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8 토요일 밤 : 추워추워, 엄청 많이 온 꽃들, 그래서 오늘은 꽃 다듬은 얘기만 가득 fragments2023. 11. 18. 21:39
날씨가 무척 추웠다. 정신없이 자다 새벽에 한번 깨고 다시 잤다. 9시 즈음 깨어났는데 날이 추워선지 온몸이 무겁고 피곤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집에는 난방을 해놓아서 훈훈했다. 아침까지 꿈을 이것저것 꿨는데 이제는 기억이 안 난다.
청소와 목욕을 하고 아점을 만들어 먹은 후 차를 우려 마셨다. 그러나 차를 절반도 마시기 전에 꽃이 도착했다. 늘 이용하는 사이트에서 럭키 박스라는 이름으로 뭐가 올지 모르는 꽃들이 가득 들어 있는 상품을 할인하고 있어 뭐든 건지겠지 하며 그것을 주문했는데 꽃의 양이 너무 많아서 이것들을 다듬는데 한시간 반이 꼬박 지나갔다. 양도 많고 잔잎도 많은 꽃들이 가득 있어서. 여러 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좋아하는 것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꽃, 싫어하는 꽃까지 섞여 있어 역시나 럭키 박스가 맞다 싶었다. 그런데 정말 양이 많아서 조그만 우리 집에는 좀 과할 정도였다. 쥬인이나 친구가 가까이 살면 좀 나눠주고 싶을 정도였다.
다듬고 나서 여기저기 나눠서 꽂아둔 꽃들. 잎사귀와 줄기 등을 모두 다듬은 후로 부피는 절반 가량으로 줄었다. 그리고 도저히 내가 견디기 힘든 종류의 꽃은 포기했다. 아마 내가 직접 골랐다면 공작초와 유칼립투스는 절대 안 골랐겠지. 공작초는 잔잎이 너무 많아서 다듬기가 성가신 꽃이라 그렇다. 막상 다듬어서 꽂아두면 예쁜데. 들꽃 스타일이라 사실 다듬지 않고 잎이 달린대로 꽂아둬도 예쁘지만 그러면 잔잎 때문에 물이 탁해지고 금방 시들어버리므로 꽃을 되도록 오래 보고 싶은 입장에서는 결국 손질을 하게 됨.
오늘 온 꽃들 중 가장 반가웠던 건 미스티블루. 이건 단독으로 파는 일이 별로 없어서 잔뜩 들어 있는 게 반가웠다. 가느다란 줄기에 아주 조그만 보라색과 흰색 꽃이 알알이 피어 있는 녀석이 바로 그것으로, 사실 이 꽃을 좋아하는데 이름을 정확히 몰라서 항상 아쉬워하던 차에 오늘 이 꽃 박스에 들어 있던 메모지를 보고서 알게 되었음. 흰색의 리시안셔스 조금 닮은 꽃은 카네이션이다. 첨에는 꽃봉오리만 보고 리시안셔스인가 왜 이렇게 작지 잎이 다르네 했는데 잘 보니 스프레이 카네이션이었다. 흰색 카네이션은 사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연보라색은 겹공작초, 보라색은 공작초. 둘다 친척이라 그런지 잔잎이 엄청 많았다. 다듬다가 손가락 끝에 풀물이 들었음. 이럴 줄 알았으면 장갑을 꼈어야 하는데. 유칼립투스는 진액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데 그래도 오늘 온 녀석은 진액이 없는 종류라 다행이었다. 유칼립투스는 더 많긴 했는데 우리집 꽃병들에 소화할 수 있는 정도만 남겼다.
이게 오늘 온 꽃들.
포기한 꽃은 맨 위에 적혀 있는 에린지움. 이것은 가시가 삐죽삐죽 나와 있는 동글동글한 놈으로 좀 엉겅퀴랑 비슷한데 온통 뻣뻣한 잎들이 둘러싸고 있고 대도 굵어서 같이 꽂아두기도 어렵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흙도 너무 많이 묻어 있어서 그냥 포기함. (아직 덜 피었지만 이놈은 꽃이 피어나도 역시 내 타입이 영 아님. 다 피면 청보라색이라 색은 이쁜데...) 미안해 엉엉 ㅜㅜ 거베라 한 송이는 모가지가 툭 잘려서 온 바람에 찻잔에 동동 띄워두었고 다듬으면서 꺾이거나 잘라낸 잔가지와 짜투리들도 모아서 조그만 병에 따로 꽂아두었다. 이렇게 웬만하면 짜투리까지 다 꽂아두는데 에린지움만은 도저히... (아래 접어둔 사진들 중 도착 사진에 한컷 들어 있긴 함)
꽃 다듬고 나니 네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다시 물을 끓여서 차를 이어 마셨지만 이미 어둑어둑... 흑흑, 꽃은 좋은데 어쩐지 오후를 탕진한 기분... 아마 내가 고른 꽃이 아니라 그런가보다. 그래도 여기저기 꽃들을 놔둬서 좋긴 하다. 꽃 다듬다가 글도 한 줄도 못 썼다. 그런데 어느새 밤이 되었네. 이 메모도 간단히 쓰려 했는데 꽃 얘기 쓰다가 길어짐. 그래도 이 메모를 마무리한 후 글을 조금이라도 쓰고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아래 꽃 사진들 접어두고 마무리.
처음에 도착했을 때. 다듬기 전. 위아래로 겹쳐져 있어서 그렇지 정말 많았음. 오른쪽에 분홍 거베라 옆에 있는 삐죽삐죽한 잎사귀로 둘러싸인 놈이 비운의 에린지움. 어떻게든 좀 같이 꽂아보려 했지만 결국 포기. 다른 꽃들이랑 잘 어울리지도 않는데다 꽃대도 너무 굵고 내가 너무 싫어하는 타입이라(삐죽삐죽 타입 안 좋아함)... 근데 자꾸만 미안해지네.
다듬고 남은 짜투리들. 장미는 스프레이 장미라 조그만 가지들이 많이 달려 있으므로 그것들을 모아서 같이. 유칼립투스는 일부러 좀 짧게 잘랐다. 유칼립투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별로... 쥬인은 유칼립투스가 좋다고 했는데. 하긴 내가 손재주가 별로 없으니 유칼립투스 같은 소재류와 들꽃 잡초 스타일의 에린디움을 안 좋아하는지도. (번거롭게 주렁주렁 달리는 식물을 별로 안 좋아함. 결국 게을러서라는 결론이... 잉 ㅠㅠ)
지금 보니 빛이 번졌네. 이때 해질 무렵이 다 됐을 때라 그런듯. 그래도 오렌지 장미는 이쁘니까.
조그만 짜투리들도 모아서 조그만 화병에.
제일 조그만 짜투리들은 푸딩 먹고 씻어두었던 미니 병에 꽂아서 서재 방의 우골에 가져다둠.
그런데 지난주에 왔던 알스트로메리아도 이렇게 쌩쌩하게 남아 있어서 온 집안이 꽃으로 포화상태... 저 꽃들을 다 손질된 상태로 꽃집에서 샀으면 두세배로 비쌌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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