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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일하지 않을 때면 계속 뉴스를 찾아본다. 코앞에 닥친 대선도 그렇지만(이것도 참 절망적이다ㅠㅠ)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관련 기사를 읽고 또 읽게 된다. 국내 뿐만 아니라 러시아 현지 기사들도 읽는다. sns로 현지인들의 반응도 쭉 읽는다. 트위터는 러시아 정부에서 일부 제한을 한 탓인지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글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검열 때문에 몇몇 단어는 잘리거나 아예 필자가 다른 단어로 대체해서 쓴다. 매시간마다 더 이상의 희생자가 없기를, 그리고 제발 상태가 더 악화되지 않기를, 가능한 최선의 평화가 찾아오고 파국과 고통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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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에서도 반전시위가 계속 있었고 체포된 시민들도 많았다. 모스크바의 유명 극장 디렉터는 전쟁에 반대하며 사임했다. 유명 방송 베체르느이 우르간트의 진행자인 이반 우르간트는 반전 메시지를 냈다가 '방송 계약 연장이 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해당 방송이 중단되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나 팔로우하는 러시아 사람들은 역시 성향상 반전 메시지를 계속 내고 있고 시위에 나간 사람도 많다. 가장 많이 나오는 해쉬태그나 단어들은 '전쟁 반대', 그리고 '부끄럽다'이다.

 

 

 

오늘 퇴근 후 료샤와 잠깐 통화를 했었다. 이 친구가 자기도 반전시위에 나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료샤는 내가 매우 아끼는 친구이지만 웬만하면 정치 얘기는 나누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노브이 루스키의 아들, 부르주아, 자본가 2세이고 푸틴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딱히 대안도 없다고 생각하며 14년 크림반도 합병에는 찬성 입장을 보였고 전반적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반전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피켓까지는 들지 못하고 행렬에 따라갔다고 한다. 통화하면서 나도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 우크라이나 출신이야. 어릴 때 키예프에 있는 외가에 갔었어' 라고 한다.

 

 

료샤는 어린시절에 대해 향수가 없고 부모님과도 관계가 딱히 행복하지 않아서(십대 초반에 부모님이 이혼했고 엄마와는 소원했다) 나와는 드문 경우가 아니면 어릴 때 얘기를 많이 나눈 적이 없었다. 예전에 막 친해지기 시작해 이 녀석이 나에게 좀 많이 의존하던 무렵 술먹고 푸념 반 울음 반으로 어릴 때 유괴당할 뻔했는데 엄마가 자기를 다독거리기는커녕 모르는 사람 따라갔다고 불같이 혼냈던 거 얘기하며 '엄마는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안아줘야 되는 거잖아' 라고 마음속 상처와 트라우마를 표출한 것 정도. 그리고 엄마가 억지로 악기 배우게 시켰는데(플룻인가 클라리넷이었다) 자기는 그게 너무 싫어서 땅을 파고 묻어버렸다는 우스개 겸 역시나 맘 아픈 푸념 정도였다. 지금도 엄마와는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지낸다. 나도 그의 아버지는 몇번 본적 있지만 엄마에 대해선 본 적도 없고 전혀 모른다.

 

 

'엄마 때문에 시위 나갔어?' 하고 물어보자 그는 '아니, 울 엄마 국적은 러시아야. 재혼하고 이십년도 넘게 모스크바에 사는데 뭐. 근데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이거 정말 미친 짓이야. 정말 너무해' 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돈바스에 대해서는 러시아인들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분리독립했어야 한다고 선을 긋는다. 8년 동안 돈바스에는 계속 폭격을 했는데 서구에선 그건 다 나몰라라 모른척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 침공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돌아와서, 전쟁과 경제 제재 때문에 앞으로 사업이 어려워질거고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SWIFT 퇴출은 좀 많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자기가 '망할넘의 독재자'(여기서 그와 나의 표현이 일치함. 하긴 료샤는 옛날부터 푸틴에 대해서는 좋지도 싫지도 않지만 대안이 없으니 그냥저냥이라고 하면서도 단호하게 '독재자'라고 부르곤 했으니 ㅋㅋ)에 빡쳐서 시위 나갈 만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리고는 그 역시 '부끄러워'라고 한다. 

 

 

물론 안 그러는 사람들도 있다. 내 지인들은 아니지만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나 sns의 다른 글들을 보면 푸틴을 옹호하고 돈바스가 8년간 당한 폭격에 대해 얘기하고 반전 운운 잘난척하는 인텔리들 꺼져라, 이건 다 미국과 망할넘의 우크라이나 친나치 세력 때문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경우도 많다. 소련, 나토, 미국, 민스크 협정, 서방이 어긴 나토 미확장 약속 등등의 얘기들도 나온다. 마지막 문장은 사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던 주장이다. 그리고 푸틴이 이렇게까지 선을 넘고 끔찍한 짓을 자행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의 논리가 있었다. 푸틴의 논리와 행위가 끔찍하듯 미국의 논리와 행위도 비열하다. 이것은 양비론을 내세워 독재자의 전쟁범죄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 나토 역시 자원과 정치, 자본과 이윤을 놓고 장사질을 하고 주판알을 튀겼다. 

 

 

좀전에 첫 협상이 시작되었다는데 부디 더이상의 살상이 없기를 바란다 ㅠㅠ 정말 너무 슬프고 남의 일 같지 않아 기사들 읽을 때마다 울컥울컥한다 ㅠㅠ 

 

 

 

 

 

 

오늘은 정말 많이 바빴다. 새벽 늦게야 잠들어서 수면이 매우 부족했다. 오전엔 심층면접을 진행했고 진이 빠졌다. 어쨌든 대상자 중 그래도 좀 괜찮은 사람을 뽑았다. 점심 먹은 후 히스테리 장착 직원에게서 사업계획 보고를 들었고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것을 원천봉쇄하여 그것은 안된다고 딱 잘랐다. 그리고 후배직원에게 일을 좀 떠넘기려는 낌새가 보여서 그 직원은 다른 일이 많고 분장상 업무 주도는 네가 해야 한다고 딱 잘랐다. 그래서 이 히스테리 장착 직원은 막판에 안색이 확 변하며 저기압이 되어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나도 언제까지 오냐오냐해줄 수 없는 노릇이다. 이 회의를 마친 후에는 한없이 해맑지만 시간관리와 문서, 예산 능력이 거의 제로에 수렴하는 직원이 사업계획 초안을 들고 와서 이것을 같이 놓고 두어시간 가까이 검토를 하고 지적을 하고 뭐가 문제인지, 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시 짜보라고 유도를 했다. 그랬더니 하루가 다 갔고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어지럽고 울렁거렸다. 

 

 

너무 지친 상태로 퇴근했다. 내일 삼일절이라 쉰다. 쉬니까 다행이다. 오늘 메모는 '이러저러해서 바빴다. 자야겠다' 라고 짧게 적으려 했는데 어쩌다보니 우크라이나 얘기로 길어졌다. 료샤랑 통화를 해서 그런가보다. 보고 싶다는 얘기, 레냐에게 안부 전해달라는 말, 그리고 이러다 코로나 누그러들어도 이젠 너네 나라 오가는 비행기 다 막혀서 아예 못보게 되는 거 아니냐는 나의 푸념으로 끝났다. 이제 자야겠다. 정말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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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iont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