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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기 전에 이 글을 마치려고 했는데 시간이 모자라서 그러지 못했고 이제 다시 이어서 쓰고 있다. 발췌한 부분은 지금 쓰고 있는 마지막 장의 일부. 게냐가 미샤와 함께 살고 있는 판탄카 운하 근처 집의 지붕에 대해,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한다. 맨앞 두 문장 뒤에는 어떤 노래와 미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앞뒤가 길어지게 되어 여기서는 생략했다. 

 

 

 

안나는 게냐의 발레학교 동기이자 마린스키에서 몇년 동안 파트너로 춤췄던 친구. 세레브랴코프는 이전 글에서 몇번 등장했듯, 미샤의 발레단 선배이자 오랜 은원 관계의 동료 무용수. 이 글의 시간적 배경인 90년대에는 게냐와 안나가 졸업한 발레학교의 교사로 재직 중이다. 아르다노프는 리다의 남편이다. 

 

 

 

발췌문은 아래 접어둔다.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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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우리는 지붕 위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었다. 6월이었고 늦은 저녁까지 햇살이 따스했다.

 

 

 

.. (중략) ..

 

 

 

 

 그때 미샤는 얄팍한 흰색 리넨 바지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지붕 위에 사지를 쭉 뻗고 누워 볕을 쬐고 있었다. 이따금 그는 정말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해가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고 붉은색과 회색 지붕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기 시작하면서 어디선가 습하고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미샤가 노래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 카디건을 건네주었다. 백야의 변덕스러운 소나기를 몰고 올 것 같은 바람이었고 그는 봄에 폐렴으로 고생했었으니까. 나는 그가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 약물 때문에 폐 어딘가에 손상을 입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마 안나가 말해줬던 것 같다. 내가 콩쿠르에서 미샤와 만났던 이야기를 열띠게 쏟아냈을 때. 안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감옥에서 다리 망가졌다는 건 헛소문일걸. 고문을 받은 건 맞는데 그냥 주사 조금 맞은 거였댔어. 그렇게 막 때리고 부러뜨릴 정도는 아니었대. 폐 때문에 무대에 길게 안 올라가는 거랬어’   다리라도 부러진 양 엄살을 피우며 비싸게 군다는 듯한 그 말투는 묘하게 세레브랴코프와 닮아 있었다. 아마 정말 그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옮겨준 건지도 몰랐다. 그녀는 나보다 오랫동안 세레브랴코프에게서 배웠으니까. 무엇이 진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미샤는 절대로,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수용소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까. 내가 아는 건 그가 폐렴에서 회복된지 두 달도 되지 않았고 바람이 불든 소나기가 쏟아지든 그냥 그렇게 계속 지붕 위에 누워있고도 남을 사람이란 사실 뿐이었다. 미샤는 내 카디건을 걸쳤지만 단추를 잠그지는 않았다. 옷을 건네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대신 키스를 했다. 그는 항상 그랬다. 노래를 자기 마음대로 잘라내고 마음에 드는 부분만 불렀고 무엇이든 고마울 때는 키스를 했다. 미안할 때는, 사과를 한 후에 키스를 했다. 하긴 그가 나에게 뭔가 직접적으로 사과할 일을 했던 적은 손으로 꼽을 정도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 앞에서 그가 주워왔던 고양이를 내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키라에게 맡겨야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사 대신 키스를 한 적도 없었다

 

 

 

 

 우리는 그 지붕 위에서 자주 일광욕을 했고 여름이 지난 후에도 운하의 야경을 보러 올라가곤 했다. 하지만 거기서 사랑을 나눈 적은 없었다. 어쨌든 지붕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옆 건물 어디서든 다른 사람들이 나올 수 있었으니까. 우리는 거실에 달린 커다란 테라스를 통해 지붕으로 나갔고 내려올 때는 침실 쪽의 발코니로 통하는 간이 계단을 이용했다. 둘 다 미샤의 집을 통해서만 오르내릴 수 있었다. 미샤는 가끔 지붕 쪽 문을 잠그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내가 열쇠를 한 벌씩 더 가졌다. 건물 공용 출입문은 옥상 반대편에 있었으니 아래층 사람들과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다른 건물에서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도둑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맨 처음 지붕에서 침실로 곧장 내려왔을 때 나는 미샤가 그 계단을 따로 설치한 건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미샤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부터 있었다고 했다. ‘그거랑 트로이츠키 사원 쿠폴. 그 두 개 때문에 이 집을 고른 건데 라고 말을 이었다. 나는 그가 언제나처럼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정말일지도 모른다. 그에게 있어 전망과 비밀 사다리 때문에 판탄카의 고급 주택을 사는 건 아르다노프가 궁전 같은 다차를 짓는 것만큼이나 쉬울 테니까.

 

 

 

 

 
 
 
 
 
 
 
 
 
 
 
..
 
 
 
 
 
 
 
 
 

 

 

 

 

 

사진은 백야의 페테르부르크 건물 지붕 풍경들, 둘다 @vkus.kakao 의 사진. 실제로 페테르부르크에는 지붕 투어 프로그램들도 있는데 거주민들은 싫어하기 때문에 요즘은 좀 줄어들었다(내가 주민이라도 싫을 것 같음 ㅜㅜ) 어쨌든 레닌그라드 시절이든 지금의 페테르부르크이든 이 도시의 지붕들은 언제나 주민들이 올라가 운하를 구경하고 일광욕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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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