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중 : 한밤의 네바 강변을 걷는 게냐, 하와이가 아님 + about writing2022. 12. 10. 22:59
이번 주말에 이 글을 다 마치려고 했지만 종일 여러가지 일로 바빴고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조금밖에 쓰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접어든 게냐가 내 생각보다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데다 생각지 않았던 게냐의 아파트 이웃이 자신의 목소리를 잠깐 내고 있어 약간 더 길어지고 있다. 단편이나 아예 철저히 계산해서 의도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면 보통은 이렇게 글과 나 사이에 호흡하고 움직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둔다. 아마 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그편이 더 잘 맞는다.
발췌한 글은 발레단 스튜디오에서 나와서 밤중에 혼자 네바 강변과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를 지나 궁전다리를 건너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게냐, 그리고 그가 미샤에 대해 떠올리는 생각들을 담고 있다. 이 글은 앞의 6~70%는 게냐와 리다의 이야기,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게냐와 미샤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하지만 미샤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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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을 건너 강변 쪽으로 갔다. 버스와 차들이 도로에 꽉 차 있었다. 이 길은 항상 밀린다. 강바람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코트 주머니에서 스카프를 꺼내 목에 두르자 한기가 좀 가셨다. 잉크처럼 짙은 강물 위로 불빛이 색색의 사탕처럼 흩뿌려져 있었고 궁전 다리 너머로 차디찬 청록색의 에르미타주가 반쯤 잘린 케이크처럼 늘어서 있었다. 트롤리버스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내 곁을 지나쳐갔다.
정류장을 지나칠 때 나는 리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예전에 여기서 버스를 기다리곤 했었다. 하지만 눈을 돌려봤자 소용없었다. 건너편에는 리다의 모교가 있었고 젠체하는 로모노소프 동상이 어둠 속에서도 번쩍거리는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은 언제나 리다의 자리였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는 이쪽으로 산책하거나 걸어서 강을 건너는 것을 피하곤 했다. 마치 프리발티스카야 호텔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처럼.
궁전 다리를 거의 다 건넜을 때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네바 강과 에르미타주, 궁전 광장의 기념 원주, 트롤리버스의 전선들 모두 검고 뿌연 물안개에 휩싸여 극히 일부만 허공에 둥둥 떠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캔버스화를 신지 않았어야 했다. 금세 물이 스며들어와 발이 젖었다. 미샤가 화를 내겠지. 그는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입든 바깥에서 뭘 하고 다니든 참견하지 않았지만 신발만은 예외였다. 추운 날씨에 비와 눈이 새는 신발을 신는 무용수는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는 페테르부르크지 하와이가 아니야. 심지어 스튜디오에 덧신과 방수 부츠를 여러 벌 갖다 놓고는 허술한 신발을 신고 온 무용수가 퇴근할 때면 그것을 억지로 신겨서 보냈다. 무용수의 발 앞에서는 완전히 구식이 되었다. 패션계의 뮤즈고 뭐고 그런 면에서는 바가노바나 마린스키의 교사들이나 다를 게 없었다.
정류장에는 비를 피하려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이쪽에는 버스가 몇 대 서지 않고 운행 간격도 긴 편인데 마침 운 좋게 트롤리버스가 도착했다. 이 버스를 타면 네프스키 대로 쪽으로 나간다. 알렉산드린스키 공원 앞에서 내리면 운하를 따라 걸어가거나 마을버스를 탈 수도 있다. 나는 판탄카의 그 집을 눈을 감고서도 찾아갈 수 있다. 한두 시간 후면 미샤가 돌아오겠지. 그는 내일 돌아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바빴고 해외 출장이 많았으니까 스케줄 조정 따윈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볼쇼이와의 급한 미팅이 뭔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언제나 그를 찾았다. 볼쇼이에서도, 스타니슬라프스키 극장에서도, 크레믈린에서도. 두 시에 도착해 볼쇼이로 갔다면 오후 늦은 미팅이었을 것이다. 그런 급한 미팅을 소집했다면, 미샤가 당일에 런던 스케줄을 조정해야 했다면 최소한 시장이나 문화부 고위직쯤은 끼어 있었을 것이다. 아마 만찬도 같이 해야 했겠지. 자고 오는 게 나았을 텐데. 메트로폴이든 새로 생긴 외국 호텔이든, 아니, 모스크바 강가의 호화스런 별장과 아파트, 요새, 그 어디든. 제대로 된 궁전들. 리다의 어머니는 아르다노프가 지어준 별장을 궁전이라 부른다지만 어쨌든 모스크바 마피아가 훨씬 윗길이다.
맨 위 사진은 Andrei Mikhailov 가 찍은 네바 강변과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야경. 사실은 에르미타주와 궁전다리가 나와 있는 야경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내가 찍은 사진들 중엔 괜찮은게 없어(보통 한밤중엔 잘 나다니지 않고, 한여름엔 밤중이라도 밝으니 이 글의 배경인 11월 밤에 맞는 사진을 못 찾았다) 남이 찍은 사진으로. 결국 에르미타주 대신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사진인데, 사실 글에 묘사는 되어 있지 않지만 게냐의 루트로 궁전다리를 건너가서 정류장 쪽으로 가면 저 풍경도 보인다.
그리고 야경은 아니지만 어쨌든 에르미타주와 궁전다리 사진, 그리고 네바 강변 사진 몇 장. 위에서부터 아래 네 장은 모두 내가 2010년 2월에 찍은 것들이다. 이미 12년도 훨씬 전이네... 이때 나는 게냐와 똑같은 루트로 걷고 있었다. 즉, 바실리 섬의 볼쇼이 대로에서부터 걸어나와 국립대학교를 지나고 네바 강변을 따라 걸어서 궁전다리를 건너 예의 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사진은 한겨울이라 눈이 잔뜩 쌓여 있었고 네바 강도 꽁꽁 얼어 있는데, 소설은 11월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어 이런 겨울왕국 정취 따위는 전혀 없고 스산하고 음습하고 싸늘하기만 했을 것이다.
이건 게냐가 '리다의 모교'라고 표현하고 있는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이 학교가 있기 때문에 이쪽 네바 강변은 '우니베르시쩻스까야 나베레즈나야', 즉 대학교 강변이라고 부른다. 그냥 '대학교'인 것이다. 소련 시절엔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이 소설이 속해 있는 우주에서는 과거 트로이와 알리사의 모교이고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면 미샤의 아버지 세르게이 야스민의 모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도 이곳에서 두번 연수를 받았다. 저 조그만 문을 통과해 들어가곤 했다. 이 글의 배경인 90년대 후반에 왼쪽의 작은 키오스크에서는 시사저널과 동아일보 등 이미 철지난 한국 잡지와 신문을 팔았고 돈없는 유학생인 나는 항상 하염없이 그것들을 바라보며 '아, 사고 싶다'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당시엔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한국 소식도, 한글 활자도 너무 그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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