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목요일 밤 : 이것저것 fragments2023. 2. 2. 21:25
요즘 항상 새벽 4시쯤 깬다. 두어번 그런 후부터는 아예 신체리듬에 그렇게 각인이 된 것 같다. 알람은 5시 50분에 맞춰놨는데 하여튼 4시쯤 깨서는 계속 뒤척이고 조금 자다 또 깨고, 5시 넘어서부터는 거의 못 잔다. 그러다 너무 피곤한 상태로 아주 간단한 샤워를 마친 후 선크림과 컨실러까지만 바르고 6시 10분 쯤 집을 나선다. 이 시간대에 나오면 지하철에 자리가 있고 그 다음 지하철부터는 거의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 나뿐만 아니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다. 우리 사무실과 시설을 담당하시는 미화원 선생님들은 더욱 새벽에 나오시니 정말 힘드실 것이다.
어쨌든 나도 우리 회사 사무직 직원들 중에서는 거의 가장 빨리 나오는 축이다. 사무실에는 이제 7시 20분이 되기 전에 도착한다. 밤새 썰렁해진 사무실이 춥지만 환기를 해야 하니 창문을 모두 열고, 거의 30분 가량은 덜덜 떨며 일한다. 너무 추울 때는 15분 정도로 타협하고 창문을 도로 닫는다. 블로그 이웃님인 janua님께서 추천해주신 민들레차를 아침마다 따뜻하게 해서 한 팩씩 타서 마신다.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요즘 홍차는 주말에만 마신다. 그래서 두통이 더 심해진 건가... 카페인 결핍... 어쨌든 제일 일찍 나와서 이른 아침부터 정신없이 일하고 있노라면 9시 반 전후부터 직원들이 출근한다. 대부분은 10시에 나온다. 이렇게까지 일찍 나오게 된 이유는 사실 지하철 시위에서 시작되었고, 또 일찍 나오니 직원들에게 덜 시달리며 밀린 일을 할 수가 있고, 10분 20분 먼저 나오니 지하철에서 앉아서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그건 8시부터 카운트가 되기 때문에 7시대에 나와봤자 더 일찍 퇴근할 수는 없다.
오늘도 이렇게 일찍 출근해서 아주 바쁘게 일했다. 심지어 오늘은 부서의 각 파트별 직원들과 개별 업무회의를 줄줄이 진행했다. 올해 계획을 짜고 예산을 배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이게 원래부터도 손이 많이 가고 골치아픈 일인데 최고임원이 바뀌면서 온갖 요구와 혼란이 몰려들어서 평소보다 열배는 힘들어졌다. 이 작업이라도 빨리 해치우고 최고임원께 보고를 드리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온갖 다른 과제들이 몰려들고 일할 사람은 없고, 몰려든 새로운 과제들이란 정체가 모호하고 실제 우선순위와 일의 가치 측면에서 부적합한 것들도 있어 정말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다. 유일한 위안이라면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본사의 모두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려나.
거기에 내가 맡고 있는 부서는 소위 '보여주기'와 '단발성 성과 과시' 측면이 부각될 수 있는 곳으로 왜곡되기 가장 쉬운 곳이라 여러가지로 요구사항도 많고 많이 힘이 든다. 그런데 얼마 안되는 부서원들 중 3분의 1 이상이 휴직과 병가에 들어가 있다. 그저께는 인사부장에게 이 상황을 하소연하며 인력충원을 요청하다가 너무 속상하고 괴로운 나머지 '내가 정말 잘못해서 그런 건가봐, 리더십 부족인가봐' 라고 토로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뭐 따져보면 난임휴직, 빙판에서 넘어져 인대파열, 허리디스크 수술, 여타 다른 심한 질병 등의 이유로 병가와 휴직이 겹치고 있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이 분명 리더십의 문제점 혹은 업무 구조상의 문제가 겹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 리더십이든 윗분의 리더십이든...
나는 항상 직원들의 역량이 너무 부족하다 보니 내가 많이 떠맡고 일을 많이 해주는 편이라 도리어 이들의 성장을 막고 있는게 아닌가 자책해왔는데(이러한 문제의식 때문에 간부교육 때 전문가에게 따로 상담도 요청했었다. 내 일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 이런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지금의 인력문제를 바라보면 이것이 나의 이런 과잉보호 때문에 애들이 물러져서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반대로, 나 역시 옛날에 빡세게 일하던 것에 익숙한 나머지 나에게는 전혀 이 사람들의 업무가 과다해보이지 않고 도리어 내가 다 해주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이들은 그것조차도 너무 어렵고 과로가 되어 아프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어느쪽이든 리더십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너무 피곤하고 지치고 속상하고 우울하다. 주변에서는 내 탓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런 생각을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주관적 자책과 괴로움은 그렇다치고, 이것을 또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인력이 빠지기 시작한 건 이미 몇 년 전이고, 처음부터 인력부족 상태로 시작했는데 그 와중에 노력해서 예산을 늘리고 사업을 개선시켰지만 회사에서는 충원을 해주지 않았다. 그러니 모자란 인력을 데리고 어떻게든 메꿔가며 일을 성사시켜온 것이 몇년차가 되자 점점 여기저기서 나가떨어지고 구멍이 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사람을 더 주든지 구조 개선을 해달라고 목이 터져라 요청을 했지만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애저녁에 빵꾸를 냈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윗분 같은 경우는 외부에서 영입된데다 임기가 있기 때문에 본인의 임기 중에 일정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빵꾸를 낼수도 없고 요구사항이 많다. 그러니 중간에서 내게 부하가 너무 많이 걸린다. 거기에 임원진이 바뀌었고 혹독하면서도 좀 모호하고 앞뒤가 전도되거나 이미 현실에 맞지 않는 지시들이 쏟아져 내려오니 심리적 압박이 가중되는 것도 당연하다. 안 그래도 너무 많은 일들이 몰려있고 병목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이제 너무 견디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들어서 괴로운 것 같다. 가뜩이나 일 자체에는 지쳐 있었으니.
직원들과의 업무회의를 모두 마치고 윗분과 따로 추가회의를 하면서 차마 이 직원들에게는 더 부여하지 못한 최고임원의 과제 몇개를 두고 한동안 논의를 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깨질 것 같았다. 수면부족과 스트레스에서 오는 두통이다. 이후 너무 힘들어서 야근하지 않고 귀가했다.
저녁을 먹은 후 아빠와 통화를 했다. 그래도 유일한 낙은 아빠가 차차 회복되고 계시고 전화로 듣는 목소리도 한결 밝아졌다는 것이다. 아빠는 토요일에 실밥을 뽑는다고 한다. 그래도 병원에는 조금 더 계시기로 했다. 한달 사이 수술을 세번이나 받으신 터라 걱정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엄마와도 통화를 했다.
엄마와 이야기하다가 '엄마, 일이 너무 힘이 들어요' 하고 말했더니 엄마가 그냥 그 근속휴직 석달 써버리라고 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다 아프고 자리를 비워서 내가 그걸 쓸 수가 없다고 했더니 그러든 말든 네가 힘들고 죽겠으니 그냥 쓰라고 하심. 사람이 그렇게 지쳤을 땐 충전을 해야지 하면서. 우리 엄마가 원래 절대 이런 말씀을 하지 않는데 아마 내가 안쓰러웠던 것 같다. '엄마, 근데 그렇게 눈 딱감고 쉬어버리면 돌아왔을 때 지방 본사로 보내고 보복이 있을 거 같아' 라고 말하자 엄마가 아니 제도를 만들어놨으면 쓰게 해야지 그게 말이 되냐고 화를 내심. 흑흑 그 말씀이 맞다만 조직이라는 게 그렇게 돌아가지 않으니까요 ㅜㅜ 화를 내다가 엄마가 그래도 그건 그때 닥치면 해결하고 지금 힘들면 쉬어버리라고 하신다. 여태 엄마가 그런식으로 얘기하셨던 적이 없으므로 그래도 엄마의 말씀에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막판에 '엄마 그런데 그건 무급 휴직인데' 라고 했더니 엄마가 흠칫하시며 '그러면 한달만 쉬어라' 라고 하심 ㅎㅎㅎ 역시 돈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마음.
나는 사실 급여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 인력 문제가 너무 심각한 상황에서 어쨌든 책임을 지고 있는 리더가 자리를 비우는 건 도저히 어렵다는 생각, 그리고 농담이 아니라 지금 같은 시기에 그런 제도가 있다고 사용을 했을 때 당연히 위에 좋게 보일 수가 없고 모종의 보복이 따른다는 생각에 규정과 지침으로 보장된 근속휴직을 쓸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이건 오래된 구조와 내 마음의 문제이기도 해서 석달 쉰다고 본질적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지금 너무 힘이 들고 지치고 나날을 버티는 것이 너무 버거우니 정말 괴롭다.
점심 때 가장 친한 동료 언니(나와 같은 해에 입사했다)와 밥을 먹고 나오면서 말했다. '작년에 근속 시상 받을 때 사실 현타가 많이 왔어. 이렇게까지 계속 남아 있고 싶지 않았거든. 너무 지쳤어. 정말 그만두고 싶어' 라고. 언니는 내게 '그래도 자기는 할 줄 아는 게 있잖아, 글이라도 쓰면 되잖아' 라고 한다. 현실적 조언이나 해결책은 아니다만 하여튼 그렇게라도 봐주니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그런데 정말 너무, 너무 지쳤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 바빴던 시기, 스트레스 받았던 시기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그때보단 낫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나아가보려고 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지금도 힘들다. 아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아빠가 강권하여 산 복권이 당첨되면 좋겠음. 그게 결론임. 이제 자러 가야겠다. 잠이 모자라서 더 힘든 걸지도 모른다. 손목 통증 때문에 약도 먹었다. 아아 성한 곳이 하나도 없어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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