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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4장에 접어들었고 꾸준히 쓰고 있다. 4장에서는 게냐가 리다와 헤어져서 발레단 스튜디오로 돌아온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대화에서 언급된다. 4장의 전반부는 그래서 좀 여유가 있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분위기가 된다. 아무래도 1~3장 내내 게냐와 리다 둘이 팽팽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췌한 문단들에 등장하는 갈런드, 이라, 루키얀은 모두 예전 글에 나왔거나 아주 잠깐이라도 언급된 적이 있는 인물들이다. 갈런드는 미국인으로 미샤의 발레단 운영국장이며 이라는 발레단 막내이다. 둘은 이 소설 직전에 썼던 '눈의 여왕'에서 잠깐 언급된 적이 있다. 루키얀은 재작년에 쓴 미니 단편 '판탄카의 루키얀'의 주인공으로 마린스키 극장 마사지사이다. 미하일 파르포로비치/세르게예비치는 미샤. 제냐는 예브게니의 애칭이다. 주인공 게냐의 본명이 예브게니인데 이 이름의 가장 흔한 애칭이 제냐라 주변 동료들은 그를 제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라가 얘기하는 페초린과 벨라의 아다지오는 소설 중에서 미샤가 안무한 '우리 시대의 영웅' 발레에 나오는 2인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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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늦은 시간이었고 갈런드와 이라 외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모두 레프 도진의 신작을 보러 말르이 드라마 극장에 갔다고 했다. 갈런드는 말을 알아듣기 힘들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연극은 보러 가지 않는 것이 신조였다. 러시아어라면 우리보다도 더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므로 말도 안 되는 이유란 생각이 들었지만, 오페라도 절대 보러 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라는 내가 들어오자 반색했다. 당연히 극장에 간 줄 알았다면서 자기랑 연습 좀 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을 했다.

 

 

 

 “ 미하일 파르포... 세르게예비치는 내일까지 안 오시잖아요. 제냐, 당신은 춰봤죠, 페초린? ”

 

 “ 나도 그거 전막은 안 춰봤는데. ”

 

 “ 벨라랑 추는 아다지오는? ”

 

 “ 그건 춰봤어, 작년 갈라에서. ”

 

 

 

 그녀는 뛸 듯이 좋아했다. 며칠 후 엔테베 방송에 콜랴와 함께 나가서 그 아다지오를 추게 되어 있다고 했다. 원래는 류바가 나가기로 했는데 발목을 다쳤다, 이 기회에 나가보라고 갈런드가 자신을 밀어 넣었는데 춰본 적이 없는 배역이다, 연예인들도 많이 나오고 생방송이라 걱정이 된다, 콜랴는 방송 출연이고 뭐고 전혀 긴장도 안 한다, 연습 좀 더 하자 해도 이제 잘하는데 뭐하면서 극장에 가버렸다고 조잘거렸다. 콜랴라면 그랬을 것이다. 그는 매사에 낙천적이었고 이미 6년째 있으면서 미샤의 웬만한 레퍼토리는 다 춰본데다 파트너가 좀 헐겁더라도 자신의 화려한 테크닉으로 쉽사리 커버하는 타입이었으니까. 보통 때 같으면 미샤가 직접 지도해줬을 테지만 그는 사흘째 런던에 가 있었고 내일 아침에나 돌아올 예정이었다. 페초린과 벨라의 2인무는 까다로운 넘버였다. 아무리 갈라 공연용으로 축약된 넘버라 해도 초짜인 그녀에게 역을 맡기는 것은 좀 위험한 결정이었다. 이건 갈런드의 머릿속에서 나온 게 분명했다. 어차피 엔테베에서 방영하는 쇼라면 전문가들과 고정 관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아니었고, 이라는 발레학교를 막 졸업한 풋내기이긴 하지만 재능도 있고 미인이었으니까. 하긴 미샤는 갈런드의 소위 자본주의 마케팅을 이따금 놀려댔지만, 무용수들이 원한다면, 그리고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이런 기회를 살릴 수 있게 해주는 편이었으니 아마 여기 있었어도 똑같이 이라를 보내기로 했을 것이다. 그녀는 모든 무대와 조명과 기회에 목말라 있었고 신참 특유의 승부욕으로 불타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라에게 이 제의가 맨 처음에는 나와 류바에게 왔었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가 애를 먹는 동작 몇 개를 교정해주고 가장 중요한 파트를 반복해서 함께 춰주었다. 세 번쯤 추고 나자 이라는 훨씬 나아졌고 스스로도 그걸 알았는지 무척 기뻐했다. ‘고마워요 제냐, 역시 최고라니까요!’하고 외치며 내 뺨과 입술에 키스를 하고는 신이 나서 온통 반짝이고 발갛게 달아오른 채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

 

 

 

 나는 한 시간 정도 혼자 남아서 연습을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혼자는 아니었다. 갈런드가 남아서 연습실과 사무실을 오가며 서류를 보기도 하고 영어로 국제전화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으니까. 저 사람은 도대체 언제 퇴근이라는 걸 하는지, 미국인들에게 그토록 중요하다는 사생활이란 건 어디다 팔아먹고 이렇게 일에 매진할 수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는 마에스트로가 자리를 비운 날이면 항상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여자애들이 미샤가 있는 자리에서는 차마 그 미하일 파르포로비치란 별명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거리낌 없이 어디에서나 미샤를 마에스트로라고 불렀다. 미샤는 그 호칭을 싫어했지만 갈런드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테이프를 틀어놓고 몇 개의 솔로를 연습했다. 다음 주 도쿄에서 추기로 되어 있는 햄릿과 스페이드의 여왕, 그리고 이라와의 연습 때문에 생각난 페초린의 솔로를 이어서 추고 나니 갑작스럽게 온몸에 힘이 쭉 빠졌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마 들어오자마자 이라의 상대가 되어 주느라 스트레칭과 워밍업이 모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미샤의 안무는 고전 발레보다 훨씬 어려웠고 몸을 쓰는 방식도 좀 다른 편이라 역시 이렇게 찬 바람을 맞고 들어와 곧장 추기에는 쉽지 않았다. 언젠가 콜랴는 미샤가 무의식적으로 전성기 시절 자기 몸에 맞춘 안무를 하는 게 분명하다고, 그래서 우리들(즉 남자 무용수들) 모두 죽어나는 거라고 투덜댔지만 마침 연습을 구경하러 왔던 루키얀이 피식 웃더니 뭘 모르는구먼, 옛날에 저 친구 추던 가락대로 안무했으면 자네들은 벌써 팔다리 부러지고 마비되고도 남았어라고 농담을 했다. 지나가다 그 말을 들은 미샤는 그럴 리가요, 루카 아저씨. 요즘 애들이 체격 조건도 훨씬 낫고 힘도 좋고 더 높이 뛰는데. 테크닉도 훨씬 좋아졌고. 다 능력에 맞게 짜는 건데하고 대꾸했다. 루키얀은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 우리는 미샤의 말보다는 루키얀의 농담에 더 신뢰가 갔다. 루키얀은 키로프 시절부터 극장에서 일해온 베테랑이었고 미샤가 발레학교 학생이던 때부터 워낙 잘 아는 사이인데다, 농담을 좋아하는 노인네이긴 해도 무용수들의 몸과 재능을 놓고 허튼소리는 절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부터도 미샤가 옛날에 췄던 넘버를 추게 되면 절망과 경이의 구렁텅이’(이것도 콜랴의 표현이다)에 빠지곤 했으니까.

 
 

 

 

 

 

 

 

 

 

..

 

 

 

 

 

주변 인물들에 대한 언급은 이 뒤에도 조금 더 이어져서 일린과 키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 

 

 

 

맨 위 사진은 블라지미르 슈클랴로프와 빅토리야 테료쉬키나의 '사계' 발레 연습 화보. 이라랑 게냐가 연습을 하니까 어쩐지 남녀 무용수의 연습 사진을 한 장쯤 올려보고 싶어서. 아래는 슈클랴로프 혼자 연습하는 사진. 

 

 

그건 그렇고 흑흑, 나도 일하느라 절망의 구렁텅이... (그나마 '경이'는 있지도 않다는 게 더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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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