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중 - 침묵하는 쪽이 편하지만, 예외 about writing2021. 9. 5. 16:01
계속 쓰고 있다. 주인공인 게냐는 풀코보 공항에서 지나를 픽업해서 다시 모스크바 대로로 나왔고 지금은 둘의 대화 파트를 쓰는 중이다. 아무래도 인물이 하나 더 늘어나면 쓰기가 더 수월해진다. 대화가 들어가면 더.
짧은 문단 두 개를 발췌해본다. 이건 전반부라 아직 게냐가 풀코보 공항에 도착하기 전, 모스크바 대로를 혼자 주행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언급되는 에피소드 자체는 그 전의 이야기라 지나와 미샤도 등장한다. 나에게 이 단편을 쓰는 과정은 아주 오래전 처음 만들어냈던 인물과 다시 만나고 그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진은 파루흐 루지마토프의 리허설 장면. 사진사는 캡션에 나와 있듯 Marina Bakano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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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냐는 미샤와 오랜 시간 대화를 주고받는 적이 거의 없었고 논쟁을 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그는 이따금 미샤의 유머 감각에 적응이 되지 않았고 때로는 은근히 화가 치밀 때도 있었지만 대놓고 받아치거나 곧이곧대로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기 어렵군요’ 라든지 ‘내 생각은 다른데요’ 라고 말한 적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미샤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게냐는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성적으로는 토론과 말싸움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두 가지 모두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는 별다를 게 없었고 차라리 침묵하는 쪽이 편했다.
예외란 춤에 대한 주제뿐이었다. 지나이다는 그가 미샤와 신작 리허설 도중 자신의 솔로 파트에 대해 언쟁을 벌이는 것을 보고 족히 10분 동안 웃고 또 웃었다. 짜증이 난 미샤가 ‘넌 왜 웃는데!’ 하고 소리치자 지나는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어서. 아사예프가 너 때문에 리허설 집어치웠던 거 생각 안 나? 그 착한 스탄카에게도 바락바락 우기고. 옛날에 못되게 군 거 이제 벌 받는 거야. 아주 잘하고 있어, 겐카’ 하고 웃어댔다. 게냐는 키로프에서도 전설로 남아버린 미샤의 건방지고 무례한 태도를 자신의 조심스러운 반발과 동일시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가 너무 즐거워했고 미샤조차도 ‘그런가? 할 말이 없네’ 라고 대답한 후 그의 의견을 대폭 수용해줬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아사예프는 미샤가 키로프 극장에서 춤추던 시절의 발레단 예술감독이다. 미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지만 그의 재능을 아껴서 항상 저 녀석은 그냥 골칫거리가 아니고 '우리' 골칫거리라고 칭하곤 했다. 스탄카는 미샤의 절친한 벗이자 볼쇼이 극장 안무가 출신인 스타니슬라프 일린의 애칭이다. 물론 모두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이라 실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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