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 목요일 밤 : 말이 씨가 되나, 엄마토끼 아빠토끼, 그래도 기운을 내자 fragments2022. 10. 27. 20:34
무척 피곤했던 하루. 지난주와 이번주는 예기치 않은 일들이 계속해서 몰려오고 여러가지로 어려운 날들이다. 꽃 사진도 며칠 전에 찍어둔 것. 그래서 지금은 다 시들어서 없는 소국들도 사진 속에 들어 있다.
어제 잠자리에 들면서 '아 정말 계속해서 일이 터지는구나 피곤하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거기 더해 또다른 일이 터지면서 기존에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거의 모두 현실이 되었다.
가장 믿을만하고 또 성격도 괜찮은 직원이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이 친구의 근무지는 이쪽이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나에게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이었다. 몇년 전 모종의 수술을 하고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오고 있었는데 어제 검사 결과 추가 수술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깜짝 놀랐고 정말 너무 걱정이 되었다 ㅜㅜ 수술했던 것도, 정기검진 받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항상 마음을 쓰고 있던 친구였는데...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너무너무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수술 일정도 잡았고 추가로 알아보니 조기에 발견해 수술을 하면 예후도 괜찮다고 한다. 경황이 없는 와중에 나에게 보고를 하러 아침 일찍 출근한 이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속상하고 가슴이 아팠다 ㅜㅜ 이 녀석이 그 와중에 일 걱정을 한다 ㅠㅠ 지금 일 생각할 때냐... 아무 걱정하지 말고 수술 준비를 하고 쉬어야 한다고 잘 다독거렸다. 차마 윗분에게는 직접 가서 얘기를 못하겠다고 해서 네가 편한대로 해라, 내가 말씀드려 주마 하고 얘기해주었다. (바로 며칠 전에도 이 친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너무 기특해서 윗분과 함께 많은 칭찬을 해주고 내년 사업에 대해 기대가 된다고 이야기를 나눴던터라 나름대로 그것이 부담도 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직원들에게야 당연히 내가 윗분보다야 더 편한 상대고 또 나는 이것저것 이야기도 따로 많이 나누는지라...) 너무 놀라기도 하고 이 사람에 대한 걱정이 많이 되어 정말 심란했는데, 그래도 이것저것 찾아보니 위에서 쓴대로 조기에 발견해 수술하면 괜찮은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하니 그나마도 조금 다행이다...
아픈 직원은 몸이 회복되는 게 최우선이니 비록 내가 믿음이 약한 날라리 신자이지만(교회도 안 감) 그래도 기도의 마음이 추가되었다.
그런데, 역시 나는 운영자의 입장이다 보니 크나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수술을 해야 해서 거의 내년 내내 자리를 비워야 할 것이 틀림없는 이 친구는 사실 내년에 가장 중요한 사업을 맡은 사람이다. (사실은 히스테리 직원의 한계 때문에 그 직원 대신 새로운 리더십과 능력을 양성해주고 있던 대상이었다. 이 사람의 능력이 출중하다) 어제도 한명이 임신 때문에 자리를 비우게 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것은 어떻게든 커버할 수 있는 범위였지만 이 친구가 빠지게 되면 이미 어느 정도 틀을 짜 놓았던 내년 사업계획이 정말 많이 흔들리게 된다(그 이유는 그 업무가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몇명 없고 또 1인 1프로젝트 이상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임) 충원은 제대로 되지 않을 공산이 크고 해줘봤자 이 사람을 대체할 수가 없다. 그러니 정말 큰일이었다. 여태까지 모든 걸 합산해보면 내년엔 주요 사업을 수행하는 부서원의 3분의 1이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게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불행하고 슬픈 소식을 윗분께 알려드리러 갔다. 문을 닫고, 윗분께 '흥분하시면 아니됩니다' 로 살며시 경고를 한 후 상황 공유를 해드렸다. 내 생각대로 이분은 매우 흥분하였고 충격을 받아 좀 분노 상태와 횡설수설 모드에 접어들었다. 이야기를 좀 하다가 점심 시간 동안 잠시 머리를 식히실 수 있게 시간을 드린 후 오후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효과가 좀 있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윗분은 야망과 욕심을 좀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각종 대처방안을 논의하고 '우리 욕심부리지 말아요'로 마무리하고 퇴근했다. 일이야 뭐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새로 짜는 수밖에 없고, 윗분의 마음가짐만 좀 바뀌어주면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아니면 나도 체념 모드라서 그런가)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일 때문이 아니고 아픈 직원 때문이다.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고 누가 아파도 당연히 걱정이 되지만, 거기다 사실 내가 가장 기대를 걸고 있었고 내심 마음도 많이 가던 애였으므로 더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다 괜찮기를 바란다.
윗분이 말했다. '어쩌면 토끼님이 말했던 모든 일이 다 그대로 현실이 될 수가... 어떻게 그런 촉이...'
흑흑... 그것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들을 가정하고 여러가지 대응책을 생각하는 극강의 피곤한 성격 탓이지요 ㅠㅠ 사실 나는 ㅇㅇ은 ~한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ㅇㅇ은 언제라도 아이가 생겨 육아휴직에 들어갈 수 있고, ㅇㅇ은 아픈 게 재발할 위험도 있어요 등등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제기해드리며 윗분의 지나친 욕심에 제동을 건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현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나 스스로도 예측이나 직관이 잘 들어맞는 사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모든 최악의 경우들이 그것도 동시다발적으로 몰려오니 이것은 뭔가 개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촉이 잘 맞는 건 그저 슬플 따름임. 말이 씨가 되나 엉엉...
아 모른다. 뭐든 어떻게든 다 될 거다. 일이 뭐가 중요해 ㅠㅠ 사람이 안 아파야지... 윗분과도 '에휴 그깟 일이 뭐라고... 안 아픈 게 제일 중요하지' 하며 간만에 마음이 합치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아픈 애가 아프지 않기를, 잘 치료를 받고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오늘의 좋은 일은, 집에 돌아오니 엄마토끼 아빠토끼가 다녀가셨다는 것이다. 김치가 다 떨어졌는데 맛있는 김치와 깍두기를 갖다주러 오신 김에 엄마표 꽃게탕과 소고기무국이 또 한 냄비씩 생겨나 있었고, 두부조림, 오뎅볶음 콤보, 샤인머스캣이 놓여 있었으며, 심지어 온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해놓고 가셨다는 것이다. 으앙 엄마토끼아빠토끼우렁이... 엄마에게 전화를 드려서 '어무니 청소하셨죠?' 했다가 '야 이녀석아 집이 먼지구덩이 머리카락구덩이! 세탁기 뒤에 머리카락이랑 먼지가 한가득!' 하고 엄청 잔소리를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목요일이므로 집은 최악의 상태로 접어드는 시기이고(토요일 아침에 청소를 함 ㅠㅠ), 게다가 나는 엄청 게으른 인간이므로 눈가리고 아웅하며 눈에 보이는 데만 대충 청소를 하기 때문에 세탁기 뒤 따위 청소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엉엉.... 어무니아부지 감사합니다 ㅜㅜ
그리고 두번째 좋은 일은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것이다. 흑흑 그것을 생각하며 기운을 내자. 아 정말 너무 힘든 나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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