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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쓰는 중이다. 이제 조금만 더 쓰면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1월이 되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지금 속도를 보면 여행 가기 전에 마치는 것이 현실적인 목표일 것 같다. 

 

 

지난주에 발췌한 파트 바로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 조금. 이제 게냐는 여전히 갈런드와, 스타니슬라프 일린, 그리고 미샤에 대해 얘기한다. 

 

 

아르다노프는 리다의 남편 이름. 키라는 미샤의 친구이자 화가.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는 일린의 제대로 된 이름. 스탄카는 미샤가 그를 부르는 애칭이다. 글의 배경은 1997년 11월 초, 페테르부르크이다. 이때 일린은 뉴욕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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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그 절망과 경이의 구렁텅이에 반쯤 잠긴 채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물을 마시고 있는데 갈런드가 다가와 두툼한 타월을 한 장 어깨에 씌워주고는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하루 만에 얼굴이 반쪽이 됐다, 뭘 먹기는 했느냐고 물으면서. 생각해보니 아점으로 먹었던 부체르브로드 한 조각과 오렌지 주스 외엔 입에 댄 것이 없었다. 차 한 잔, 에비앙 한 병.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문득 아르다노프가 비서를 시켜서 갈런드에게 연락했었다는 리다의 말이 떠올랐다. 그 인간 아주 여우 같더라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놓고 협의 같은 건 할 수 없고 너한테 얘기를 전해줄 수도 없다는 거야.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일에 대해서라면 갈런드는 누구보다도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하긴 그 충실함은 온전히 마에스트로를 향한 것이겠지만. 지나는 그를 근위대장이라고 불렀고 키라는 약간 비아냥을 섞어서 집사라고 불렀는데 갈런드는 100% 양키인 자신에게 그런 별명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맞받았지만 내심 즐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미샤에 대한 그의 헌신과 애정은 때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어쨌든 그는 나에게도 항상 친근하게 대했고 우리들이 예의를 차리느라, 혹은 지나의 표현대로라면 레닌그라드 인텔리겐치야식으로 행동하느라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일들도 탁 터놓고 거리낌 없이 말하곤 했다. 며칠 전 그는 나에게 ABT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이런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앞으로도 제안들은 계속 올 거야. 넌 좋은 무용수니까. 하지만 이런 시기에 이런 조건은 드물어. 게다가 스타니슬라프 리보비치가 내년까지 계약을 연장했으니까 네겐 큰 버팀목이 돼줄 거고. 현지에 내 편이 돼 줄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이지. 마에스트로는 작년에 그분을 보냈을 때부터 아마 그 생각을 했을 거야

 

 

 

 갈런드는 내가 갈 거라고 80% 정도는 확신하고 있었다. 20%를 남겨놓은 이유는 내가 낯선 환경과 모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가 일린에 대해 얘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전형적인 갈런드식 자본주의 마케팅 조언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갔을 것이다. 나 역시 계속 고민 중이었으니까. 나는 스타니슬라프 일린과는 뉴욕과 런던에서 딱 두 번 만났다. 일린은 미샤보다도 나이가 한참 많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정말 까마득한 대선배였고 모스크바 토박이라 예전에는 마주칠 일이 전혀 없었다. 그는 미샤와 아주 막역한 사이였다. 미샤가 체포되었을 때 모스크바 예술가들을 규합해 구명 운동의 선봉에 나섰고 그것 때문에 구금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미샤는 일린을 아주 좋아했고 눈에 띄게 의지했다. 그토록 독립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그럴 수 있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난번 뉴욕에서 만났을 때는 '나의 모스크바 깃발', '작은 닻' 따위의 온갖 별명을 즉석에서 쏟아내며 마음껏 애정을 표현했다. 좀처럼 오글거리는 표현을 하지 않고 과도한 애칭도 잘 부르지 않는 사람이 그런 말을 쓰는 것이 낯설었다. 심지어 알콜 분해가 안 되는 체질 때문에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못하는 샴페인을 몇 잔이나 마시기까지 했다. 또 실려 가고 싶으냐, 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느냐고 지나가 야단을 쳤지만 미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탄카랑 마시면 괜찮아. 안 취해라고 우겼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미샤가 뻗어버려서 나와 지나는 그를 일린의 침대에 내버려 두고 둘이서 호텔로 돌아와야 했다. 일린은 그나마 소파라도 있어 다행이다, 안 그러면 자기는 식탁 위에서 자야 했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굳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아마 내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미샤와 내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나는 그와 미샤의 관계를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설령 둘이 모종의 친밀한 사이였던 적이 있었다 해도 그건 이미 오래전의 일일 것이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였다. 그런데 갈런드가 일린에 대해 얘기했을 때 나는 뒤늦게 기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아니, 의심 때문은 아니었다. 당연히 질투도 아니었다. 나는 미샤에 대해 그런 식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나 외에도 무수한 애인들이 있었을 테니까. 그건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나는 그가 그런 식으로 영위해 온 삶에 우연히 들렀다가 잠시 머무르고 있는 것뿐이니까.

 

 

 

 그러니까 갈런드가 일린을 언급했을 때 기분이 나빴던 건 과거와는 관련이 없다. 뉴욕 현지에 내 편을 만들어놓기 위해서미샤가 일린을 미리 보내놓았다는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어린애라도 되는 것처럼. 일린이 ABT의 상주 안무가로 계약해 뉴욕으로 떠났던 건 작년 초였다. 내가 여기 합류한 지 반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나는 마치 물건처럼 취급되는 기분이 들었다. 리다라면 팔아먹을 만한 상품이라고 하겠지. 그런 마케팅 전략의 장기 말이 되는 건 새로운 자본주의 천국을 경멸하는 레닌그라드 인텔리겐치야식 풋내기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기분이 나빠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나는 그 레닌그라드 인텔리겐치야 세대로 자란 적도 없고 그들의 문화도 잘 모른다. 그저 토박이일 뿐이다. 미샤나 지나처럼 이 도시에 대한 이상한 애정을 품고 있지도 않았다. 장기적 투자의 대상으로 거론될 수 있다는 건 갈런드나 리다의 논리대로 지금 같은 시기에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른다. 그는 내게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그는 그저 뉴욕의 제의에 대해 아주 객관적으로 말했을 뿐이다. 내가 가겠다면 갈런드를 통해 모든 절차를 처리해주겠다고. 일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런 식의 호의와 돌봄을 받으면서까지 뉴욕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갈런드가 일린에 대해 얘기했을 때 한순간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간 건 그 뉴욕 아파트, 일린이 뉴욕의 살인적 물가와 집 구하기의 어려움을 빗대어 메가폴리스의 다락방이라고 부르던 그 작은 아파트의 침실과 노란 불빛이 깜박이던 램프 스탠드, 이상하게 눈에 거슬리던 파란색 모포와 거기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어 뻗어 있던 미샤, 협소한 거실에 우격다짐으로 끼워 맞춘 듯한 작은 소파였다. 그 소파는 폭도 좁은데다 팔걸이가 기형적으로 높아서 지나처럼 조그만 여자조차도 거기 누워 잘 수 없었을 것이다. 일린은 식탁 위에서 자야 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뉴욕이든 ABT든 스타니슬라프 일린이든 엿이나 먹으라고 욕을 퍼붓고 싶었고 그런 자신의 분노가 당혹스러워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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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린의 조그만 뉴욕 스튜디오 아파트랑 비슷한 스타일의 사진을 올려보고 싶었으나 게으름의 결과 그냥 대충 인테리어 알고리즘을 뒤져서 건져온, 느낌이 약간 비슷한(조그맣다는 의미로) 암스테르담의 어느 스튜디오 아파트 사진들. 모두 @karrrst의 사진들이다. 소파 크기는 얼추 비슷할 것 같지만 이 소파는 팔걸이도 낮고 그렇게까지 기형적이진 않아서 눕기 불편하진 않을 것 같음. 

 

 

 

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90년대 후반에 일린은 절친한 미샤의 네트워킹 + 본인의 능력 등으로 뉴욕에 몇년 머무르며 안무가 겸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뉴욕 월세가 원체 비싸기도 하거니와, 일터에서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구하다 보니 조그만 원룸 스튜디오에서 지내는데 타고난 사교성 덕분에 그 작은 아파트는 거의 항상 지인들과 친구들, 제자 무용수들로 우글우글... 모스크바에 있는 원래 자기 아파트는 아마 세를 주거나 했을 것 같다. 작은딸 아냐가 아빠 보러 뉴욕에 왔다가 조그만 아파트를 보고 실망해서 '아빠, 뉴욕이 좋다더니 집은 모스크바보다 너무 안 좋아' 라고 투덜거렸을 것만 같다. 라라는 그런 마음이 들었어도 그냥 '아빠 뉴욕은 그래도 전망은 좋네' 라고 둘러서 말했을 듯. (장녀와 작은딸의 차이랄까...) 사실 게냐가 몇년 전부터 독립해 나와서 페테르부르크 도심 변두리에 얻은 아파트도 이렇게 조그만 원룸 스튜디오이기 때문에(그래도 이것보다는 크지만) 그의 눈에는 일린의 원룸 아파트가 별로 불편해보이지는 않았을지도... (하긴 판탄카에 있는 미샤네 집은 엄청 널찍하긴 하다) 뜬금없이 집 얘기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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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T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이 글과 바로 직전에 마쳤던 단편 '눈의 여왕'은 게냐가 미샤를 통해서 뉴욕의 이 발레단으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고 고민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물론 다른 이야기들도 함께. 90년대 소련 붕괴 후 러시아 무용수들이 뉴욕이나 유럽으로 많이들 이적하곤 했다. 게냐의 이 고민에 대한 자초지종과 결론을 자세하게 적어나간 것이 '눈의 여왕'이다. 미샤는 이미 ABT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 유수의 극장이나 발레단과 협업도 많이 하고 원체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어 있지만 본거지는 페테르부르크에 두고 있으며 자기 발레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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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