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일요일 밤 : 길고 산만하고 우울한 일요일 메모 fragments2024. 5. 12. 20:30
이번 주말에는 피로가 쌓여서 푹 자 보려고 했지만 토요일도, 오늘도 7시간 이상 수면을 취하지 못했다. 그래도 새벽 중간에 깨지는 않아서 그 정도면 상대적으로는 양호하지 않은가 생각해 보지만 역시 조금만 더 잤으면 좋았을 걸 싶다. 오늘도 아침 일곱 시에 깨버린 후 더 자보려고 노력했지만 뒤척거리다가 결국은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침대에 오래 누워서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다 침실에서는 늦게 나왔다.
주말이 다 지나갔다. 간밤에는 정말 비가 억수같이 왔는데, 아침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그러나 황사 때문에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창문을 오래 열어두지는 못했고 자외선과 햇볕이 무서워서 블라인드를 내려놓은 탓에 거실은 어두컴컴 했다. 빛이 잘 들어오는 휴일 오후를 좋아하는데 이제 방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는 한 이런 밝은 낮을 즐기기는 어려워져서 속상하다.
그날이 늦어지고 있어서 인지 기분이 매우 가라앉고 피곤했다. 마음 한구석에 계속해서 눈에 대한 걱정이 자리잡고 있어 우울하고 심란한 것 같다. 그래도 평소와 같은 휴일의 일상을 보냈다. 쉬면서 차를 마시고 가벼운 책을 읽었다. 밤에 잠을 못잘까봐 디카페인 티를 마셨더니 오후의 티타임 낙이 조금 사라졌다. 실내자전거는 어제와 비슷한 정도인 25분 가량 탔다.
그리고 오후에는 결국 일을 좀 했다. 금요일 본관 출장으로 일이 너무 밀려 있었고 내일까지 기한인 과제도 있었다. 이것은 부서원들에 대한 평가를 하는 일이라 미뤄놓기가 애매했고, 내일은 월요일이라 아침부터 굉장히 바쁠 것이기 때문에 오늘 조금이라도 해놓지 않으면 낭패를 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우울해하며 오후 늦게는 일을 했다. 많이 하지는 못 했고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이것저것 고치고 손을 봐야 한다. 내일은 새로 맡게 된 업무 때문에 머리가 많이 아플 것 같다. 새로운 직원들도 여러명 온다. 이들과 돌아가면서 면담도 해야 하고 부서 전체의 업무도 재분장해야 한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고 가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은 너무나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오늘은 문득 올해까지만 쓸 수 있는 근속 휴직이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쓰기 몇 달 전에 미리 신청을 해야 하므로 신청 가능한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근속휴직은 원칙적으로 석달 이내로 무급으로 쓸 수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맡고 있는 책무가 과중해서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이 무급 휴직 대신 근속휴가를 써서 5월에 여행을 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휴직 대신 유급 휴가는 일주일 가량 쓸 수가 있으니 이 휴가의 연차들을 합쳐서 3주 가량 여행을 다녀 오려고 했었다. 원래대로였다면 이번 수요일에 떠나는 일정이었다. 아빠의 항암치료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취소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올해가 지나면 휴직이든 휴가든 근속에 대한 것은 기한이 끝나버린다. 쓰지 못하면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너무 지치고 마음이 산란하다 보니 가을이나 겨울에라도 휴직이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평직원도 아니고 보직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비어 버리는 일들이 너무 많다. 여러가지로 눈치가 보이는데다 그 이후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쉬는 기간 동안은 급여를 받지 못하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된다. 하지만 항아리에 물이 가득 차서 금방이라도 흘러넘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며칠 전엔 '보직을 떼어달라고 할까?' 라는 고민이 들었고 오늘은 휴직에 대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다. 내내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인데도.
아마도 이 우울함은 아빠에 대한 걱정, 내 눈에 대한 걱정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지난 금요일에 본사에 내려가서 슈퍼갑과 만나고 온 이후 더 가중된 것 같다. 작년과 올해 내내 시련이 오지 않게 해달라고, 다시 과거의 그 괴로움이 되풀이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그러다가 아빠가 괜찮으시고 나 역시 여러 가지 문제로 짓눌리면서 이 거대한 시련에 대해서는잊고 있었는데(혹은 잊으려고 했는데), 지난 금요일에 현실과 마주 대하고 나니 아주 제대로 우울해진 것 같다. 이것은 가치 충돌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해결하거나 도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가치의 문제를 그냥 외면한다 해도 실질적으로, 물리적으로 업무 자체에 대해 거대한 압박과 어려움이 닥쳐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래저래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것은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말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고 거기에 다른 여러 가지 요인들이 합쳐져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때 택하지 않았던 통역을 계속 했을 지도 잘 모르겠다. 그 오래 전으로 돌아가 통역대학원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을 했다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 지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이만큼이나 상상력이 풍부한데도.
눈이 좋지 않다고 하니 새 글을 쓰고자 하는 열망도 눌러 두고 있다. 하지만 사실 새로운 뭔가를 쓰고 싶다. 글이라도 쓸 수 있다면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다.
늦지 않게 자야겠다. 이번 주는 매우 바쁠 것이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그래도 주중에는 회사 근처 안경점을 찾아가 자외선 차단 안경을 맞추려고 한다. 선글라스는 너무 크고 화려해서 평상시에 쓰고 다니기가 부담스럽다. 검색을 해보니 변색렌즈라는 것이 있어서 평소에도 쓰기 무난하다고 한다. 안경점에 가서 상담을 해 봐야겠다. 외롭고 쓸쓸한데 누구든 기대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좀 버겁다.
여기까지 구술로 쓴 메모 마무리. 그리고 오타를 좀 고쳤다. 버터플라이 라넌큘러스 사진 몇 장과 함께 길고 우울했던 일요일 메모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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