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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피곤해서 완전히 뻗어서 잤다. 아침에 두어번 깼다가 다시 잠들었고 꿈에 좀 시달렸다. 예전에 키웠던 토리를 닮은 예쁜 하얀 강아지들도 나왔는데 깨고 생각하니 개꿈이네. 계속 자고 싶었지만 싸들고 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아 괴로워하면서, 그렇다고 또 일어나기는 너무 피곤해서 이도저도 아니게 침대에서 게으름 피우다 정오가 좀 안되어 일어났다. 원래 계획은 늦지 않게 일어나 아점을 일찍 먹고, 혹은 먹기 전에 간단하게 요거트와 민들레 차 등속으로 아침을 먹고 일을 한 후 좀 편하고 느긋해진 마음으로 밥을 먹고 오후의 티타임과 휴식을 갖는 거였는데 물론 나는 게으르므로 이것은 그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ㅠㅠ 

 

 

 

그래도 한시 즈음 목욕, 청소, 아점까지 끝마쳤으므로 그럭저럭 늦지 않은 티타임을 갖고 일을 하려고 두번째 계획을 가동했지만, 저녁에 도착할 줄 알았던 꽃이 그때 딱 배송이 옴. 꽃을 상자 안에 방치할 수는 없으니 그것들을 꺼내 다듬고, 남아 있던 꽃들 중 시든 것들을 골라내고 오늘 온 꽃들과 섞어 꽂는데 한 시간 가량이 소요되었다. 보통은 이 과정이 마음 수양에 도움이 되는데 오늘은 그저 피곤했다. 그래도 꽃들이 예뻐서 나중엔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요즘 내 마음의 위안은 이렇게 꽃을 보는 것 뿐인듯. 

 

 

 

 

 

 

 

 

꽃 다듬으면서 지난주의 꽃들을 덜어내 초록빛 루스커스와 함께 끄라스느이 우골에 옮겨두었다. 대를 많이 잘라내 짧아진 꽃들이라 사이즈가 여기 잘 맞는다. 이 꽃들이 다 시들면 거실의 꽃들 중 일부를 옮겨 꽂으려고 한다. 오늘이 정교 성탄절이다. 우리를 위해, 나를 위해 와주신 예수님 감사해요. 간밤에 아빠를 위해 많이 기도하고 잤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몸이 아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소중한 친구를 위해서도 매일의 기도를 계속해 보내드렸다. 그리고 부디, 평화가 오기를. 

 

 

 

오늘도 아침과 저녁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빠는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셨기 때문에 아침에는 통화를 못하고 저녁에는 수술 받으신 후 처음으로 통화를 했다. 너무 다행히 이제 조금씩 회복되고 계신다. 아직 다리는 저리지만 그래도 보조기를 이용해 조금씩 걷기도 하시고 식사도 하시고 말씀도 잘 하시고 긴장과 공포도 많이 누그러지셨다. 정말 너무 다행이다. 부디 부작용이나 후유증 없이 잘 회복되시기를 바라고 기도드린다. 응원과 기도를 보내주신 이웃님들께도 너무 감사하다. 

 

 

 

 

 

 

 

 

이건 원래 초를 꽂는 용도로 블라디보스톡의 빠끄로프 사원(여기 아니면 페테르부르크의 네프스키 수도원인데 전자가 맞을 것 같다)에서 사왔던 건데, 초를 켜는 일이 별로 없어서 대신 이렇게 조그만 꽃잎 잔가지를 꽂아두었다. 이 꽃은 이름을 까먹었다. 필러 식물로 같이 들어있었던 건데. 이런 꽃들은 비슷비슷해서 기억하기가 쉽지 않음. 이미 이녀석을 한다발 말려서 서재 방에도 꽂아두었는데 새로 왔을 때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여전히 모름. 찾아보기엔 또 귀찮음. 어쨌든 예뻐서 좋다. 라벤더랑 약간 친척같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향이 전혀 없고 꽃 모양도 좀 다르다. 

 

 

 

 

 

 

 

 

 

 

 

 

어쨌든, 이른 오후에 도착한 꽃들.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와 하노이 라넌큘러스, 새로운 품종의 잎이 커다란 유칼립투스 조합이었다. 나는 보통은 노랑 분홍 조합을 고르지 않는데 이건 랜덤 믹스라 이렇게 왔다. 그런데 은근히 이 연노랑 버터플라이와 연분홍 하노이 라넌큘러스가 함께 있으니 봄 느낌도 나고 화사하고 이쁘다. 유칼립투스는 끈적끈적하고 잎이랑 줄기 다듬기 싫어서 안 좋아하는데 이 품종은 잎도 커다랗고 줄기도 가늘고 진액도 안 나와서 나쁘지 않다. 이 유칼립투스는 영원한 휴가님께서 새해 선물로 보내주셨던 리넨 타월에 그려진 그 유칼립투스랑 비슷하게 생겼다. 지난주에 왔다가 아직 잘 살아남아 있는 카네이션 세송이와 리시안셔스 한송이, 그리고 그 이름을 모르는 보라색 필러 꽃들도 섞어서 꽂아두었다. 그래, 꽃들이라도 봐야 마음이 나아지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도선생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차를 마시고 급속도로 피곤해서 조금 쉬다가 결국 5시가 다 되어서야 컴퓨터를 켜고 일을 시작했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어쨌든 대충 보고서를 좀 썼다. 그리고는 또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한시간 가량 누워 있다가 자전거를 타고 씻고 밥을 먹고 쉬다가 9시 쯤 다시 컴 앞에 앉아 보고서를 마저 조금 더 썼다. 오늘은 도저히 머리가 맑아지지 않고 집중이 잘 안돼서 정돈된 용어도 도통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초안들, 알맹이들만 생각나는대로 줄줄이 얹어두었다.

 

 

 

그나마도 목욕하고 머리 말리면서 구조화된 용어들과 내용들이 좀 떠올라서 밤에는 그것들을 좀 썼다. 욕조에 들어가 있을 때나 머리 말릴 때 글이든 이런 것이든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 전에 어떤 기사에서 완전히 긴장이 이완된 상태에서 새로운 것들이 잘 떠오르기 마련이라는 내용을 읽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정리해 글로 표현하는 건 또 다른 문제임. 하여튼 이런 보고서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아이디어들, 무의식에서 솟아나오는 창의적인 생각들이 당연히 더 좋고 소중하다. 아마 그래서 내가 욕조에 들어가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머리 말리는 건 너무 싫다 ㅜㅜ)

 

 

보고서는 아직 꽤 남았다. 다음주가 혼돈과 바쁜 일정으로 점철될테니 대부분을 끝내놓는 것이 좋긴 한데, 실무자들이 보내온 파트들도 일목요연하게 수정하고 정리해야 하고... 내일 내키면 나머지를 조금 더 써보고 안되면 그냥 배째라 모른다 하며 월요일부터 사무실에서 써야겠다. 그런데 이래놓고 쉬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이 이 소심한 노동노예의 특성 ㅠㅠ 

 

 

 

일 때문에 결국 퇴고는 하나도 못했다. 그래도 자전거 타면서, 그리고 잠깐 소파에 늘어져 쉬면서 출력해온 버전으로 쭉 읽어서 이제 마지막 파트만 남아 있다. 이 파트까지 읽고 나서 실제로 파일에 손을 대려고 한다. 내일 시작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모든 글이 정도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는 같은 과정을 거치지만, 이 글은 원체 일년 동안 천천히 조금씩 썼고 마지막에 온 힘을 다 끌어모아 달려서 끝마쳤기 때문에 기력이 많이 소진되어서 그런지 선뜻 수정하고 다시 머리를 쓸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이런 글은 양생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 이렇게 오래 쓴 글 같은 경우는 중간중간 계속 고치면서 쓰기 때문에 대체로 앞부분에서 중반부까지는 별로 고칠 게 나오지 않고, 휘달려서 쓴 후반부를 좀더 신중하게 봐야 한다. 뭐 이것도 사람 나름이겠지. 내일은 근데 아무래도 소심한 노동노예인 내가 보고서를 좀더 쓸것만 같고, 그래서 이 글은 거의 설 연휴가 다 되어야 퇴고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사실 퇴고를 딱히 즐기는 편이 아니고, 어서 다른 글을 쓰고 싶음. 아직 다음 글을 뭘 쓸지는 정하지 않았다. 전에 구상해 놓은 것이 몇개 있긴 한데 이러다 또 새로운 뭔가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하여튼 지금은 집중력도 에너지도 고갈된 상태라 휴식이 필요한 것으로 결론. 

 

 

 

오후에 도착한 예쁜 꽃들 사진 여럿 접어두고 오늘따라 어쩐지 길고 산만했던 메모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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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