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6

« 2025/6 »

  • 29
  • 30






잠이 모자랐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고, 새벽 늦게 잠들어도 평소 일어나던 습관이 있으니 아주 늦게까지 쭉 잘 수도 없다. 밤에도 많이 늦게 잠들어 월요일 출근이 힘들까봐 오늘은 홍차도 디카페인 티로 우려 마셨다.





꿈도 어지럽게 꿨다. 종종 나타나는 패턴 중 하나로, 아파트나 빌라 같은 건물에서 우리 집에 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를 잘못 타거나, 혹은 우리 집인 줄 알았는데 남의 집 문앞에 와 있다거나 하는 꿈이었다. 이것과 비슷한 건 집이든 어디든 목적지에 가야 하는데 버스가 안 오거나 잘못된 버스를 타는 것이다. 혹은 호텔에 갔는데 이상한 방을 내준다든지, 내 방이 아닌 곳에 투숙하게 된다든지. 모두 종류만 다르지 실은 비슷비슷한 꿈이다.






이런 꿈은 보통 불안감, 자기 불신, 혹은 혼돈과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 자주 꾸게 된다. 지금은 물론 이런 꿈 꿀만한 시기이다. 이번주에 상당한 변화와 혼돈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실제로 일이 벌어지고 나면 좀 나을 것이다, 현실에 대응하고 타개하기 위해 상식과 행동이 앞서나가게 될테니까. 상상력이 풍부하면 좋은 점도 많지만 사실 살아가기가 피곤하고 어렵다. 걱정거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임. 과거에 있었던 나쁜 일들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건 아마도 일과 관련된 트라우마가 아직 치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6시간 가량 자고 일어났다. 별로 늦지 않게 깼지만 침대에서 게으름 피우다가 역시 늦게 기어나왔다. 아점을 먹은 후 차 마시면서 작년 마지막 날 새벽(사실 일주일 전이지만 어쨌든 작년)에 마쳤던 글을 출력본으로 마저 다 읽었다.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는 고쳐야 할 문장들이 여럿 나왔다. 앉아서 좀 고쳐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특히 제일 막바지 문단에서 튀어버린 문장은, 그 문장을 그대로 살리면서 순서만 바꿔보려 했지만 결국은 표현을 좀 손대야 해서 아쉬웠다.





진득하게 앉아 퇴고를 하고 싶었지만 심적으로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한 날이라 몇 문장만 고친 후 포기했다. 차라리 보고서나 추가로 더 쓸까 했지만 일요일마저 일하며 보내는 건 너무 싫어서 그것도 포기했다. 그래서 뭔가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쉬면서도 마음 한켠은 내내 우울하고 산란했다.



아주 즐겁고 실없는 소품(대화가 많은 것으로)이나 매우 간결하고 건조하고 아주 짧은 단편을 쓰면 기분전환이 될 것 같은데 사실 그런 기력도 나지 않는다. 일년 동안 쓴 글이 1인칭이었기 때문에 더 기운이 빠진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작가와 화자를 동일시하는 실수는 하지 않지만, 소설을 쓸 때 나는 1인칭보다는 3인칭을 선호하는 편이다. 쓰기에는 1인칭이 더 순조로울 수도 있지만, 1인칭은 언제나 함정이 더 많고 거기 말려들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한다. 하긴 이것도 인물에 따라 다르긴 하다. 이 글의 주인공이자 화자는 너무나 내적이고 자기모순이 많고 스스로도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지 모르는 인물이었으니까.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는 글이었다. 자신을 많이 내줘야 하는 종류의 글.



이번주에는 그 망할 보고서를 어떻게든 죽어라 쓰고 보완해서 끝내야 한다. 그건 뭐 빡세게 하면 될 것이다. 주중에는 아마 지방 본사에 당일치기 출장도 가야 할 것이다. 회사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건 그리 희망차거나 즐거운 방향은 아닐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이것이 시련일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것이 아니기를. 어쨌든 일과 관련한 모든 새로운 것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럽기 마련이고 마음을 산란하게 하니까. 그냥 그런 정도로 그칠지도 모른다.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너무 걱정하거나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참 이것이 쉽지 않다. 성격 탓이다. 둔감하고 건조하고 쿨하게 살고 싶다.





그래도 아빠가 조금씩 나아지고 계시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통화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조금씩 더 괜찮게 들린다. 엄마가 곁에서 고생을 많이 하고 계셔서 마음이 쓰인다. 내일은 더 나아지시기를...













주말의 낙인 찐한 다즐링마저 못 마셨으니 부디 오늘 밤은 늦지 않게, 그리고 푹 잘 수 있기를, 그래서 힘든 일주일을 잘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며 꽃들 사진 몇 장 접어두고 마무리. 꽃들이 매우 아름답다. 그것이나마 위안임.














<꽃들 아래 접어둠>










:
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