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 목요일 밤 : 오로라, 고된 출근길, 역효과일까봐 안타까움, 순서상 항상 손해 fragments2022. 4. 21. 20:05
며칠 전 페테르부르크 외곽에 나타났던 오로라 사진이라고 한다. 팔로우하는 페테르부르크 잡지 sobaka.ru 에서 가져온 사진. 나는 딱히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본 적은 없지만 언제나 오로라를 보고 싶었고 쇄빙선을 타고 북극이든 남극이든 하여튼 얼음바다에 가보고 싶었다. 더운 나라에 대한 로망은 전혀 없고 특히 사막지대와 열대우림이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아 한번도 그쪽 나라들엔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 없었다. 워낙 게으른데다 쾌적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오지 여행이라면 질색이긴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추운 나라도 오지라면 오지인데 왜 그런가 모르겠음. 그래서 러시아어 전공을 했나...
빨리 전쟁이 끝나고 무고한 희생자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기만을 바라는데 도무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아 너무 슬프다.
오로라 사진 한 장 더.
오늘은 굉장히 힘들게 출근했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있을 거란 소식을 들었기에 일찍 집을 나섰다만 오늘의 시위는 평소보다도 더 일찍 시작되었고 또 상당히 길게 지속되었다. 화정역에서 3호선을 탔는데 녹번에서 지하철이 멈춰섰고 그냥 2~30분 견뎌야겠다... 고 생각을 했다. 어차피 일찍 나왔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시위가 길어서 1시간 30분 가량 지하철이 멈춰 있었다. 앉아 있었으면 좀 나은데 만원지하철이라 서 있었기 때문에 나중엔 다리가 너무 아팠다. 그런데 그 지점에서는 내려서 다른 교통수단을 찾기도 너무 애매해서 그냥 기다렸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ㅠㅠ 9시가 다 되었을 때에야 지하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에서 나온 건 6시 50분이었지만 사무실에 도착한 것은 9시 20분이었다. 다른 것보다 다리가 많이 아프고 저려서 진이 좀 빠졌다.
나는 이동권 시위를 지지하는 편이지만 오늘 시위가 너무 길어지고 주변 탑승객들이 욕설을 내뱉는 것을 보면서 찬반을 떠나 이 전략이 과연 유효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원지하철 출근길인데, 2~30분 가량까지는 그래도 어느정도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1시간 30분은 사실 일반적인 출근 시민이 감내하기에는 좀 많이 길었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순간 그간의 지지자들도 욕설을 내뱉고 돌아서는 비중이 확 늘어나는 상황으로 보였다. 나는 화가 나지는 않았지만 그간의 과정을 통해 그래도 공감대를 조금이나마 넓혀왔던 것이 오늘 장시간 소요된 시위로 인해 지지를 많이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 좀 안타까웠다. 역효과가 아닌가 싶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란 어느 정도까지는 타인의 입장을 생각하며 연대하고자 하지만 일정한 선을 넘으면 홱 돌아서기 마련이다 ㅠㅠ 나조차도 나중에는 '아 너무 힘들구나. 저분들은 매일매일이 이런 생활일테니 이해하고 지지해야지. 그런데 다리도 너무 아프고 이제 정말 이렇게 일찍 나온 것도 다 소용없이 그냥 늦겠구나. 차라리 아예 늦게 나올 걸 그랬네' 하며 괴로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인간이란 이기적인 존재인 것이다 ㅠㅠ
하여튼 그래서 사무실에 도착하고 나니 무척 지쳤다. 할 일이 많아서 그래도 열심히 했다. 이 와중에 4호선 타고 오는 직원은 단전 때문에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어 줄줄이 지각. 나는 그나마 워낙 빨리 나왔기 때문에 유연근무제의 출근 마감시간인 10시 전에 들어왔지만 본래 10시까지 출근하던 사람들은 다들 늦었다. 인사 담당부서에 시위와 지하철 고장으로 직원들이 늦고 있다고 알려줘서 이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해주었다.
내일의 인터뷰는 제일 마지막 순서이다. 차라리 좀 빨리 해버리면 나은데 우리 부서가 서울에 있는데다 부설된 시설들이 있어 이런 순서로는 항상 마지막임(쫌 가나다 순서 비슷함) 항상 손해보는 기분이다. 오늘은 그 인터뷰 준비를 하면서 그저께 작성해서 낸 서면답변자료들을 다시 잘 읽어보고 추가로 필요한 내용들을 메모하고 이미 몇달 전에 써서 냈던 작년 보고서를 재독했는데 으앙 작년이 지나간지 벌써 4개월인데 세세한 건 다 까먹었지 내가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엉엉... 하여튼 어떻게든 내일을 잘 넘기면 좋겠다. 어차피 좋은 점수를 받을 기대는 안 하는데 그래도 바닥에 깔고 싶지는 않아서... (노력에 비해서는 구조적으로 여러 모로 좀 불리한 점이 많은 부서이다. '그러나 서울에 있으니까...'로 그냥 자기 위안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귀가해서는 자전거를 30분 타고 토끼샐러드를 먹었다. 다리 아팠지만 그래도 자전거 대충이라도 탔으니 스스로를 칭찬하자 ㅠㅠ
오늘의 식단.
아침 : 삶은 달걀 1개. 다즐링 한 잔.
점심 : 돈까스(ㅜㅜ 너무 힘들어서 고지방질 섭취하며 그래도 탄수화물은 아니잖아 하고 정당화 ㅋㅋ 본래 점심만은 잘 챙겨먹자 주의임)
저녁 : 토끼샐러드(방울토마토. 파인애플. 하루견과. 닭가슴살 50g. 계란말이 슬라이스 남은 1개)
피곤하니까 늦지 않게 자야겠다. 내일도 시위를 한다는데 아침에 몇시에 나가야 하지... 아예 늦게 나서서 10시 출근을 할까 ㅠㅠ 내일은 시위를 7시가 아니라 8시부터 시작한다는 기사를 어디서 봤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그러면 오늘보다 좀더 일찍 나가면 8시 되기 전에 상당히 여유있게 경복궁역을 통과하니 괜찮은데... 오늘이랑 똑같으면 어떻게 하지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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