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중 - 풀코보 공항에서 about writing2021. 8. 21. 20:18
사진은 2013년 9월, 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국제선 공항. 14년에 신공항이 개장했으므로 이 사진은 내가 마지막으로 디뎠던 구청사의 모습이다. 2층까지 있는데 저녁 무렵 찍어서 푸르스름한 빛의 덕을 좀 보았을 뿐 엄청 작아서 갈 때마다 버스 터미널을 떠올리곤 했다. 그나마도 이때는 카페와 식당이라도 한두개 입점을 했지만 맨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던 옛날에는 진짜 우중충 그 자체였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이 9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바로 이 구 풀코보 공항이 등장한다. 물론 이쪽은 출발하는 쪽이고, 도착 홀은 다른 방향에 있다만. 후자는 더욱 좁고 우중충했음.
이 공항에 도착해(드디어 모스크바 대로를 벗어나서 ㅋㅋ)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에 대한 문단 하나 발췌해 봄. 그런데 이 주인공은... 이 공항에서 나오면 다시 모스크바 대로를 주행해야 한다 ㅠㅠ
* 이 글을 절대로 무단 전재, 복제, 배포, 인용하지 말아주세요 *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공항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게냐는 마리니나의 신간 추리소설을 읽고 종이컵에 담긴 타르처럼 진한 싸구려 커피를 한잔 마셨다. 눈보라 때문에 비행기가 줄줄이 연착되고 있었다. 커피를 다 마신 후에는 책을 패딩 점퍼 주머니에 집어넣고 뻣뻣해진 몸을 좀 풀려고 공항 안을 두어 바퀴 돌았다. 거무스름한 바깥 유리문 너머로 여전히 잿빛 안개가 회오리치고 있었다. 아니치코프 다리의 거대한 청동 말 조각상들 아래서 촬영을 하고 있을 미샤가 좀 안됐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긴 미샤는 운하에서 불어오는 칼바람과 눈보라를 정면으로 맞으면서도 ‘드라이아이스를 안 써도 되겠네’ 하며 농담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about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쓰는 중 - 침묵하는 쪽이 편하지만, 예외 (0) | 2021.09.05 |
---|---|
쓰는 중 - 풀코보 공항 2, 항상 없는 카트와 이따금 사라지는 가방 (6) | 2021.08.27 |
쓰는 중 - 다 잘할 수는 없는 노릇 (2) | 2021.07.03 |
판탄카의 루키얀 (7) | 2021.05.29 |
글을 마친 직후, 메모 (0) | 2021.05.23 |