 때만 마셨어. 내가 살구 주스가 담긴 컵을 밀어내면 야단치지 않고 ‘아빠 닮아서 그렇구나’ 라고 말했지. 초콜릿이 씌워진 에스키모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도, 보르쉬를 마지막까지 흑빵으로 닦아 먹을 때도. 아빠 닮아서 그렇구나. 난 너무나도 궁금해, 아빠는 나에게도 그렇게 말했을까? 차는 네 거, 커피는 내 거. 그럼 모든 게 완벽하니까 그걸로 좋은 거야.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 차가 훨씬 좋아. 설탕도 넣지 않아. 레몬도 넣지 않아. 아플 때만 두 개 넣지. 뜨거운 차. 양철 컵. 레몬. 살구 주스. 파인애플 통조림. 하지만 아빠는 끝내 모르겠지. 내가 차를 어떻게 마시는지. 내가 아빠에게 물어보지 못한 것처럼. 영원히.
...
봉쇄 시절은 2차 대전 때, 독일의 레닌그라드 봉쇄 시기. 미샤의 부모님은 위에서 미샤가 회상한 것처럼 그 시기에 처음 만났다. 아버지인 세르게이는 군사작전본부에서 일했고 어머니인 율리야는 아직 어린 소녀였다. 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쓰고 싶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ㅜㅜ
... 맨 위 사진은 후라칸커피 인스타에서. @huracancoffee 좀 심플한 사진을 올려보고 싶었는데 여기 원두 봉지가 좀 나와 있네 ㅎㅎ 아래 사진은 @_tyutyu_nai 두 사진 모두 너무 세련된지라 저 당시 소련 사람들이 마셨던 커피와는 하늘과 땅 차이겠지만 그냥 올려본다.
'about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닌그라드 아이 (0) | 2024.10.25 |
---|---|
부체르브로드에 뭘 얹어 먹는지 궁금한 마냐 (0) | 2024.10.11 |
마냐와 마리야 루스타모브나 사이 (0) | 2024.10.07 |
까만 차, 파란 차, 행운의 별과 붉은 별 (0) | 2024.03.31 |
(날아갔을지도 모르는) 갈매기, 고양이 (2) | 2024.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