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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7. 04:49

마냐와 마리야 루스타모브나 사이 about writing2024. 10. 7. 04:49

 







내가 가장 최근에 썼던-그리고 완성했던- 글은 올해 1월 중순에 마친 <4월의 로켓>이라는 단편이다. 단편치고는 좀 길고 중편이라기엔 짧은데, 이 글은 그전까지 썼던 게냐와 미샤의 1990년대 페테르부르크 3부작의 남매 같은 소설이다. 왜 남매 같은 소설이냐고 한다면, 이 글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게냐가 아니라 그의 이웃인 마냐이기 때문에. 그리고 마냐는 게냐가 1인칭 화자로 등장했던 3부작의 마지막 중편인 <구름 속의 뼈> 후반부에 아주 잠깐 등장했던 인물이지만 나름대로 그 소설의 주제와 이미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기 때문에. 앞의 3부작에서는 미샤가 마사지사 루키얀이나 무용수이자 연인인 게냐의 눈으로 묘사될 뿐 직접적으로 앞에 나서지 않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마냐와 딱 둘이서 등장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이 소설은 아주 즐겁고 쉽게 썼다. 종반부를 쓸 때 너무 바쁘고 가정사와 회사 일 등 여러 가지로 힘들어서 기력이 좀 모자라긴 했지만. 쓰는 즐거움이 큰 소설이었다. 이 글을 마친 후 집안일도, 회사 일도 더욱 힘들어지고 머릿속이 산란해져서 집중이 되지 않았고 새로운 글 자체를 시작할 수 없어 무척 우울하고 속상했다. 뭔가를 쓰고 있다는 것과 쓰지 않고 있다는 것 사이에는 크나큰 간극이 있다. 이것은 잘 써지는지, 재미있는지 아닌지와는 또 다른 얘기다. 본질적으로 쓰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읽는 인간, 이야기하는 인간, 행동하는 인간 이전에 쓰는 인간인 것 같다. 그래서 뭔가를 쓰고 있지 않을 때는 충만함이 사라지고 텅 비고 어딘가 불행하다. 이건 기본적으로 소설에 대한 얘기로, 에세이나 잡문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여행을 나와 있고 잠시 일에서 떨어져 있으니 다시 뭔가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새로운 뭔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쓰다가 중단해둔 글도 두엇 있고 쓰고 싶었던 글도 있지만 아직 손과 가슴에 와닿는 것이 없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래 발췌한 에피소드는 이 소설의 초반. 동거하는 포주 사르바르에게 두들겨맞고 기분을 잡친 채 아파트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올라왔던 마냐는 옥상에서 춤을 추고 있는 미샤를 발견한다. 일년 전쯤 미샤가 게냐에게 들렀을 때 마냐가 그를 발견하고 ‘저 사람 누구야, 너무 멋있어. 섹스 사말룟이야, 로켓이야!’라고 외치고 할머니 풍의 허브차를 끓여준 적이 있다. 이 도입부에서도 마냐는 그의 이름이 기억 안나서 로켓, 섹스 사말룟(사말룟은 비행기란 뜻이다)이라고 부르고 있다. 특히 로켓. 이 이야기는 로켓과 불꽃놀이, 담배와 차,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글에 언급되는 ‘제냐’는 게냐의 다른 애칭이다. 바냐는 게냐의 동생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마냐와는 이따금 자는 관계. 예전에 이 소설 중간중간을 조금씩 발췌했던 적이 있다. 바냐에 대한 언급, 그리고 이 파트 이후 중반부에서 함께 말보로 담배를 피우는 마냐와 미샤에 대한 이야기 등등.
 


마냐는 마리야의 애칭이다. 마리야 루스타모브나는 이름과 부칭을 함께 부르는 것이다. (루스탐의 딸 마리야) 보통은 존대를 할 때 부칭을 쓴다.


 
사진 출처는 캡션에 적혀 있듯 pavel demichev. 사실 이 발췌문과 딱 들어맞는 사진은 아니다만(마냐는 외진 곳에 살고 있으므로 옥상에 올라간들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지는 않을테니)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올려본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주머니에 들어 있는 담뱃갑을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여전히 숨을 죽인 채 문가에 서 있었어요. 로켓은 난간에 기댄 채 어두컴컴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어요. 아까보다 더 차갑고 센 바람이 불어왔고 로켓이 다시 기침을 했어요. 추워서 그럴지도 몰라요. 재킷도 없이 긴 소매 셔츠만 걸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하얀 날개처럼 보였던 거겠죠. 그때 로켓이 움직였어요. 다시 춤을 추려나 했지만 그게 아니었어요. 잠깐 허리를 굽히는가 싶더니 난간 위로 훌쩍 올라가는 거예요! 난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질렀어요. 그 사람이 뛰어내리려는 줄 알았거든요. 나도 모르게 옥상을 가로질러 난간 쪽으로 달려갔어요. ‘여보세요!’인지 ‘잠깐만요!’인지 하여튼 뭐라고 외치면서 두 팔을 쭉 뻗어서 로켓을 와락 붙들었어요. 너무 다급하게 낚아챈 나머지 한 손으로는 그 사람 셔츠 자락을 잡았지만 다른 손은 허리 아래, 아니, 엉덩이인가 허벅지 어딘가를 움켜쥐었던 것 같아요. 아니에요, 맹세코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 어떻게든 떨어지지 않게 잡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 우리 아파트는 이래 봬도 10층 건물이에요. 옥상에서 떨어지면 즉사라고요. 사실 벌써 몇 명이나 떨어져 죽었어요. 마약 하다가 떨어진 놈도 있고 자살한 계집애도 있고. 사르바르 말로는 총 맞아 죽은 놈도 하나 있었대요.
 


로켓이 어찌나 빠르게 몸을 홱 틀면서 뒤를 돌아보았는지 내가 쥐고 있던 옷자락이 뜯어질 뻔했어요. 정말 깜짝 놀란 표정이었어요. 아 맙소사, 그때 난 깨달았어요. 이 사람 그냥 난간에 걸터앉아 바깥 구경을 하려던 거였나 봐요! 내가 바보처럼 굴었던 거예요. 게다가, 게다가 난 아직도 그 사람 옷이랑 허리 아래, 아니, 엉덩이인가 허벅지인가 하여튼 몸 어딘가를 손가락이 부러져라 꽉 움켜쥐고 있었거든요. 로켓도 한동안 뻣뻣해진 채 한 마디도 입 밖에 내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요. 눈이 동그래진 걸 보니 정말 놀랐던 것 같아요. 근데 나도 놀라고 창피해서 정신이 없었어요. 바보, 얼간이, 천치! 안 그래도 제냐가 얘길 했을 거잖아요. 자길 덮치려고 안달이 난 여자가 불쑥 나타나 엉덩이를 움켜잡고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할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아직도 내 손이 거기에! 난 급하게 손을 떼면서 변명했어요.


 
“ 아, 아.... 미안해요, 떨어지는 줄 알고... ”
 


로켓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니, 이 민망한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 말을 했으면 뭐라고 대꾸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괜찮다고 하거나, 성을 내거나. 하여튼 반응을 해줘야죠. 근데 그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었어요. 아까처럼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동그래졌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온 걸 보니 놀랐던 건 가라앉은 듯했어요. 대신 한 대 맞은 것처럼 얼굴이 확 굳어졌다가 금세 가면을 씌워놓은 듯 무표정해졌어요. 차라리 계속 눈이 동그래진 채였으면 좋았을걸. 아니면 화를 내면 나았을 텐데. 난 너무 창피해서 마구 횡설수설했어요.
 


“ 그러니까, 담배 피우러 나왔는데. 있잖아요, 그 난간 위험하거든요. 금도 가고... 바람 불어서,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정말 무슨 일 나는 줄 알고, 지난주에도 601호 류샤가 거기서 떨어져... ”


 
갑자기 로켓이 웃었어요. 멍해져 있다가 뒤늦게 정신이 든 것 같았어요. 아니, 정신을 차린 건 그 사람이 아니라 나였겠죠. 그 사람이 웃으니까 정말 눈이 부셨거든요! 말문이 탁 막히더니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그제야 내가 그 사람이랑 거의 가슴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서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니까, 손만 뗐을 뿐 몸은 꼼짝달싹 못 하고 그대로 굳어져 있었던 거예요. 급하게 뒤로 물러섰을 때 로켓이 말했어요.
 


“ 고마워요, 마리야 루스타모브나. ”


 
세상에,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잖아! 딱 한 번 봤는데. 그런데 어떻게 내 부칭까지 알고 있는 걸까요? 내가 말했었나? 그랬을지도 모르죠, 하여튼 그때 난 완전히 만취한 여자처럼 굴었거든요. 게다가... 이렇게도 정중하다니. 레닌그라드에 올라온 이래 부칭까지 불려본 적이 처음인 것 같아요. 난 그냥 마냐인데. 마리야나 마샤라고도 안 해요. 다들 마냐라고 해요. 아빠만 날 만카라고 불렀죠. 이렇게 깍듯하게 마리야 루스타모브나라고 하다니. 난 당황하면서도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이게 뭔가요. 왜 이러는 거죠? 난 급하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바보처럼 실실 웃으면서 말했어요.
 



“ 그냥 마냐라고 불러요. ”


“ 아, 맞아. 그때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잊었네요. ”


 
로켓이 눈을 감았다 뜨더니 다시 살짝 웃었어요. 그러자 그 사람 이름이 퍼뜩 생각났어요.
 



“ 미샤. 맞죠? 날 기억하고 있었네요? ”


“ 기억하죠. 차도 같이 마셨는데. ”



 
그리고 툴라 비스킷. 아껴뒀던 과자도 들고 갔었죠. 사실 그때 미샤는 차만 마시고 과자는 먹지 않았어요. 그건 기억나요. 딱 한 입, 그것도 귀퉁이만 잘라서 먹었죠. 하지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마리야 루스타모브나라니, 세상에. 제냐가 정말 입이 무거운 녀석이란 게 증명됐네요. 내가 뭐하는 여자인지 전혀 말을 안 했나 봐요. 물론 언제 어디서든 해주고 싶다고 한 것도, 섹스 사말룟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도 전해주지 않았던 게 분명해요! 망할 샌님 같으니. 그래도 지금 봐서는 차라리 다행이에요. 미샤가 날 어엿한 숙녀처럼 대우해주고 있으니까요. 부칭까지 챙겨 불러주고. 꼬박꼬박 존대를 하고. 어째선지 사내놈들이고 계집년들이고 날 보면 초면에도 무조건 반말을 하는데 말이에요. 내가 구르는 바닥이 그래서 만나는 인간들도 다 비슷비슷한 것들이라 그렇겠지만요. 아, 하긴 제냐도 나한테 말을 놓지 않아요. 대신 마냐라고 부르죠. 걔는 내 부칭 따윈 관심도 없을 거예요, 들었어도 잊어버렸겠죠. 제냐는 좀 냉정하다고 해야 하나, 주변에 무심한 타입인 것 같아요. 바냐는 안 그런데. 기분 좋을 땐 립스틱도 가져다주고 손톱만한 미니어처 향수도 갖다주면서 ‘마냐, 아줌마도 돈 벌려면 가꿔야지. 좀 찍어 바르면 지금보다는 예뻐 보이겠지’ 하고 농을 걸곤 해요. 못돼먹은 애송이지만 세심한 구석이 있죠. 바냐 생각을 하자 갑자기 위장이 콕콕 찌르는 듯 쑤셨어요. 망나니 자식들이 잘해주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니까요.
 




미샤는 아직도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어요. 몸만 뒤로 틀고 있을 뿐 다리는 난간 아래에, 허공에 나가 있었어요. 어쩐지 뒷목덜미가 오싹한 느낌이 들었어요. 류샤 때문이에요, 601호 그 계집애. 바로 여기쯤에서 떨어졌을 테니까요. 이쪽 난간이 좀 낮거든요. 이라 아줌마는 걔가 스스로 뛰어내렸다고 했어요. 구두를 벗어놓은 걸로 봐서 누가 민 것 같지는 않다고. 이유는 아무도 몰라요. 빚을 졌는지 남자한테 버림받은 건지 뭐였는지. 걔는 마약 같은 건 안 했는데. 심지어 사내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본 적이 없었어요. 하긴 걔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애였으니까 내가 못 본 게 많겠지요. 학교 선생이었는데, 멀쩡한 직장에 다니던 아가씨였는데. 나랑은 대놓고 말을 섞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주치면 인사는 꼬박꼬박 했었는데. 치마를 입은 여자애가 구두를 벗고 난간 위로 올라가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아마 기어 올라가야 했을 거예요. 류샤는 나보다도 키가 작았으니까요. 미샤는 구름처럼 훌쩍 올라갔는데. 그러자 또다시 목덜미 솜털이 곤두서고 온몸이 떨려와서 난 그 사람의 옷자락을 잡아당겼어요.
 




“ 그만 내려와요. 바람이 많이 불어요. ”


“ 여기가 시원하고 좋은데. 탁 트여 있고. ”


“ 안 내려오면 나도 올라갈 거예요. ”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걱정이 됐기 때문일 거예요. 아까 춤추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어요. 여전히 그 사람이 뛰어내리거나 헛디뎌 떨어질 것 같아서, 아니, 그보다는, 우스운 소리지만,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어요. 춤출 때 꼭 그런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옥상 바깥으로 휙 날아가는 것도 전혀 이상해 보일 것 같지 않았어요. 심지어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지도 않았어요. 로켓처럼 위로 계속해서 솟구쳐 올라가거나 새처럼 허공에 팔랑팔랑 떠 있을 것만 같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면 이 모든 게 꿈이라는 거잖아요.
 



미샤가 손을 내밀어 내 팔목을 꽉 잡으면서 말했어요.



 
“ 혼자 올라오긴 힘들걸요. 잡아줄게요. ”


 
미샤는 무슨 인형이나 강아지를 안아 올리듯이 날 난간 위로 올려주었어요. 아주 힘이 셌어요. 오른손만으로 날 끌어올렸거든요. 왼손은 내 허리에 살짝 댔을 뿐이었어요. 그리고 손이 정말 따뜻했어요. 한순간에 나는 난간 위에 앉아 있었어요. 이 위에 올라와 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사실 난간 근처에는 잘 가지도 않아요. 고소공포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높은 곳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 데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머리가 엉망이 되거든요. 대신 벽에 기대어 앉는 건 좋아하지요.
 



바람은 잠잠해져 있었어요. 난간 윗면은 생각보다 폭이 넓어서 걸터앉기 편했어요. 하지만 발밑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았어요. 그나마 어두컴컴해서 아래가 거의 내려다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았어요. 아마 미샤가 여전히 내 팔을 꽉 잡고 있어서일지도 몰라요. 미샤는 내 곁에 바짝 붙어 앉아서 정면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 남자가 사실은 완전히 미친놈이라서 나랑 같이 뛰어내리려 하거나, 혹은 날 확 떠밀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에 사로잡혔어요. 잘생기고 섹시하다고 해서, 목소리가 근사하다고 해서, 손이 따뜻하다고 해서 믿을만한 남자라는 뜻은 아니지요. 자고 싶은 거랑 믿을 수 있는 사람이란 건 다르니까요. 나는 원체 산전수전을 다 겪었단 말이에요.
 
 
 


...







이 뒤로는 마냐가 자기가 겪은 ‘산전수전’에 대해 언급하는 얘기가 나오는데 발췌가 길어지기도 하고 약간 19금이라 여기서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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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