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금요일 : 고된 일에 시달리다 어느덧 금요일 밤, 일을 싸와서 슬픔, 조금 다행, 무의식에서 구현된 질서 fragments2023. 1. 6. 22:48
길고 험난했던 일주일이 지나가고 이제 금요일 밤이다. 그런데 일을 싸왔다 ㅜㅜ 오늘 밤에 좀 해놓고 주말을 편하게 쉬려는 마음이었지만 귀가해서 자전거 조금 타고 씻고 밥먹고 나니 너무 피곤하고 온몸의 기가 다 빠져나가서 이제야 이 메모 남기려고 pc를 켰기 때문에 일은 내일 해야 할 것 같다. 오늘도 보고서를 생각보다 많이 쓰지 못했다. 분명 열심히 쓰고 있는데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쓰는 파트가 작년 모든 성과와 실적을 총망라해 구조화하고 요약하는 작업이라 페이지수는 별로 많지 않아도 무척 힘이 든다. 모든 것을 머리에 꿰고 있어야 쓸 수 있는 파트인데, 뭐 다 꿰고 있긴 하지만 그것을 하나하나 구조화하는 게 피곤하다. 두뇌퇴화+기력감소+심적산란 3단콤보 작용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은 죽어라 일하다가 오후 늦게 진료를 받으러 또다시 지하철을 타고 멀리 시내에 나갔다. 진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더더욱 멀었다. 집에 돌아오니 정말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주말에 쉴 수 있다고 좋아하고픈데 싸들고 온 보고서 미션이 발목을 잡아서 그런지 하나도 맘이 안 편함 흑흑.
아침과 오후에 엄마와 통화를 했다. 아버지는 다행히 약간씩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어제는 정말 너무 심란했다. 이틀 사이에 재수술을 했다고 하고 또 계속 아프다 하시니 마음이 산란하고 불안하고 걱정이 되어 많이 힘들었다. 의사와 간호사의 지시대로 잘 따르셔야 하는데 아버지는 나이가 드시면서 점점 어린애처럼 자기 마음대로 고집이 더 늘어나서 조금만 힘들면 마음대로 다리나 몸을 움직이신다고 엄마가 푸념을 하셨다. 곁에서 돌봐드리는 엄마도 걱정이다. 그래도 어제보단 나은 것 같아 좀 마음을 놓았다. 오늘 푹 주무시고 내일은 더 나아지시기를 기도하고 자야겠다.
이번 주가 너무 힘들고 고된 시기라 퇴고는 하나도 못했고 글 전체를 출력해 퇴근하고 나서 실내자전거 타는 동안 맨앞부터 조금씩 읽고 있다. 이게 확실히 아직도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모니터를 보며 타이핑해서 쓴 글이고 쓰는 내내 폰이나 아이패드로 읽어가며 체크를 했지만, 종이에 문자로 인쇄된 버전으로 읽을 때의 느낌은 다르다. 어쩌면 다 쓰고 난 후라 그럴지도 모른다. 좀더 객관적이 되기도 하고, 또 어쨌든 일년 동안 쓴 글이므로(페이지수는 110쪽 정도밖에 안된다. 작년에는 정말 천천히, 느릿느릿, 그래도 개미처럼 꾸준히 썼다. 바빠서 정말 주말에만 조금씩 썼으니까) 앞부분은 쓴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읽자 새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쓰는 동안에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마무리된 글 전체를 처음부터 읽어나가자 여기저기서 앞뒤나 인물들에 호응하는 상징이나 물건들, 여러가지 정서적/건축적 관계들, 전체적 구조가 무의식적으로 짜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것은 의도적으로 배치하기도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형식적으로 온전하게 모든 것을 짜맞추며 계산적으로 쓴다기보다는 좀더 직관적인 타입이라 쓰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며 배치되었던 질서들이 나타난다. 아마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바로 그런 순간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무의식과 직관과 감정들에 반쯤은 의도적으로, 반쯤은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질서를 부여하고 새로운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 쓰는 사람마다 그 방식이 다를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내게 글쓰기란 그런 과정이며 바로 그런 행위이다.
왼쪽 손목이 다시 쑤시기 시작한다. 그런데 병원에는 가지 못했다. 그냥 보호대를 하고 내일 보고서를 좀 써야겠다. 그런데 너무너무 하기가 싫다. 그냥 쉬고만 싶다. 다음주의 빡빡하고 혼란스러운 일정을 생각하면 최소한이라도 좀 해놔야 될텐데... 아 일단 자러 가야겠다. 자고 나면 머리가 좀 맑아지겠지. 자고 일어나면 우렁이가 와서 청소라도 해놨으면 좋으련만. 이제 출근해달라고도, 보고서 대신 써달라고도 안해, 청소만이라도 해줘 엉엉 이런 소박한 소원마저 안 들어주다니 토끼의 수호 우렁이는 왜 이렇게 냉혹한 것일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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